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상세페이지

<특집> 우리 고장 무안향교를 찾아서(2)

기사입력 2022.11.14 20:30

SNS 공유하기

fa tw gp
  • ba
  • ka ks url

    <특집> 우리 고장 무안향교를 찾아서(2)

     

    1. 무안향교의 역사

     

    향교는 유학을 교육하기 위하여 지방에 설립한 국가교육기관이다.

    1394년(태조 3) 현유(賢儒)의 위패를 봉안, 배향하고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위하여 창건되었다. 처음에는 성의 남쪽에 있는 공수산(控壽山) 언덕에 설립하였는데 호랑이의 침해가 심하여 1470년(성종 1) 현재의 위치로 이전하였다.

    임진왜란으로 황폐해진 것을 1689년(숙종 15) 대대적으로 중수하여 복원하였다. 그뒤 1790년(정조 14)·1820년(순조 20)·1892년(고종 29)·1902년에 각각 보수하였고, 광복 후에도 네 차례에 걸쳐 복원하였다.

    현존하는 건물로는 정면 4칸과 측면 4칸의 맞배지붕으로 된 대성전, 정면 3칸과 측면 3칸의 명륜당, 동재(東齋)·서재(西齋)·내삼문(內三門)·동별실(東別室)·제기고(祭器庫)·외삼문(外三門)·협문·고사(庫舍)·삼강문(三綱門) 등이 있다. 대성전에는 5성(五聖), 송조2현(宋朝二賢), 우리나라 18현(十八賢)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다.

    건축형태는 앞쪽에는 강학 공간인 명륜당이, 뒤쪽에는 제사 공간인 대성전이 있는 전학후묘(前學後廟)의 배치이다. 현 건물들은 조선 후기 이후에 점차적으로 지어진 것이다. 조선시대는 국가로부터 토지와 전적·노비 등을 지급 받아 교관이 교생을 가르쳤으나, 조선 후기 이래 향교는 교육 기능이 쇠퇴하고 대신 선현에 대한 제향을 통한 교화 기능을 주로 담당하였다.

    봄·가을에 석전(釋奠)을 봉행하고, 초하루와 보름에 분향을 하고 있다. 무안향교는 1985년 전라남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으며, 전교(典校) 1명과 장의(掌議) 수명이 향교의 운영을 담당한다. 현재의 무안향교 명륜당 앞에는 수령이 약 600년 된 은행나무가 무안향교의 유구한 역사를 말해주고 있다.

    일반적으로 성균관이나 향교의 대성전에는 공자를 포함한 39명의 성현이 모셔져 있다. 39명의 성현은 공자를 비롯하여 4성(안자, 증자, 자사, 맹자), 10철(민손, 염경, 염옹, 재여, 단목사, 염구, 중유, 언언, 복상, 전손사), 송대의 6현(주돈이, 정이, 장재, 정호, 소옹, 사마광), 우리나라의 18현(설총, 최치원, 안유, 정몽주, 김굉필, 정여창, 조광조, 이언적, 이황, 김인후, 이이, 성흔, 김장생, 조헌, 김집, 송시열, 송준길, 박세체) 등이다.

     

    2. 사진으로 보는 무안향교

     

    ⓵무안 향교 정문

    21.png

     

    ⓶하마비 : 大小人員過此者皆下馬 "대소인원(사람) 모두, 이곳을 지나가는 자는 말에서 내리라" 서원이나 향교의 홍살문 앞에 세우는 비석으로 말이나 가마에서 내리라는 표시이다. 하마비(下馬碑)에는 대개 '대소인원개하마(大小人員皆下馬)'라고 쓰여 있는데 여기서 인(人)과 원(員)은 모두 사람을 지칭하는 대명사로 인(人)은 관직이 없는 사람이고 원(員)은 관직이 있는 사람을 뜻한다. 그 아래로는 명(名)과 구(口)가 있는데 서원이나 향교에 올 정도면 인이나 원 정도의 등급이었음을 알 수 있다.

    22.png

     

    ⓷명륜당 : 성균관 안에서 유학을 가르치던 곳.

    23.png

     

    ⓸동재 : 성균관이나 향교, 서원의 명륜당 앞 동쪽에 있는 집으로, 유생들이 글공부하던 곳.

    24.png

     

    ⓹서재 : 조선 시대 전통적인 교육 기관인 성균관이나 향교•사학•서원에 딸린 학생들의 숙소 또는 학습장소. 성균관에는 강당인 명륜당(明倫堂)을 중심으로 앞쪽, 좌우에 동재와 서재를 설치했다.

    25.png

     

    ⓺장서각 : 서고(오늘날의 도서관에 해당함)

    26.png

       

    ⓻⓼대성전 : 위폐를 모시는 곳. 문묘의 시설 중 공자와 관련 인물들의 위패를 안치한 건물. 문묘나 향교에서 가장 귀한 건물이라 맨 안쪽에 위치한다. 봄·가을에 제사를 지낸다. 한국의 문묘는 거의 향교 안에 설치되었으므로 향교의 시설이기도 하다. 처음에는 대성인(大聖人)을 모신 곳이라 해서 대성전(大聖殿)이라 했는데, 중국 사신이 공자는 온갖 학문을 집대성(集大成)하였으므로 대성전(大成殿)이라 부르는 것이 옳다고 하여 변경되었다.

    27.png

     

    28.png


    ⓽보호수 : 무안군은 지난 1982년 12월 대성전 계단 앞 600년 된 은행나무를 보호수로 지정했다.

    29.png

    backward top hom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