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뉴스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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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테나> 어쩌다 ‘고딩엄빠’<아테나> 어쩌다 ‘고딩엄빠’ 노운서(논설위원, 교육학박사) 요즘 한 종편 티비 프로그램인 ‘고딩엄빠’가 이슈다. 고딩은 고등학생의 은어이고 엄빠는 엄마 아빠의 줄임말이다. 그러니까 고딩엄빠는 고등학생이 연애하다가 임신을 하고 졸지에 엄마 아빠가 되어 버린 사람을 가리키는 신종어이다. 이 프로그램에는 고딩엄빠 들이 직접 출연, 이성 교제부터 임신과 출산, 양육과정 등 자신들의 이야기를 공개적으로 밝힘으로써 10대들의 성 의식을 이슈화 한 점이 주목할 만하다. 이를 바라보는 사회의 시선은 잘못된 성문화를 미화한다는 관점과 아동·청소년들의 모방 우려가 있다는 시각이 있는 반면에 성에 대한 경각심을 깨닫는 기회가 될 수 있다는 의견도 있다. 그들의 삶을 조명해 보는 일은 그들에게 쏟아지는 기성세대들의 걱정 어린 눈을 긍정적으로 변화시키고 그들의 문제와 도움, 그리고 청소년 성교육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도출하기 위한 단초를 찾을 수 있는 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조선 시대에 명나라 사대(事大) 일환인 조공(朝貢)으로부터 어린 딸을 지키고 보호하기 위해서 10살 여아의 결혼을 서두르는 변화가 있었다. 그 당시 이런 부모의 조치에 수근대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을 것이다. 이국땅에 딸을 보내야 하는 사회구조를 누가 탓할 수 있었겠는가? 이런 관점으로 ‘고딩엄빠’를 조명해보는 것은 인간이 사회구조의 영향을 받는 존재라는 점에서 인간행동의 기원(基源)을 헤아릴 타당함이 된다. 그들은 어쩌다 고딩엄빠가 되었을까? 최첨단 문명시대 고딩엄빠가 출현한 사회구조 요인을 살펴보자. 현대 사회는 초고속 변화에 초경쟁 사회로서 청소년들의 스트레스가 심하다. 현 입시제도의 숨막힘도 문제지만 이들의 스트래스를 해소할 출구인 건전한 놀이 문화가 전무하다는 점이 더큰 문제이다. 그런데 이 MZ 세대들의 자유분방한 개성은 내 생각이 옳다면 과감히 실천하는 성향이 있다. 이런 세대에게 밥상머리 교육부재와 사춘기 성장을 위한 대화 부재는 더 큰 문제다. 또한 인터넷에 선정적 영상이 도처에 깔려 있어 청소년들의 말초신경을 자극한다. 이러한 복잡한 사회에서 일부 학생들은 성의 쾌락에 쉬이 빠지게 된다. 성의 쾌락을 선택한 자유에는 임신과 출산, 그리고 양육이라는 책임이 주어짐을 망각한 채 일을 낸 것이다. 가장 큰 문제는 그들이 부모로서 준비되지 못한 상태에서 부모가 되었다는 것이다. 미성숙한 부모들의 양육 태도는 영유아들에게 발달심리적 문제를 야기, 후일 성인기의 인격적 정신적 문제로 남아 사회적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 예를 들어 일부 고딩아빠들이 출산한 아내를 폭행한 후 사라지자 그 배신행위에 상처받은 고딩엄마는 기쁨으로 새 생명을 돌보지 못한다. 결국 아이와 강제 분리되는 우울증으로 산모의 고통이 시작된다. 아기는 차마 못 당할 일을 겪는 것이다. 고딩엄빠들의 경제적 빈곤은 양육비 소송으로 이어지며 진흙탕 길이다. 그렇지만 일부 고딩엄빠들은 부부가 어려움을 극복하고 아이들을 잘 키우고 있었다. 그 성공한 가정을 들여다보니 해결의 실마리가 조금은 엿보였다. 그 하나는 고딩엄빠들의 양가 부모가 그들의 선택에 대해서 신뢰하고 응원 지지해 주었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고딩아빠의 인격이었다. 그 고딩아빠는 매사에 부드러운 말과 긍정적인 말 즉 사람의 마음을 살리는 말을 자기 아내와 자식 부모에게 했다. 친절한 사랑의 말과 성실히 일하는 고딩아빠의 조력적 태도에 고딩엄마는 모성이 샘솟아 아이들을 잘 키웠다. 그렇다고 이 성공 사례를 일반화할 수 없다. 왜냐면 대부분의 고딩엄빠들은 임신과 양육의 문제와 경제적 어려움의 이중고에 봉착하는 데다가 부족한 사회관계 기술과 자기절제 부족으로 우울함과 분노 슬픔에 젖어있기 때문이다. 대책 없는 경제적 어려움이나 정신적 미숙함은 가정이 형성되기도 전에 관계 맺음이 깨져 슬픈 단막극을 보는 듯했다. 자유와 개성의 고딩엄빠, 좌충우돌의 혼란스런 그들에게 가정과 국가는 구체적이고도 실질적인, 물심양면의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고딩엄빠의 아픔과 새 생명을 위해서 임신한 고딩엄빠들에게 부모교육으로 미래를 대비케 해야 한다. 선진 외국은 고등교육에 실제 크기의 인형 아이를 고등학교 남녀학생들의 복부에 매달아 임신 체험을 하게 함으로써 양육의 어려움과 책임감을 스스로 체험하게 한다. 부모교육은 아이가 심리적 안정을 가지고 자랄 때 건강한 미래사회를 보장한다는 측면에서 필수적 교육과정이 되어야 한다. 성의 즐거움을 선택할 자유에는 책임이 따른다는 경각심을 일깨우도록 고등교육과정에 반드시 신설되어야 한다. 부모교육 과정을 고등교육에 도입하는 것은 미래 부모의 정신건강을 육성, 결국 신생아를 살리는 예방 교육이다. 사회구조가 복잡할수록 성교육과 부모교육이 더 절실하다는 것을 가정과 사회 국가는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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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 이야기> 3년 후면 하늘을 나는 택시를 탈 수 있다<IT 이야기> 3년 후면 하늘을 나는 택시를 탈 수 있다 金在珥(논설위원, 공학박사) 자동차를 운전하다가 교통체증에 걸리면 ‘SF영화처럼 자동차가 하늘을 날아서 갈 수는 없을까?’라는 상상을 누구나 한 번쯤은 해보았을 것이다. 25년 전에 개봉된 SF영화 <제5원소>의 비행 자동차와 유사한 하늘을 나는 택시가 3년 후면 서울 상공을 날을 수 있을 것 같다. 마차가 끌던 시대에서 내연기관 시대를 지나 하늘을 나는 교통 혁명 시대가 도래한다는 의미이다. 근대적 의미의 자동차의 시초는 1769년 프랑스의 공병장교 니콜라 퀴뇨가 포차를 견인하기 위해 군용 목적으로 발명한 증기 자동차이다. 