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 문화 뉴스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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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연재 : 이야기 문학] Ⅲ. 창작 이야기(3)[기획 연재 : 이야기 문학] Ⅲ. 창작 이야기(3) 조수웅 문학박사 그런 이유로 상상력은 작가 정신과 직접 관련이 있는 것으로 이해되고 있다. 글쓰기는 상상력을 통해 현실 너머의 세계를 구현해 준다. 상상력의 빈곤은 작가 정신의 부재에서 생기거나 작가 정신의 부재를 초래할 뿐이다. 누구나 생각하고 느낀 것 말고 다른 것이 나타나 있지 않다면 누가 그 작품을 읽으려 하겠는가? 상상력은 겉으로 드러나지 않은 세계를 미루어 그리게 함으로, 구체적이어야 한다. 글쓰기는 현실을 반영하는 것이지만 그렇다고 현실을 그대로 재현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현실의 틈을 메꾸고 그것의 본질을 형상화하는 상상력이야말로 글을 쓸 때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요소이다. 그래서 글쓰기를 위해서는 겉으로 드러나 있지 않은 것을 미루어 그릴 수 있는 힘을 길러야 한다. 사실을 그대로 재현하는 것은 상상력이 아니라 기억이다. 그렇다고 해서 사실이나 경험 없이 상상력이 따로 존재할 수 또한 없다. 상상력을 촉발시키는 사물이나 현상을 전제하지 않고 상상력을 이야기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하나의 사실 혹은 경험으로부터 이미지를 창조해내는 정신적 능력을 가지고 있으며, 상상력은 그 경험의 범주에서 나오는 것이다. 경험을 발판으로 유추한 상상이 바로 문학적 상상력 즉 창조적인 생각에 해당된다. (4) 충분한 독서 또 충분한 독서가 필요하다. 창작을 하기 위해, 좋은 책을 많이 읽는 것은 관찰과 상상력 못지않게 중요하다. 어쩌면 관찰과 상상력을 키우기 위한 방편으로 독서만한 것이 없다고 해야 할 것이다. 독서는 감각적인 매체인 영화관람 등과는 달라서 집중적이고도 활발한 정신활동이 요구되기 때문이다. 사유(思惟) 없이 독서는 불가능하다. 따라서 독서를 많이 할수록 간접 경험(아나톨 프랑스는, 내가 인생을 안 것은 사람과 접촉한 결과가 아니라 책과 접촉한 결과라고 말한다.)이 늘고 정신적으로 크게 성장하게 된다. 또 실제로 창작을 위한 글감 찾기 측면에서도 풍부한 독서는 필수다. 따라서 독서는 창작의 선행 조건이면서 글의 질과 수준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이다.(작가와 대화하듯 작품을 읽으면서 새로운 맥락에서 해석하기, 작품의 비판적 수용에 이어 작품을 자신의 관점에서 재구성하기, 내용과 형식ㆍ표현의 요소를 바꾸어 재창조하기, 작품에 대한 비평적 글쓰기: 우한용 외<문학>) 2) 무엇을 (1) 발상 창작은 글감이나 제목을 주고 ‘~에 대해 써라’는 식의 글이 아니고 작가가 쓰고 싶어서, 스스로의 생각이나 느낌을 표현하고 전달하는 글이다. 그러므로 내면의 충동에서 나온 것을 그대로 쓰면 된다. 이때 발상이 중요하다. 모든 창작품은 반드시 발상에서 시작되기 때문이다. 씨앗이 좋아야 튼튼한 나무로 자랄 수 있듯이, 발상이 좋아야 튼실한 글이 될 것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발상이란, 이것이 작품이 되지 않을까 하는 아이디어나 단서를 말한다. 책을 읽다가 문득 무언가 떠오르기도 하고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는 도중에 이걸 써봐야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여행에서 겪은 어떤 일이 모티브를 제공하기도 하고, 신문 한 귀퉁이에서 읽은 어떤 기사가 그런 역할을 하기도 한다. 영화를 보는 중에, 혹은 음악을 듣거나 텔레비전을 보는 중에 그럴 듯한 아이디어가 떠오를 때도 있다. 화장실에서 만원 버스 속에서, 심지어는 꿈에서 깨어난 직후에 그런 단서가 떠오를 수도 있다. 요컨대, 우리의 모든 시간 속에서 우리가 겪는 모든 일들을 통해 창작의 씨앗을 찾을 수 있는 것이다. 문제는 발상을 어떻게 하느냐가 아니라 자신의 삶 속에서 특별한 것을 찾아내어 의미를 부여하는 눈을 갖는 일이다. 주변에서 보고 느낀 것이 다 글이 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그 속에서 착상의 단서를 잡아내는 일이다. 