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 문화 뉴스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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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절의 의미부활절의 의미 문귀병 (목포 순성교회 담임목사) 부활절(Easter)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기념하는 절기입니다. 부활절을 의미하는 영어 ‘이스터’(Easter)는 고대 앵글로 색슨어인 Eastre(새벽)와 Ostara(봄)의 합성어라고 합니다. 새벽은 어둠을 물리치는 힘을 가지고 있고, 봄의 기운은 생명들에게 겨울을 이기고 딱딱한 땅에서 움터 나올 수 있도록 한다는 의미에서 유래되었습니다. 부활절은 기독교의 절기만이 아닙니다. 온 인류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이 주시는 가장 귀한 선물입니다. 인류의 조상 아담이 창조주 하나님께 범죄함으로 온 인류에게 죄가 들어오고,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게 되었습니다. 이런 인류를 사랑하신 하나님이 친히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셔서 우리 죄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대신 죽으시고 삼 일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심으로 죽음의 세력을 잡은 자 마귀를 멸하셨습니다.[1] 그리고 우리에게 죽음을 이긴 영생을 주시고 영원한 천국의 산 소망을 주신 것입니다.[2] 그러므로 부활절(춘분 이후 첫 음력 보름이 지난 일요일, 올해는 4월 17일))은 온 인류에게 영원한 소망의 문이 열린 날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이 이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무슨 의미를 주는지, 다음 두 가지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첫째는 ‘사랑’ 입니다. 많은 사람이 이런 질문을 합니다. 정말 예수 그리스도가 창조주 하나님이시라면 왜? 십자가에서 죽으셔야 했는가? 그중에 한 사람이 ‘예수는 역사다’는 책을 저술한 리 스트로벨(Lee Strobel) 입니다. 그는 예일대 법대 출신으로 명 저널리스트였습니다. 그는 기독교의 핵심인 부활을 증거하는 성경이 허구임을 증명하고자 합니다. 목사, 의사, 심리학자, 고고학자 들을 만나서 인터뷰를 하고 자료들을 모으던 중 고고학을 연구하다 신부가 된 마르케즐를 찾아 나섭니다. 고고학의 자료들을 통해 부활의 증거가 많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그가 질문을 던집니다. “예수님이 정말 하나님의 아들이시라면 왜 능력을 행하지 않고 십자가에서 죽임을 당했나요?” 이 질문을 받은 마르케즐 신부는 이렇게 답합니다. “아주 간단해요 ‘사랑’입니다. 나도 그 사랑 때문에 이 길을 걷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하나님의 사랑입니다.[3] 지금도 이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를 감싸고 있으며, 사랑에 목말라 헤매는 우리 삶의 방황에 마침표를 찍게 만듭니다. 부활은 죽음도 이기는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둘째는 ‘능력’입니다. 지금은 계속되는 코로나 오미크론의 확산으로 일상적인 삶이 무너지고 모두가 힘든 때입니다. 