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뉴스목록
-
<IT 이야기> 컴퓨터 음악의 미래<IT 이야기> 컴퓨터 음악의 미래 金在珥(논설위원, 공학박사) 우리 인간이 가장 좋아하는 것은 무엇일까? 여행, 음악, 스포츠, 독서 등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필자는 단연코 음악이다. 좋아하는 정도가 아니고 잠자는 시간 이외에는 거의 음악에 빠져있는 편이다. 초등학교 때 선생님의 풍금치시는 모습을 흉내 내기 시작한 이후 일생을 음악과 함께 지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해서 음악의 고장 동유럽 그 중에서도 오스트리아 빈을 꼭 답사하고 싶었는데, 10년 전 동유럽 6개국(오스트리아,헝가리,폴란드,체코,슬로바키아,독일)을 둘러볼 기회를 얻게 되었다. 답사 일정에 따라 독일을 거쳐 오스트리아로 향하면서 나는 요한스트라우스 2세의 ‘아름답고 푸른 다뉴브강’의 왈츠 선율을 마음속으로 되뇌었다. 특히 아름답고 신비스런 음색의 프렌치 호른으로 시작하는 인트로 부분의 선율을 "다다다단~”하면서 몇 번이고 반복했다. 이 호른이란 악기는 가늘고 긴 관이 둥글게 말려 있고 관 끝이 나팔꽃 모양으로 벌어져 있는 모양새가 다소 특이한 흔치 않은 악기이지만 관현악단에서는 아름다운 음을 내는 중요한 악기로 쓰인다. ‘왈츠’하면 차이코프스키나 쇼팽 같은 음악가들도 있지만 <왈츠의 왕>으로 불리 우는 요한 슈트라우스(1825~1899)를 첫 손가락에 꼽지 않을 수 없다. <왈츠의 아버지>라고 불리우는 J.B 슈트라우스의 장남으로서 아버지의 성과를 이어받긴 했지만, 500여 곡의 왈츠를 작곡해 왈츠 하나만을 위해 평생을 바쳤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 특히 ‘아름답고 푸른 다뉴브강’은 그가 만든 왈츠 곡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걸작이다. 낙천적인 삶으로 생을 즐기려는 빈 시민들의 기질을 다뉴브 강의 아름다운 풍경으로 잘 묘사한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 곡은 1867년 그가 궁정 무도회의 지휘자로 일하고 있을 때 작곡된 곡인데, 150여년이 지난 오늘날까지도 오스트리아 국민은 물론 전 세계인의 애호를 받고 있다. 1866년 옛 프로이센과의 전쟁에서 참패한 오스트리아 국민들에게 새로운 용기와 희망을 북돋아 주면서 오스트리아 국가 다음으로 사랑받는 곡이 되었다. 필자는 음악 애호가로서 뿐 만 아니라 실제로 전문 연주단체를 이끌고 있다. 때문에 ‘아름답고 푸른 다뉴브강’과 같은 명곡의 연주는 물론 작·편곡 및 편집 작업을 하고 있는데 이러한 작업 시 주로 컴퓨터를 이용하고 있다. 컴퓨터의 음악작업에의 활용은 DAW(Digital Audio Workstation)를 사용한 디지털 녹음과 편집, 가공 그리고 MIDI(Musical Instrument Digital Interface)를 사용한 녹음과 편집을 하고 있음을 뜻한다. 과거에는 작곡가, 작사가 그리고 엔지니어 등 여러 분야의 전문가들이 분업하는 시스템이었으나 오늘날은 컴퓨터의 성능이 향상되어 음악에 관한 전반적인 작업을 혼자서 해내는 추세이다. 작사·작곡 및 편곡을 마친 곡은 믹싱 마스터링 작업을 하게 된다. 믹싱은 각 트랙들에 다양한 이펙트를 사용하여 현장감 있는 사운드를 연출하기 위한 작업이며, 마스터링은 저장할 곡의 다이내믹 범위를 조정하고, 각 곡들 간의 색채를 일치시키는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즉, 믹싱은 음식을 요리할 때 갖은 양념을 맛깔스럽게 가미하는 것과 같고, 마스터링은 상품을 품위 있게 포장하는 것으로 비유할 수 있다. 이러한 일련의 작업을 할 수 있는 간단한 시스템을 ‘홈 스튜디오’라고 부른다. 이렇게 음악 작업 관련 IT기술은 장족의 발전을 거듭해왔다. 하지만 오케스트라의 연주실황을 직접 관람하고자 하는 클래식음악 마니아들은 현재의 컴퓨터에 의해 생산된 음악콘텐츠에 대한 거부감을 갖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앞으로 컴퓨터음악이 자연의 소리에 더욱 가까운 음향을 얻기 위해서는 시각(이미지)과 청각(오디오) 기술 외에 인간의 오감 중 아직 구현이 미흡한 촉각, 후각 및 미각 등의 재현기술의 개발에 보다 더 집중적인 연구개발이 필요하다고 하겠으며 음악 애호가로서 그런 날이 빨리 왔으면 하는 바람 간절하다.