이후 1885년 벤츠의 창업자인 카를 벤츠가 최초의 가솔린 자동차를 발명하여 이듬해에 특허를 받았다. 우리나라에 자동차가 소개된 것은 1903년 고종황제가 포드에서 생산된 자동차를 선물 받은 것이 최초이다. 그 후 120여 년이 지난 오늘날 자동차는 현대인의 발이 되어 자동차 없는 생활이란 상상할 수 없게 되었다. 더군다나 ‘도심 항공 모빌리티(Urban Air mobility, UAM)’가 하늘의 새로운 교통수단으로 떠오르면서 에어택시, 에어버스 등을 상용화하려는 기업들이 늘고 있다. UAM 시장 성장에 대한 전망은 그야말로 장밋빛이다. 글로벌투자은행(IB) 모건스탠리에 따르면 UAM 시장은 지난해 70억 달러(약 7조8400억원)에서 2040년 1조4740억 달러(약 1651조원)까지 늘어날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현재 전 세계자동차 시장의 규모가 2000조원이므로 2040년이 되면 지금 자동차 시장 규모와 비슷해질 것이라는 전망이다. 높은 성장성이 예상되는 만큼 시장에 뛰어든 기업도 점점 많아지고 있다. 세계 최대 차량공유업체 ‘우버’, 세계 최대의 항공기 제작 회사 ‘보잉’ 그리고 유럽의 항공기 제작 회사 컨소시엄 ‘에어버스’ 등 세계 각국의 교통 관련 대기업들은 물론 현대자동차, 일본 도요타, 독일 폭스바겐, 아우디, 미국 GM 등 대량생산 기술을 보유한 완성차 업체까지 진출하고 있다. 뿐만아니라 이동통신사도 이 시장에 도전장을 내밀고 있다. 미국에서는 AT&T가 2016년에 에어택시 사업화를 선포한 우버와 손잡고 UAM 시장 진입을 노리고 있고 국내에서는 SK텔레콤, KT 그리고 U플러스 3사가 각각 컨소시엄을 구성하여 참여하고 있다. 국토교통부는 이들 3사가 낸 제안서를 평가해 올해 안에 실증사업 수행 사업자를 선정할 계획이다. 1단계 실증사업은 2023년 전남 고흥 국가종합비행성능 시험장에서 진행된다. 개활지 실증 비행 등을 통해 UAM 기체와 통신체계 안전성을 확인하고 K-UAM 교통체계 통합운용을 점검한다. 2단계는 1단계 사업의 성과를 고려해 2024년부터 진행될 예정이다. UAM은 도심의 교통 혼잡해소와 이동 편의성 제고를 비롯해 소음이 적고 전기와 수소 전지 등 친환경 연료를 동력으로 사용한다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에어택시와 관련된 통신·보안 문제, 화물과 사람의 탑승 한도 문제, 고층빌딩과 장애물이 많은 도심 비행 시의 충돌과 추락문제, 외부 간섭의 위험성 외에도 지상 인프라와의 연동문제 등 전체 시스템을 통합적으로 안전하게 관리할 필요가 있다. 전문가들은 에어택시가 자율주행차보다 안전 문제와 관련하여 해결해야 할 과제가 더 많다고 본다. 자율주행차는 비상시 멈추면 되지만 드론은 멈추면 추락하기 때문이다. 자율주행차가 악천후 시 사물을 오인해 사고를 낸 사례가 있듯이 에어택시의 비행에도 일기가 좋지 않으면 결항이나 사고 유발 가능성이 있다. 또한 에어택시 인접권에 사는 주민들에 대한 조망권 침해나 소음 등의 문제로 민원이 제기될 수도 있다. 그 외에도 인프라, 신호체계, 관련 법안 마련 등 준비하고 챙겨야 할 것이 한 두 가지가 아니다. 이와 같이 UAM의 대표 격인 에어택시를 현실화 시키기에는 수많은 난제가 도사리고 있다. 하지만 꿈이 있는 곳에 미래가 있듯이 산·학·연·관이 일로매진하여 기술과 제도를 보완하여 하늘을 날아 출근하는 동화와 같은 세상이 열리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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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테나> 초국적 세계질서(Transnational World Order)<아테나> 초국적 세계질서(Transnational World Order) 노운서(논설위원, 교육학 박사) 오늘날 한국은 문화, 경제, 반도체부문 등 과학기술면에서 세계적 위상이 높아 강대국 대열에 올라있다. 특히 디지털 시대 경제의 근간이 되는 반도체 기술의 우위는 미국 중국 러시아가 군침을 흘릴 정도라고 한다. 그렇다면 이에 따른 우리의 외교 정책도 변화되어야 하고 이를 바라보는 국민들 인식도 변해야 한다. 과거 지리적으로 인접한 중국과 우리나라는 역사적으로 오랜 사대적 관계였다. 조선의 경우 명나라와의 사대를 통해 국체를 보존하며 나라를 발전시켜나갔지만 사대는 강대국의 눈치를 보며 살아야 했던 약소국의 멍에이기도 했다. 사대(事大)는 상호 호혜를 표방하지만 불공정거래로 약소국의 설움은 컸다. 그러나 이 미개한 외교관계는 두 번의 세계 대전과 점차적 과학문명의 발달을 계기로 진화, 세계질서는 탈냉전의 화해 모드로 전환 되고 경제 패권의 세계질서 시대가 대두되었다. 이는 1980년대 말 전 세계를 하나의 시장으로 공략하는 초국적 기업들이 주장한 초국적 세계질서(Transnational World Order)인 신개념의 등장을 야기했다. 초국적 기업들은 국가의 테두리를 벗어나서 전 세계를 상대로 상품을 생산, 분배, 무역, 소비하는 시스템을 구축함으로써 한정된 세계 자원을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네이버 지식 백과). 이런 맥락에서 2022년 5월 바이든 방한 시 발표한 현대기업의 정의선 회장의 대규모 미국 투자 발표나 이재용 삼성 회장의 경쟁기업인 미국 인텔과 협력을 위한 행보 등, 미국 투자계획을 이해하며 마음 다독여 보기도 한다. 한국 방한 후 바이든은 일본으로 건너가 중국이 스스로 바뀌지 않는다면 변할 수밖에 없는 전략적 환경을 만들겠다고 중국을 압박했다. 그는 ‘피지’가 인도태평양경제프레임워크(IPEF)의 14번째 회원국이 됐다”며 인도 태평양 지역의 경제단결을 위한 행보를 밝혔다. 이에 왕원빈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아태 지역이 지정학적 갈등의 바둑판이 돼서는 안 된다”며 피지의 IPEF 가입 결정에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 미·중 간 경제패권다툼의 속내를 들여다 볼 수 있다. 이번 방한에서 바이든은 일본보다 한국을 더 먼저 방문한 후 곧장 삼성 반도체 현장으로 달려갔다. 여러분들은 어떤 생각이 들었는가? 사실 필자도 한국을 일본보다 먼저 방문한 바이든의 발걸음에 순간 으쓱했다. 