칼럼 뉴스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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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과 건강>운동으로 고지혈증 예방을<생활과 건강>운동으로 고지혈증 예방을 이종기 약학박사 나이가 들면 찾아오는 고지혈증, 어떻게 예방할까? 먼저 지질이 무엇인지 알아보자. 지질은 지방이라고도 하며 물에 녹지 않고 유기용매에 잘 녹는 기름을 총칭하는 것으로 탄수화물과 단백질 등과 같이 비교적 성질이 유사한 구성성분이 중합된 것이 아니라 여러 종류의 물질을 함유하고 있으며, 몸 안의 역할도 다양하다. 단순지질에는 지방산, 중성지방, 스테로이드, 왁스, 콜레스테롤 등이 있고, 복합지질에는 인지질, 당지질, 지질단백 등이 있다. 우리가 섭취하는 지방은 먼저, 포화지방산 또는 불포화지방산이 글리세린과 중합된 중성지방 형태로서 육류는 불포화지방산이 많이 포함된 중성지방, 식용유는 불포화지방산이 많이 포함된 중성지방 형태로 섭취한다. 아울러 육류에는 콜레스테롤이 많이 포함되어 있다. 섭취된 지방은 물에 잘 녹지 않기 때문에 혈류를 타고 잘 운반되도록 수용성인 단백질로 둘러쌓인 지질단백에 의해 이동된다. 지질단백은 간단히 Chylomicron, LDL, HDL 등이 있다. 곧 중성지방과 콜레스테롤을 안에 태운 지질단백이라는 배(Chylomicron)에 의해 섭취된 지방이 말초조직과 간으로 이동되며, 간에서 대사를 거쳐 간에서 다시 말초조직으로 지질단백이라는 배(LDL)에 의해 이동하여 에너지로 쓰이거나 저장(체지방)된다. 이 때 많은 양의 지방 곧 중성지방이나 콜레스테롤을 섭취하게 되면 말초조직으로 보내야 하는 많은 양의 배(LDL)를 만들어야 하므로 혈중 LDL치가 올라가게 된다. 물론 야식 등 불필요한 탄수화물 섭취도 체지방으로 쌓이게 된다. 한편, 말초조직에 저장된 콜레스테롤은 HDL이라는 지질단백의 배를 타고 간으로 이동되어 여러가지 필요한 곳에 사용된다. 그러므로 저장하기 위해 지나치게 중성지방과 콜레스테롤을 많이 운반해야만 하는 고LDL혈증은 우리 몸에 해롭고, 말초조직에 저장된 콜레스테롤을 이용하기 위해 많이 만들어지는 HDL은 우리 몸에 유익하다. 그러면 고지혈증이란 무엇인가? 이상지질혈증 또는 고지질단백혈증이라고도 하는데, 우리 몸에 LDL(저밀도지질단백)의 합성 증가, 또는 분해 감소로 혈중의 중성지방, 콜레스테롤, 인지질, 유리지방산 등의 지질이 비정상적으로 증가되어 있는 상태를 말한다. 임상적으로 총콜레스테롤이 240이상, 중성지방 200이상, LDL콜레스테롤 160이상, 그리고 유익하다고 한 HDL콜레스테롤 40 미만을 고지혈증이라고 한다. 고지혈증은 유전적 원인에 의해 지질대사 또는 지질단백 수송계의 이상으로 발생하는 1차성 고지혈증이 있고, 당뇨, 간질환, 신장질환, 그리고 과도한 당질과 지방섭취 등의 불균형적 식생활, 스트레스, 흡연, 음주, 약물 둥에 의해 발생하는 2차성 고지혈증이 있다. 고지혈증이 왜 해로운가 살펴보자. 혈관 내벽에 침투한 LDL은 혈관 내벽 아레에서 산화되고, 산화된 LDL은 대식세포에 의해 탐식되고, 대식세포 안이 가득 차 터지면서 산화된 LDL도 터져서 거품세포로 되어 혈관 내벽에 침착되어 콜레스테롤이 플라그를 형성하고, 반복되어 죽상종(죽 모양의 덩어리)을 형성하여 죽상경화증을 가져온다. 아울러 터져 나온 산화된 LDL은 혈관세포에 독성을 주어 동맥경화증을 진행시키고, 지나가는 LDL이나 고혈압 등에 의해 딱딱해진 혈관의 내피세포가 손상을 입으면 혈관이 파열되어 혈전이 생겨 죽상경화증이 더욱 악화된다. 곧 혈관이 막히게 된다. 결국, 고콜레스테롤혈증은 허혈성 심질환인 협심증, 심근경색, 그리고, 뇌졸중, 동맥류, 하반신괴저, 담석증 등을 유발하고, 고중성지방혈증은 지방간, 췌장염 등을 유발한다. 그렇다면, 고지혈증은 어떻게 예방하고 치료할 수 있을까? 혈중 지질농도의 항상성은 지질의 공급과 소비의 균형에 의해 유지된다. 그런데 지질의 공급이 장기간 과다하게 이루어지면 지질대사의 이상이 생긴다. 그러므로 육류 중의 포화지방산과 콜레스테롤 섭취량을 줄여서 간으로의 유입을 줄이며, 트랜스지방이 함유된 마가린, 쇼트닝, 파이, 냉동용 피자, 도넛, 케이크, 쿠키, 어육제품 등의 섭취를 줄이는 것이 좋다. 오메가3 계열의 불포화지방산이 많이 함유된 고등어, 멸치, 참치 같은 등푸른생선, 푸른잎 채소, 콩류, 들기름, 대두유 등을 많이 섭취하는 것도 좋다. 섬유질이 많은 음식은 콜레스테롤 배출에 효과가 있다. 또한, 중요한 것은 운동이다. 운동은 LDL을 낮추고 HDL을 높여주어 섭취된 지방과 저장된 지방을 말초조직에서 소모되게 하므로 고지혈증에 효과가 있다. 고강도 운동보다는 걷기, 수영, 줄넘기, 등산 등 유산소 운동을 충분히 하자. 아울러 금연, 금주, 절제된 생활, 감사하는 생활 습관이 좋다. 우리의 좋은 습관과 운동은 고지혈증 예방과 치료에 큰 도움이 되며, 이 후에 약물복용 여부를 전문가와 상담하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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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미국의 남북 전쟁<지평선>미국의 남북 전쟁 송태윤(논설위원, 문학박사) 미국 남북전쟁(American Civil War)은 미국에서 일어난 내전이다. 1861년 4월, 노예제를 지지하던 남부 주(州)들이 모여 남부연합을 형성하며 미합중국으로부터의 분리를 선언한 뒤, 1861년부터 1865년까지 4년 동안 벌어진 전쟁이다. 전쟁 결과 남부연합군이 패했고, 미국 전역에서 노예제를 폐지한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미국의 남북전쟁 당시, 공업지대인 북부에 사는 사람들과 농업 지대인 남부에 사는 사람들 사이에는 여러 가지로 의견 충돌로 사이가 좋지 않았다. 