-
<삶의 나들목> 유가증권의 빛과 그림자<삶의 나들목> 유가증권의 빛과 그림자 윤창식(논설위원, 외국어교육학 박사) 유가증권이란 유가(有價), 즉 그 자체로 금전적인 가치가 있는 종이를 말한다. 화폐를 포함하여 수표, 채권, 주식, 어음 등이 모두 유가증권에 속한다. 유가증권의 대표격인 화폐의 역사를 살펴보면 조개껍질, 동물의 뼈, 귀한 돌, 소금, 희귀한 새의 깃털 등이 주로 오늘날의 화폐 대용으로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돈과 관련된 많은 한자어에 조개 패(貝)가 들어가 있는 점이 흥미롭다. 그러한 흐름이 이어져 오다가 17세기 이후 가장 널리 사용된 화폐는 동전과 지전이었다. 이러한 화폐의 변천과 과학기술의 발달 속에 1602년 설립된 네덜란드의 동인도 회사는 동인도의 여러 섬을 정복하고 직접 지배하거나 그 지역의 지배 세력을 통한 간접 지배를 행하는 조직이었다. 이러한 실물경제에 잉여자본을 들여 이익을 챙기려고 17세기 초 네덜란드의 암스테르담 뒷골목에 생겨난 것이 주식시장의 원조이다. 당시 주식투기는 그쪽 동네의 '국민스포츠'였다고 전해진다. (B.H.케이저, '세계 최초의 증권거래소' 참조)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뒷골목은 음습하고 위험하다. 물론 지금이야 최첨단 시스템으로 빚나는 증거거래소가 즐비하지만 속내는 반드시 착해 보이지만은 않다. 열강들의 피지배 민족에 대한 경제적 침탈에 편승한 주식투기는 현대 자본주의의 어두운 단면을 드러내는 원죄로 작동한 것은 아니었을까? 최근 들어 주가가 하락한다고 '개미들'(단기투자자)은 아우성이다. 국민 재테크 상품이라 불리는 주가연계증권(ELS)도 무더기로 원금손실구간(knock-in)에 진입했으며 개미들은 공매도가 계속되는 것에 충격을 받고 있다는데, 과연 몇 퍼센트의 경제활동 인구가 이 알쏭달쏭한 증권시장의 위기적 뉴스를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자본이 득세하는 세상인지라 현대인의 몸속에는 자동으로 호모 에코노미쿠스(homo economicus)의 피가 흐르는지는 모르지만 금전적 손해 때문에 곧잘 눈물을 흘린다는 개미들이 그다지 불쌍해 보이지만은 않다. 건전한 투자자라면 증권시장의 선순환을 느긋이 지켜보면 될 일이지만, 단기투기에 입맛을 들인 상당수 주식매니아들은 미세한 증권의 등락에도 안절부절 못하며 잠 못 드는 밤을 보내는 것 같아서 안타까울 뿐이다. 한편, 19세기 전까지만 해도 각 나라의 위조지폐 범인은 소액일지라도 거의 사형에 처해졌다. 중력의 법칙을 발견한 아이삭 뉴튼은 나중에 영국의 조폐청장을 역임했다. 뉴튼은 위폐범의 교수형 장면을 지켜보면서 자기가 발견한 중력의 법칙이 '실생활'에 적용된다고 흐믓해 했다니 참 어처구니가 없다. 위조지폐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국가경제를 왜곡시킬 수 있는 범죄이므로 강력한 처벌이 요구되는 것은 맞다. 하지만 20세기 초 미국의 '1달러짜리 위폐범' 이야기는 많은 것을 생각케 한다. 100달러도 아니고 1달러를 위조하다니 바보 아닌가 하고 의문을 가질 수가 있을 것이다. 물론 그 범인은 바보는 아니었고 오갈 데 없는 노인이라서 배가 고파 빵을 구하기 위해 어릴 적 그림그리기 실력으로 1달러를 위조한 것이다. 결과는 어떠했을까? 위조지폐를 받아든 가게 주인은 뻔히 알면서도 그 노인에게 빵과 우유를 주었으나 노인은 결국 당국에 기소되었고 생계형 범죄로 인정되어 벌금으로 현찰 1달러 선고를 받았다고 한다. 이와 같은 판결에 대해 새삼 시비할 이유는 없지만 세계 경제 시장의 총아로 군림한 엄청난 유가증권 위에 빛과 그림자가 동시에 얹히고 있음에 유념할 필요가 있다. 진정한 의미에서 유가증권이 빛으로 승화하려면 지구인 모두 터무니없는 금전적 욕망의 배출을 줄여야 하지 않을까.
-
<구독자 코너> 가을의 노래<구독자 코너> 가을의 노래 김봉임 어느 공휴일 나는 머리도 식힐 겸 오랜만에 승달산 단풍 구경이라도 해볼까 해서 가벼운 옷차림으로 집을 나섰다. 등에 걸친 작은 배낭에는 건빵 한 봉지와 물병을 넣고 도화지 서너 장에 색연필도 같이 넣었다. 그렇게 홀로 승달산을 향해 길을 가고 있는데 저만치서 동네 친구 효정이가 자전거를 타고 승달산 쪽으로 멀어져 가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길가에 나지막이 서서 핀 야생화 몇 송이들에 얼굴을 들이대 보면 벌써 가을향기가 가득하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우러러보니 맑고 푸르다. 과연 천고마비의 계절이다. 하늘은 그지없이 높고 말은 유유자적하며 살찐다. 저만치 풀섶에는 가을의 대표적인 야생화 들국화가 어느새 만발하여 한들한들 가을 노래를 부르고 있는 듯하다. 어디서 날아왔는지 노랑나비 두 마리가 공중에다 8자를 그리며 내 앞길을 가로막는다. 어쩌면 노란색이 저리도 고울까. 잠시 잠깐의 눈요기를 하려는데 이내 나비는 연분홍 코스모스꽃 주위로 날아가 그 위를 맴돌고 있다. 시원한 가을바람에 머리를 식히면서 한참을 걷다 보니 승달산 자락이 보인다. 산행길 양옆으로 자주색 단풍나무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다. 산 오르막길 사이로는 물오른 소나무들의 송진 냄새가 그윽하다. 나는 산속 적당한 곳에 자리를 잡았다. 색연필과 도화지를 꺼내 자태 고운 단풍나무들을 그리기 시작했다. 배낭에서 건빵과 물도 꺼내 먹는다. 아기 손가락 닮은 단풍잎들을 그리다가 문득 내 모습이 단풍잎을 닮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살날도 많지 않으리라. 하지만 어쩌랴. 무릇 인생이란 사는 동안만이라도 근심 걱정 없이 건강하게 사는 것이 제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는 다시 일어나 계곡을 따라 걷다가 낮은 쪽으로 걷다 보니 저 아래로 목포대가 보인다. 하산길에 발에 밟히는 단풍잎들 색깔로 가지각색이다. 빨간색, 노란색, 갈색, 남색, 초록색 등등. 나는 갖가지 단풍잎들을 한 장씩 주워 모아 배낭 속 책을 꺼내 책갈피 속에 일일이 끼워 넣었다. 산에서 그렸던 단풍나무 그림을 국화꽃 그림 옆에 붙였더니 집 안방에는 임인년 새해에 그린 호랑이 그림부터 임인년 초가을에 그린 단풍나무 그림까지 모두 열 장의 그림들이 나란히 붙어 있다. 그런데 인생을 사노라면 느닷없이 걱정거리가 생길 때가 있다. 지지난달이던가, 목포대에서 직원으로 근무하는 며느리가 울음 섞인 목소리로 전화를 걸어왔다. 무슨 일이냐고 물었더니, 중학교 2학년 재학 중인 손주가 학교에 가지 않고 PC방 게임에 빠져 있다는 얘기인 것이다. 며느리가 속 썩을 일임에는 분명하다. 이게 다 코로나 19사태로 학교가 비대면 수업을 하다 보니 아이들도 정신이 해이해진 탓일 것이다. 어릴 때는 학교에서 학급 반장까지 했다는 손주가 학교를 등한시 하다니 억장이 무너질 것이다. 며느리는 거제도에서 직장일을 하고 있는 아들에게 이제 자식 교육이 중하니 직장을 그만두고 집으로 내려오게 하라고 극단적 조치를 요구한다. 며느리가 남편과 떨어져서 살다 보니 혼자서 자식 교육이 힘들 것은 자명하다. 나는 에둘러서 며느리에게 말을 건넨다. 손주가 사춘기라서 엄마 속을 썩히는 모양이니 교육상담을 한번 받아보면 어떻겠냐고. 며느리는 시어머니가 답답한 소리를 한다며 전화를 끊는다. 요즘 누구네 집이나 며느리들이 상전이다. 그 후로 며느리한테서 전화가 오질 않았다. 일이 어떻게 된 것인지 궁금도 하고 손주 목소리도 한 번 들어볼 겸 손주 휴대전화에 전화를 걸었다. "요즘 학교 잘 다니냐?”고 물었더니 손주는 큰소리로 "네”하고 대답하는 것이다. 손주가 너무 기특해서 나중에 며느리에게 물었더니 요즘도 PC게임은 하지만 학교는 잘 다닌다고 한다. 모든 게 안심이 되자, 나도 모르게 제주 양씨 가풍이 어디로 가겠냐며 어깨가 절로 으쓱해졌다. 아무쪼록 손주와 며느리도 이 풍요로운 가을에 자연이 주는 혜택 속에서 건강하고 마음껏 행복을 누렸으면 좋겠다.