그러나 이런 바이든의 행보가 한국국민들의 기분을 좋게 하려는 것은 추호도 없을 것이다. 그 들은 다만 한국의 반도체 기술을, 미국의 국익 즉 다수의 미 국민을 위한 이기적 선택을 했을 뿐이다. 한국이 강대국 대열에 올라 있지만 아직도 초강대국인 미·중의 눈치를 봐야 한다.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인 한국의 안보는 미국과 중국 러시아 일본 북한과 얽혀 있고 그 영향 하에 있기 때문이다. 북한 핵무장과 대치된 상황에서 안보는 미국 협력이 필요하고 경제면에서 중국 의존도가 높아 중국과 협력해야 한다. 이러한 한국의 입장은 미국과 중국의 패권 다툼 사이에 끼어 난감하다. 미국과 중국이 공정하지 못한 요구나 비합리적인 요구를 우리에게 할 수도 있다. 하지만 한국은 과거 사대적 마인드에서 벗어나 그들에게 당당한 태도로 우리 권리에 따른 국익을 주장할 수 있어야 한다. 방한 후 귀국하는 바이든의 비행기 꽁무니에 대고 미사일을 쏘더니 며칠 전 북한은 또 같은 짓을 해 모두들 섬뜩하다. 핵과 생화학무기 등의 전쟁이 인류 종말을 의미할 수도 있는 세상에 핵 하나 믿고 병정놀이를 하는 것인지, 그런 북한과 중국 러시아가 우호적 관계이다. 2021년 미국의 한 리서치 센터는 세계 여러 나라를 대상으로 중국에 대한 정서를 조사한 결과 70%가 중국에 대한 부정적 정서를 표현했음을 전했다. 미국측 조사라 편향적일 수 있겠으나 중국에 대한 세계인의 감정은 홍콩과 신장 리구르 지역의 반인권적 탄압행위를 보며 반중 정서가 깊어졌음은 정한 이치다. 이 같은 인권 탄압이나 러시아의 침공행위 등은 세계패권국으로서 지지받을 수 없을뿐더러 지지받아서도 안 된다. 이러한 세계질서 판세에서 한국은 안보와 경제적 문제를 풀어나가기 위해 주체성이 확립된 균형 잡인 시각에서 당당한 태도로 그들에게 한국의 국익을 대변하고 요구해야 한다. 이번 바이든 방한 시 한국의 대기업들이 미국투자 결정의 대가로 한국은 미국에게 무엇을 요구했고 약속받았는지 궁금하다. 미국과 한국이 상호 간 안보와 경제 공조의 균형점을 찾고 중국과도 경제적 공조의 접점을 찾아 나가기를 기대한다. 한국이 초국적 세계경제질서의 대열에서 당당히 그들과 언제까지나 어깨를 나란히 하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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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나폴레옹이 왜 러시아를 침략했을까<지평선> 나폴레옹이 왜 러시아를 침략했을까 송태윤(논설위원, 문학박사) 프랑스에서는 1789년 혁명으로 절대왕정이 무너지고 시민 계급이 권력을 장악하지만 큰 혼란이 발생했고, 이에 지친 프랑스 국민들은 새 지도자를 원하게 된다. 이때 등장한 사람이 바로 나폴레옹 보나파르트(1769~1821)이다. 당시 나폴레옹은 귀족들의 반란을 진압하고 1796년 이탈리아에서 오스트리아 군을 격파하여 전쟁을 승리로 이끌며 국민들의 지지를 받았다. 1799년에는 무능한 총재 정부를 쓰러뜨리고 통령 정부를 수립하여 제1통령에 취임한다. 그는 1804년 국민투표로 프랑스 황제가 된다. 군인 출신인 나폴레옹의 꿈은 유럽을 제패하는 것이다. 그는 "유럽에 하나의 법전, 하나의 통화, 하나의 도량형을 갖게 하는 법령이 있어야 한다. 유럽의 모든 민족을 모아 하나의 백성으로 만들고 파리를 유럽의 수도로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유럽대륙을 제패한 나폴레옹은 1806년에는 유명무실해진 신성 로마제국을 해체한다. 그리고 같은 해에 자기에게 계속 저항하고 있는 영국을 압박하기 위해 대륙봉쇄령을 내린다. 이는 유럽대륙과 영국이 통상을 할 수 없도록 하는 통상 금지령이지만 이로 인한 피해를 본 나라들이 반기를 들기 시작한다. 그중 대표적인 나라가 러시아였다. 당시 영국은 나폴레옹의 대륙봉쇄령을 피해서 자기들의 상품을 중립국의 배로 가장한 채 러시아 해안으로 들어가 상품을 팔기도 했으나 러시아 정부는 이를 적극적으로 막지 않고 그대로 보고만 있었다. 1810년 무렵 러시아는 영국과의 무역 단절로 경제난에 허덕이게 된다. 이에 알렉산드르 1세는 대륙봉쇄령을 무시하고 영국과의 무역을 재개하겠다고 선언한다. 이에 화가 난 나폴레옹은 러시아를 응징하기 위해 1812년 6월 22일 선제공격에 나선다. 나폴레옹은 60만 명이나 되는 병력을 가지고 있었으며, 프로이센으로부터 2만 명, 오스트리아로부터 6만 명을 지원받았다. 역사교사 서영민에 의하면 프랑스 연합군은 총 5개 군으로 나뉘어 러시아를 공격했다. 나폴레옹은 전쟁을 단기간에 끝내고자 했지만, 러시아 제국의 영토는 너무나 넓어서 프랑스 연합군이 생각한 것처럼 쉽게 정복되지 않았다. 또 지형에 밝았던 러시아군과 달리 프랑스 연합군은 정보가 별로 없어 정찰(偵察) 분야에서도 밀렸다. 이 점을 간파한 러시아는 전쟁을 소모전으로 끌고 갔고, 프랑스 연합군의 말들은 사료가 없어 떼죽음을 당했다. 병사들은 부대를 이탈해 식량을 찾아 헤맸었다. J일보에 의하면, 갓 징집된 이들이 기나긴 행군에 적응하지 못했다는 점도 문제였지만, 열악한 환경 때문에 나폴레옹조차도 다리가 붓고 고열과 오한에 시달리는 등 정상적인 상태가 아니었다고 했다. 프랑스 연합군은 같은 해 9월 14일 어렵게 모스크바에 입성했으나 추위와 배고픔에 시달렸으며, 그곳에서 불타는 도시의 모습을 보게 된다. 이 화재는 모스크바 총독의 명령에 따라 러시아인들이 스스로 일으킨 것이라고 한다. 도시를 내주느니 불태우겠다는 것이었다. 불은 나흘 동안 계속돼 도시의 4분의 3이 파괴됐다. 나폴레옹은 모스크바가 점령되면 알렉산드르 1세가 평화협정을 할 수밖에 없다고 믿고 그곳에서 5 주를 기다렸지만, 알렉산드르 1세는 응답하지 않았다. 이는 연합군이 러시아의 매서운 겨울 날씨를 버티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민석홍의 세계문화사에 의하면, 같은 해 10월 러시아군의 기습 공격을 받은 프랑스 연합군은 후퇴를 결정한다. 하지만 모스크바에서 철수하던 프랑스 연합군은 러시아군 중에 사나운 코사크족 기병부대에게 공격을 받게 되고, 11월 초부터 눈이 내리기 시작하자 여름옷을 입고 간 프랑스 연합군 병사들은 모스크바에서 훔쳐온 모피와 외투를 서로 차지하려고 싸우기 시작했다. 추위와 배고픔에 지쳐 매일 밤마다 수백 명이 얼어 죽었다. 영양 결핍으로 병에 걸리는 병사가 속출했고. 