특히 북부 사람들은 노예를 부리는 것을 반대하였다. 북부에는 자유를 찾아 영국에서 건너와 사는 사람이 많았으므로, 흑인을 마치 짐승처럼 부리는 노예제도는 하나님의 뜻에 어긋난다고 생각하였던 것이다. 그 때에 남부 지역에서 부리는 노예의 수는 400만 명이 넘었다고 한다. 1852년에 스토우 부인(Harriet Beecher Stowe, 1811~1896)의 소설 『톰아저씨의 오두막집.Uncle Tom’s Cabin』이 출판되면서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이는 노예제 반대 여론에 부채질을 하게 되었다. 이 소설은 5년 만에 무려 50만 권이나 팔려 나갔다고 한다. 노예제를 매개로 남북의 감정이 고조된 이때에 남북 전쟁이 일어나는 데 불을 붙인 것은 바로 1860년에 치러진 제16대 대통령 선거였다. 대통령 후보자는 링컨과 Salmon Chase 등 4명이었다. 이 선거에서 노예제도를 반대하는 공화당 후보 에이브러햄 링컨이 대통령으로 당선되자, 앨라배마를 비롯한 남부의 7개 주는 대통령 취임에 반대하고 나섰다. 그들은 대통령 취임 전인 1861년 2월에 미연방에서 탈퇴를 선언하고 ‘아메리카 남부연합’을 조직한 후 제퍼슨 데이비스를 대통령으로 선출하였다. 또 남부연합은 1861년 4월 12일 사우스캐롤라이나 주 찰스턴 항에 있는 섬터 요새를 먼저 공격했다. 이곳은 북부군의 요새였다. 이를 전쟁신호로 보고 링컨은 지원병을 모집하고 전투를 준비했다. 이 무렵 로버트 E 리 대령이 북부군을 떠나 남부군에 합류하여 최고 사령관이 되었고, 노예 주 가운데 아칸소를 비롯한 4개 주가 남부연합에 가담함으로써 남북은 각각 11개 주가 되었다. 1862년 9월 17일 메릴랜드 주에서 벌어진 앤티텀(남부연합의 수도) 전투는 북부군의 승리로 끝났고, 링컨에게 노예해방선언을 발표할 기회를 주었다. 전쟁 중이던 1863년 1월 1일에 링컨의 ‘노예 해방 선언’을 발표했다. 이 선언으로 남부의 노예들에게 용기를 주었고, 이미 많은 노예들이 북부로 도망을 갔다. 그들은 “노예로 살다가 죽느니, 전쟁터에서 죽겠다. 우리 후손들을 위해서라도 명예롭게 죽겠다.”고 하면서 군에 자진 입대를 하게 되니 이로 인해 남부는 군사와 산업면에서 큰 타격을 입었다. 서부 전선에서 계속 승리를 거둔 하이럼 율리시스 그랜트(Hiram Ulysses Grant) 장군은 그 공적을 인정받아 1864년 3월에 북부군 최고 사령관으로 임명되었고, 북부군은 9월 3일에 애틀랜타를, 12월 20일에 해안 도시 서배너를 함락하고, 1865년 4월 남부군의 주력군인 노스버지니아 군을 크게 무찌르고 승리하였다. 그 결과 남부군의 리 장군은 더 이상은 버틸 수 없다는 걸 인정하고, 4월 9일에 애퍼매턱스 코트하우스에서 항복을 했다. 4년에 걸친 남북 전쟁에서 북부가 승리함으로써 미국의 연방은 그대로 유지되었고, 흑인도 백인과 동등한 권리를 가진다는 법률이 제정되어 노예 제도가 폐지되어 노예에게 시민권이 주어졌다. 이 전쟁에서 북부군은 약 36만 명이 전사했고, 남부군은 약 25만 명이 전사했다. 전쟁 종결 닷새 후인 1865년 4월 14일 링컨 대통령이 노예 해방 반대론자인 부드에 의해 암살당하였다. 이로써 그가 주장했던 관대한 남부 재건 안이 무용지물이 되었고, 남부에서는 10년 동안 군정이 실시되었다. 그 뒤 남부는 사회·경제적으로 엄청난 변화를 겪게 되었다. 대규모 농장은 소규모로 바뀌게 되었고, 북부 사람들의 투자로 자본과 기술이 들어오면서 섬유·제철 등의 공업이 발전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공업 생산량이 배로 증가하여, 미국 경제는 급속도로 발전하게 되었다. 남북전쟁의 결과 중 가장 기이한 것은 종전의 방식으로 로버트 리 장군은 그란트 장군에 자신의 패검을 넘기며 종결되는데, 전범 재판 없이 감금이나 패전자 학살 등의 형벌 없이 모든 포로들은 즉시 석방되고 평화롭게 끝냈다는 것이다. 또 미국 남북전쟁 때에 북부군의 총사령관인 그랜트는 워싱턴대학 총장에 취임했는데, 그는 남부군 총사령관이었던 로버트 E 리 장군을 기념하기 위해 워싱턴대학을 워싱턴리대학으로 개명했다. 이것이 미국인들의 배려와 관용과 조화(調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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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나들목>부끄러움 불감증 시대<삶의 나들목>부끄러움 불감증 시대 윤창식(논설위원, 문학박사) 동양 철학에는 인의예지를 인간의 기본 덕목으로 하고 여기서 파생된 사단(四端) 중에 수오지심(羞惡之心)이 있다. 수오지심은 "자신의 선하지 못함을 부끄러워하고 남의 불선(不善)을 싫어하는 마음"이다. 이는 흔히 남의 잘못에 대해서는 단호하고 자신의 허물에 대해서는 관대해지려는 사람들의 얕은 마음을 경계하는 경구이다. 인간을 다른 동물과 구별지어주는 척도에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겠으나 부끄러워할 줄 아는 마음이야말로 그 중 으뜸이 아닐까 한다. '부끄러워 한다'라 함은 자기 잘못을 솔직하게 인정하는 자기고백이며 자기한계에 대한 결코 밉지 않은 양심 행위이다. 양심의 소리에 귀(耳)를 기울이는 것이 곧 부끄러움(恥=耳+心)이다. 수치를 느낀다는 것은 자기분수를 넘어서려는 오만의 위험성을 미리 감지하고 자기 정체성을 확인하는 심리적 장치이다. 나아가서 부끄러움은 약자나 패배자의 심리에 머물지 않고 자신의 인식의 틀 안에 타인의 시각을 수용할 줄 아는 오히려 강자의 감정이라는 것이다(신화연, <부끄러움 코드> 참조). 부끄러워할 줄 아는 사람은 오만하지 않고 격정적이지 않으며 타자에게 위협적이지 않다. 인간이라면 당연히 갖추어야 할 심성인 부끄러움을 단순히 나약함이나 비겁함으로 치부해버려서는 안 될 일이다. 