-
<삶의 나들목> ‘변해야 산다’의 허와 실<삶의 나들목> ‘변해야 산다’의 허와 실 윤창식(논설위원, 외국어교육학박사) 그리스 고대 철학자 헤라클레이토스는 "모든 것은 끊임없이 변화한다”라고 했다. 여기서 ‘변화한다’라 함은 오랜 세월에 걸쳐 진행되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변화를 의미한다. 법(法)이라는 한자는 물(水)이 흘러간다(去)라는 의미를 지닌 글자이다. 법의 진정한 기능은 무엇을 강제하려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을 자연스럽게 올바른 방향으로 흘러가도록 선도하는 것이다. 요즘 '변해야 산다'라는 구호가 대한민국 사회의 정책적 화두가 된 느낌이다. 물론 이는 낡은 사고를 불식하고 모순된 제도를 뜯어고쳐야 퇴보하지 않고 발전할 수 있다는 고언으로 들린다. 한편으로 타당한 말이다. 하지만 변해야 산다라는 구호가 온전히 선(善)으로만 들리지는 않는다. 변화는 우리의 생명이니 믿고 따르라는 이데올로기를 신봉하는 사람들이 늘어갈수록 속도는 경쟁력이라는 그릇된 신화를 초래할 위험성이 높다. 그러한 병리적 현상으로 퀵서비스의 아찔한 경주가 곡예하듯 밤낮으로 이어지고 느림은 정체요 퇴보로 치부되어 손가락질의 대상이 되고 변화의 화신들에게 발로 차이기 일쑤다. 변화의 무한 질주 속에 편승하지 못한 사람들은 가만히 있으면 무언지 불안하고 손해 보는 느낌이 들어 슬그머니 욕망의 촉수를 드러내며 멀쩡한 냉장고도 바꾸고 핸드폰도 바꾸고 자동차도 바꾼다. 그들은 그것도 성이 차지 않아 ‘모든 걸 다 바꿔’라는 노래를 불러댄다. 도대체 모든 것을 다 바꾸면 정말 지상낙원이 되기는 되는 것일까. 물론 문명의 발달과 시스템의 변화를 통한 보다 질 높고 행복한 삶을 굳이 마다할 이유는 없다. 하지만 행복한 삶이 반드시 변화를 통해서만 구현되는 것은 아니다. 사람이 갑자기 변하면 죽는다는 말이 있다. 무릇 모든 일이 갑작스럽게 변하거나 진행되면 탈이 생기기 마련이다. 사회나 국가도 마찬가지이다. 그래서 변화와 개혁은 혁명보다 어려운지 모른다. 무엇이든 하루아침에 변화시키려는 시도는 거의 실패하고 만다. 진정한 의미에서 어떤 것을 변화시키려면 그것이 변화될 수 있는 토양을 만들고 그것과 관련된 당사자나 구성원들의 컨센서스를 도출해냈을 때야 비로소 그 변화는 튼실한 뿌리를 내려 아름다운 열매를 맺는 법이다. 단순한 구호성 정책으로는 시행착오를 거듭할 뿐이며 개악의 결과만을 초래하기 십상이다. 과연 그동안 구호대로 한국 사회는 얼마나 변했을까. 진짜로 변해야 할 것들은 변하지 않고 오히려 변치 말아야 할 것들만 변해버린 느낌을 지을 수 없다. 아무리 기초 질서를 부르짖어도 무질서는 여전하고 거창한 부패방지위원회의 명패가 찬란하게 위용을 부려도 우리나라 부패 지수는 OECD 국가 중에서 꼴찌 수준이다. 가정의 달이라고 맨날 외쳐도 소외된 노인과 버려진 아이와 결손 가정은 늘어만 간다. 이는 오히려 변하지 말아야 할 가치와 덕목들마저 덩달아 기만에 찬 변화의 화두 앞에서 맥없이 무너져버린 결과가 아닐까. 변하지 말아야 할 것들은 너무나 많다. 진선미가 그렇고 인의예지신이란 동양적 덕목이 그러하다. 효의 덕목과 한국적 정의 문화도 사라져서는 안 될 가치이다. 또한 역사성을 지닌 문화재나 정겨운 우리의 산하는 그대로가 좋다. 편리함을 쫓고 변화를 즐기는 듯한 미국에서도 200년 넘은 미헌법이 현대적 감각으로 모순점이 많지만, 헌법을 개정할 움직임은 없다. 또한 프랑스는 '라마르세이유'라는 출정가를 국가(國歌)로 지정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는 바, 가사가 지나칠 정도로 투쟁적이지만 개정하자는 목소리는 거의 없다. 다소 불편하고 문제가 있다고 해서 오랫동안 뿌리내린 제도나 보호해야 할 정서적 가치마저 단번에 바꾸거나 없애려는 발상은 어리석은 것이다. ‘변화는 무조건 선이다’라고 믿는 이들은 만용을 용기로 착각할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이런 부류의 사람들은 무엇이든 용감하게 정책을 입안하고 과감하게 시행하지만 결과에 대해서는 별로 책임을 지려 들지 않는다. 일단 자르고 파헤쳐놓고 보자는 식이 되어버리면 나무 한 그루의 역사성을 무시하고 만용의 도끼자루를 들이대는 꼴이다. 산산수수(山山水水)라 했던가.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다. 모든 것이 변화한다고 했던 헤라클레이토스의 주장은 틀린 말인지도 모른다. 사람의 마음이야말로 조변석개요 조삼모사라(!) 그 철학자의 말은 이렇게 바꾸어야 할까 보다. ‘모든 것은 사실 변치 않는다. 다만 사람이 변할 뿐이다’라고.