처음 공격 시에는 65만 여 명이었으나, 5만 정도만 살아남았다고 한다. 12월의 어느 날 파리에서 쿠데타가 일어났다는 소식을 들은 나폴레옹은 군사 지휘권을 휘하 장군에게 넘기고 파리로 향했다. 일선 병사들은 이 소식을 듣고 자신들이 버림받았다고 했다. 이와 동시에 프로이센·오스트리아 등 프랑스의 동맹국들이 나폴레옹에게 반기를 들기 시작했다. 결국 1814년 1월, 대(對)프랑스 동맹군이 프랑스로 침입해 파리를 함락시키고 그해 4월 나폴레옹을 퇴위시켜 엘바섬으로 유배 보내면서 러시아 원정은 끝을 맺게 된다. 대륙 봉쇄령을 지키지 않는 러시아를 응징하고 굴복시키기 위한 것이 이 원정의 원인이지만, 나폴레옹은 그의 정예부대 60만 명을 잃었다. 이는 세계적인 굴욕이며 자기의 모독이다. 인간의 고귀한 생명을 미물인 파리 목숨처럼 생각해서는 안 된다. 인간의 존엄성을 다시 한 번 되새겨야 할 계기로 삼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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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 이야기> 전기차 시대의 도래<IT 이야기> 전기차 시대의 도래 金在珥(논설위원, 공학박사) 최근 출시되고 있는 차량에는 자율주행 기능이 점점 부가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IT기술이 융합된 자동차가 달리는 고성능 컴퓨터가 되어 이동하는 동안에도 다양한 정보를 이용할 수 있는 이른바 ‘움직이는 응접실’로 변신하고 있는 중이다. 그런데 요즘 자율주행자동차보다 더 핫한 뉴스가 있다. 바로 ‘전기자동차’가 항간의 뜨거운 이슈가 되고 있다. 정부나 지자체의 지원도 받을 수 있고 연료비 측면에서 높은 경제성이 있기 때문이다. 자동차를 몰고 거리를 달리다 보면 파란색 번호판을 부착한 자동차를 가끔 목격하게 된다. 이는 2017년 6월부터 전기차·수소차 등 친환경자동차에 파란색 전용번호판을 부착케 하는 국토교통부의 방침에 따른 것이다. 전기자동차는 자동차의 구동 에너지를 기존의 자동차와 같이 화석 연료의 연소로부터가 아닌 전기에너지로부터 얻는 자동차이다. 따라서 자동차에서의 배기가스가 전혀 없으며, 소음이 매우 적은 장점이 있다. 자동차 배출가스 규제는 안전규제와 더불어 대표적인 자동차 관련 규제로 대부분의 국가들이 배출가스 규제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국가·지역별로 구체적인 배출가스 허용기준이나 시험방법은 다르지만 일산화탄소, 질소산화물(NOx), 입자상물질 등의 배출 허용기준을 설정하여 차량인증의 기본 요건으로 적용하고 있다. 마침 ‘e-모빌리티의 올림픽’을 지향하는 세계 유일의 순수 전기자동차 엑스포인 제9회 국제전기자동차엑스포(IEVE)가 지난 3일 개막했다. 이달 6일까지 서귀포시 제주국제컨벤션센터와 중문관광단지 일대에서 열리는 이번 엑스포에는 글로벌 전기차의 대표 브랜드인 테슬라와 신흥 강자로 떠오른 스웨덴 폴스타가 전시회에 참가해 주목을 받고 있다. 세계 40여 개국 전기차 산업 리더들이 함께하는 세계전기차협의회(GEAN) 총회와 포럼도 열려 글로벌 전기차 산업의 흐름을 진단한단다. 전기자동차 자체는 의외로 내연기관 자동차보다 빠른 시기에 개발되었다. 1828년 헝가리 사제 아니오스 예들리크는 최초로 소형 전기차 모형을 만들었다. 그 후 1834년 스코틀랜드 발명가 로버트 앤더슨은 최초로 사람이 탈 수 있는 일회용 전기차를 만들었다. 그러나 당시에는 전기 재충전 기술이 없었기 때문에 실용 가능한 전기차는 납축전지가 발명된 1859년 이후에야 만들어지게 된다. 1881년 프랑스 발명가 귀스타브 트루베는 최초로 현대적 의미의 충전식 전기차를 시연했다. 심지어 100[㎞/h]를 처음 돌파한 것도 내연기관 자동차가 아닌 전기자동차였다. 그러나 당시의 전기자동차는 기술적인 한계로 인해 성능 향상이 지지부진했고 현재 대두되고 있는 문제점과 비슷한 고가인 차량가격, 배터리의 과다한 무게, 긴 충전 시간, 짧은 주행거리 등의 심대한 문제가 많았던 반면에 내연기관 자동차는 대량생산체제를 통해 가격을 인하하고 지속적인 보완에 의해 우수한 성능과 항속거리를 갖추게 되었다. 결국 전기자동차는 경쟁력을 잃고 시장에서 사라졌다가 1990년 이후 내연기관 차량의 환경 문제가 대두될 때쯤 다시 주목을 받게 된 것이다. 지난 2021년 7월, 고급 자동차의 대명사 메르세데스 벤츠가 모든 자동차 제품군을 전동화하기로 선언하고, 2030년까지 약 54조 원을 투입하겠다는 야심 찬 계획을 발표하였다. 이미 포드, 폭스바겐, GM 등 여러 제조업체가 완전 전동화를 선언했기에 이러한 발표는 전기 자동차가 자동차 산업의 미래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켜준 셈이 된 것이다. 2020년의 블룸버그 전망에 의하면 2036년이 되면 전기차 판매가 내연차 판매를 앞지를 것으로 점쳐지고 있다. 또한 미국도 2021년에 기존의 빅3 내연기관 자동차 회사들이 2030년에는 신차 절반을 전기차로 생산하도록 하도록 하여 전기차로의 전환은 피할 수 없는 시대적 흐름이 되었다. 사실상 국내의 현대·기아를 포함한 세계의 거의 모든 자동차 회사가 전기차 생산을 시작하며 바야흐로 전기차 시대가 개막되었고 전기 자동차를 향한 사람들의 관심은 연일 높아지고 있다. 이는 마치 과거 1960년대에 등장한 전기시계가 기계식 시계의 모든 기능적 단점을 극복하고 시계 시장을 주름잡아 기계식시계 자리를 대체한 것처럼, 전기차도 내연기관 자동차의 자리를 대체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경쟁에 밀려 사라질 위기에 처한 기계식 시계가 현재는 사치품의 브랜드로만 살아남았다면, 향후 내연기관 자동차는 전기차 충전 인프라가 없는 산간 오지용이나 군용·산업용 등 특수 용도로만 활용되거나 고가의 사치품 영역으로서만 명맥을 유지할지도 모른다. 아울러 기계식 시계의 종말과 더불어 과거 수많은 시계 수리공이 실직한 것처럼, 전기차의 대중화와 더불어 자동차 부품업계와 자동차 수리 관련 업종에도 많은 변화가 올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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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어버이의 다른 이름은 눈물이다<지평선> 어버이의 다른 이름은 눈물이다 송태윤(논설위원, 문학박사) 오늘날의 ‘어버이날’ 유래는 미국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1914년 미국의 제28대 대통령 토머스 우드로 윌슨이 매년 5월 둘째 주 일요일을 ‘어머니의 날’로 선포하면서 정식 기념일이 되었다. 