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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인 칼럼> 공의를 마르지 않는 강 같이 흐르게 하라

기사입력 2022.11.14 1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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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발행인 칼럼> 공의를 마르지 않는 강 같이 흐르게 하라

    박일훈 법학박사

     

    굳이 기독교인이 아니더라도 한 번쯤은 들어봄 직한 성경 구절 중에 예언자 아모스의 말씀이 있다. "오직 정의를 물 같이, 공의를 마르지 않는 강 같이 흐르게 하라.”(아모스 5장 24절) 우리는 8년 전 304명의 안타까운 목숨을 잃고 한동안 통탄의 시간을 보냈다. 우리 국민 5천만 대다수가 극심한 트라우마를 호소했고 그 파장은 결국 대통령 탄핵이라는 초유의 사태로 이어졌다. 그리고 또다시 이번 이태원 참사로 156명의 귀중한 생명을 잃어야 했다.

    우리 사회엔 언제부턴가 ‘진보는 깨끗하지만 무능하고 보수는 부패했지만 유능하다’라는 식의 관념이 일반 대중의 마음에 자리 잡고 있다. 그래서인지 지난 문재인 정부는 ‘깨끗하고 유능한 정부’를 표방하고 나섰다. 그러나 조국 사태를 통해 도덕적 위선이 드러나고 부동산 사태를 겪으면서 무능의 덫에 갇히고 말았다.

    결국 촛불혁명을 등에 업고 탄생한 문 정권은 어이없게도 스스로 무너져 내렸다. 다만 문 정부 측 인사인 윤석열 검찰총장을 대선 후보로 잘 키워서 그를 야당으로 보내 대통령이 되도록 공신 노릇을 다했을 뿐이다. ‘진보는 무능할 뿐만 아니라 깨끗하지도 않다’라며 국민은 다시 분열했고, 대장동 게이트의 핵심 인물로 알려진 거대 여당 민주당의 이재명 대선 후보를 국민은 마침내 간발의 차로 무릎 꿇게 했다.

    국민의 기대가 늘 급변하고 돌변하며 다변하다는 것을 모를 리 없는 윤석열 정부다. 그러기에 대통령의 인사 스타일이 ‘서오남’(서울대, 50대, 남자)이나 ‘경육남’(경상도, 60대, 남성)과 같다는 여론의 비난을 감수하면서도 이른바 ‘전문가 정부’를 주창하고 나섰다. 야당들도 일제히 ‘아재 내각·꼰대 내각’이라며 강력히 비판하고 있지만 말이다.

    사실 대선 때부터 틈만 나면 "대한민국 최고의 전문가를 모시겠다”라고 강조하던 윤석열 대통령 후보가 아니었던가. 검찰과 관료 출신들로 대통령실과 내각을 꾸린 것도 따지고 보면 다 그들이 전문가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리라. 그런데 지난 이태원 참사를 돌이켜 보면 윤석열 정부가 과연 전문가 정부인지 의심스럽다.

    진정 윤석열 정부의 내각이 전문가 집단이었다면 그들은 이태원 참사와 관련한 사전 위기 징후들을 절대 무시하지 않았을 것이며, 병력 지원 요청도 묵살하지 않았을 것이다. 게다가 참사 이후 줄곧 무책임한 태도로 일관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관료들은 정해진 법규와 원리에 충실한 집단이다. 주어진 업무에 일정한 성과를 내는 데는 뛰어나지만 경직성과 폐쇄성 때문에 유연하고 창의적인 사고를 기대하기란 어렵다. 정부가 참사 첫날부터 "주최자가 없어 대비하지 못했다”라는 주장을 반복하는 것을 보더라도 이를 금방 알 수 있다.

    대통령 주변의 검사들과 특권층 엘리트들은 당연히 권력지향적이다. 국민과 눈을 맞추기보다는 최고 권력의 의중을 살피는 게 그들의 생존방식이다. 대통령실부터 총리, 행안부 장관, 경찰청장, 용산구청장 등 책임자들이 하나같이 현실과 동떨어진 언사로 국민의 염장을 지르고 있는 데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다. 희생자를 사고자로, 참사를 사고로 끝까지 고집하는 것도 자기들의 안위만을 생각하는 데서 비롯된 행위이다.

    우리나라 헌법 제7조 제1항은 "공무원은 국민 전체에 대한 봉사자이며, 국민에 대하여 책임을 진다.”라고 규정한다. 하지만 국민의 생명과 안전의 최일선에 선 경찰 지휘부는 결코 봉사자의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오히려 무능하고 나태했다. 어떻게 위험이 도사린 현장을 놔둔 채 잠을 잘 수가 있으며 근무지를 이탈하고 늑장을 부릴 수가 있는가. 저런 위인들에게 과연 이 나라의 수사권을 통째로 쥐여 줘도 되는 일인가.

    지난 10일로 취임 6개월을 맞은 윤 대통령에게 지금은 위기의 순간일 수밖에 없다. 지난 4일 이태원 참사와 관련해 윤 대통령이 뒤늦게라도 사과한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동시에 국정 운영 기조를 전면적으로 쇄신해야 할 것이다. 그 선행조건으로 대통령실 참모들과 내각에 대한 개편 작업이 있어야 한다.

    한편 우리 사회는 상시적인 재난 사회라고도 한다. 하루가 멀다고 매일같이 노동자 한두 명씩은 불의의 사고에 노출돼 목숨을 잃고 있다. 이렇게 방치된 죽음이 매년 2, 3백 명이나 된다고 한다. 재난이 늘 반복되고 심지어 대형 참사도 이어진다. 재난이 발생할 때마다 우리가 애써 외면한 사회 구조적 문제에 그 원인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고 뒤늦게나마 가슴을 친다. 하지만 값비싼 대가를 치러가며 얻은 깨달음은 우리에게 그리 오래가지 않는다.

    우리는 재난 상황에 그저 잠시 잠깐 놀라서 충격을 받을 뿐, 재난 당사자들의 슬픔에 공감하지 못한다. 결국 우리는 진정 아무것도 깨닫지 못하고 무심코 다시 일상으로 돌아오는 것이나 다름없다. 각종 재난과 대형 참사가 되풀이되는 까닭이다.

    ‘공의’란 히브리어로 ‘째다카’라고 한다. 그것은 하느님과 사람 사이 또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올바른 관계’를 말한다. 애통하는 사람한테는 같이 울어주고 기쁜 사람과는 함께 웃어주는 일, 즉 이웃의 즐거움이나 슬픔에 공감해주는 마음이 공의로운 것이다. 부디 우리 사회에 공의가 마르지 않는 강같이 흘러서 이 땅에 다시는 대형 참사가 일어나지 않도록 해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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