-
<IT이야기> 1년만 기다리자. 비밀번호 없는 세상이 온다!<IT이야기> 1년만 기다리자. 비밀번호 없는 세상이 온다! 金在珥(논설위원, 공학박사) 현대인은 은행 업무나 쇼핑 그리고 각종 표의 예약 등 대부분의 일상생활에 필요한 일 처리를 컴퓨터나 스마트폰을 이용한다. 물론 직접 오프라인상에서 일을 보는 경우도 있겠지만 온라인상에서 처리하는 경우가 훨씬 많을 것이다. 그리고 IT 기술의 발달에 따라 앞으로 더욱더 정보 기술의 생활화가 가속화될 것이다. 이와 같이 온라인상에서 일을 보다 보면 해당 사이트에 방문하여 맨 먼저 ‘로그인(log-in)’을 하게 된다. 로그인은 사용자가 호스트 컴퓨터와 연결하여 업무를 수행하기 위하여 아이디(ID)와 패스워드(PW)를 입력하여 컴퓨터 또는 통신망에게 사용자임을 알리는 절차이다. 말하자면 어떤 집을 방문할 때 대문에서 벨을 누르면 주인의 ‘누구세요?’하는 물음에 ‘아무개입니다’하고 대답해서 신분이 확인되면 문을 열어주는 것과 같은 절차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이 이름을 다른 사람이 도용하여 피해를 입은 경험이 있는 가정은 자꾸만 식구들에게 더 복잡한 암호 같은 이름을 짓게 하여 안전을 도모하게 될 것이다. 그리하여 이 대문을 여는 절차가 점점 복잡해져서 ‘홍길동’과 같은 과거의 간단한 이름만으로는 열어주지 않고 한글, 영문, 숫자는 물론 특수문자까지 조합하여 ‘홍길동@#gk!58’과 같이 최소한 10자리 이상으로 만들어 미리 등록한 뒤 사용해야 열어주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쉽게 기억할 수 있는 비밀번호는 보안 수준이 낮고, 보안 수준이 높은 건 기억하기가 어려워 딜레마에 빠지게 된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한 방편으로 여러 개의 계정에 같은 비밀번호를 쓸 수 있지만 이는 연쇄적인 패스워드 도용의 타깃이 되기 쉽다. 정보 단말기를 사용하여 로그인을 하다 보면, ‘회원아이디 또는 비밀번호가 일치하지 않습니다’라는 메시지의 팝업 창이 종종 뜨는 것을 경험하게 된다. 기억을 되살려 다시 입력해서 열리게 되면 다행이지만 몇 번을 입력해도 반복해서 에러 메시지가 뜨게 되면 낭패다. 수첩이나 메모 창을 뒤져도 어디다 기록해뒀는지 얼른 찾기가 쉽지 않다. 찾았다 하더라도 주기적으로 비밀번호를 변경하기 때문에 일치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이와 같이 문자와 숫자를 조합해서 만든 비밀번호는 여러 가지로 불편하며 한계가 있어 이를 극복하기 위하여 지문과 정맥, 홍채, 안면 인식 등의 생체 인증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사용자는 한 번의 생체 인증 등록을 통해 비밀번호를 입력할 필요 없이 쉽게 금융거래를 하거나 출입을 인증할 수 있지만, 이 방법도 전혀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생체 인증 또한 하나의 서버에 정보를 저장하기 때문에 비밀번호가 해킹의 위협에 노출될 수 있으며 유저(user)가 자신의 생체 정보를 특정 기관이나 사기업이 보유하는 것을 원치 않는 문제도 발생하게 된다. 그래서 편리함과 보안성을 동시에 갖추고 온라인에서도 생체인식기술을 안전하게 사용케 하여 문자식 비밀번호 폐지를 추진하는 국제표준단체인 '파이도 연합'(FIDO, Fast IDentity Online Alliance)이 탄생하게 되었다. 즉 구글·아마존·MS·삼성전자 등 글로벌 IT기업 250여 곳이 연합체로 뭉친 것이다. 이들은 2014년 12월 모바일 중심의 ‘FIDO1.0’을 발표했고, 2018년 4월 웹과 PC 중심의 ‘FIDO2’를 발표했다. 기존의 생체 인증의 문제점으로 지적된 ‘인증 프로토콜’과 ‘인증수단’을 분리하여 개인의 생체 정보를 기밀하게 저장하고 필요할 때는 암호화된 정보로 인증함으로써 해킹에 대한 걱정을 덜 수 있게 한 것이다. 지난 5월 5일(현지 시간), 애플,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3개의 빅테크 기업이 비밀번호 없는 로그인 지원을 확대하겠다고 발표했다. 반가운 것은 FIDO 2.0이 되더라도 메이커가 다른 기기로 바꾸면 다시 생체 정보를 등록해야 하는 불편함이 있었는데 여러 기기에서 암호를 동기화해 다시 생체 정보를 등록할 필요가 없게 하겠다는 점이다. 세 기업은 공동 성명에서 "내년쯤 새로운 플랫폼을 쓰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1년만 참으면 비밀번호를 외우고 주기적으로 바꾸는 불편함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기대가 고무풍선처럼 부풀어 오른다.