그 뒤 미국에서는 어머니날과 아버지날을 따로 시행해 오다가 1994년 제42대 대통령 빌 클린턴이 어버이날 제정 법률안에 서명하면서부터 매년 7월의 4째 주 일요일에 어버이날을 기념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1956년 국무회의에서 5월 8일을 ‘어머니날’로 정해 17회까지 행한 뒤 1973년 3월 30일, ‘각종 기념일 등에 관한 규정’(대통령령 6615호)에서 ‘어버이날’로 개칭해 현재까지 시행하고 있다. ‘어버이 은혜’는 양주동 선생이 가사를 짓고, 이흥렬 님이 곡을 붙였는데 이 노래가 나오자마자 전국적으로 커다란 반향을 불러일으켰다는 당시 동아일보의 기사가 떠오른다. ‘어버이은혜’ 가사의 1연은 다음과 같다. 낳실제 괴로움 다 잊으시고 기를 제 밤낮으로 애쓰는 마음 진자리 마른자리 갈아 뉘시며 손발이 다 닳도록 고생 하시네 하늘아래 그 무엇이 넓다 하리오 어버이의 희생은 가이없어라 낳으실 때의 괴로움을 다 잊으시고 자식들을 키우느라 손발이 다 닳도록 고생하신 아버지 어머니, 하늘 아래 그 무엇이 어버이의 은혜보다 넓고 깊다 하겠는가. 자식들에 대한 어버이의 희생은 하늘보다 높고 바다보다 깊다는 뜻으로 마무리를 하고 있다. 이런 노래 가사를 접할 땐 이 세상에 안 계시는 부모님을 생각하면 가슴이 울컥하면서 눈물이 핑 돈다. 여기에는 피력하지 않았지만 2·3연은 어버이의 자식들에 대한 지극한 정성과 사랑을 노래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애창되는 노래 가운데 하나다. 세상엔 어버이의 따뜻한 사랑과 지극한 정성만 있는 것도 아니다. 이런 아픔도 있다. 어머니 아버지 왜 나를 버렸나요. 한도 많은 세상길에 눈물만 흘립니다. 동서남북 방방곡곡 구름은 흘러가도, 생일 없는 어린 넋은 어데 메가 고향이오 어머님 아버님 왜 말이 없습니까 모진 것이 목숨이라 그러나 살겠어요 그리워라 우리부모 어디메 계시온지 꿈에라도 다시 한번 그 얼굴을 비춰주오 이유야 어떻든 버려진 몸, 한 많은 세상길에 흘린 눈물, 떠도는 구름처럼 흘러온 인생, 생일과 고향도 모르는 애달픈 몸이라고 신세를 한탄하고 있다. 2연에선 ‘어머님 아버님 왜 말이 없습니까’라고 외쳐본다. 그러나 메아리만 들려올 뿐이다. ‘모진 것이 목숨이라 그러나 살겠어요’라고 허탈해 하면서도 험한 풍파 속에서도 모진 목숨을 이어가겠다는 각오를 한 부분이다. 이 부분에 이르면 눈물이 앞을 가린다. ‘그리워라 우리부모 어디메 계시온지 꿈에라도 다시 한번 그 얼굴을 비춰주오’ 그래도 어머니 아버지의 얼굴을 보고 싶다는 애타는 심정을 토로한다. 눈물이 막 쏟아진 부분이다. 오직했으면 꿈에라도 그 얼굴을 보고 싶다고 했을까. 이 노래는 슬픔과 우울함이 공존하는 상태를 의미한다. 아버지, 아니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은 이것이 끝이 아니다. 불러 봐도 울어 봐도 못 오실 어머님을 원통해 불러보고 땅을 치며 통곡한들 다시 못 올 어머니여 불초한 이 자식은 생전에 지은 죄를 엎드려 빕니다. 손발이 터지도록 피땀을 흘리시며 못 믿을 이 자식의 금의환향 바라시고 고생하신 어머님이 드디어 이 세상을 눈물로 가셨나요 그리운 어머님 위의 글은 ‘불효자는 웁니다’란 제목의 노래 가사이다. 6·25동란 때 어머니와 헤어진 이산가족이거나 객지 생활의 고달픔을 못 이겨 어머니를 못 뵈고 사별의 경험을 한 사람들이 그리운 어머니를 불러 본 것이다. 나는 이산가족이거나 어머니와 거리를 둔 객지에서 사는 신세는 아니었지만, 이 노래를 듣거나 부를 때는 눈시울을 적시곤 한다. 한 번 가신 어머니는 다시는 오실 수가 없으니 땅을 치고 통곡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아울러 어머니를 자주 뵙지 못한 생전의 죄와 잘못을 엎드려 사죄하고 있다. 못난 이 자식의 금의환향을 바라면서 손발이 터지도록 일하시는 어머니의 눈물을 그리고 있다.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가슴이 미어터지는 애환이 서린 노래다. 이 눈물 저 눈물이 엉기고 엉겨 피눈물을 보는 것 같다. 가신님의 눈물이나 살아서 어머니를 생각하는 자식의 눈물은 다 같은 눈물이지만 차원이 다르다. 어머니의 눈물은 희생이다. 계절의 여왕 5월이 오면, 아니 어버이날이 다가오면 순간적으로 전신에 소름이 쫙 돋고 눈물이 왈칵 쏟아진 것은 순전히 어버이와 맺은 천륜의 가치에 대한 공감의 발로일까? 나이가 드니 남의 어머니와 아버지를 보기만 하여도 나의 어머니와 아버지를 보는 것 같다. 난 이 나이가 되어도 어머니 아버지 하면 쓸 이야기 거리가 없다. 어버이란 단어가 너무나 큰 산이어서 그럴까. 어버이의 다른 이름은 눈물이다. 어버이날에 다시 한 번 불러본다. 어머니! 아버지! 지금은 어디에 계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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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 이야기> 디지털 아트<IT 이야기> 디지털 아트 金在珥(논설위원, 공학박사) 매주 일요일 정오 무렵 송해 원로 MC가 진행을 맡고 있는 ‘전국노래자랑’은 우리 국민 남녀노소 누구나 즐겨보는 TV 프로그램일 것이다. 그리고 전속 악단의 반주에 열창을 하는 다양한 출연자들의 노래 실력에 시청자들은 감탄을 하게 된다. 아마추어 가수들의 뛰어난 가창력은 전국 어느 곳에서도 쉽게 접할 수 있는 노래연습장 덕분임은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20여년 전만해도 밴드의 반주에 맞춰 노래를 부를 기회는 좀처럼 없었다. 명절에 큰 고을에서 열리는 콩쿠르 대회에 나가야 소규모 밴드의 생음악 반주에 노래를 부를 수 있을 정도였다. 노래방의 국제통용 용어는 가라오케(Karaoke)이다. ‘가라’(から)는 한자의 비어있다는 의미의 공(空)의 일본어 발음이고, ‘오케’는 관현악단을 뜻하는 오케스트라(Orchestra)의 일본식 압축어이다. 