여러 사회적 요인이 깔려 있겠으나 요즈음 우리 한국인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부끄러움을 잃어버린 시대에 살고 있는 게 아닌가 한다. 명명백백한 사실도 아무 부끄럼 없이 발뺌하는 일부 정치인들의 낯두꺼운 행태는 차치하고라도 일반인들마저도 뻔뻔함을 당당함이나 자신감으로 착각하고 있는 듯하다. 말도 되지 않는 소리도 그저 목소리 크게 대들면 승자가 되기도 하고 말 잘하는 사람으로 되는 참 신기한 세상이다. <논어>에 "눌언이민행(訥言而敏行)"이라는 구절이 나온다. 이는 번지르하게 말만 앞세우지 말고 진성성 있게 행동하라는 뜻이다. 영어권에도 "말보다는 실천"(Easier said than done)이라는 비슷한 속담이 쓰인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실천이란 불도저처럼 수단 방법 가리지 않고 행하라는 뜻이 아니다. 무릇 정당성이 담보되어야만 사람의 행위는 사회적 가치를 지닐 수 있다. 그저 어떠한 부끄러운 짓일지라도 자기 이익이나 자기 보신을 위해서라면 아무 거리낌없이 자행하는 행위는 부끄러움을 모르는 사람들의 공통점인 태도이다. 우리는 개인의 자유를 최대한 보장하는 민주사회에 몸담으며 누구 할 것 없이 개성시대를 누리고 있다. 물론 이러한 흐름은 인권을 가장 높은 가치로 인정하는 올바른 시민사회의 모습이다. 하지만 자유와 방종이 혼동되어버리면 개인이든 집단이든 이른바 '부끄러움 불감증'이라는 고약한 병증을 앓게 될 수 있다. 한자로 어깨 견(肩)은 집 호(戶)와 고기 육(肉) 변으로 이루어진 형성문자이다. 즉, 어깨는 '육체의 문'으로서 동서양을 막론하고 어깨선을 감추려 했던 것이 옷의 역사이다. 하지만 최근 몇몇 영상매체의 화면에서 보듯 어깨선을 훤히 드러낸 일부 연예인들의 모습에서 수치심을 알기나 하는지 의심스럽다. 결코 아름답게만 보이지 않는 몸매를 과시하려는 그들의 행태는 민망함을 넘어 안쓰러울 정도다. 또한 '아름다운 황혼'을 보여줘야 할 노년세대가 겉치레적으로 젊은이 흉내를 내며 지나치게 호기를 부리는 모습도 노추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황혼이 아름다운 것은 황혼 그 자체의 아름다움보다는 황혼이 곧 어두움 속에 묻힐 것이라는 예감 때문이 아닌가. 노인만이 가질 수 있는 아름다운 미덕은 지하철에서 자리를 양보하지 않는다고 젊은이를 무슨 죄인 다루듯 하는 준엄함에 있는 것도 아니고 증권시세표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늙은 욕망에서 나오는 것은 더욱 아니다. 부끄러움을 모르기로는 종교인의 경우를 빼놓을 수 없다. 종교는 사랑과 자비와 용서를 토양으로 할 터인데 일부 교파는 타 종교에 대해 매우 적대적일 뿐만 아니라 스스름없이 부도덕한 언행과 비리를 저지르면서 대체 누구를 구원하겠다는 것인가? 이것도 모자라 그릇된 종교관으로 스스로 정치적 이득에 앞장서는 일부 종교인들의 꼴이라니 볼수록 눈살이 찌푸려지고 낮은 데로 임하지 못하는 오만한 태도는 참으로 부끄럽다. 배움이 별로 없는 옛 우리네 농부들은 유독 자기네 농작물만 농사가 잘 못 되면 그 탓을 외부 요인에 돌리지 않고 자신의 나태함이나 부덕함부터 헤아려보고 깊이 반성하면서 부끄러워 했다고 한다. 이는 흙의 정직함을 아는 농부의 참다운 지혜일 것이며 그러한 심성이 빚어내는 겸허함 속에서 가슴 찡한 사람의 아름다움을 느끼게 한다. 부끄러움을 단순히 소극적이고 내성적인 심성으로 넘겨버리거나 그러한 사람을 사회적 부적응자로 낙인찍는 일은 단연코 피해야 할 일이다. 반대로 돼먹지 못한 만용을 마치 용기인 양 착각하는 태도는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부끄러워할 줄 안다는 것은 사물을 관조할 줄 안다는 뜻이고 곧 관조하는 태도는 겸허함으로 이어져 이기(利己)의 너울을 벗고 공존의 사회성을 획득할 수 있게 해준다. 독일 루터교회 목사이자 반나치주의자였던 디트리히 본회퍼는 "부끄러움이란 지금은 멀어져 있으나 인간의 근원을 향한 잊혀지지 않는 그리움"이라고, 종교인 답지 않는 매우 감성적인 톤으로 부끄러움의 본질을 설파한 바 있다. 첨예한 경쟁과 물질만능의 시대일수록 사회구성원 간에 부끄러워할 줄 아는 마음을 회복하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부끄러워하는 사람이 많을수록 그 사회는 에리히 프롬의 말처럼 모든 인간이 수단이 아닌 목적이 되는 '건전한 사회'(sane society)가 될 가능성이 높다. 이런 점에서 부끄러움은 결코 허약한 심리가 아니며 사회를 건전하게 지탱해주는 매우 강인한 덕목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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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나들목>말(言)의 인플레이션 시대<삶의 나들목>말(言)의 인플레이션 시대 윤창식(논설위원, 문학박사) 요즈음은 잘 불려지지 않지만 "우리는 말 안하고 살 수가 없나"라는 노랫말로 시작하는 <솔개>라는 대중가요가 있다. 첫 소절에 이어지는 "지쳐버린 나의 부리여"라는 표현은 과연 무엇을 함의하는 것일까? 이는 복잡한 도시문명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이 앞다투어 쏟아내는 말의 홍수 속에서 겪게 될지도 모르는 자기 정체성의 혼돈을 은근히 비판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왜 인간들은 말을 하면서 살아가는 존재일까? 우리 인간은 다른 동물들과는 달리 오욕칠정(五慾七情)이라는 미묘한 감정의 세계를 지니고 있기 때문에 그 감정의 세계를 효과적으로 표출해보려는 노력의 소산으로 언어라는 상징을 만들어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유용한 도구를 잘 못 사용하거나 마구잡이로 휘둘러서는 안 될 일이다. 