그러자면 늘 호기심과 관심을 유지해야 한다. 거미줄을 친 거미만이 잠자리를 잡는다. 많은 잠자리가 공중에 날아다니지만 아무 거미나 다 잠자리를 잡는 건 아니다. 거미줄을 친 거미만 잠자리를 잡는다. 깊은 관심과 호기심을 가지고 사물과 현상을 바라보는 습관을 가진 사람만이 좋은 글의 씨앗을 찾을 수 있다. 소설가 이청준은 그것을 일종의 방전 현상으로 설명한 적이 있다. 작가가 체험이라든가 독서, 대화 등을 통해 대전(帶電) 현상을 유지하고 있을 때 주변의 어떤 삶의 현상들이 충돌을 하고 방전을 일으킨다는 것이다. 아이디어는 영감처럼 떠오를 때가 많다. 우리의 머리 속으로는 수 없이 많은 생각들이 매우 빠르게 스쳐 지나간다. 스쳐 지나가는 생각들을 붙잡아 두지 않으면 내 것이라고 말할 수 없다. 영감처럼 떠오른 것들은 또 그만큼 쉽게 잊혀지기도 한다. 뭔가 그럴 듯한 생각이 떠올라서 흡족해 했다가 나중에 그것을 되살려 보려고 해도 도무지 기억이 나지 않아서 속상했던 경험이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착상을 소중하게 다루어야 한다. 평소 아이디어나 자료를 메모하는 습관을 기르는 것이 좋다. 대부분의 작가들은 언제든지 메모를 할 수 있도록 준비해 가지고 다닌다. (2) 재료 무엇을 쓸 것인가? 그 무엇이란 소재일 수도 있고 주제 일 수도 있다. 어떤 경우든 발상이 떠올랐다는 것은 바로 그 ‘무엇’을 확보했다는 의미일 수 있다. 창작의 바탕이 되는 재료가 소재이고 그 소재는 사물, 현상, 사건 등 무한하다. 주제는 소재를 통해 독자에게 전달하려는 중심 생각이다. 일단 소재가 있어야 창작을 할 수 있지만, 그것을 통해 무슨 말을 할 것인가를 결정해야 비로소 창작은 시작된다. 이때 작가의 세계관이 주제를 판가름 하는 기준이 되고, 글의 내용도 결정한다. 그렇다고 작가는 사상가여야 한다는 말은 아니다. 작가가 갖고 있는 세계관을 구체적인 사건이나 이야기 속에 녹여(내면화 시켜) 독자로 하여금 스스로 그것을 이해하도록 해야 한다. 또 소재는 하나라도 주제는 여럿일 수 있다. 즉, 같은 소재를 갖고도 작가의 의식과 의도에 따라 전혀 다른 주제를 드러낼 수 있다. 결국은 주제에 따라 제재가 달라질 수도 있고, 제재에 따라 주제가 바꿔질 수도 있다. (3) 주제 정하기 이제 주제 정하기 문제를 생각해보자. 옛날 폐르샤의 마샬 왕이 늙고 병들어 죽을 임시에 만조백관을 불러 모아 ‘인생이 뭔가’를 알아오도록 명하였다. 박학다식한 신하들만 모여, 몇 날 며칠을 연구한 끝에 50권의 책을 만들어 왕께 바치자, 왕은 화를 버럭 내며 늙고 병든 내가 어찌 50권의 책을 읽을 수 있겠냐고 나물했다고 한다. 그러자 신하들은 논의를 거듭한 끝에 단 한권의 책으로 압축해서 왕께 바쳤다고 한다. 하지만 왕은 또다시 화를 내며 비록 한 권일망정, 어찌 다 읽을 수 있겠냐고 호통을 치자, 마침내 신하들은 ‘인생이란 태어나서 고생하다 죽는 것이다.’는 한 줄로 줄여왔다고 한다. 그때서야 왕은 고개를 끄덕이며 반기었다고 한다. 주제는 잘 아는 것 중 쉽고 작게 정해야한다는 단적 예이다. 그 밖에도 주제는 독창적이어야 한다. 창작의 생명은 참신성이다. 독특한 소재가 창작의 좋은 재료인 것은 틀림없지만, 중요한 것은 독특한 소재에서 찾아낸 참신한 주제다. 따라서 소재가 없어서 창작을 못한다는 말은 성립될 수 없다. 가까운 곳에 소재는 얼마든지 있다. 문제는 독창적인 소재가 아니라 독창적인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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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 명구 100선> 人之生也直, 罔之生也幸而免<논어 명구 100선> 人之生也直, 罔之生也幸而免 子曰: "人之生也直, 罔之生也幸而免." (자왈: "인지생야직, 망지생야행이면.")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사람이 살아가는 힘은 정직이다. 그것이 없이 살아가는 것은 요행히 죽음을 면한 것이다." 1) 人之生也直(인지생야직): 사람의 삶은 정직하다. 정직이 사람의 삶을 지탱하는 힘이라는 뜻이다. • 之(지): 주어와 술어 사이에 쓰여 주술구조로 하여금 독립성을 잃고 명사구 또는 절이 되게 하는 구조조사. • 也(야): 음절을 조정하고 어기를 고르는 어기조사. 2) 罔之生也幸而免(망지생야행이면): 그것이 없이 사는 것은 요행히 (죽음을) 면한 것이다. • 罔(망): 없다. • 之(지): 直(직)을 가리키는 인칭대사. • 也(야): 음절을 조정하고 어기를 고르는 어기조사. • 幸而(행이): 요행히. • 而(이): 부사 접미사. 