용어에서 알 수 있듯이 노래방은 일본에서 탄생해서 세계화 되었기에 일본 용어가 자연스럽게 국제 용어로 자리 잡게 된 것이다. 가라오케의 원리는 악단의 실제 연주된 음악이 아니고 악기와 악기, 악기와 컴퓨터 사이의 연주 정보를 교환하기 위한 데이터 전송 규격인 MIDI(Musical Instrument Digital Interface)를 이용한 컴퓨터음악이다. 음악분야 뿐 만 아니라 그래픽 아트 분야에서 디지털 기술은 그 위력을 발휘하여 창작자의 표현에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 준 신예술 분야로 자리매김 되었다. 컴퓨터 그래픽은 이제 특수 효과의 차원을 넘어서 인간의 상상력을 한 차원 넓히는 데 크게 공헌하고 있다. 일반 대중들에게 컴퓨터 그래픽의 가능성과 힘을 느끼게 해준 영화는 1993년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쥐라기 공원'일 것이다. 물론 이 영화가 컴퓨터 그래픽을 사용한 최초의 영화는 아니지만 대중들에게 컴퓨터 그래픽을 가장 인상 깊게 남긴 작품이라는 사실은 공감할 것이다. 초기 컴퓨터 그래픽은 기존의 특수 분장 세트나 관절을 조종할 수 있는 형태의 인형으로 처리하기 곤란한 장면들을 대신했다. 그러나 기술과 노하우가 축적되면서 컴퓨터 그래픽은 보조 도구가 아닌 주체로서 우리 인간의 상상력을 눈앞의 현실로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예를 들면 2017년도 미국에서 제작된 공상과학 영화 ‘혹성탈출-종의전쟁’은 수많은 수상의 영예를 안았고 제 90회 아카데미 시상식에도 노미네이트 됐던 영화이다. 더욱 더 놀라운 것은 몇몇 장면에는 배경이나 세트장이 포함되어 있기도 했지만 거의 대부분 컴퓨터 그래픽으로 처리한 영화라는 점이다. 또한 최근에 주목받고 있는 분야가 ‘텔레마틱 아트’(Telematic Art)이다. 컴퓨터 통신 네트워크를 이용한 예술로서 영국의 사상가이자 미디어 예술가인 로이 애스콧이 제창한 네트 아트(Net Art)의 일종이다. 즉 컴퓨터에 의한 통신망 기술을 이용하여 창조적인 참가의 장을 지구상에 확장하고자 하는 새로운 의식 개척을 계획하는 컴퓨터예술 분야이다. 전문가들은 20세기에 철학의 패러다임이 언어학적 전회(linguistic turn)를 겪었듯이, 최근에 인문학의 패러다임은 새로이 미디어적 전회(medial turn)를 겪고 있다고 평한다. 오늘날 예술가들은 점점 더 첨단 기술에서 표현수단을 찾고 있으며, 반면 엔지니어들은 점점 더 예술에서 새로운 기술을 위한 영감을 얻고 있다. 창의성 없는 기술은 이제 한갓 기능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기술과 예술의 결합에서 미디어 아티스트들의 작업은 전위의 역할을 하고 있으며 미래의 산업은 본질적으로 판타지 산업에 가까워질 거라고 예측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예술적 가상을 기술적 현실로 옮겨놓는 디지털 아트의 이론과 실천에 있어서 제작자들의 철학이 매우 중요하게 다가오는 것이다. 이처럼 디지털 아트는 컴퓨터 기술 발전과 함께 쉽고 편리하게 예술에 다가설 수 있게 만들어 주었으며, 예술과 일상의 경계를 허물고 장르와 시대의 구분을 넘나들며 예술의 범위를 확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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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테나> 4차 산업 혁명 시대와 유아교육의 미래<아테나> 4차 산업 혁명 시대와 유아교육의 미래 노운서(논설위원, 교육학박사) 4차 산업혁명시대, 그 개념은 클라우스 슈밥이 2016년 세계경영협회(WEF)의 다보스포럼에서 발표하여 처음 알려졌다. 그 핵심 기술로 로봇공학, 인공지능, 사물인터넷, 생명공학, 3차원 프린터가 주로 언급되고 있다. 그는 이러한 핵심 기술의 수혜와 부정적 영향에 대해 다음과 같이 우려한다. “가장 비관적이고 비인간적인 형태의 4차 산업혁명은 인류를 "로봇화"하여, 로봇이 우리의 마음과 영혼을 박탈할 잠재력을 가질 수 있기에 인간본성의 가장 중요한 부분인 창조성, 공감, 윤리 정신을 보완하는 것으로 인류는 공동의 도덕적 의식을 가져야 한다(Klaus 슈밥의 제4차 산업혁명. 2016)” 따라서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살아갈 미래아이들에게 무엇을 어떻게 가르쳐야 할 것인가는 국가의 필연적 고민이 아닐 수 없다. 그렇다면 세계적 석학인 클라우스 슈밥이 한국교육계에 주는 메시지는 무엇일까? 그는 4차 산업혁명의 근간으로 창의성이 중요한데 정답과 입시 위주 교육에 매몰된 상명 하달식의 한국 교육방법은 4차 산업혁명에 도달할 수 없다 지적했다. 이 시대는 맥락적 이해능력이 중요하고 전체 시스템을 포괄적으로 이해하는 융합적 이해능력이 성공의 전제 조건이라 했다. 그러려면 청년들이 창의력을 펼칠 수 있는 자유로운 환경이 필요하며 많은 기회와 적절한 교육의 제공이 미래교육의 지향점이라 했다(KBS지식 Pick). 하지만 핵심기술의 운용에 당장 시급한 자본인 청년교육에 대한 대책은 있으나 미래 유아교육에 대한 고민을 공개적으로 하는 이가 없어 안타깝다. 최근 유아교육학계에서 미래유아교육에 대한 연구가 있었다. 그 연구 결과의 일부를 보면 ‘변화된 교육 생태계에서 아동기 디지털 격차는 마치 자본과 같으니 디지털 환경을 아이들이 접할 수 있도록 가능성을 열어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4차 산업 시대 포스트 휴머니즘과 미래 유아교육. 김민우2018). 필자는 이 논문 결과에서 특히 아동기 디지털 격차가 자본과 같다는 말이 곧 유아를 4차산업혁명 시대의 국가자본으로 간주한다는 말로 해석 되어 이에 동의 할 수 없다. 또한 유아교육기관에서 발빠른 상업성에 동승, 유아들에게 코딩교육등을 가르치는 점에서도 발달심리적 관점에서 납득이 안 된다. 최진석교수(철학)는 지식은 세상을 통찰하는 밑 걸음이라 하였다(인간이 그리는 무늬 ). 그런데 만약 죽음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가상현실(Virtual Reality)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유아가 죽은 엄마의 모습을 VR을 통해 만났다고 해 보자. 