이런 와중에 강력한 군사력을 앞세워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여 평화조약이 깨어지고 우크라이나 국민의 삶이 한순간에 황폐하게 되고 양국의 참전 병사들의 무고한 희생이 계속되고 있으며 이를 지켜보는 우리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있습니다. 다툼, 분열, 전쟁, 사망 이런 모습이 타락한 이후 죄 아래 있는 아담 이후에 지속된 이 세상의 모습입니다. 죄와 사망권세를 이기시고 부활하신 주님이 개인과 이 세상을 다스리실 때 개인도 사회도 국가에도 죄와 사망이 아닌 의와 생명의 능력으로 바른 윤리, 바른 경제, 바른 국제질서로 평화를 누리게 될 것입니다. 저는 목회를 하면서 여러 가지 일로 지치고 힘들어 주저앉고 싶을 때가 있었지만, 부활절을 지나면서 죽음의 절망 중에서도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고 묵상할 때 부활하신 주님이 공급하시는 능력으로 다시 일어설 수 있었습니다. 부활은 능력입니다. 부활은 죽음의 절망도 이기고 살아서 움직이게 하고, 부활의 소망을 가지고 현실의 어려움을 견디게 하는 놀라운 능력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통해 하나님의 사랑과 능력이 이 시대를 사는 모든 분들에게 가득하여 부활의 사랑과 능력으로 승리하시기를 축복합니다. [1] “자녀들은 혈과 육에 속하였으매 그도 또한 같은 모양으로 혈과 육을 함께 지니심은 죽음을 통하여 죽음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멸하시며 또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한평생 매여 종 노릇 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 주려 하심이니 이는 확실히 천사들을 붙들어 주려 하심이 아니요 오직 아브라함의 자손을 붙들어 주려 하심이라”(히브리서2:14-16) [2]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 그의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게 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유업을 잇게 하시나니 곧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하신 것이라” (베드로전서1:3-4) [3]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롬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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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독자 코너> 과일 나무 심은 뜻은<구독자 코너> 과일 나무 심은 뜻은 김봉임 24절기 중에 입춘, 우수, 경칩이 되면 한 해의 꿈을 그리며 할 일 너무나도 많아 바빠집니다. 저에게 할 일이 많다는 것은 삶의 넉넉함을 말해주는 것 같아 흐뭇 하기도 합니다. 작년 가을에 수확한 메주콩으로 메주 4덩이를 만들었는데 검고도 노랗게 아주 잘 띄워졌습니다. 마침 오늘이 길일이라고 해서 간장을 담가놓고 운동 삼아 집 주위를 한 바퀴 돌아봅니다. 앙상한 대추나무와 늘씬한 블루베리 나무들은 가지 마디 마디에 ‘움’이 맺혀있어 밭에 심어놓은 해묵은 과일나무들의 안부가 궁금합니다. 어제까지만 해도 몹시 추웠는데 오늘은 날씨가 눅눅하고 미세먼지가 너무 심해서 지 난 날의 ‘삼한사온’이 근래에 와서는 ‘삼한사미’가 되었습니다. 무안 5일장에 들러 어 린 과일나무를 서너 그루 사 들고 밭 진입로에 와보니 맥없이 쓸어진 잡풀들이 엉켜 산새들의 아지트가 되어버렸습니다. 겨울에 언 땅이 풀려 질퍽하기 때문에 하우스 안 에 넣어둔 장화를 바꿔 신고 나무 심을 곳을 정해봅니다. 밭 모퉁이의 작은 방죽에는 아직도 살얼음이 은쟁반처럼 떠 있습니다. 방죽 옆에 심어놓은 밤나무는 어느새 집채만큼이나 훌쩍 커버려 작년 가을에는 한 바구리의 알밤을 안겨 주었습니다. 일부는 삶아서 목포대 박물관 수강생 동료들과 나누어 먹었답니다. 