-
<시사논평> 국힘의힘은 막장 정치꾼 이준석을 제명하라<시사논평> 국힘의힘은 막장 정치꾼 이준석을 제명하라 金昌辰(전 초당대 교수, 문학박사) 이준석 전 국힘의힘 당대표가 날마다 윤석열 대통령과 국힘에 대해 막말을 퍼붓는다. ‘이준석의 난’은 작년 6월에 이준석을 국힘 당대표로 잘못 뽑은 데서 비롯됐다. 이준석은 국회의원에 3번 나와 3번 낙선한 ‘정치 낙오자’다. 국힘은 엉뚱하게도 이런 자를 당대표로 뽑았다. 그때 오늘의 비극은 잉태됐다. 작년 국힘 당대표 선거를 앞두고 여론조사가 벌어졌다. 처음에는 나경원이 1위, 이준석이 2위를 했다. 그런데 언론이 ‘30대 청년 정치인’이라고 이준석을 의도적으로 띄웠다. 이는 김어준이 "이준석 바람은 언론의 전격적인 지원과 함께 갔기 때문에 뒤집을 수가 없다고 본다”고 한 말에서도 입증된다. 그 결과, 여론조사에서 이준석이 1위로 올라섰고, 끝내 당대표까지 되고 말았다. 국힘의 2021년 당대표 선거 예비경선(당원 50%, 국민 여론 50%)이 있었다. 거기에서 당원 조사에서는 나경원이 32%로 이준석의 31%를 앞섰다. 그러나 국민 여론에선 이준석이 51%로 나경원의 26%를 두 배로 압도했다. 그 결과, 이준석이 예비경선에서 41%로 1위가 됐다. 그것이 본 경선(당원 70%, 여론 30%)으로까지 그대로 이어져 이준석이 43%, 나경원이 37%를 얻었다. 그렇게 하여 이준석이 6·11 전당대회에서 당대표로 선출됐다. 일반 국민 여론에서 이준석이 나경원을 2배 차이로 이긴 건 비정상적이었다. 이준석은 자신을 정치에 입문시켜준 은인인 박근혜 대통령이 탄핵을 당할 때 탄핵에 동조했다. 그 뒤로도 "탄핵은 정당했다”고 주장했다. 이런 보수 우파의 배신자인 이준석을 민주당 지지자들이 전폭적으로 밀어주었다고 추측된다. 이준석은 당대표를 하는 동안, 줄곧 분란만 일으켰다. 그는 민주당과 싸우기보다는 오로지 ‘내부 총질’만 열심히 해댔다. 대선 기간 내내 이준석은 자기 당 윤석열 후보를 공격하는 데 몰두했다. 이준석은 "당대표는 후보의 부하가 아니다”면서 후보를 지원하기보단 자기 정치에만 몰두했다. 그러면서 이준석은 윤석열 후보 지지자들을 ‘윤핵관’이라는 말로 비난했다. 대통령 선거에서 당원들이 자당 대통령 후보를 지지하는 건 너무나 당연하다. 아니 그게 무슨 잘못이라고 욕하는가? 이준석은 그것도 모자라 두 번씩이나 가출하는 횡포를 부렸다. 이런 언행이 과연 당대표로서 올바른 처신이었는가? 하지만 윤석열 후보는 선거 기간 중이라 참고 참았다. 머리를 숙이고 두 번씩이나 지방으로 이준석을 찾아가 화해했다. 그러나 그 뒤에도 이준석은 당대표라는 자리를 악용해 윤석열 후보 선거운동을 방해했다. 참다못한 국힘 의원들이 올해 1월 의원총회를 열어서, 이준석을 당대표에서 쫓아내려고 했다. 하지만 윤석열 후보는 그 자리에 찾아가 다시 이준석을 품어주었다. 그 뒤에도 이준석은 반성하지 않고 계속 윤 후보를 괴롭혔다. 대선 여론조사에서 윤석열 후보는 이재명 후보보다 보통 5~10% 우세했다. 그런데도 이준석은 "지금 대선을 치르면 5%포인트 차이로 진다”고 윤석열을 깎아내렸다. 그런 식으로 이준석은 어떻게든 자기 당 후보를 죽이려고 힘을 쏟았다. 그 결과, 윤석열 후보는 겨우 0.7% 아슬아슬한 차이로 이겼다. 윤석열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된 순간, 국힘 모든 사람들은 만세를 불렀다. 하지만 이준석만은 매우 당황해 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 표정이 이준석의 진심을 잘 보여주었다. 본래 이준석은 유승민을 대통령으로 밀었다. 2019년 12월에 유튜브 채널 ‘여성신문TV’ 토론에 나와서 "나중에 유승민 대통령 만들고”라고 본심을 밝혔다. 그리고 2021년 3월 6일에는 한 유튜브 방송에서 "윤석열 총장이 대통령 되면 지구를 떠나겠다”고 공언했다. 이준석이 당대표가 되고자 한 목적은 바로 윤석열이 대통령되지 못하게 하려는 데 있었다. 이준석은 당대표가 된 뒤, 자기가 말한 대로 열심히 윤석열 죽이기에 1년 내내 몰두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의 공작은 실패했고, 윤석열은 대통령에 당선됐다. 그 뒤에도 이준석은 계속해서 윤석열 대통령 지지자들을 ‘윤핵관’이라는 말로 비난했다. ‘윤핵관’이란 말로 윤 대통령을 에둘러서 비난한 것이다. 이준석은 윤석열 대통령을 진심으로 미워하는 것이다. 이준석은 자신이 국힘 당대표, 아니 당원이라는 의식조차 없다. 그러니 끝내는 징계를 당하고 당대표에서 쫓겨날 수밖에 없었다. 작년 6월 당대표 경선 과정에서, 이준석은 "이준석의 생각을 대구·경북이 품어줄 수 있다면 다시는 배신과 복수라는 무서운 단어가 오가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준석은 줄곧 보수 우파를 ‘배신’했다. 그래서 참다못한 국힘 윤리위원회는 이준석을 ‘6개월 당원권 정지’로 징계했다. 그러자 이준석은 근래 날마다 온갖 천박한 막말로 대통령과 자기 당에 ‘복수’하고 있다. 당대표를 그만 뒀더라도 자기가 몸담은 당과 대통령을 그렇게 비난해서야 되는가? 이런 더러운 정치 망나니를 왜 국힘은 그냥 보고만 있는가? 국힘은 당장 이준석을 ‘제명’하라. 쓰레기가 정치판을 더 이상 오염시키지 못하게 하라.
-
<구독자 코너> 가뭄과 장마<구독자 코너> 가뭄과 장마 김봉임 옛날에는 가뭄이 들면 소금장수가 웃고 가고 장마가 들면 우산장수가 웃고 간다고 했다. 그 시절에는 모래알같이 많던 사람들에게 전자제품이 없던 시절이라 시골 장터 5일장은 삶의 활력소가 되었을 일이다. 생필품들도 모두 불티나게 팔렸을 일이다. 사람들은 5일장에서 새로운 정보와 문물을 서로 교환하고 문명화 과정도 5일장에서 이루어진 것 같았다. 그렇지만 지금은 5일장이 예전 같지 못하다. 갈수록 인구수가 줄어든 탓인지 물건을 사려sms 사람들보다 물건을 팔려는 사람들이 더 많아 보인다. 시끌벅적해야 할 장터가 한산하고 조용하기만 하다. 에누리로 흥정하는 모습도 찾아보기 힘들다. 나는 가끔씩 무안 5일장을 찾는다. 생필품 등을 저렴한 맛으로 사는 재미가 제법 솔솔하다. 이달 초에도 무안 5일장을 찾아 장화 1켤레를 사 들고 고구마순 파는 곳으로 가보았다. 티브이 뉴스에서는 내일이나 모레면 비가 온다고 했다. 그런데 사람들은 고구마순 다발을 들었다 놓았다 하며 선뜻 사기를 주저했다. 나는 별생각 없이 고구마순 7단을 사 들고 집에 돌아왔다. 다음 날 고구마순을 들고 밭에 나갔다. 밭은 이미 두렁을 만들어 놓은 터였다. 말라버린 마른 흙을 부셔가며 온종일 고구마순을 심었다. 비가 내리기를 학수고대하며 집에 돌아왔다. 혹시 내일 비가 오지 않으면 어떡하나 근심하며 밤새 뜬눈으로 날을 새며 일기예보를 주시했다. 아침은 밝아왔는데 무심하게도 햇빛만 쨍쨍하다. 밤새 열대야까지 가세해 밭에 심어논 연약한 고구마순들은 고스란히 말라 죽고 말았다. 그런 일이 있고 나서도 일주일 동안 비는 내리지 않았다. 우연히 또 티브이를 켜보니 모레는 비가 전국적으로 내린다고 한다. 나는 다시 다음 날 5일장에 들러 이번엔 고구마순 8단을 샀다. 고구마순을 파는 장사 아주머니도 이번엔 틀림없이 비가 내릴 거라고 호언장담을 한다. 