반대로 죽음과 VR을 아는 청소년이 죽은 엄마를 VR을 통해 만났다고 하자. 지식의 상태가 다른 이 두 아이의 통찰이 남긴 느낌과 문제해결이 같을 수 있을까? 과연 유아들이 실생활에서의 경험과 가상공간에서의 경험을 비교 분석, 바람직한 문제 해결 방안을 모색 할 수 있을까? 이런 디지털가상현실을 실제보다 먼저 만나는 과정이 유아에게 어떤 의미이며 인격형성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하는 점은 오늘날 대부분의 유아교육자들이 우려하는 부분일 것이다. 스마트폰 원주민이라는 요즘 유아들에게 디지털적 삶은 자연스러운 일상 이지만 그렇다고 대 놓고 코딩교육 같은 것을 가르치는 것은 유아를 심리적으로 힘들게 하는 일종의 학대 일 수 있다. 아이가 태어 날 때 발달 상태는 1차 산업 시대나 4차 산업시대나 별반 차이가 나지 않는 취약한 상태임을 상기해 보자. 아이는 2년이 지나야 겨우 두리뭉실한 말을 하게 되고 신이 준 감각 기관을 통해 직접 만져보고 알아가게 되는 1차 산업시대처럼 그 발달 과정은 수제 작업의 느린 형태를 띤다. 그러므로 아이를 국가의 발달 자본으로 보고 유아발달의 자연시간표를 1차에서 4차로 훌쩍 뛰어 넘게 할 수 없는 노릇이다. 왜냐면 유아의 발달 과정은 점프가 안되며 점진적으로 이루어지는 특수성 때문이다. 천천히 만져 보고 듣고 알아가며 인간의 즐거움과 행복을 느낌으로서 미완의 인간 정체성을 마음에 장착하도록 돕는 것이 미래 4차 산업의 탄탄한 밑거름을 주는 일인 것이다. 이는 클라우스 슈밥이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기술로 결코 대체 될 수 없는 인간만의 고유영역에서 협력이나 공감 능력 같은 사회적 역할이 더욱 더 중요 해질 것이라는 예측에 걸맞다. 이 예측은 미래유아교육에 주는 큰 울림으로 인간고유의 정체성 확립과 인류 공동의 도덕적 의식형성이 우선이라는 확신을 들게 한다. 그러므로 유아에게 가족, 친구, 자연과 더 많은 체험의 기회를 주는 것이 유아정서를 안정시키며 건강한 인격형성으로 4차 산업시대의 주인공 역할을 더 잘하게 할 것이다. 오은영 박사(소아정신과)는 만3세 까지 게임이나 영상만화의 잦은 접촉은 뇌 발달에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주므로 가급적 자제하고 대신 자연 친화적 놀이를 권유한다. 4차 산업시대 미래유아교육은 청년교육과는 달리 유아의 발달에 적합한 체험 놀이중심으로서 그 본질적 균형을 잃지 말아야 한다. 향후 새 정부의 미래유아교육에 대한 보다 많은 관심을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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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스페인 내전(1)<지평선> 스페인 내전(1) 송태윤(논설위원, 문학박사) 스페인 내전(에스파냐 내전)은 마누엘 아사냐가 이끄는 좌파 인민전선 정부와 프란시스코 프랑코를 중심으로 한 우파 반란군 사이에 있었던 스페인의 내전이다. 1936년 2월에 실시되었던 총선 결과 스페인 사회노동당, 좌파 공화파, 스페인 공산당 등으로 구성된 인민전선이 승리하여 473석 중 289석을 확보하였다. 의회를 장악한 인민 전선은 토지 개혁을 포함한 개혁 정책들을 시행하였다. 이에 대해 스페인의 지주·자본가·로마 가톨릭교회의 불만은 고조되었다. 이들을 등에 업고, 1936년 7월 17일 스페인령 모로코에 머물고 있던 프랑코가 스페인 군부를 지휘하여 반란을 일으켰다. 이로써 스페인은 현 정부에 소속한 인민전선 즉 공화파(좌파)와 반란군인 프랑코파(우파)로 완전히 갈라섰다. 소련이 공화파를 지원했지만 거리상 한계가 있었다. 대신 전 세계의 좌파 지식인·공산주의자·자유주의자·무정부주의자 등이 의용군 ‘국제여단’을 결성해 공화파인 시민군과 연대해 싸웠다. 앙드레 말로·어니스트 헤밍웨이·파블로 네루다 등 세계적 지성과 문호들도 공화파를 지원하기위해 총을 들고 스페인 전선으로 향했다. 프랑코파는 파시스트 진영인 나치 독일과 이탈리아의 무솔리니 정권과 포르투갈이 지원하였으며, 스페인의 가톨릭교회와 왕당파는 프랑코파를 지원하여 제2차 세계대전의 전초전 양상을 띠었다. 영국과 프랑스는 국제 연맹의 불간섭 조약을 이유로 스페인 정부에 대한 지원에 미온적이었다. 미국은 공식적으로 중립을 표방했지만, 공화파 측에는 비행기를, 프랑코 측에는 가솔린을 팔았다. . 1937년 4월 독일 공군은 공화파를 지지하는 지역에 있던 작은 도시 게르니카를 융단 폭격해 1,600여 명의 민간인이 죽었다. 순전히 신무기를 시험해 볼 요량으로 전략적 요충지도 아닌 게르니카를 초토화한 이 사건은 전 세계에 큰 충격을 안겨 주었다. 당시 공산당원으로서 공화파를 지원했던 피카소가 이 비보를 전해 듣고 전쟁의 참상을 그려낸 작품이 〈게르니카〉다. 피카소는 파시스트들이 집권한 조국에 이 걸작이 반입되는 것을 거부했고, 민주화된 1981년에야 스페인에서 전시되었다. 이 당시를 그린 소설로 어네스트 헤밍웨이의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란 작품이 있다. 1937년 파시스트와 공화정부파로 갈라져 싸우던 스페인 내전에서 미국 청년 로버트 죠단은 정의와 자유를 위해 공화 정부파의 의용군에 투신하여 게릴라 활동에 종사하는 중 그의 새로운 임무는 적군의 진격로에 해당하는 산중의 대철교를 3일 후에 폭파시키라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죠단과 스페인의 소녀 마리아 사이의 로멘스를 그린 소설이다. 조지오웰도 소설 『동물농장』을 썼다. 1938년 초 프랑코파 군대가 테루엘 전투에서 승리함으로써 내전의 상황은 프랑코파 측에 유리하게 되었다. 테루엘은 오랫동안 프랑코파가 강세를 보이던 곳이었다. 1938년 1월 공화군은 테루엘을 점령하였다. 이에 맞서 프랑코는 독일과 이탈리아의 공군의 지원을 받아 테루엘을 공격하였다. 2월 22일 피아를 가리지 않는 무차별 폭격 끝에 테루엘은 다시 프랑코파의 수중으로 떨어졌다. 3월 7일 프랑코 측은 아라곤 공격을 감행하였다. 4월 17일 프랑코파의 군대가 지중해 연안까지 진격함으로써 정부 진영은 남북으로 양분되었다. 5월이 되자 정부는 강화 조약을 요청하였다. 그러나 프랑코가 정부에 대해 무조건 항복을 요구하여 협상은 결렬되었고, 7월까지 계속된 공방의 결과 공화군은 자신들의 XYZ 방어선을 사수할 수 있었다. 