해마다 심어놓은 감나무들은 작년 가을에 서너 자루나 수확하여 손주들과 먹으라고 아들에게 두 자루를 내주었더니 무척이나 기뻐했습니다. 제가 너무 행복해서 아마도 세상 부모들의 마음은 모두 똑같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해마다 몇 그루의 ‘과일나무를 심은 뜻은’ 따로 있습니다. 제가 초등학교 다닐 때 가을이 되면 우리 집 마당에는 곡식들이 가득한데 남의 집 담장 너머엔 붉은 감들이 주렁주렁 열려 있어 무척이나 그 홍시가 먹고 싶었습니다. 부모님에게 “왜 우리 집은 감나무가 없느냐”고 떼를 쓰며 투정을 부렸던 기억이 납니 다. 그래서인지 여기저기 감나무를 심다 보니 밭 절반이 감나무 밭이 되어버렸습니다. 언젠가 심어놓았던 7그루의 사과나무는 봄이 되면 사과 꽃이 만개하여 저에게 희망을 주지만 더운 여름에 제대로 수분 섭취도 못하고 벌레들에게 부대끼어 화가 났는지 가을이 되어도 단 한 개의 사과도 내어주지 않았습니다. 몇 년 전에 심어놓은 3그루의 복숭아나무 역시 봄이 되면 복사꽃 장관을 이루더니 재작년 겨울 매서운 강추위에 죽고 말아 지금은 몸뚱이만 남아서 속이 상합니다. 농부들이 얼마나 많은 노고를 치러야 대가를 보상받을 수 있는지를 입증하는 증거 입니다. 세 살 터울인 여동생이 저에게 “뭐하러 힘들게 손실을 봐가며 나무를 심느냐”고 말립니다. 그렇지만 저는 “내가 움직여서 사는 동안은 내일 지구가 멸망한다 해도 오늘은 한 그루의 과일나무를 심겠다”고 말하며 웃었습니다. 고요한 밤에 이 글을 쓰면서 창문을 열어보니 마지막 겨울을 장식하는 싸리 눈이 내리고 있습니다. 방금 쪄낸 고구마와 얼려놓은 홍시를 먹으면서 농사짓는 보람을 새삼 값지게 느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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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여는 시> 풍문風聞<마음을 여는 시> 풍문風聞 배문석 시인 펜데믹 시대 끊어진 안부가 궁금하다 너 아프냐 나도 아프다 슬프냐 우리도 슬프다 기쁘냐 꽃처럼 우리 모두 기쁘고 싶다 안부는 그런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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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독자 코너> 임인년 새해 글향기<구독자 코너> 임인년 새해 글향기 김봉임 올겨울은 유난히 춥다. 내가 경영하는 구내서점은 목포대 교정 안에 있다. 캠퍼스는 조용하고 길 따라 즐비한 나무들은 차가운 겨울바람에 고운 옷들을 다 벗어버리고 앙상한 맨몸으로 서 있으니 을씨년스럽기까지 하다. 하지만 저 나무들은 분명 땅속의 자양분을 끌어올려 몸통을 키우며 봄날에 파란 새 옷으로 단장하려는 꿈을 꾸며 새봄을 그리워하고 있음이라. 나도 어린 시절 새해가 되면 어머니가 손수 무명베를 짜서 검정 치마 하얀 무명저고리에 두툼하게 무명 솜을 넣어 따듯하게 입혀주셨다. 그런 날이면 동무들에게 자랑할 겸 밖에 놀러 나가 날이 저물도록 온 동네를 돌아다니며 고무줄놀이랑 술래잡기에 바빴었던 추억이 떠오른다. 오늘 아침 서점으로 출근하는 길에 어디선가 고운 새소리가 들려 주위를 살펴보니 도톰한 나뭇가지 틈새에 박새가 둥지를 틀어놓고 주둥이를 길게 내밀며 따듯한 봄을 갈구하고 있는 모양이다. 저편으론 모자 달린 롱패딩을 걸쳐 입은 남녀 학생들이 하얀 눈 위에 오종종하게 발자국들을 찍으며 한가로이 걸어가는 모습들이 마치 화폭에 그려지는 ‘묵화의 운치’가 풍기는 듯하다. 오늘은 서점서 일하는 직원이 방역 알바를 간다기에 나 혼자서 서점에 남아 2학기에 팔다 남은 대학 교재들을 각 출판사에 반품 완료했다. 서점 매장은 교양서적들로 주종을 이루고 있다. 옛날 같으면 계절학기 때도 학생들이 시끌벅적했었다. 이제는 계절학기 교양 수업이 줄었는지 아예 손님이 없다. 이러다간 서점이란 문화도 사라질 것 같아 걱정이 앞선다. 