然(연)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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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연재} Ⅲ. 창작하기(3){기획 연재} Ⅲ. 창작하기(3) 조수웅 문학박사 <지난 38호에 이어서> 3. 창작하기 사랑하는 청춘남녀가 헤어져 있다가 오랜만에 만났다. 그때 ‘남자가 너 보고 싶은 마음에 내 가슴이 다 타내려갔어!’라고 말하자, 여자가 부엌으로 가서 물 한 바가지를 들고 와 남자 가슴에 끼얹고 나서 ‘이제 괜찮니?’ 하였다. 왜 이 청춘남녀는 동문서답을 했을 까? 의사소통의 생명은, 사실이나 정보 전달을 목적으로 하는 글에서는 객관성이나 정확성이고, 어떤 사건이나 현상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내세우는 글에서는 논리와 설득이다. 그러나 문예 창작은 이와는 달리 감동을 주거나 공감을 얻기 위해 정서에 호소한 글이다. 따라서 돌려 말하거나, 낯설게 말하고, 그 효과를 높이기 위해 비유나 상징 등의 기법을 활용한다. 다시 말해 독자의 정서를 환기시켜 심미적 가치를 일깨워 준다. 다음의 ⒶⒷⒸ를 비교해보면 그 차이를 실감할 수 있다. Ⓐ 창작이란 (처음으로 만들어 낸다는 뜻으로) 예술 작품을 독창적으로 만들거나 표현하는 일, 또는 그 작품을 말한다. Ⓑ 사람은 죽는다. 소크라테스는 사람이다. 그러므로 소크라테스는 죽는다. Ⓒ 누나 오늘은 하얀 옷 입고 밖에는 나가지마. 하늘이 너무 파래. 지나가던 새가 꼭 찍으면, 누나가 입고 간 하얀 옷에 파란 하늘 물 얼룩이 들라. 1) 창작 하려면 (1) 치열한 정신활동 시인이나 소설가는 창작에 필요한 남다른 기교가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문학 작품을 다만 창작 기술의 소산으로 보면 곤란하다. 단적으로 말하면, 창작은 기교에 앞서 작가 정신이 더 중요하다. 왜냐하면 문학 작품이란 인간탐구의 결과물이고 나아가 인간의 정신을 표현하는 한 형태로써 세계를 해석하는 인식틀(conceptional framework)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또 다른 어느 예술보다도 가치 지향적 성격이 강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창작에는 기교를 익히는 일보다 치열한 정신 활동을 몸에 익히는 일이 더 우선이다. (2) 인상적인 관찰 다음으로 인상적인 관찰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가 본 사물이나 현상에서 지배적 인상을 찾으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문학 작품을 창작한다는 것은 우리 의식 속으로 들어온 사물이나 현상을 우리의 세계관이나 거름망을 통해 나름의 질서와 모양을 가진 구조물로 재생한다는 것이다. 그러려면 무엇보다 건성으로 보거나 대충 보아 넘기지 말고, 보통 사람들이 미처 보지 못한 것까지 꼼꼼하게 관찰해야 한다는 말이다. 이때 꼼꼼하게 관찰하느라 다른 것과의 연관성 즉, 전체적인 구조를 놓치지 않도록 유의해야 한다. (무등산 관찰 후 글짓기에서 산골짜기에 그득 쌓인 쓰레기 이야기만 늘어놓은 경우)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 보려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아들, 아버지, 어머니의 각각 다른 길 안내 방식) 또 보이는 것과 보는 것은 다르다. 사람은 눈에 들어오는 모든 것을 다 보는 것은 아니다. 보인다는 것은 망막에 비쳐 스쳐지나가는 것이지만, 본다는 것은 의식이 동반된 정신활동으로 보이는 것 중에서 취사선택한다는 것이다. 그 때 무엇이 보이느냐가 아니라 무엇을 보느냐가 중요하다. (3) 풍부한 상상력 그 다음으로 상상력이 풍부해야 한다. 풍부한 상상력은 인간의 문화를 진보시켜온 원동력일 뿐 아니라 문학과 예술 활동의 원천이기도하다. 상상력이란 사물의 본질, 혹은 현상의 배후를 꿰뚫어 보는 정신의 힘이다. 경험과 생각과 감정이 인간 정신 속에 용해되어 조직화될 때 상상력이 생긴다. 그 힘이 눈에 보이지 않은 것을 보게 하고, 드러나지 않은 것을 드러나게 한다. 그런 이유로 상상력은 작가 정신과 직접 관련이 있는 것으로 이해되고 있다. 글쓰기는 상상력을 통해 현실 너머의 세계를 구현해 준다. 상상력의 빈곤은 작가 정신의 부재에서 생기거나 작가 정신의 부재를 초래할 뿐이다. 