상대방에게 상처를 주지 않고 자기의 감정이나 생각을 전달하려면 오해를 유발할 수 있는 표현이나 과장된 말의 찌꺼기는 여과시킬 줄 알아야 한다. 언어습관은 한 번 길들여지면 고치기 어렵기 때문에 어릴 적부터 가정이나 학교 교육을 통해서 건전한 언어시민으로 성장시킬 필요가 있다. 소통학의 창시자 도미니크 불통(D. Wolton)은 인터넷시대를 맞아 오히려 사람들 간에 불통(不通)이 심화되었다고 진단한다. 이는 한마디로 말은 참 많아졌지만 말다운 말은 줄어들었다는 쓴소리로 들린다. 보통 인플레이션이라 함은 화폐금융학 용어로서 재화보다 유통되는 화폐가 웃돌 때 돈의 가치가 하락하는 현상을 일컫는다. 이처럼 경제 분야에 쓰이는 인플레이션 용어는 언어사회학적인 측면으로 준용될 수 있다. 즉, 말이 거품처럼 부풀려 있거나 정황에 맞지 않게 과도하게 많으면 그 말의 값은 떨어지게 마련이라는 것이다. 영어 'text'의 어원은 직물을 뜻하는 라틴어 'textus'이다. 직물은 씨줄과 날줄을 매우 촘촘히 교직하여 만들어진다. 베틀에 의한 전통 방식으로 옷감이 만들어지기까지는 엄청난 인내와 섬세함이 요구된다. 이러한 텍스트(text)라는 어휘가 요즘은 주로 교과서, 본문, 인터넷 문자 등의 의미로 쓰인다는 사실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글자 하나 말 한 마디도 마치 베를 짜듯 신중하게 하라는 깊은 뜻이 담겨 있는 게 아닐까. 요즘 우리나라 사람들은 너나할 것 없이 핏대를 세우며 자기 주장은 곧잘 하면서도 타인의 말은 잘 들으려 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태도는 상대방 말의 참뜻을 헤아리려고 하지 않기 때문에 생산적인 대화나 건전한 토론을 기대하기 어렵게 만든다. 당연히 이러한 비생산적인 대화 습관은 말의 값어치를 떨어뜨릴 뿐이다. 정치판은 말할 것도 없고 서로 이해가 상충되는 집단들끼리 표현의 자유라는 이름으로 벌이는 지나친 말의 성찬은 과식으로 인하여 몸속에 쌓이는 잉여 칼로리만큼이나 좋지 않다. 사회언어학자 막스 피카르트(Max Picard)는 <침묵의 세계>라는 저서를 통해 "침묵을 잃어버린 도시는 멸망을 동해서 침묵을 되찾는다"고 경고한다. 곧 '침묵의 힘'은 사회구성원 개개인과 공동체 간의 어떠한 대립도 뛰어넘을 수 있게 해준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피카르트의 역설은 불의를 보고도 침묵하자거나 단순히 침묵 자체를 찬미하는 것이 아니라 불필요한 언어의 넘침을 경계하는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 유대교 경전 <탈무드>는 "말 한마디가 세상을 바꾼다"라고 적고 있다. 구화지문(口禍之門)이라는 사자성어는 온갖 나쁜 일은 입에서 생기므로 말을 삼가하라는 뜻이다. 공자의 <논어> '위정편'에 나오는 신언과우(愼言寡尤 말을 신중하게 하면 허물이 적다)라는 말도 새겨들어야 할 말이다. 아무 생각 없이 발화되어 나오는 말은 자칫 상대방을 헤칠뿐만 아니라 자기 발등을 찍는 둔기가 될 수도 있다. 말에도 말값이 있다. 진정어린 칭찬의 말이 아닌 사탕발림에 불과한 교언(巧言)이나 아첨도 결국 말의 값을 저해하는 데 일조할 뿐이다. 옛 성현들이 강조하는 장수의 비결 중 되도록 말을 적게 하라는 소언(少言)의 가치는 요즘처럼 말이 많은 세상에 한 번쯤 되새겨보아야 할 덕목이 아닌가 한다. 정말 우리는 제대로 된 말만을 하면서 살아갈 수는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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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테나>가정의 평화는 어디에서<아테나>가정의 평화는 어디에서 노운서(논설위원, 교육학 박사) 오월은 가정의 달이자 사랑의 달이다. 흔히들 사람은 사랑이며 사람은 사랑으로 산다고 한다. 가족간의 사랑은 가정 평화의 근간이다. 그 귀한 사랑의 실체는 맨 처음 사람들 마음에 어떻게 자리매김 되는 걸까? 아이가 태어나면 그 성장에 필요 한 것은 돌봄이 우선되어야 한다는 것이 아동학자들의 견해이다. 돌봄을 받은 갓난애는 생리적 욕구를 채우면서 그 마음의 밭에 사랑이라는 씨앗을 품게 된다. 하여 사람의 사랑은 어머니의 젖과 젖은 기저귀의 돌봄에서 자리매김 되는 것이다. 그렇게 자신의 일부를 주는 어머니의 돌봄은 사랑을 잉태하여 가정을 이루는 원천이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에 벌어지는 아동학대의 80%가 가정의 친부모에 의해 자행 되고 있다 한다. 사랑의 달 가정의 달에 가정의 의미와 사랑의 의미가 무색한 지경에 이르게 된 연유는 무엇일까? 아동학대는 고대부터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있어 왔다. 그때는 아이는 모든 면에서 미완의 약자이며 존중 받어야 할 독립된 인격체라는걸 모를 때의 일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동학, 심리학 등이 최고로 발달 되어 있고 사람들도 배울만큼 배웠다. 그럼에도 아동학대는 늘고 있고 심지어 정인이 학대 사망 등으로 사람들을 경악케 하고 안타깝게 한다. 시인 박목월의 아들 박동규교수는 어머니의 가족사랑 이야기를 다음과 같이 전한다. “6.25 피난길에 초등 6학년인 나는 귀한 재봉틀과 바꾼 쌀을 산속에서 만난 청년이 대신 져준다는 말에 속아 쌀을 잃었다. 두 갈래 갈림길에서 발길을 멈추었는데 쌀을 짊어진 청년을 따라가자니 어머니를 잃을 것 같아서였다. 갓난이와 5살 어린 동생을 데리고 뒤늦게 나타난 어머니께 쌀 잃은 이야기를 했다. 어머니는 울고 있는 나를 안아주며 ‘내 아들이 영리하고 똑똑해서 에미를 잃지 않았네’라고 했다. 절망적 상황해서 아들을 똑똑한 아이로 인정 해 주던 그 한마디는 내 삶을 평생 지배 한 정신적 지주였다. 