염치없게도 코로나 19는 소상공인의 삶을 망가뜨리고 있다. 동아줄에 매인 곡예사처럼 과거 저축해놓은 자본금까지 탈탈 털어가며 인건비에 각종 세금을 메꿔가느라 그야말로 고군분투(孤軍奮鬪) 중이다. 앞으로도 코로나 바이러스는 쉽게 물러갈 기미가 보이질 않으니 대책은 필요한데 정말 답이 없다. 집 거실에는 인자무적(仁者無敵)이라 쓰인 액자가 걸려 있다. 우리 집 가훈이다. 제때 백신 추가접종을 맞고 마스크 착용하기, 방역 거리 두기 등을 잘 지키며 참고 기다리다 보면 언젠가 ‘적’은 물러가겠지, 생각해본다. 기왕 새해가 되었으니 한 가지 소망이 있다. 경기도 성남에 살며 용인지역에서 교사로 근무하는 딸이 결혼 14년이 지나도록 ‘내 집 마련’을 못하고 있다. 해마다 천정부지로 치솟는 부동산 가격 때문에 전세로만 집을 전전하다가 어린 애들을 데리고 벌써 5번이나 이사를 했다. 그동안 얼마나 심적 고통이 컸을까. 이사할 때마다 비용은 또 어떻게 감당했을까. 이런저런 생각에 내 가슴도 저며온다. 부디 차기 대통령님은 하늘 높은 줄 모르는 부동산 가격 좀 잡아주시길 간절히 기대해 본다. 이번 설 명절엔 딸이 과연 손주들, 사위를 앞세우고 “엄마!” 하며 대문을 들어설지 걱정이 된다. 이 지긋지긋한 코로나 때문이다. 저녁 6시가 되어 퇴근하려다 카운터 위를 보니 삼만 육천 원짜리 체크카드 전표가 오늘 매상의 전부다. 살다 살다 이런 해는 없었다. 서점 문을 닫고 집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무겁고 춥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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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출판 소개> 박경호헬라어번역성경<도서출판 소개> 박경호헬라어번역성경 ‘태초부터 현재까지, 전 인류에게 문화적, 사상적, 문명적, 사회적, 역사적으로 가장 큰 영향력을 끼친 것이 있다면, 그것은 성경이다’라는 참된 명제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입니다. 성경은 기독교인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모든 인류를 위한 책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을 기록한 책이며, 성경은 거짓이 없는 역사책이며, 빼어난 문학작품이자 인류의 보편타당한 규범을 제시하는 도덕책이고 고전 중의 고전입니다. 역사적으로 가장 많이 팔린 책은 자타공인 성경임은 누구나 주지하는 사실입니다. 최근에, 기존 한글 성경과 영어 성경의 수많은 오번역을 바로 잡은, 박경호헬라어번역성경 4복음서와 요한계시록이 세트로 히브리어 & 헬라어 번역출판사[dycjf5725@naver.com]에서 출판되었습니다. 박경호헬라어번역성경 4복음서와 요한계시록은 공인성경본문에 해당하는 스테판(1550)헬라어 사본을 원어의 어원을 파악하고, 일대일 직역 방식으로 번역한, 국내 최초의 번역성경입니다. 모든 한글 및 영어 번역본은 헬라어 한 단어를, 문맥의 상황에 따라 여러 단어로 의역하지만, 박경호헬라어번역성경 4복음서와 요한계시록은 헬라어 원어를 한글 한 단어로 고정시키는, 일대일 직역 방식의 번역 방식이며, 20년의 끈질긴 노력으로, 완전 직역에 성공한 [전무후무한 성경]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박경호헬라어번역성경 4복음서와 요한계시록은 목회자에게는 원어에 가장 근접한 말씀을 근거로 설교하게 하며, 신학생들에게는 원어성경의 기초를 탄탄하게 제공합니다. 또한 어렵게 느끼는 성경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현대어로 번역하였기에 어린아이부터 고령의 독자들도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으며, 성경 저자가 기록한 그 당시의 그 감동을 느낄 수 있게 번역하였습니다. 