누구나 생각하고 느낀 것 말고 다른 것이 나타나 있지 않다면 누가 그 작품을 읽으려 하겠는가? 상상력은 겉으로 드러나지 않은 세계를 미루어 그리게 함으로, 구체적이어야 한다. 글쓰기는 현실을 반영하는 것이지만 그렇다고 현실을 그대로 재현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현실의 틈을 메꾸고 그것의 본질을 형상화하는 상상력이야말로 글을 쓸 때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요소이다. 그래서 글쓰기를 위해서는 겉으로 드러나 있지 않은 것을 미루어 그릴 수 있는 힘을 길러야 한다. 사실을 그대로 재현하는 것은 상상력이 아니라 기억이다. 그렇다고 해서 사실이나 경험 없이 상상력이 따로 존재할 수 또한 없다. 상상력을 촉발시키는 사물이나 현상을 전제하지 않고 상상력을 이야기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하나의 사실 혹은 경험으로부터 이미지를 창조해내는 정신적 능력을 가지고 있으며, 상상력은 그 경험의 범주에서 나오는 것이다. 경험을 발판으로 유추한 상상이 바로 문학적 상상력 즉 창조적인 생각에 해당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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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연재 : 이야기 문학] Ⅲ. 창작 이야기(3)[기획 연재 : 이야기 문학] Ⅲ. 창작 이야기(3) 조수웅 문학박사 (지난 36호에 이어서) ③토의(*토론은 설득적 논쟁의 수단이면서 합리적인 의사 결정 수단이 된다.) 토의란 두 사람 이상의 참여자들이 지식이나 정보, 사실, 의견 등의 교환을 통하여 문제 해결을 시도하는 집단적이고 협동적인 화법의 한 형태이다. 토의가 협동적 의사소통이기 때문에 참여자들은 집단 사고의 과정을 통하여 공동의 이익과 발전에 기여하겠다는 의식을 지녀야 한다. 토의의 실제 심포지엄의 정의- 토의 문제에 대한 전문적 지식을 갖춘 몇 사람이 등장하고 청중이 지켜본다는 점에서, 패널토의 방식과 비슷하나 전문가들 간의 의사 교환 없이 자신의 의견이나 정보를 간단히 발표한 뒤 청중과 질의 응답한다는 점에서 다르다. 심포지엄의 단계- 심포지엄에서 각 발표자는 서로 다른 측면이나 관점에서 이야기해야 한다. 예컨대, 기조 발제자, 학교측의 입장, 학생측의 입장, 학부모의 입장을 대표하는 발제자. 포럼의 정의- 서로 상충되는 입장을 대표하는 토의자들이 한 사람씩 발표하고, 청중과 토의자가 서로 질의 응답하여 그 문제에 대한 인식을 넓히고 해결책을 모색한다. 포럼의 단계와 참여자의 역할- 사회자 역할이 중요하다.(남의 이야기 잘 듣고 정리, 질문 유도, 매끄러운 진행, 첨예한 대립 시는 서면 질의 방식 활용, 청중 대신 질의) 회의(정책적 강제성) 공동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두 사람 이상의 참여자들이 모여서 안을 결의(의결)하는 과정이다. 심포지엄은 정보 획득의 의미가 강하고, 포럼은 방향 모색의 의미가 강한데 반해, 회의의 의결 사항은 정책적 강제성을 띠게 된다. 원탁 토의 10명 안팎의 소규모 집단이 원탁(네모진 테이블이라도 상관없다.)을 에워싸고 윗자리 아랫자리 구별 없이 자유롭게 상호 관심사에 대하여 의견을 나누는 토의의 한 형태이다. 참가자가 토의 기술에 익숙하지 않으면 산만하기 쉽다. 패널 토의 배심원(panel) 4-6명이 모여 사회자의 사회로 집단에 관계되는 공동 문제에 대하여 각각의 입장에서 토의하는 것으로서 이를 배심토의라고도 한다. 이것은 특정 문제를 해결하거나 해명하려는 목적으로 청중 앞에서 배심원들이 각각의 지식․견문․정보를 발표하고 여러 가지 의견을 제시하여 협동적으로 사고하는 것이다. 방송사 심야 토론은 논박 위주고 패널토의는 의견 조정 위주다. 세미나, 콜로퀴엄, 브레인스토밍 세미나(seminar)는 집단적인 공부와 탐구가 이루어지는 토의 방식이다. 학술적 주제를 다루며 청중이나 지정 토의자와의 질의 응답이 갖은 비중이 훨씬 크다. 콜로퀴엄(colloquium)은 세미나와 유사하나 권위 있는 전문가를 초빙하여 다른 사람들의 미숙한 의견을 바로 잡아주는 점에서 다르다. 브레인스토밍(brainstorming)은 아이디어를 모으는 방법이다. 