그 후 어머니에게 똑똑하고 영리한 아들이 되기 위해 열심히 공부했다”고 한다. 그 어머니의 지혜롭고 깊은 사랑의 모성은 어디서 비롯되어 가정의 평화를 지켜 나간 것일까? 추측컨대 목사인 그녀의 아버지 때문이지 싶다. ‘자녀를 노여웁게 하지 말 것과 사랑은 언제나 온유하며 시기하지 않으며 오래 참는 것’등등 성경의 가르침을 시집가는 딸에게 가르쳤으며 몸소 실천했을 것이다. 그녀 또한 부모의 가르침을 소중히 여기며 그 마땅함을 깨달아 명심하고 실천했기에 가정의 평화가 가능했을 것이다. 박목월시인 또한 시집가는 딸에게 “딸아! 아버지든 남편이든 누구를 의존해서는 안된다. 사랑이란 그를 위하는 것도 그에게 의존 하는 것도, 그의 그늘 속에 숨는 것도 아니다. 부드럽고 따뜻하되 아무것에도 예속되지 않는.... 모성이야말로 성(性)의 세계를 초월하여 위대한 세계를 가꿀 수 있는 원동력이다”라며 강인하고 독립적 아내, 그리고 위대한 모성을 강조했다. 그런데 요즘 어머니들의 모성은 변질되고 있는 것 같다. OECD국가에서 이혼율 1~2위를 다투며 아이들을 혼란스럽고 불안으로 몰아가는가 하면 아이들을 학대하는 부모들이 빈번하게 보도 되고 있다. 왜 그럴까? 나라는 더 풍요로워졌고 사람들은 더 많이 배웠는데 말이다. 필자의 교육학적 관점으로는 학교교육이 문제였다고 본다. 학교가 나라 발전의 수단으로 사용되느라 한 줄 세우기 성적 위주의 교육을 중시, 인성교육, 인문학교육을 등한시 했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아노미 현상으로 산업화 이후 황금만능주의 가치를 성취하기에 역부족인 사람들의 규범의 혼란이다. 게다가 미디어의 발달로 부자들의 생활상이 낱낱이 드러나면서 사람들을 흔든다. 진정성 있는 삶보다는 사치스런 부자를 동경하게끔 한다. 세상이 혼란할수록 가족의 몸과 마음이 휴식할 수 있는 평화스런 가정이 필요한데 갈수록 가정은 불안정 하다. 물질의 풍요를 일찍 맛본 아이들은 물질에 대한 욕망만 커져 마음이 풍요로운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없다. 그러므로 물질의 시대는 자녀 위기의 시대이자 부모위기의 시대가 된다. 물질이 풍부해진 만큼 마음이 풍부해지는 삶을 살 수는 없는 것일까? 길은 있다. 오직 인문학 교육만이 가정 평화의 길이다. 인문학은 인간의 존재의미와 삶의 가치에 대한 끝없는 정신의 추구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유아기부터 아동문학을 접하게 하고 초등 중고등 대학교까지 아주 정교한 인문학교육을 강화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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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윤여정의 아카데미상 수상<지평선>윤여정의 아카데미상 수상 송태윤(논설위원, 문학박사) 2021년 4월 25일, 미국 LA에서 제93회 아카데미상 시상식이 있었는데 이 시상식에서 윤여정(74)은 여우조연상 트로피를 품에 안았다. 영화 ‘미나리’에서 손자들을 돌보는 순자 역을 했던 윤여정 개인의 영예이자 한국영화의 영광이다. 이로써 한국 배우 최초로 미국 아카데미 연기상 중 여우조연상을 받았으며, 한국 영화사에 새로운 획을 그었다. 영화 ‘미나리’는 1980년대 한국 이주민이 미국의 황무지를 개척하여 고향을 만드는 사례를 영화화 한 것이다. 내용인 즉 여 주인공 모니카는 낡은 컨테이너에서 생활하며 농장 일에만 몰두하는 제이콥에게 이곳에서 살 수 없으니 다시 과거에 살던 곳으로 돌아가자고 한다. 제이콥은 “못 돌아간다. 여기서 이 땅을 개척해서 고향을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살 수가 있다.”는 강한 의지를 나타낸다. 이에서 보듯이 미국인들이 좋아하는 개척정신과 한국인 순자(윤여정)의 장난스럽지만 따스한 정서가 짓이겨진 영화이다. 이 때문에 윤여정은 여우조연상 후보 중에서 더 많은 표를 얻었는지도 모른다. 아카데미상은 오스카상(The Oscars)이라고도 불리는데, 미국에서 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권위 있는 영화상이다. 트로피의 높이는 34.3㎝이고 황금빛 남성 나상(裸像)으로 가슴 높이까지 오는 검(劍)을 두 손으로 짚고 있는 형상이다. 1927년 창설되었다. 1934년부터 매년 봄에 열리고 있으며 전년도에 발표된 미국 영화 및 외국 영화를 대상으로 상을 수여한다. 윤여정은 여우조연상 호명 후 무대에 나가 “나는 경쟁을 믿지 않는다. 어떻게 내가 (함께 여우조연상 후보에 오른) 글렌 클로스를 이길 수 있겠냐.”면서 겸손하고 자기를 낮춰 말하자 많은 박수가 터져 나왔다. 또 “다른 배우들 보다 조금 더 운이 좋았을 뿐이다. 어쩜 한국배우에 대한 미국인들의 환대일지 모른다.”라고 수상 소감을 말하자, 뉴욕타임스(NYT)는 제93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윤여정의 수상 소감이 최고라고 치켜세웠다. NYT는 윤여정씨가 이에 앞서 4월 11일에 열린 ‘영국 아카데미상’ 시상식에서 “고상하다(snobbish)는 영국인들로부터 받은 상이라 더욱 뜻 깊다.”는 소감으로 화제를 모았다고 소개하기도 했다. “외모가 평범하고 목소리가 매력적이지 않다.”고 남성 프로듀서들은 말했지만 이런 편견을 깨뜨리고 여우조연상을 수상했다고 전했다. 바로 이 부분을 독립적인 윤여정의 여성 이미지라고 소개한 것이다. NYT의 윤여정 찬사에서 보듯이 확실히 우리 민족의 혈통 속에는 세계인을 감동시킬 수 있는 예술적 잠재력이 있다. 한국인은 세계 인류의 문화를 선도할 수 있는 우수한 DNA를 보유하고 있다. 일본 아사히신문은 “‘미나리’에서 윤여정의 연기력이 높은 평가를 받았다.”며 “아시아 여배우가 여우조연상을 거머쥔 것은 1958년 일본 출신의 낸시 우메키 이후 처음”이라고 전했다. 