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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테나> 선운사 도솔암

기사입력 2023.01.17 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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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테나> 선운사 도솔암

    노운서(논설위원, 교육학박사)

     

    중학교 때 수학여행을 서울로 갔었다. 개구리 울음소리 들으며 논둑길로 학교 다니던 시골 소녀가 서울에서 느낀 첫인상은 흐르는 네온사인에 놀라고 요란 혼란 복잡함의 기억이었다.

    그 후 성인이 되어서도 서울의 지하철 노선을 몰라 반대 방향으로 달리다 일정을 망치거나 셔츠깃이 금방 까매지는 것 등으로 재차 입력해 둔 것은 ‘서울은 사람 살 곳 못 된다’였다.

    공간 감각이 둔하고 소심한 데다 느린 성격 탓에 이솝 우화의 여우처럼 신 포도를 탓했던 것이다. 하지만 고은 시인의 ‘내려갈 때 보았네/ 올라갈 때 보지 못한/ 그 꽃’이라는 시가 함의하는 것처럼 어릴 때 보이지 않던 ‘자연이 주는 좋은 느낌’을 오랜 시간이 흐른 지금에야 그것이 보이는 것을 어쩌랴. 그리고 이 글을 쓰도록 종용하는 것을…

    어릴 적 내가 사는 마을에서 선운사까지는 몇십 리였을까? 선운사는 우리들의 단골 소풍지로 아침에 출발해서 점심 먹을 시간에야 도착하도록 매번 걸어서 갔었다. 꽤 높은 산을 넘으면 내리막에 있는 도솔암을 지나 좁은 산길을 걸어 선운사 큰절에 당도하곤 했다.

    그때의 도솔암은 너무나 고즈넉한 곳이었다. 도솔암자는 우람한 산과 바위틈에 다소곳이 엎드려 있는 오두막이었다. 격자의 창호지 문에 햇살 비치고 인기척 대신에 다람쥐가 쪼르륵 내 달리는 산바람이 사는 곳이었다. 어느 가을 소풍 때였지 싶다. 파르라니 깎은 머리의 여승이 햇살에 앉아 가을걷이를 말리는 모습은 지금도 신비롭고 눈에 선하다.

    시간이 흘러 광주로 시집와서 정신없이 살다 그런 도솔암을 못 잊어 옛 지인들과 도솔암에 오르기로 했다. 녹음이 시작되는 지난 5월 선운사 옛길을 걷는데 푸른 나무숲 사이로 승용차가 쌩하고 지나갔다. 우리 일행은 "아! 여기까지 개발의 불도저가 왔구나”라며 탄식했다.

    선운사에서 템플스테이를 모집한다는 플래카드를 발견하고 숲속 승용차 길에 대해 이해했다. 그러나 숲의 가슴에 길을 낸 것 같은 우리들 가슴만큼은 산골의 싱그런 풍경과 느림에 익숙한 시골 사람의 DNA이거나 혹은 개인 선호적 편향일 수 있음은 부인할 길이 없었다.

    변화를 거부하거나 템플스테이를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선운사 입구 주차장에서 템플스태이 장소까지 그리 멀지 않기에 주차장에서 숲길을 걸어 숙소까지 걷는 것부터 수행의 여정에 넣어도 무리는 아니라고 본다.

    나무들의 숨통에 매연을 채우면서 인간의 편리만 위하는 것이 템플스테이 활성화 유치를 위한 스님들 발상이 아니라면 말이다. 필자가 뇌피셜이란 비난을 받더라도 세속인 비위나 맞추며 수행이라는 허울에 가두는 사탕발림처럼 느껴진다고 아니 할 수 없다.

    씁쓸한 맘으로 도솔암에 올랐을 때 또 한 번 실망했다. 그 작고 소박한 도솔암자의 자태는 찾아볼 수가 없었다. 암자를 품었던 산과 절벽 바위는 단청이 화려한 고대광실 절간에 기죽어 있었다. 절 크기는 본당으로 충분한데, 암자로서 명분이 사라져 버렸다. 도솔암 마당과 선운사 큰절 앞마당에는 오색의 화려한 연등들이 마당을 독차지하고 있었다. 그동안 스님들이 배곯이라도 했다는 듯 절간에서 경제학이 너울거렸다. 부처의 고요함은 실종이었다.

    도시의 네온 불빛을 닮은 연등 대신 오히려 소박하고 자연스러운 등불을 밝히고 석가탄신 예불을 올린다면 다른 절과 차별화도 되고 신도들 마음 등불도 자연스럽지 않을까 한다.

    ‘더 크고 더 화려하게 그래서 더 많은 사람이 몰려들게’의 속내에는 정신보다 물질추구가 숨어 있다. 같은 맥락에서 각 지방의 관광지를 돌아보면 너나 할 것 없이 크고 조잡한 조형물들이 그곳의 자연스러운 정서를 압도하거나 심지어는 흉물스러운 곳도 있었다.

    자치단체장들이 실적 쌓기를 위한 온갖 전시행정을 남발하는 업적은 출렁다리에서도 드러난다. 대한민국의 강이 있는 곳이면 어디라도 출렁다리를 만들어 놓았다. 전국 150개 출렁다리가 허송세월하며 출렁이고 있다 한다. 해상 케이블카도 길이를 다투며 전국 성업 중(?)이니 지방자치 행정은 베끼기로 획일화된 곳이 너무 많다.

    이런 졸속행정 방지를 위한 지방자치를 지양하려면, 주민들을 계도하고 의견의 방향을 선한 곳으로 이끌어 주고 지역 활성화를 위한 질 높은 계획을 강구하고 실천하는 지도자가 필요하다. 지자제의 지도자는 관련 분야의 능력 있는 전공자를 섭외해 많은 협조를 받을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기획자의 이름을 걸고 그 고장 고유의 자연과 역사 문화가치를 보전하되 독특한 창조적 개발을 할 수 있으면 금상첨화가 아니겠는가. 이 자릴 빌어 심덕섭 고창군수께서 유치(誘致)한 ‘생태관광치유 문화 도시사업’ 추진 시에는 선운사를 비롯한 고창의 자연생태를 최대한 살려 후손들의 힐링 유산을 개발한다는 관점에서 사업이 진행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심정을 밝혀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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