아이디어에 대한 평가는 유보하고 다양하고 많은 아이디어를 모으는 것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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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 명구 100선> 子曰 : 朝聞道, 夕死可矣(자왈 : 조문도, 석사가의)<논어 명구 100선> 子曰 : 朝聞道, 夕死可矣. (자왈 : 조문도, 석사가의)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아침에 도를 깨친다면 저녁에 죽어도 괜찮다.” 1) 朝聞道(조문도): 아침에 도를 깨치다. • 朝(조): 명사가 부사어로 쓰인 예이다. 시간을 표시하는 명사가 부사어로 쓰이는 경우가 많음은 고대 중국어와 현대 중국어가 마찬가지지만 고대 중국어에 있어서는 시간을 표시하는 명사뿐만 아니라 일반 명사까지도 전치사 없이 단독으로 부사어로 쓰이는 경우가 있었다. • 聞(문): 알다, 깨치다. 聞義不能徙.(문의불능사); 어떻게 하는 것이 의로운지를 알면서도 실천에 옮기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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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 명구 100선><논어 명구 100선> 남악신문 36호 子曰: 主忠信, 毋友不如己者, 過則勿憚改. (자왈: 주충신, 무우불여기자, 과즉물탄개.)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충성과 신의를 주로 하고 자기만 못한 자를 벗하지 말며 과오가 생기면 서슴없이 고쳐라.” 1) 毋友(무우): 친구로 삼지 말라. • 毋(무): 금지를 표시하는 부사. • 友(우): 명사가 의동사로 전용된 것. 2) 勿憚改(물탄개): 고치기를 꺼리지 말라. • 勿(물): 금지를 표시하는 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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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연재 : 이야기 문학] Ⅲ. 창작 이야기(3)[기획 연재 : 이야기 문학] Ⅲ. 창작 이야기(3) 조수웅 문학박사 (지난 35호에 이어서) (8) 구술성과 문자성 우리가 구술성(orality)과 문자성(literacy)의 차이에 대해 이해하기 시작한 것은 전자 미디어와 인쇄 매체를 대조시킴으로써 이다. 전자시대는 전화, 라디오, 텔레비전과 같은 매체에 의해 형성되었지만, 그 존립을 문자와 인쇄에 두고 있다는 점에서 ‘2차적 구술성’의 시대로 불린다. 「구술문화와 문자문화」를 저술한 월터 J. 옹은 구술성과 문자성을 문자의 유무에 따라 구분하던 이제까지의 연구를 넘어서, 근본적 ‘정신구조’의 차이에 주목한다. 최근 지나친 문자문화 중심 때문에 구술문화를 일종의 변종이나 부수적인 것으로 취급해왔음을 지적한다. 물론 1차적인 구술언어를 완전히 경험할 수는 없지만, 오늘날에도 언어는 기본적으로 말하고 듣는 언어이며 비록 쓰여진 텍스트라 하더라도 소리의 세계에 결부되지 않고서는 의미를 지닐 수 없다고 그는 말한다. 그러면서 우리 언어 속에 뿌리 깊게 남아있는 구술성의 흔적들과 그 문화적 가치를 재발굴해 내는 그의 작업은 자못 흥미롭다.(시낭송, 참요, 민요, 타령, 상여소리, 점쟁이 주술/ 노래방 가사, 계산기와 주산, 할머니의 돈 계산, 개미와 장마/BC150년 채륜의 종이 발견과 19세기 인쇄술의 발달) 여기서 덧붙여 옹은 새로운 문화형태인 전자문화가 그에 앞선 구술문화나 문자문화와 어떻게 접목되는가를 살핌으로써 현대의 문화현상들을 새롭게 바라볼 수 있는 시각을 제공한다. 2차적인 구술성은 사람들로 하여금 그 속에 참여한다는 신비성을 갖게 하며, 고유한 감각을 키우고, 현재적 순간을 중히 여기며, 정형어구를 사용하는 등 1차적인 구술성과 많은 공통점을 가진다. 그러나 전자미디어에 의해 만들어지는 집단의식이나 집단의 규모, 성격 등은 1차적인 구술성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방대하고 적지 않은 차이를 지닌다. 글쓰기 논의에서 구술성을 끄집어 낸 것은 말과 글이 서로 별개의 것이 아니라 오랜 역사 속에서 함께 형성되어 왔음을 인식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고, 문자의 역할을 이미지가 상당 부분 대신하게 된 전자시대에 접어들면서 오히려 구술성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가 더욱 요청되고 있기 때문이다. (9) 화법의 실제 대화 상황에서 말을 할 때는 메시지와 초메시지(그것에 해당하는 말을 작성하지 않았어도 상황 등의 도움을 받아 전달되는 것)가 동시에 전달된다. 