아울러 기독교인이 아닌 일반인 모두에게 성경의 가치를 알게 하기에, 박경호헬라어번역성경은 누구에게나 필요한 필독서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역자 박경호 원장(히브리어 & 헬라어 번역원 원장)은 20년 넘게 원어 번역에 매진한 원어 성경 연구가입니다. 서울대학교와 동 대학원을 졸업 후, 기업에서 연구원으로 활동했으나, 영어 성경과 한글 성경의 많은 오번역들을 발견하고서 성경 원어 번역에 사명감을 가지게 되었고, 현재, 원어성경 번역에 전념하고 있습니다. [히브리어구약 BHS 2ND EDITION],[헬라어신약 스테판 1550년]을 번역한, [박경호히브리어&헬라어성경]은 ‘전무 후무한 성경’입니다. [박경호히브리어&헬라어번역성경]이 전무후무한 성경이라는 타이틀을 내걸 수 있는 이유는, 히브리어와 헬라어 한 단어의 모든 뜻을 아우르면서 어떤 문장에서도 어색하지 않는, 더욱 정확한 의미로 재규명시켜, 결국, 원어와 거의 동일한 뜻과 내용으로 변환시킨, 국내 최초로, [성경사본과 동일한 번역물]이기 때문입니다. 향후에, 박경호히브리어번역성경 구약성경과 박경호헬라어번역성경 신약성경, 총 66권을 순차적으로 출판하여, 성도들께는 명확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일반인들께는 반드시 읽어야 할 수준 높은 교양도서로 자리매김하기 위하여 저희 번역원은 쉬지 않고 번역사업에 매진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관심있게 지켜봐 주시면 고맙습니다. 성경에 대해 010-8595-5725번이나 dycjf5725@naver.com으로 문의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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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독자 코너> 자연의 섭리<구독자 코너> 자연의 섭리 김봉임 저는 다년간 서점을 운영하면서 짬짬이 어머니의 땀방울이 배여 있는 두 필지의 밭을 경작하고 있습니다. 고구마도 심고 콩도 심고, 깨며 땅콩도 심어 먹는답니다. 정부에서 직불금으로 약간의 지원금을 받고도 있으니 잀헉이조라고 할 수 있습니다. 농사가 몸에 설어서 제때 농약을 치지도 못하기 때문에 끝없이 자라나는 풀과의 전쟁은 어쩔 수 없습니다. 그래도 겨울 오면 ‘자연의 섭리’ 앞에서 언갖 풀은 시들고 맙니다. 상강을 며칠 앞두고 어느 날 고구마를 캐러 밭에 나갔습니다. 이미 고구마 잎들은 까맣게 시들어버렸고 키 작은 메주콩들은 새들에게 따먹힐 새라 풀섶에 숨어서 저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는 듯합니다. 이미 갈잎이 돼버린 땅콩 나무들 밑도 파보니 어느새 파란 새싹들이 솟아나고 있었습니다. 봄도 아닌데, 땅콩은 어지간히 성질이 급한 모양입니다. 하릴없이 고스란히 땅콩 농사는 포기하고 말았습니다. 고구마 줄기들을 당겨 가며 고구마를 캐다 보니 밭고랑 사이로 빠알간 고구마가 줄지어 널려 있습니다. 무더운 여름날에 심고 김을 매주는 것은 접니다만, 고구마를 영글게 하여 굵게 만드는 것 또한 자연의 섭리인가 봅니다. 고구마를 캐다 점심 때가 되니 배가 고파오기 시작했습니다. 집에서 가져온 도시락을 들고 근처 10분 거리에 있는 어머니 집으로 발길을 향합니다. 어머니가 계시지 않는 어머니의 빈집. 동네 가까이에 어머니가 생전에 일구시던 텃밭이 보입니다. 눈시울이 저도 모르게 더워집니다. 텃밭을 일구며 자식들의 생계를 이어주셨던 어머니는 얼마나 많은 희생을 강요당하며 일생을 사셨을까요. 짬이 나면 마을회관에서 자식들 자랑, 손주들 자랑으로 고단하고 힘든 삶을 위안받고자 하셨던 어머니. 상추며 마늘이며, 시금치를 바리바리 싸주시던 그리운 어머니는 지금은 계시지 않습니다. 일하던 차림으로 먼지 쌓인 툇마루에 걸터앉고 보니 앞집도 빈집이요 옆집도 빈집이요, 뒷집도 빈집입니다. 이러다가 온 동네가 다 빈집들이 될까봐 걱정이 앞섭니다. 가을은 예전의 가을입니다만, 탈곡기 소리도 없고 벼를 쌓아 올린 노적봉도 없습니다. 