신문은 이어 “감독상은 중국계인 클로이 자오와 윤여정의 여우조연상 등 아시아계 여성 2명이 아카데미상을 수상하는 역사적인 시상식이 됐다.”고 덧붙였다. 국내에서도 윤여정에 대한 칭찬과 박수갈채는 여전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날 에스엔에스(SNS)를 통해 “끊임없는 열정으로 다른 문화에서 살아온 분들에게까지 공감을 준 연기 인생에 경의를 표한다”고 밝혔다. 2007년 칸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던 배우 전도연도 소속사를 통해 “모두가 믿어 의심치 않았던 수상 소식이다. 멋지고 자랑스럽다”고 전했다. 또 한 네티즌은 “윤여정은 이번 수상소감으로 오스카상을 한 번 더 수상해야 한다.”며 오스카 2관왕을 제안하며, 박수갈채를 보낸다고 말했다. 전찬일 평론가는 “지난해 한국어로 된 영화 ‘기생충’이 아카데미에서 작품상·감독상을 받았지만, 사실 연기로 상을 받기는 훨씬 어렵다.”며 이런 점에서 윤여정의 수상은 지난해 ‘기생충’ 수상 못지않게 역사적인 일이라고 했다. 사실 이 상은 2016년 수상 후보 모두가 백인이어서 에스엔에스를 중심으로 ‘오스카는 너무 하얗다’(#OscarsSoWhite)라는 해시태그 운동이 벌어지는 등 아카데미의 오랜 백인 우월주의에 대한 비난이 쏟아졌다. 그동안 이 상은 백인위주로 수상했기 때문이다. “한국 영화의 갈래는 ‘기생충’이다. 그리고 배우 인물의 갈래는 ‘윤여정’부터 시작 될 것이다.”라고 한 네티즌은 말했다고 한다. 그만큼 아카데미상의 권위가 있다는 것을 말한 것이다. 윤여정이 한국 배우로는 최초로 미국 최대 영화상인 아카데미에서 여우조연상을 수상한 것은 언어와 인종의 벽을 넘은 쾌거로 불릴 만하다. 수상은 이 영화를 만든 감독이나 배우의 기쁨만 아니라 온 국민과 해외 동포들도 함께 기뻐할 일이다. 미나리는 어디서든지 잘 자란다는 말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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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이야기>한국에너지공과대학교, 켄텍(KENTECH) 파이팅!<IT이야기>한국에너지공과대학교, 켄텍(KENTECH) 파이팅! 金在珥(논설위원, 공학박사) 2017년 6월 한국에너지공과대학교(이하 한전공대) 추진 TF가 발족된 이래 4년 여 만인 2021년 3월24일 한전공대 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함에 따라 목표인 내년 3월 개교에 청신호가 켜졌다. 최근 한전공대의 영문 교명도 K(orea)+EN(ergy) +TECH(nology)의 조합어로써 KENTECH(켄텍)으로 정해졌다. 우여곡절 속에 통과된 한전공대 특별법은 공공기관이 한전공대에 재정지원을 할 수 있도록 법적 근거를 마련하는 내용을 주요 골자로 하고 있다. 여당은 연구 중심의 에너지 특화 대학의 필요성을 주장한 반면 야당은 한전의 재정 부담과 학령인구 감소에 따른 지방대 붕괴를 지적하는 대결 속에 최종 국회를 통과하게 된 것이다. 최근 에너지 산업은 글로벌 기후변화 적응과 4차 산업혁명의 큰 흐름 속에서 에너지 생산·소비의 저탄소 사회 전환, 디지털 융복합 기술혁신의 가속화, 에너지 시스템의 탈집중화 등 파괴적 혁신을 거듭하며 에너지 생태계 전반의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우리나라 에너지 산업 기술은 선진국과 약 4.5년의 기술격차가 벌어져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에 정부는 ‘에너지 신산업’을 국가 혁신성장을 선도할 8대 사업으로 선정하고, 에너지 신기술 개발과 에너지 전문 인재 양성을 위해 박차를 가하고 있으며 교육과 연구라는 측면에서 그 해법을 찾으려는 시도가 한전공대의 설립이라고 할 수 있겠다. 한전공대는 내년 3월 전남 나주시 빛가람동 40만㎡ 부지에 에너지 분야 세계 최고 수준의 공과대학 실현을 목표로 개교할 예정이다. 또한 개교 30년 안에 이 분야 세계 10위 수준으로 도약하기 위하여 에너지 인공지능과 에너지 신소재 등 5개 분야 학생 1,000명(대학원 600명, 학부 400명)과 교원 100명 등으로 짜인 강소형 대학으로 운영된다. 이를 위해 다자간 자원/역량의 공유 · 집적을 통한 산학협력 연합형 대학, 국가와 지역 경제발전을 선도하는 혁신적 가치창출을 위한 글로컬 대학 그리고 기존 대학 교육모델을 뛰어넘는 새로운 패러다임의 미래·혁신 대학으로의 설립 방향성 원칙을 제시하고 있다. 특히 주목하고 있는 것은 5대 집중 연구 분야 중에 4차 산업혁명을 주도할 ‘에너지 AI’(에너지+ICT 융복합, 에너지 절약 기술개발)가 포함되어 있다는 점이다. IEA(International Energy Agency)는 글로벌 에너지 신시장이 2030년까지 약 3경원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한전공대는 전통적 전력산업의 파괴적 혁신시대에 미래 에너지 신 시장을 선도하는 강력한 연구 플랫폼 확보로써 특성화 및 차별화를 기해야 할 것이다. 차제에 한전공대가 학생 교육 시 꼭 새겨들었으면 하는 것이 있다. 축음기, 전화송신기, 백열전구, 가장 효율적인 혁신적 발전기, 최초로 상업화된 전등과 전력 체계, 실험적 전기철도, 가정용 영사기 등 1,000개가 넘는 발명특허를 등록한 토머스 에디슨의 창의적이고 도전적인 실험정신이다. 에디슨은 어린 시절부터 만물에 대한 호기심이 많아 당시의 주입식 교육에 적응하는데 심한 어려움을 겪었다. 정규 교육을 거의 받지 못했으나, 교사로 일했던 어머니의 열성적인 교육 덕에 점차 재능을 발휘하게 되었다. 이렇듯 첨단의 교육시스템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점을 명심했으면 한다. 