그런데 메시지보다 초메시지에 초점이 있을 경우, 이를 간접 화법(indirect speech)이라 한다. ①대화 대화란 두 사람 이상이 모여서 서로 생각과 의견, 감정을 말로 주고받는 활동이다. 우리는 대화를 통해 정보를 주고받기도 하고, 내 의견에 따르도록 설득을 하기도 한다. 때로는 별다른 정보의 전달 없이 서로 함께 있다는 것을 즐기기 위해 대화를 주고받기도 한다. 이런 친교적인 대화는 원만한 인간관계를 위해 꼭 필요한 기능이다. 여기서 주의할 점은 대화마다 이들 기능이 서로 배타적으로 존재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여러 기능이 동시에 한꺼번에 존재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어떤 대화가 ‘친교적 기능’을 수행한다고 하는 것은, 그 속에 존재하는 여러 기능들 중에서 특히 친교적 기능이 다른 기능보다 우월하게 드러난다는 것을 의미한다. ②연설 연설의 일상성과 중요성- 여러 사람들을 대상으로 말을 통해 어떤 정보를 전달하거나 자신의 주장을 펼치거나 사람들을 즐겁게 하려는 공적인 의사소통 행위이다. 따라서 여러 사람을 대상으로 이야기하는 행위의 대부분이 일종의 연설 행위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여러 사람을 대상으로 자신의 생각을 드러낼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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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연재 : 이야기문학> Ⅲ. 창작 이야기(3)<기획 연재 : 이야기문학> Ⅲ. 창작 이야기(3) 조수웅 문학박사 (지난 34호에 이어서) (5) 평가하기(합평회) 평가 활동은 초고를 필자 자신이 스스로 검토하거나 동료들과 돌려 읽고 고쳐야 할 점을 발견하는 단계로 고쳐 쓰기 단계에 도움을 주는 피드백 성격을 지닌다. 특히 사회-인지적 관점에서 보면 글쓰기란 사회, 문화적 상황 속에서 발생한 개인의 글쓰기 행위이고, 필자는 문제 해결자임으로, 글쓰기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협동적 상호작용을 하게 된다. 이는 예상독자를 예민하게 의식하면서 글을 동료와 돌려 읽고 평가 반응을 교환함으로써 작문 능력 신장에 많은 도움을 준다. 즉, 남의 초고를 검토하면서 자기 글쓰기의 반면교사로 삼는다는 점이 매우 유용하다. 하지만 자칫 등급화(Grading)하여 상호 비방하지 않도록 유의해야 한다.(推敲의 속 의미를 분석해보면 평가하기와 같다. 詩僧 賈島 閑居隣竝少가까운 이웃이적어한가로운데草徑入荒園풀숲의길은황량한들판으로들어가는데鳥宿池邊樹僧堆月下門) (6) 고쳐 쓰기 고쳐 쓰기는 평가활동의 결과를 바탕으로 하여 수행된다. 동료의 평가 반응이나 자기 스스로 검토한 내용(고쳐 써야할 점)을 명료하게 의식하여, 부족한 내용을 보완하고 잘못된 내용을 바로 잡아야 한다. 그래서 고쳐 쓰기 단계는 필요에 따라 지속적이면서도 반복적으로 수행하는 것이 좋다. 이 때 유의 할 점은 거시적 관점부터 시작하라는 것이다. 고쳐 쓰기라고 하면 철자법이나 띄어쓰기를 떠올리는데, 그러지 말고 글 전체가 주제를 꿰뚫고 있는가를 맨 먼저 검토한 다음, 글의 앞부분, 중간부분, 끝부분이 균형을 이루었는지를 살피고 나서 문단→ 문장→ 어휘 순으로 고쳐 나가야 한다. (7) 매체 변화에 따른 전략 1990년 중반부터 본격적으로 보급된 개인용 컴퓨터가 지금은 우리의 삶과 글쓰기에 절대적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제 컴퓨터 없이는 글을 한 줄도 못 쓰는 젊은이들이 참 많다. 다시 말해 컴퓨터가 우리의 삶과 글쓰기, 독서 경향 등에 커다란 변화를 가져오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컴퓨터에 의해 획일화되고 있는 우리의 삶을 보면서, 기술의 진보가 반드시 사회와 문화의 근본적인 진보를 가져다주는 것은 아님을 실감할 수 있다. 우선 활자 텍스트와 통신 텍스트의 차이점을 생각해보면, 이는 단순한 매체 차이가 아닌, 구술문화화 문자문화가 가졌던 차이만큼 근본적인 차이를 지니고 있다. 즉, 입체적이고 다선적인 상호소통 기능, 수시로 삭제, 편집할 수 있는 기능(그래픽, 동영상, 음악 등과 함께 편집해 멀티텍스트로 확장될 가능성), 익명성 보장(자극적, 선동적인 언어 구사, 유행어, 속어 등 단문 위주 진술)이 그것이다. 