나주군 동강면 운산리 회룡마을 백룡산 자락 아래에 광산 김씨 양반이라는 타이틀 하나로 자자 일촌을 이루어 살던 인정 많은 아짐들, 삼촌들은 이제 다 보이지 않습니다. 그때는 누가 방귀만 뀌어도 야단이었었는데…. 용자 학렬 김용채는 광주일고를 나와 서울법대를 거쳐 사법고시에 합격해 변호사가 되었으니 온 동네가 날아갈 뻔했었지요. 제 나이 어린 시절엔 동강북국민학교를 다녔었습니다. 좁은 교실 안에 가마니때기를 깔아 놓고, 그것도 모자라서 6명씩 포개 앉아 공부를 하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뿐인 몽당연필 심마저 뿌러져 글씨를 쓸 수 없어서 울고 있을 때면, 말없이 다가오셔서 연필을 깎아주시던 강경수 선생님. 지금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강 선생님의 여동생 옥자는 저랑 같이 학교를 다녔었는데, 지금은 어디서 사는지 알 길이 없습니다. 국민학교 졸업식날, 졸업식 노래가 울리면 너나 할 것 없이 울음바다를 이루었던 추억, 고구마가 먹고 싶어 서리를 하다가 주인에게 들켜서 고구마 순으로 매를 맞아야 했던 시절의 추억들이 뭉개구름처럼 떠오릅니다. “옥자야, 옛 동무들아, 우리 집에는 고구마가 만석이라 지인들과 인심 좋게 나눠 먹는단다. 너희들과 같이 먹고 싶구나!” 고구마를 캐던 어느 가을날, 태어나고 만나고 헤어짐이 또한 자연의 섭리라는 것을 새삼 깨달았습니다. 동무들이 이제 어디 사는지, 살고는 있는 것인지 알 길 없지만 모두 모두 건강하고 행복했으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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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여는 시> 첫눈<마음을 여는 시> 첫눈 박일훈 시인 첫눈은 공평하다 죽은 자의 무덤 위에도 산자의 집 위에도 경부고속도로 위에도 군산 구불길 위에도 명동성당 첨탑 위에도 화엄사 각황전 앞 석등 위에도 대기업 총수의 어깨 위에도 가난한 아버지의 등허리 위에도 차별 없이, 죽음처럼 다가와 아무렇지 않게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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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진 논설위원, 『수필이론 바로 세우기』 펴내본지 『남악신문』의 논설위원인 金昌辰김창진 전 초당대 교수(문학박사)가 수필이론서를 에세이스트사에서 펴냈다. 『수필이론 바로 세우기』로서, 수필이론을 올바르게 정립하려고 시도한 책이다. 기존의 수필 관련 책들은 수필 쓰는 기술만 가르칠 뿐이었다. 하지만 이 책은 수필의 본질과 개념부터 파고든 본격적인 수필이론서이다. 그래서 이 책은 나오자마자 수필계에 새바람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한국에는 만 명 이상의 수필가들이 활동하고 있다. 그러나 수필의 본질을 제대로 아는 수필가는 드물다. 수필의 본질도 모르면서 수필평론가들은 수필을 논하고 수필가는 수필을 쓰고 있는 게 한국 수필계의 현실이다. 이런 잘못된 현실을 바로잡기 위해 김창진 교수는 이 책을 쓰게 되었다고 한다. 여러분은 수필작품이라면 어떤 작품이 가장 먼저 떠오르는가. 아마도 피천득 선생의 「인연」일 것이다. 그 작품은 개인 체험을 아름답게 적은 글이다. 우리 한국인은 바로 그런 감상문 같은 글을 수필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저자는 그런 ‘문예수필’은 수필의 본질에서 멀어진 글이라고 한다. 수필의 본질은 “지성의 문학”이라는 것이다. 곧 수필은 작가가 세상을 작가 나름대로 해석해서 그 생각을 적는 글이라는 것이다. “나는 세상을 이렇게 생각한다”를 적는 논설문이 수필이라 한다. 수필의 본질에 충실한 그런 수필을 저자는 ‘지성수필’이라고 한다. 이러한 주장을 저자는 두 가지 방식으로 증명한다. 하나는 수필의 역사이다. 