그 말에 나도 기분이 좋아지고 신이 나서 비를 맞아가며 고구마순을 심어야겠다고 말장단을 맞춰주고 집에 돌아왔다. 하지만 이번에도 일기예보는 빗나갔고 나는 헛고생만 하고 말았다. 고구마순을 심기에는 점점 시기가 늦어지고 있는데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9백 평 남짓한 밭은 천수답이라서 하늘에서 물을 내려주시지 않으면 도저히 농사를 지울 수가 없다. 그런 관계로 밭 양쪽 모퉁이에 작은 방죽을 두 개나 파놓았다. 하지만 50년 만에 찾아온 가뭄을 견디기 어렵고 다른 작물까지 말라 죽어가고 있었다. 가뭄과 타들어가는 자연의 섭리를 원망해 보기도 하지만 ‘명필은 붓을 가리지 않는다’라는 명언도 있지 않던가. 그러나 부업으로 하는 나의 농사법은 뒤떨어질 수밖에 없다. 나이도 들고 농사 실력도 모자란 나로서는 고달프기만 한 농사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던 어느 날, 마른 장마에 시달리던 이 지역에도 장마다운 비가 내린다는 소식이 들렸다. 듣던 중 참 반가운 이야기였다. 티브이 뉴스를 보면 경기 중부지방은 장맛비로 피해가 속출한다고 하는데, 전남 서남부 지역은 아예 비가 오질 않았다. 오죽하면 태풍이라도 불어닥쳐서 궂은비라도 제발 내렸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한 것이다. 나는 다시 5일장에 갔다. 이번엔 고구마순 10단이나 샀다. 다행히 일기예보대로 비가 내려주었다. 나는 삼세 번 만에 온몸에 비를 맞으며 열심히 고구마순을 심었다. 주황색 황토밭이 고구마순으로 파랗게 덮어져 가고 있다. 하지를 한참이나 넘겨서 심은 고구마가 제대로 영글게 될지 걱정이 앞선다. 비록 올가을 농사 추수가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모쪼록 모두 잘 되어 풍성한 계절을 맞이했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
<지평선> 필기구의 혁신을 일으킨 볼펜<지평선> 필기구의 혁신을 일으킨 볼펜 송태윤(논설위원, 문학박사) 글을 쓰거나 사무를 보면서 가장 많이 쓰이는 필기기구는 볼펜이다. 문방구에 가면 여러 가지 색깔과 다양한 디자인의 볼펜을 볼 수 있다. 이 볼펜(Ball Point Pen)을 처음 만든 사람은 헝가리 출신 라슬로 비로(Ladislao Biro)라는 신문 기자이다. 그는 1938년 윤전기에 사용되는 잉크의 농도가 너무 진해서 펜촉 끝으로 흘러나오는 것을 깨닫고는, 화학자인 동생 게오르크 비로(Georg Biro)의 도움을 받아 금속제 볼 베어링을 끝에 붙여 오늘날의 볼펜을 만들게 되었다고 한다. 비로 형제는 1943년 볼펜에 관한 발명 특허를 취득한 뒤, 그들만의 공장을 만들어 볼펜을 생산하게 된다. 비로 형제의 볼펜은 1945년 당시 9.75달러의 고가였으며 잘 써지지 않는 다는 불평이 많았으나, 계속되는 시행착오 끝에 그들은 볼펜다운 볼펜을 완성했으나 결국 모든 재산을 탕진하게 된다. 그러던 중 프랑스의 한 남작이 이들로부터 특허권을 사겠다는 제안을 한다. 그가 바로 지금의 빅을 만든 마르셀 빅(Marcel Bich)이다. 그는 원래 만년필을 제작하려 하였으나, 볼펜의 무궁무진한 가능성에 매료되어 볼펜 제조 회사를 만들기로 마음먹고 비로 형제의 특허권을 샀다. 마르셀 비슈는 여러 국가에서도 부르기 쉽게 그의 이름(Bich)에서 'h'를 떼어 브랜드 '빅(BIC)’을 탄생시켰다. 1950년 12월, 빅(BIC)은 수레바퀴의 원리를 이용하여 크리스털 볼펜을 개발했다. 잉크 충전 없이 알파벳을 10만 자 가까이 쓸 수 있는 크리스털 볼펜은 29센트의 저렴한 가격으로 하루에 1만 개 이상 팔려나가며 빅(BIC)은 유명하게 되었다. 그 후 1950년, 마르셀 빅은 지금도 생산되는 인기 볼펜인 크리스탈 볼펜을 직접 개발하여 시장에 내놓았고, 이로 인해 빅은 더욱 유명하게 되었다. 이 회사는 설립자 마르셀 빅의 정신을 이어받아, 기능성, 합리적인 가격, 보편성을 브랜드 철학으로 삼고 제품을 판매하고 있다. 지금도 전 세계에서 초당 57자루가 팔릴 만큼 볼펜의 대명사가 되었고, 남미 국가와 영국에서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빅 비로(BIC Biro)펜으로 인해 볼펜을 비로라고 부른다. 1954년 BIC이탈리아가 설립되고, 2년 후에는 BIC브라질, 그 다음 해에는 영국지사가 설립되었다. 빅(BIC)은 볼펜 제품에만 만족하지 않고 1972년부터 볼펜 이외의 제품으로 사업을 확장해 일회용 라이터, 일회용 면도기 등으로 사업을 다각화했다. 1981년에는 스포츠용품 사업에 뛰어들며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하였다. 자, 이젠 볼펜의 기본 구조를 살펴보자. 이름이 말해주듯이 볼펜 끝에는 작은 금속 볼이 들어가 있다. 그 볼이 붓과 같은 역할을 해서 잉크를 종이에 묻혀 글씨를 쓰고 그림을 그릴 수 있게 해준다. 아무리 값이 저렴한 볼펜이라도 펜 끝은 손으로는 깎기 힘든 마이크로 단위로 가공되어 있다. 이 볼이 있는 부분은 언뜻 보기엔 튼튼해 보이지만 실은 섬세해서 세게 누르거나 떨어뜨리면 파손되기 십상이다. 볼펜의 잉크나 구조는 그 종류가 매우 다양하다. 볼펜은 기술적으로 더 이상 발달할 게 없는 한계에 다다른 것 같지만, 지금도 다양한 아이디어로 무장한 볼펜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그 한 예가 가압 볼펜이다. 일반적인 볼펜은 심을 위로 향해서 글씨를 썼을 때 잉크가 잘 나오지 않는다. 심이 위로 향하면 중력이 작용해 잉크는 볼이 있는 쪽으로 나가지 못하고 그 반대로 내려오려고 한다. 그러면 필기하는 도중, 공기를 흡수해버리게 되므로 잉크와 볼펜 사이에 공간이 생기면 글씨를 쓸 수 없게 된다. 그래서 잉크 심의 공기 압력을 높여 항상 잉크가 볼이 있는 쪽을 향해 가도록 만들어진 것이 ‘가압 볼펜’이다. 급히 벽에 대고 메모할 때 이 볼펜을 사용하면 심이 위로 향해 있어도 필기하는 데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우리나라에서 1963년 ‘모나미 153’이 출시되었다. 모나미 창업주 송삼석의 노력에 의해 이루어졌다고 한다. 그가 볼펜 업에 뛰어든 건 1962년으로, 그해 4월 서울에서 열린 국제산업박람회에서 일본 거래처 직원이 갖고 있던 볼펜을 보고 "이거구나”라고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한다. 그해 말 일본회사 ‘오토 볼펜’에서 기술을 전수받았다. 그렇게 유성잉크를 만들었고 1963년 5월 1일 드디어 국민 볼펜 ‘모나미 153’을 시장에 내놓을 수 있었다. 숫자 뒤에 쓰여 있는 0.7은 글씨의 굵기가 0.7mm라는 뜻이다. 이 제품이 히트치자 1974년엔 사명을 모나미로 바꾸었다. ‘모나미’는 프랑스어 ‘Mon Ami(내 친구)’에서 따왔다. 흔히 포켓이나 필기구 통에 담고 다니는 볼펜은 인류에겐 가장 유용한 필기 기구이다. 이를 더 발전시키고 더 질 좋은 필기 기구로 발전시키는 것이 연구자들의 과제이다.