하지만 소통되는 그릇인 매체가 다를 뿐, 그 소프트웨어는 결국 인간으로부터 나온다는 점에서 활자 텍스트와 통신 테스트는 상호 보완 관계일 수밖에 없다. 다음으로 영상 세대의 글쓰기를 생각해보면, 어릴 때부터 문자보다는 영상에 익숙해진 환경 속에서 자라난 신세대들은 어떤 언어보다도 이미지를 읽어내는 감각이 예민하게 발달해 있다. 독서나 글쓰기의 이런 취향과 습관 때문에 영상세대는 문자세대와는 매우 다른 감수성과 가치관을 형성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영상 매체의 장점은 일단 언어나 문화적 배경, 연령, 교육수준 등을 뛰어넘어 그 적응범위가 매우 넓고, 전달 속도가 빠르다는 점, 전달 방식이 구체적이라는 점, 정보를 대량으로 전달할 수 있다는 점, 다양한 독해가 가능하다는 점이지만, 정보 전달의 정확성이나 구속성이 약하고 산만하다는 점, 수용자의 비판의식이나 주체적 행동을 유도하기가 어렵다는 점, 추상적이고 논리적인 사고를 둔화시킨다는 점 등의 약점이 있다. 아울러 문자 문화가 구술 문화의 살아있는 감각을 지나치게 추상화시켰다는 아른하임의 비판처럼, 영상 문화가 지나치게 시각 중심이어서 사유의 단순화를 불러온다는 점도 경계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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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 명구 100선> 子曰: 君子不重則不威, 學則不固. 主忠信, 無友不如己者, 過則勿憚改.<논어 명구 100선> 남악신문 35호 子曰: 君子不重則不威, 學則不固. 主忠信, 無友不如己者, 過則勿憚改. (자왈: 군자부중즉불위, 학즉불고. 주충신, 무우불여기자, 과즉물탄개.)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군자는 진중하지 않으면 위엄이 없고 학문을 해도 공고하지 않다. 충성과 신의를 주로 하고 자기만 못한 자를 벗하지 말며 과오가 생기면 서슴없이 고쳐라.” 1) 學則不固(학즉불고): 배워도 공고하지 않다. • 則(즉): ~해도. 역접관계를 표시하는 접속사. 2) 無友(무우): 친구로 삼지 말라. • 無(무): ~하지 말라. 금지를 표시하는 부사. 毋(무)와 같다. 3) 勿憚改(물탄개): 고치기를 꺼리지 말라. • 勿(물): 금지를 표시하는 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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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연재 : 이야기 문학] Ⅲ 창작 이야기(3)[기획 연재 : 이야기 문학] Ⅲ 창작 이야기(3) 조수웅 문학박사 (지난 31호에 이어서) (3) 문단 쓰기 사실 우리에게는 문단의 개념이 예로부터 희박하다. ‘홍길동전’ 목판본이나 ‘독립신문’의 사설과 기사에도 문단 구분이 없다. 문단은 1900년대 영미 계통 글쓰기 영향으로 성경 번역판 등에 도입되기 시작했으나, 지금도 문단 개념을 확실히 하지 못하고 적당한 곳에 임의로 들여쓰기를 하는 경우가 많은 실정이다.(의미단락과 형식단락이 다른 이유) 따라서 평소 갖고 있는 생각을 몇 부분으로 나누고, 부분들 사이의 관계를 고려하는 사고 훈련이 절실하다. 문단(paragraph)이란, 몇 개의 문장이 모여서 하나의 중심 생각을 나타내는 글의 단위이지만, 하나의 중심 생각(소주제)을 담고 있는 중심 문장에 뒷받침해 주는 보조 문장이 보태져, 통일성을 갖춤으로써 그 자체로 완결된 구조를 이룬다는 점이 핵심이다. 이런 문단이 갖추어야 할 기본 요소로는 세 가지를 들 수 있다. 첫째, 통일성(unity)이 있어야 한다. 즉, 한 문단은 오직 하나의 중심 생각만 포함하고 있어야 한다.(재료 선택의 요건) 둘째, 일관성(coherence)과 연속성(continuity, 연결성, 응집성, 결속성)이 있어야 한다. 즉, 문단의 각 부분이 논리적으로 연결되어야 한다. 여기서 논리적 연결이란, 처음 올 것이 처음 오고, 두 번째 올 것이 두 번째 와야 한다는 말이다.(문단 구성 요소들의 일정한 순서) 이에 비해 연속성이란, 각 부분이 매끄럽게 연결되는 것을 말한다.(재료 배열의 원리) 셋째, 완결성(강조성)이 있어야 한다. 즉, 문단의 소주제를 독자들이 잘 납득할 수 있도록, 구체적이고 알기 쉬운 내용으로 된, 뒷받침 문장들이 충분히 제시되어야 한다.