경향각지에서 선발된 인재들을 에디슨 어머니 같은 열정과 사랑을 담아 세계 최고의 에너지 전문가로 키워주길 염원해본다. 에너지 과학기술로서 인류, 국가, 지역에 공헌하고 미래 에너지와 기후변화 적응에 대한 새로운 지평을 제시하며, 미래 에너지 산업을 주도할 차세대 기술과 인재의 확보를 위하여 일로매진하기를 한전공대에 주문한다. 그리하여 설립과 운영을 위한 비용 문제와 지방대 붕괴의 우려를 불식시켜주기 바라고, 에너지 분야 세계 최고 수준의 공과대학으로 우뚝 서길 기대한다. 켄텍(KENTECH)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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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이슈>농지에 태양광 설치는 식량 주권을 포기한 자살행위다<오늘의 이슈>농지에 태양광 설치는 식량 주권을 포기한 자살행위다 배삼태(전 가톨릭농민회 회장) 농번기에 농민들이 농사일을 뒤로 미루고 농지에 태양광 설치 반대 서명을 받고 집회를 하고 있다. 지금 정부에서 하는 신재생 에너지 정책추진 과정을 정확히 이해하지 못하면 자칫 농민들이 야당인 국민의 힘처럼 정부의 신재생 에너지 정책 자체를 반대하는 것으로 오해할 수 있다. 원전의 위험성이라든가 화력발전의 폐해 때문에 유럽에서는 이미 오래전부터 신재생 에너지 정책으로 전환하여 80% 이상이 진행되었으며 가까운 일본도 우리보다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우리도 늦었지만 빠르고 바르게 신재생 에너지로 전환해야 한다. 그런데 정부의 정책 방향은 맞는데 방법이 틀려서 문제인 것이다. 요즘 코로나 19로 인하여 나라 경제뿐만 아니라 세계가 몸살을 앓고 있다. 그런데 코로나 19보다 더 무서운 위기가 오고 있다. 바로 기후위기다. 기후위기는 식량위기를 동반한다. 작년 한해를 뒤돌아 보자. 작년 4월은 기상관측 이래 가장 포근했고, 작년 5월은 기상관측 이래 가장 서늘하여 아카시아 꽃이 제대로 피지를 못해 양봉농가는 꿀을 한방울도 따지 못했다. 6월부터 시작된 장마는 두 달 가까이 비를 내려 밭농사를 망쳤으며, 일조량 부족으로 쌀 수확량도 많이 떨어졌다. 기후위기는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세계적인 현상이기 때문에 국제 곡물가가 오르고 있고 사료값도 오르고 있다. OECD국가 중에서 식량 자급도가 가장 낮은 우리나라는 세계적인 식량위기가 닥치면 대재앙을 맞는 것은 불가피할 것이다. 이렇게 식량위기가 시시각각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는데 정부에서는 식량위기에 대처하기 위해 식량 자급도를 높일 방도는 찾지 않고, 산림을 훼손하고 태양광 설치를 하는 것도 모자라 간척지 등 쌀을 생산할 농지에 대규모 태양광을 설치하려 하고 있으니 정신이 있는 정권인지 묻고 싶다. 집값과 부동산 투기를 잡지 못한 정권이 이번 4·7보선에서 성난 민심에 서울시장과 부산시장을 내줘야 했지만, 만약 계속 정신을 못 차리고 농지를 훼손하고 태양광을 설치하는 등 농업 농촌을 포기하고 농민을 배신한다면, 내년도 대통령선거와 지방선거에서 현 집권당은 참패를 당하고 말 것이다. 본인은 원조 적폐세력이 어부지리 하는 것을 원치 않기 때문에 지금이라도 현 정부가 신재생 에너지 정책을 똑바로 잘하기를 바란다. 전기는 필요한 지역에서 자체 생산하여 사용해야 한다. 공장지붕 건물지붕 등에서 생산하고 가능하면 수도권에서 사용할 전력은 수도권이나 가까운 지역에서 생산하여 사용해야 한다. 수도권이나 경상도에서 필요한 전력을 가장 먼 남쪽 지역 전라도에서 생산하여 송전탑을 세워서 보낸다면 자연경관 훼손은 물론 전력 소모와 경비도 많이 낭비된다. 특히 농지 훼손은 다가올 식량위기를 생각한다면 자살행위와 다를 바 없다. 제발 현 정권이 우리 국민의 미래를 위하고 자신들을 위해서라도 현명한 신재생 에너지 정책을 추진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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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과 건강>더워지는 날씨에 찾아오는 무좀<생활과 건강> 더워지는 날씨에 찾아오는 무좀 약학박사 이종기 진균 일명 곰팡이균은 진핵생물로 우리 몸에 병을 일으키는 경우 진균증이라고 한다. 피부나 점막 등과 같은 표재성 감염과 면역 결핍증이나 면역 기능이 손상된 환자에서 발생하는 전신적 감염이 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무좀은 표재성 감염으로 피부진균증을 말한다. 피부진균증을 일으키는 병원성 진균에는 칸디다속에 해당하는 효모유사균, 막대 모양의 긴 세사로 증식하는 피부사상균과 몰드균이 있다. 그렇다면 피부진균증에는 무엇이 있을까? 손과 발가락 등에서 볼 수 있는 수부 족부 백선, 일명 무좀으로 30~40%를 차지하며, 각질이 과다하게 생기는 각화형, 작은 물집과 농포가 생기는 수포형, 손 발가락 사이가 짓무르고 침식이 있는 지간형이 있는데모두 심한 균열과 가려움증이 있다. 무좀과 함께 쉽게 동반되는 피부진균증으로 조갑진균증, 일명 손발톱 무좀이 있다. 손발톱에 노란 변색과 함께 부서지기 쉽고, 두꺼워 지며, 주위 피부에 비늘처럼 생긴 병변을 가져온다. 다음으로 흔한 진균증으로 습한 부위인 사타구니에서 발생하는 완선, 얼굴, 목, 팔다리, 몸통의 체부백선, 땀이 많이 나는 부위인 겨드랑이 등에서 발생하는 어루러기, 두피에서 발생하는 두부 백선 등이 있다. 모두 가렵고 갈색 반점 내지는 홍반과 인설을 동반한다. 그렇다면 피부진균중은 어떻게 치료할수 있을까? 치료제로는 외용제와 경구 복용제가 있다. 심하지 않은 경우 비처방약으로 국소적으로 도포하는 연고제, 크림, 매니큐어 처럼 바르는 네일라커 등을 사용할 수 있다. 