-
<구독자 코너> 나눔의 미덕<구독자 코너> 나눔의 미덕 김봉임 인생이란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것을, 그렇게 아등바등하며 살았는지 모르겠습니다. 제아무리 명품으로 온몸을 휘감고 사는 인생이나 값싼 나일론 옷을 걸치고도 자기만족으로 사는 인생이나 자연으로 돌아갈 때는 다들 빈손으로 돌아가는데 말입니다. 문득 옛날 이야기 한 토막이 생각납니다. 글쎄, 초등학생 때나 읽었을 법한 형제 우애를 다룬 이야기지요. 옛날 어느 마을에 의좋은 형제가 살았다지요. 남달리 서로 우애가 두터운 형제는 한마을에 같이 살며 농사를 지었다지요. 그러던 어느 해, 여느 때처럼 열심히 농사를 지어서 가을 수확을 위해 볏단을 차곡차곡 각자 자기들 논둑 위에 쌓아 두었다는 것이지요. 형은 어느 날 자기 볏단 더미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동생이 장가들어 새살림을 차려서 벼가 부족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게 되었다지요. 그래서 밤새 아우네 볏단 더미에 자기 볏단을 날라 주었다는 거 아닙니까? 그런데 아우네 볏단 더미가 좀처럼 불어나질 않았다는 것이지요. 실은 아우 역시 형님댁은 식구가 많아서 벼가 모자랄 것이라 여기고 밤이면 밤마다 자기 볏단을 형님네 볏단 더미에 옮겨 주었던 것이지요. 그러던 어느 날 휘영청 밝은 달밤에 형제는 서로 볏단을 옮겨 나르다가 논 가운데서 만나게 되었다는 것이지요. 형은 아우에게 주려고, 아우는 형에게 주려고요. 이 얼마나 아름다운 이야기겠습니까? 요즘 같으면 서로 많이 가지겠다고 싸우며 형이 동생을 고발하고 동생이 형을 고발하는 세상입니다. 그러고 보면 독서란 게 참 좋은 것인가 봅니다. 이처럼 아름다운 옛이야기라도 읽노라면 마치 배가 고플 때 하얀 쌀밥에 잘 익은 총각김치를 곁들여서 배가 부르도록 먹었을 때의 행복감 같은 것을 맛볼 수 있으니까요. 그래서 누군가는 "독서란 마음의 양식”이라고 했나 봅니다. 그리고 언제였던가, IMF 시절 나라에서 ‘금 모으기 운동’을 했을 때가 생각납니다. 온 국민들은 저마다 장롱 속에 깊이 잠들어 있는 금을 모아서 나라에 자발적으로 내어놓았었지요. 그 시절 제 아들은 대학을 마치고 대학원을 다니고 있었는데 아들이 느닷없이 집안에 금붙이가 있으면 당장 내놓으라는 것이었어요. 아, 글쎄, ‘금 모으기 운동’에 참여하겠다는 것이었어요. 집안에 금붙이라곤 결혼 때 남편에게서 받은 금반지와 금목걸이가 전부였어요. 아들은 당시 대학에서 조교를 하고 있었는데 자기가 솔선수범하지 않으면 어떻게 학부생 후배들이 금 모으기 운동에 동참하겠느냐는 것이었어요. 저는 하릴없이 결혼예물을 아들에게 주었답니다. 그러자 아들은 한 달 후면 얼마간의 금값이 어머니 통장에 들어올 거라며, 제 결혼예물을 들고 학교로 뛰어가더라고요. 지금 생각해보면 죽을 때 어차피 빈손으로 가는 것인데, 나눔의 의미가 있을 때 동참하기를 잘했다고 생각합니다. 아들 덕분에 저도 좋은 일 한 번 해본 것이지요. 올 3월 어느 날이었어요. 제가 운영하는 구내서점에 늦은 시간에 한 남학생이 전공 책을 사러 들어왔어요. 학생은 두 권의 책을 골라 들고 와 계산을 해달라며 카드를 내미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카드가 잔액 부족으로 뜨는 거예요. 학생은 얼른 다른 카드를 꺼내 주었지만, 그 카드도 역시 잔액 부족으로 나타나는 것이었어요. 학생은 고개를 갸우뚱하며 지갑 속을 열어 보았지만, 지폐라고는 천 원짜리 몇 장이 전부였습니다. 그 학생은 책 겉장을 만지작거리다가 하는 수 없이 책을 제자리에 가져다 놓고 죄송하다고 인사를 하며 서점 문을 나서는 것이었어요. 계단을 총총걸음으로 걸어서 건물을 나서는 학생의 뒷모습을 바라보면서 저도 모르게 가슴이 저며왔습니다. 그 옛날 저는 광주서 학교 다니면서 자취생활을 했었답니다. 하루는 돈이 없어서 제때 교과서를 사지 못해서 수업 중에 담임 선생님께 혼났어요. 선생님이 들고 있던 교과서로 등짝을 얻어맞고 자취방에 돌아온 저는 숙제도 할 겨를이 없이 잔돈 몇 푼을 손에 쥐어 들고 광주 계림동 헌책방들을 샅샅이 뒤졌었지요. 전공 책을 사지 못한 채 그냥 돌아간 학생의 모습이 몇 날 며칠 동안 제 머리에서 떠나질 않는 것이었어요. 그 학생이 다시 서점을 찾아주기를 간절히 바랐지만, 결국 그 학생을 다시 볼 수는 없었습니다. 지난달 저는 학생과를 방문했습니다. 혹시라도 코로나 19의 여파로 가정형편이 어려워진 학생들이 있으면 서로 어려울 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어주었으면 좋겠다며, 장학 담당 선생님께 일천만 원을 드렸습니다. 학생과 현관문을 나서면서 제 마음은 한결 가볍고 편안했습니다. 나눔의 미덕이 이런 것인가 보다, 고 생각해보았습니다. 제게도 큰 기쁨이었고 잊지 못할 감동이었습니다.