(충분한 뒷받침의 요건) 그 밖에도 문단을 전개해 나갈 때는 일반화하지 않고 구체화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며, 중심 문장은 항상 완전한 문장, 문단 전체의 내용을 포괄한 문장, 짧고 간결한 문장(죽음을 앞둔 페르샤 왕 이야기 참고)인 것이 좋다. 4) 과정과 전략 아버지를 대상으로 그림을 그리라면, 술에 취해 넘어진 모습을 금방 그려내는 초등학교 2학년생이, 글로 쓰라니까 연필만 굴리고 있더라는 일화에서 보듯,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글쓰기를 두려워한다. 하지만 글쓰기의 전략을 얼마간 학습하고, 그 중에서도 ‘쓸거리 쉽게 찾기’ 훈련을 철저히 하면, 두려움 대신 재미를 느끼며 글쓰기를 하는 수준까지 이를 수 있다. 그 수준까지 이르기 위해, 글쓰기 이론은 어떻게 변해왔으며, 글쓰기 전략에는 무엇이 있는지를 차례로 알아보기로 하자. 1970년대 이후, 글쓰기를 ‘일련의 문제 해결 과정’으로 봄에 따라 글쓰기 이론에는 새로운 관점이 출현하였다. 즉, 글쓰기 이론은 인지적 관점→ 사회적 관점→ 사회-인지적 관점 등으로 변화해, 결국은 사회적인 과정임과 동시에 인지적인 과정이 된 것이다. 이를 전제로 글쓰기 각 단계에서 체계적으로 해결할 문제는 무엇이며, 이를 해결할 수 있는 구체적인 전략에는 어떤 것이 있는가를 살펴보자. (1) 글쓰기 이론의 변화 (형식주의→구성주의→사회구성주의→대화주의) 형식주의(문예적 관점)에 바탕을 둔 전통적인 작문 교육은 여러 종류 글의 특징을 익힌 다음, 모범 예시문 유형을 모방하기만 하면 글을 잘 쓸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에 바탕을 두었다. 그러나 1970년대 플라워(Flower)와 헤이즈(Hayes)가 연구해낸 인지적 모형(인지적 관점 : 구성주의)에서는 자신의 생각에 의존하여 자신의 느낌을 표현하거나 정보를 전달하기 위해 글을 쓴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이 모형대로 라면 글쓰기 행위가 발생하는 사회, 문화적 상황과 동떨어진 상태에서 철저히 자신의 주관적인 경험과 판단에 의지해서 글을 쓰게 되므로 아이디어를 생성하거나 글쓰기 목표를 설정하는 행위 자체를 개인적인 사고 활동의 부산물로 생각할 수밖에 없다는 한계를 지닌다. 다만 이 인지적 작문 모형에서 주목할 만한 핵심 중의 하나는 ‘조정하기’다. 과거 작문 과정에서는 반드시 계획하기부터 고쳐쓰기까지 차례대로 진행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소위 선조성(線條性, liner)을 강조했다. 하지만 이 모형에서는 ‘계획하기’가 끝나서 ‘작성하기’나 ‘고쳐쓰기’까지 넘어갔다가도 빠뜨린 내용이 생각나거나 새로운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그 때마다 작문의 전과정을 새롭게 고쳐 조정해 간다는 것이다. 즉 회귀성(回歸性, recursive)의 강조다. 다음으로 사회적 관점(80년대, 사회구성주의)의 글쓰기 이론을 생각해보자. 인지적 관점에서 글쓰기 이론이 의미 구성의 사회적 측면을 고려하지 않았다는 인식은 자연히 글쓰기 현상을 사회적 현상으로 보아야 한다는 인식의 전환을 가져오게 되었다. 따라서 사회적 관점에서의 글쓰기 이론에서는 고독한 작가가 아닌, 담화공동체가 의미 구성 행위의 주도적 역할을 담당하며, 의미는 공동체 구성원들과의 사회적 상호 작용을 통해서 구성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는 의미 구성의 기반이 개인의 인지적 과정에서 사회, 문화적 상황 맥락 속에서 이루어지는 행위로 확장되었다고 할 것이다. 그러나 글쓰기에 대한 사회적 관점은 사회, 문화적 맥락을 지나치게 강조함으로써 개인의 인지 과정을 소홀히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역시 비판을 받게 된다. 그래서 사회-인지적 관점(90년대, 대화주의)의 모형이 대두된 것이다. 글쓰기 행위의 주체는 개인이지만, 그 개인의 인지 활동 속에는 사회, 문화적 상황들이 작용한다는 점에서, 글쓰기란 사회, 문화적 상황 속에서 발생한 개인의 글쓰기 행위라고 보는 관점이다. 그래서 필자는 문제 해결자이고,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글쓰기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협동적 상호작용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바람직하지는 않지만, TV에 나오는 일일연속극에서 시청자 의견에 따라 주인공을 죽이기도 하고 살리기도 하는 이치와 같다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