클로트리마졸, 케토코나졸, 테르비나핀 성분 등의 외용제 등이 있어 쉽게 치료할 수 있으나, 증상이 호전되었다고 치료를 중단하면 손발톱에 남아 있던 무좀균에 의해 재발되는 경우가 많다. 치료가 잘 안되거나 재발하는 경우 원인 진균을 진단, 이트라코나졸, 플루코나졸, 테르비나핀 등 경구용 항진균제를 처방받아 복용하는 것이 좋다. 최근에는 간독성이 적은 항진균제가 사용되므로 치료하는데 부담을 줄일 수 있게 되었다. 그렇지만 더워지는 날씨에 무좀은 예방하는 것이 제일 좋다. 무좀은 환자의 피부에서 떨어져 나온 각질이 다른 사람의 피부에 달라붙으면서 전염이 일어난다. 무좀 환자의 피부나 손발톱에서 각질이 많이 떨어져 나오기 때문에 환자와 같이 수건과 슬리퍼, 신발 등을 같이 사용하는 경우 전염될 수 있다. 다만, 무좀균은 고온다습한 조건에서증식하므로 피부를 건조하게 하고, 통풍을 잘 시키고, 청결하게 하면 전염을 막을 수 있다. 그러므로, 무좀을 예방하고 재발을 막기 위해서는 땀이 잘 고이는 부위를 자주 말려 건조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먼저, 매일 발가락 사이를 비누로 깨끗이 씻고 수건으로 습기를 제거하고 화장지나 건조기로 완전히 말린다. 사타구니나 겨드랑이 등도 마찬가지다. 통풍이 잘되는 옷을 입고, 젖은 옷은 바로 갈아입으며, 양말은 면양말을 갈아 신는다. 신발은 두 켤레를 번갈아 신고 젖지 않도록 한다. 사무실 내에서는 슬리퍼를 신고 집에서는 맨발이 좋다. 무더워지는 날씨에 건강한 피부를 유지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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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조선시대 최고 국립대학인 성균관<지평선> 조선시대 최고 국립대학인 성균관 송태윤(논설위원/문학박사) 2021년 3월 8일 봄을 맞아, 높이 솟은 나무의 가지치기 작업을 위해 크레인으로 옮기던 사다리차가 동삼문 지붕에 떨어져 지붕이 부서졌다. 사적 143호로 지정된 동삼문은 옛 조선의 임금이 성균관 문묘에 제사를 지내러 갈 때 출입하던 문이다. 성균관은 서울특별시 종로구 성균관로 31에 주소를 두고 있다. 조선시대의 위정자들은 성균관을 가리켜 인륜을 밝히고 인재를 기르는 곳이라고 했다. 실제로 성균관은 조선시대의 지배이념을 보급하였고, 유교적 소양을 갖춘 관료를 양성하여 왕조체제를 유지하는 데 기여했다. 중종은 연산군을 몰아내고 왕위에 올랐는데, 정치적 조언을 얻으려고 성균관을 찾았다. 그 때 조광조가 직언하기를 “법도와 기강의 큰 줄기를 세우십시오. 군주 혼자 정치를 할 수 없으니, 반드시 신하를 믿고 일을 맡기십시오.”라고 했다. 이 일을 계기로 중종에 의해 중용된 조광조는 시험만으로 인재를 선발하는 과거제를 혁신하고 서얼(첩이 낳은 자식) 차별 제도 개선을 주장하는 등 다양한 개혁을 시도했다. 이처럼 왕이 찾아와 앞길을 물어볼 정도로 성균관은 국가 인재의 텃밭이었다. 조광조 말고도 퇴계 이황, 율곡 이이, 다산 정약용처럼 조선시대를 대표하는 대학자들이 성균관 출신이었다. 다음 백과에 의하면 “고려시대의 최고 교육기관인 국자감(國子監)의 명칭이 1298년(충렬왕 24)에 성균감(成均監)으로 되었다가 1308년(충선왕 즉위)에 성균관으로 바뀌었고, 1356년(공민왕 5)에 국자감으로 바뀌었고 1362년에 다시 성균관으로 고쳤고 조선시대에도 계속 이어졌다.”고 기록 되어있다. 또 “1395년(태조 4)부터 건축공사가 시작되어 3년 후인 1398년(태조 7)에 성균관의 건물을 세웠다. 공자와 중국 및 우리나라 역대 성현들의 위패를 모셔놓고 봄·가을로 석전(釋奠)을 행하는 문묘(文廟), 강의 장소인 명륜당(明倫堂), 유생들이 거처하는 동서재(東西齋)가 이때 세워졌고, 그 후 성종 대에 도서를 보관하는 존경각(尊經閣)을 새로 지었다.” 그러나 이 건물들은 임진왜란 때 모두 불타버렸고, 현재 남아 있는 건물은 선조 때와 그 후에 다시 지은 것들이다. 성균관 유생의 정원은 세종대왕 때부터 200명이었으나 조선 말기에는 100명으로 줄었다. 입학자격은 “소과 합격한 생원·진사에 한했으나 결원이 있을 경우 사학(四學) 생도나 지체 높은 자제들은 승보시(升補試)를 통해 입학할 수 있었다. 생원·진사 신분의 학생을 상재생(上齋生)이라 하고, 승보시 출신은 하재생(下齋生) 또는 기재생(寄齋生)이라 하여 구별했다.” 그러나 이들 하재생도 출석 점수인 원점(圓點)이 300에 달하면 문과 초시에 응시할 자격을 얻는다는 점에서는 마찬가지였다. 교과과정은 “경사(經史)의 강의와 과문(科文)의 제술로 이루어졌으며, 사서오경은 주자(朱子)의 주석(註釋)을 중심으로 하여 가르쳤다. 학생들의 수업 성적은 강경(講經)과 제술을 통해 평가했으며, 성적이 뛰어난 학생은 문과 초시를 면제하고 바로 회시를 볼 수 있도록 했다.” 학생들의 자치기구로는 재회(齋會)가 있었고, 학생들의 관내 생활은 유교적 의례에 따르도록 했다. 유생들은 국정의 잘못이 있을 때에 유소(儒疏)를 올리는 일이 빈번했으며, 자신들의 주장을 관철하기 위해 시위나 동맹휴업을 하기도 했다. 이를 권당(捲堂)이라 한다. 이외에 맹인 행세나 곡소리로 권당을 대신하기도 했다고 한다. 운영에 필요한 재원은 학전의 수조(收租)로 충당했으며, 그 전곡의 출납은 양현고에서 담당했다. 조선 후기에는 나라의 교육 재정이 줄어들고 과거제도가 공평하게 운영되지 않으면서 성균관의 기능이 약화되었다. 반면에 서원(書院)이 지방 곳곳에 생겨나 서원 교육의 질이 높아지면서 많은 인재를 낳는 명문 교육기관으로 떠올랐다. 이는 오늘날 인기 많은 명문 사립대와 국립대가 경쟁하는 것과 같은 양상이었다. 한일병탄에 의해 성균관의 교육은 중단되었고, 명칭도 경학원(經學院)으로 바뀌게 되었다. 1945년 광복과 함께 경학원도 성균관으로 환원되었다. 이것이 조선시대의 성균관이 걸어온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