공화국 정부는 에브로 전투가 진행 중이던 7월 24일부터 11월 26일까지 온 세계를 향해 대대적인 지원 호소에 나섰으나 실패하였다. 1939년 4월 1일에 공화파 정부가 마드리드에서 항복하여 프랑코 측의 승리로 끝났다. 내전으로 인해 스페인 전 지역이 황폐화되었고, 이로써 길고 지루한 전쟁은 끝을 맺었다. 스페인 내전이 제2차 대전의 전초전이었다면,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은 제3차 대전의 전초전 양상처럼 보인다. 이 전쟁도 하루 속히 끝났으면 한다. 전쟁이란 누가 승자이고 패자이건 간에 죽음을 동반하는 무서운 인간의 야만적인 행위이다. 이런 전쟁을 막기 위해서는 국민들의 단결된 힘과 튼튼한 안보가 무엇보다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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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나들목> 경계와 선(線)<삶의 나들목> 경계와 선(線) 윤창식(논설위원, 외국어교육학 박사) 우주적 관점에서 보면 세상에는 어떠한 경계면도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꽤 알량한 인간들이 경계가 있다고 여기거나 억지로 경계를 만들 뿐이다. 포스트 모더니즘 철학자 쟈크 데리다에 의하면 무지개의 색깔 사이의 경계도 착시현상에 불과하다고 한다. 즉, 빨강과 주홍 사이에 언뜻 경계가 있는 듯 보이지만 사실은 두 빛이 서로 미세하게 삼투되어 있으므로 사실상 경계는 없다는 것이다. 물과 뭍, 빛과 어둠은 반대개념이 아니다. 물은 뭍에 의지하고 뭍은 물에 발을 담그는 관계가 아닌가. 또한 빛은 어둠을, 어둠은 빛을 서로 먹고사는 이란성 쌍생아이다. 하느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사 달리 기분이 좋으셨겠나? 바로 어둠과 빛, 그리고 하늘과 땅과 바다가 한몸을 이루어서 비로소 살만한 세상이 되었음이라! 나아가서 모양도 무게도 냄새도 소리도 없고 만질 수도 없는 시간에게 경계란 있을리 없다. 다만 사람들이 문명과 편리라는 이름으로 시간을 쪼갰을 뿐이다. 이 분리된 시간은 노동과 휴식을 위한 불가피한 경계선인 셈이다. 현대 도시인들은 시간적, 공간적으로 경계에 서는 일이 잦을 수밖에 없다. 강도 높은 노동과 그 현장에서 빚어지는 다툼의 틈바구니에서 별빛을 담을만한 마음의 그릇을 갖기란 매우 어려울 것이다. 저녁나절은 경계에 선 시간이다. 낮도 아니고 밤도 아닌 정체성이 모호한 시간이다. 등쪽에 아직 남은 빛의 온기를 적시고 한 손은 어둠의 자락을 만지락거리는 시간! "어둠이 빛을 지우는 부적 같은 한 장의 그림"(박종국, <저녁나절이다>)을 가슴에 안은 퇴근길 필부들은 어디로 가야 하나? 그냥 집으로? 포장이 된 마차 안으로? 낯선 땅 어딘가로? 인간은 언제부터 줄(線)을 만들었을까? 선(線)이라는 한자를 분석해 보면 실絲+흰白+물水로 이루어져 있음을 알 수 있다. 깨끗한 물(白水)은 모든 생명의 원천이며 그러한 물의 확보가 가장 중요한 일이었을 것이다. 깊은 물일수록 생명수에 가깝다는 믿음 때문에 샘을 깊이 파고 두레박에 줄을 연결하여 퍼올리게 된 것이 샘물의 역사가 아닐까 한다. 이와 같이 모든 선은 이어짐(生)과 끊어짐(死)이라는 양가적 질료로 작용하여 인간의 삶에 무한한 영향을 미친다. 예를 들어 '전선'(前線-電線-戰線)은 어떠한가? 지구상의 공기덩어리(기단)가 서로 길항작용을 하여 다양한 기후적 전선을 만들고, 전류를 실어나르는 전선은 우리 몸속의 신경조직만큼 중요해서 전류가 소실되지 않도록 매우 섬세해야 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서로 죽고 죽이는 전선이라는 낱말을 만나면 숨이 턱 막힌다. 인류사는 전쟁의 역사에 다름 아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우크라이나에는 곳곳에 전선이 형성되어 있다. 눈에 보이는 명시적 전선은 없다. 물리적으로 재단할 수 없는, 그래서 사실은 존재하지 않은 선을 앞에 두고 삶과 죽음이 교차하는 전선이라니! 금을 밟거나 잘못 넘어오면 죽음을 면치 못하는 '오징어게임'도 그놈의 선 때문에 생겨난 놀이일 터. 이런 점에서 인류가 만들어낸 선은 상반가치병존(ambivalence) 이라는 숙명성을 지닌다. 선의 본질적 성질은 직선보다 곡선에 있다. 직선으로는 우주와 지구의 천체물리학적 원리는 설명이 불가능하다. 그러한 우주에 갇혀 사는 인간존재는 말할 것도 없이 곡선의 지배를 받는다(받아야 한다). 사과가 땅에 떨어지는 궤적이라도 결코 완벽한 직선일 수는 없다. 선이 흔들린다는 것은 생명이 들어 있음을 증거한다. 땅에 떨어진 사과는 아직 살아있는 것이다. 언뜻 도시문명은 직선을 떠올리게 한다. 예각을 띠며 치솟은 빌딩과 직선으로 규격화한 반듯한 도로는 편리성을 담보해주지만 그다지 사람의 냄새가 나지 않는 것도 사실이다. 박수동 화백의 만화 <고인돌>, <번데기 야구단> 등은 하나같이 우그러뜨려진 요상한 곡선만으로 그려진 만화이다. 이를 두고 어떤 평론가는 박수동의 만화는 도시문명을 거부하고 더불어 살아가는 소시민의 평등한 삶을 곡선이라는 터치로 형상화하고 있다고 평했다. 직선이든 곡선이든 넘지 말아야할 선은 규범이나 윤리 혹은 법의 이름으로 우리의 삶과 언행에 적잖이 영향을 미친다. 과연 금도(襟度)라는 낱말의 사회언어적 함의는 무엇일까? 금도는 "하지 말아야할 언행의 정도"가 아니고 "너그러운 마음으로 남을 포용하는 마음"을 뜻한다. 금도의 금(襟)자는 '옷깃이나 앞섶'을 가리키며 품이 너그러운 옷은 곡선의 상징성을 잘 나타낸다고 볼 수 있다. 직선화된 날카로운 마음으로는 흉금(胸襟)을 털어놓고 정겨운 대화를 나눌 수는 없을 터. 혹 무언지 모를 선 안에 가로막혀 있으나 굳이 그것을 넘지 않아도 상념 너머에 있는 것을 향유할 수 있을까? 이에 대한 예로 <산 너머 남촌에는>(김동환 작시)이라는 노랫말이 생각난다. "산 너머 남촌에는 누가 살길래 해마다 봄바람이 남으로 오네" 이 가사 어디에도 시적화자가 마냥 들떠서 가로막은 선이나 장벽을 넘어가려는 무모한 심사는 읽히지 않는다. 그저 산등성이 곡선을 타고 넘어오는 봄바람을 맞고 보리 내음새를 소박하게 맡아볼 뿐이다. 곡선은 기다림이며 생명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