-
<IT 이야기> 21세기 ICBM<IT 이야기> 21세기 ICBM 金在珥(논설위원, 공학박사) ICBM하면 대륙간탄도미사일(Inter-Continental Ballistic Missile)이 떠오를 것이다. 핵탄두를 장착한 사거리가 6,400km 이상인 미사일로서 다른 대륙에 있는 적의 시설을 공격할 수 있다는 의미로 이런 이름이 붙었다. 이러한 적의 군사적·경제적 기반을 공격하는 전략무기체제의 하나인 대륙간탄도미사일은 ‘20세기 ICBM’이라고 한다. 이에 반해 ‘21세기 ICBM’은 사물인터넷(Internet of Things, IoT), 클라우드(Cloud), 빅데이터(Big Data), 모바일(Mobile)의 머리글자를 모은 신조어로서의 ICBM이다. 첫째, ‘사물인터넷’은 스마트폰, PC를 넘어 자동차, 냉장고, 세탁기, 시계 등 모든 사물을 유·무선 통신망으로 연결하고 스스로 데이터를 주고받고 이를 처리해 자동으로 구동하는 것이 가능해진다. 즉 센서에서 발생하는 실시간 데이터를 사람의 개입 없이 여러 사물들끼리 인터넷으로 주고받는 환경이다. 누구나 외출할 때 전등을 잘 껐는지 또는 가스 불은 잘 잠갔는지 불안할 때가 있었을 것이다. 만일 IoT가 탑재된 가전제품을 사용하고 있다면 집에 돌아가서 확인하는 번거로움을 덜고 휴대하고 있는 스마트폰을 조작하여 간단히 조치할 수 있다. 둘째, ‘클라우드’는 인터넷상에 마련한 개인용 서버에 각종 문서·사진·음악 따위의 파일 및 정보를 저장하여 두는 시스템이다. 즉 정보 기술업계에서 서비스 사업자의 서버를 이르는 말로서 컴퓨팅 서비스 사업자의 서버를 구름 모양으로 표시하는 관행에 따른 명칭이다. 클라우드(cloud)는 ‘구름’을 뜻하는데 컴퓨터 파일을 저장할 때 작업한 컴퓨터 내부에 있는 공간이 아니라 인터넷을 통하여 중앙 컴퓨터에 저장할 수 있는데 이 공간을 클라우드라고 부른다. 클라우드를 이용하면 작업한 컴퓨터에서만 자료를 불러올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마치 여러 장소에서 동일한 구름을 관찰할 수 있듯이, 언제 어디서나 필요한 자료를 불러올 수 있다. 이와 같은 클라우드 기술이 발전하기 전까지는 작업한 컴퓨터에만 파일을 저장하거나 저장 매체를 따로 이용했기 때문에 마치 생활하고 있는 '땅'에 저장하는 것과 같았다. 저장한 것을 보기 위해서는 그곳으로 가야만 볼 수 있었지만 이제는 높은 구름에 저장하는 클라우드의 시대가 열려서 인터넷만 가능하다면 언제 어디서든지 찾아볼 수 있는 구름인 것이다. 셋째, ‘빅데이터’는 기존의 데이터베이스로는 수집·저장·분석 따위를 수행하기가 어려울 만큼 방대한 양의 데이터를 말한다. 즉 복잡하고 다양한 대규모 데이터 세트 자체는 물론 이 데이터 세트로부터 정보를 추출하고 결과를 분석하여 더 큰 가치를 창출하는 기술을 뜻한다. 이처럼 빅데이터는 대량(high-volume), 초고속(high-velocity), 고다양성(high-variety), 고가변성(high-variability)의 특성을 지니며 고정확성(high-veracity)을 확보해야 하는 정보 자산이다. 활용 분야는 교통 및 기상정보 시스템, 뉴스, 마케팅 등 많은 분야에 다양하게 활용되고 있다. 그 장점은 첫째로 대상에 대한 현황을 정확히 파악할 수 있다는 점이다. 자신을 알고, 상대를 알면 백전백승이라는 말이 있듯이 빅데이터는 현재 상황을 파악하는 데에 있어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 두 번째는 단순히 상황을 파악하는 것뿐만 아니라 이를 통해 해결책을 제시해 준다는 장점이 있다. 때문에 상황에 따라 필요한 액션을 취할 수 있고, 결과가 좋지 않더라도 빠르게 개선할 수 있다. 셋째로는 기업들이 새로운 비즈니스의 기회를 발견하고 새로운 서비스를 창출할 수 있는 기회가 마련될 수 있다는 점을 들 수 있겠다. 따라서 각국 정부와 글로벌 기업들은 빅데이터가 미래 경쟁력을 좌우할 것으로 보고 관련 투자를 늘리고 있다. 넷째, ‘모바일’은 정보 통신에서 이동성을 가진 것을 총칭하여 이르는 말이다. 즉 ‘움직일 수 있는’이라는 뜻으로, 이동성을 가진 것들을 통틀어 이르는 말로서 모바일 뱅킹·모바일 앱·모바일 폰 등의 용어가 있으며 보통은 휴대전화를 의미한다. 한 예로써, 2022년 7월부터 전국적으로 실시되는 모바일 신분증은 기존에 지갑에 넣어 다니는 운전면허증을 모바일로 저장하여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는 기능이다. 모바일 신분증의 장점은 개인이 자신의 정보를 소유하고 이용할 수 있는 결정권을 가지고 개인정보를 제공할 때 필요한 정보만 제공할 수 있다는 점이다. 기존 신분증의 경우는 모든 정보가 한 번에 노출되지만 모바일 신분증은 필요한 정보만 제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모바일기기 분실의 경우에도 홈페이지의 분실신고를 통해 즉시 피해를 예방할 수 있다. 이와같이 첨단 ICT(Information & Communication Technology)기술의 핵심인 ‘21세기 ICBM’은 이미 우리의 일상에 깊숙하게 들어와 아주 빠른 속도로 확장되고 있다. 아울러 우리 주변의 환경이 빛의 속도로 변하고 있으며 인류가 존재하는 한 그 끝은 없을 것이다. 경외심으로 회피하지 말고 적극적으로 순응함이 지혜로운 전략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