서양 수필의 역사는 프랑스의 몽테뉴가 쓴 『수상록(에세이)』에서 비롯한다. 그 책은 「~에 대하여」라는 소제목을 달고 어떤 문제에 대해 논한다. 서양 수필은 논설문 형태를 띈 “지성의 문학”으로 시작한 것이다. 그 이후 지금까지 서양 수필은 지성의 문학을 계속해서 유지해 오고 있다. 오늘날 신문에 실리는 칼럼(시론)도, 각종 평론 등도 모두 그러한 지성수필의 여러 형태들이다. 한국 수필의 역사도 마찬가지다. 論론, 說설 등 논설문 형태로 전개되어 왔다. 고려 때 이규보 선생의 「蝨犬說슬견설」이나 조선 때 허균 선생의 「豪民論호민론」, 박지원 선생의 『熱河日記열하일기』 등도 모두 논설문이다. 이처럼 한국 수필의 역사도 “지성의 문학”으로 흘러왔다고 한다. 하지만 한국은 20세기에 들어와서 신변잡기를 적는 문예수필이 마치 수필의 본모습인 것처럼 잘못 알려지게 되었다고 한다. 이것을 바로잡아야 한다고 한다. 다음으로 그는 수필의 본질을 살펴보아도 수필은 “지성의 문학”이라고 한다. 김창진 교수는 독창적인 갈래이론인 「知情意事지정의사 문학 갈래론」을 수립했다. 이 이론에 따르면, 문학 갈래는 인간의 정신 구조에 바탕을 두고 만들어지는데, 시는 정서에, 수필은 지성에, 희곡(화의)은 의지에 바탕을 둔다고 한다. 그리고 소설은 외부 사건에 바탕을 둔다고 한다. 그래서 수필이 시ㆍ소설ㆍ희곡과 함께 동등한 위상을 지닌 문학의 4대 갈래라고 한다. 김창진 교수는 이렇게 수필이 “지성의 문학”임을 증명하였다. 그는 수필이 속한 문학 갈래 이름을 ‘述知文學술지문학’이라고 이름 붙였다. 그리고 수필의 개념을 “지성으로 세계를 자아화하는 산문 문학”이라고 정의하였다. 그 외에도 이 책은 한국 수필의 현황을 진단하고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도 제시하였다. 또 수필의 유형을 8가지로 분류하기도 했다. 또한 좋은 수필과 나쁜 수필에 대해서도 나름대로 생각을 밝혔다. 마지막으로 맨 끝에는 지성수필의 보기로서 저자의 수필작품 9편을 실었다. 김창진 교수는 현재 수필을 쓰고 있거나 또는 앞으로 수필을 쓰려는 사람들은 이 책을 반드시 읽어달라고 부탁한다. 현재 수필은 많은 국민이 읽고 쓰는 국민문학이 되어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수필의 올바른 길을 제시하는 『수필이론 바로 세우기』는 한국인들에게 수필이론의 교과서가 될 것이다. 수필에 관심 있는 독자들의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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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관광해설사가 소개하는 무안 3경> “싸묵싸묵 무안(務安) 돌아보기”<문화관광해설사가 소개하는 무안 3경> “싸묵싸묵 무안(務安) 돌아보기” 한연희 문화관광해설사 엄마품처럼 한없이 포근하고 연꽃처럼 아름답고 희망이 가득한 곳 무안! 우리나라 서남단에 위치한 무안군은 한반도의 지형과 사뭇 비슷한 3면이 바다와 강이 있으며 함평, 나주, 영암, 목포, 신안과 인접하였다. 바다와 강이 지닌 특수한 지리적 환경과 백두대간의 끝자락인 노령산맥의 줄기에 진산인 승달산을 품고 있으며 그 산을 지붕삼아 터를 잡고 있는 무안군! 무안의 지명유래는 “물안”에서 왔다고 보는데 평안한 어머니의 태내 이미지와 평안이 일 할 수 있는 곳. 평안함에 힘쓴다는 의미와도 같다고 볼 수 있다. 무안의 대표적 관광지중 백련지. 전통생활문화테마파크. 초의선사 탄생지를 소개하고져한다 1. 회산 백련지 해맑은 가을 호수 옥처럼 새파란데 연꽃 우거진 곳에 목란배를 매었네. 물 건너 님을 만나 연밥 따 던지고는 행여나 누가 봤을까 한나절 부끄러웠네.(채련곡 : 허날설헌) 초여름부터 초록 물결로 출렁거렸던 연지와 더위속에 꽃을 피웠던 자리엔 갈색으로 익어가는 연방과 녹색과 시들어가는 연잎이 어우러진 곳 백련지. 허난설헌의 채련곡에 초가을에도 연꽃을 볼 수 있음을 알 수 있듯이 6월 초순경부터 흰연꽃이 피고지기를 100여일. 흰연꽃을 만나러가는 설렘과 행복한 시간을 보상해 준 백련지는 100여년전 일제강점기때 영산강 하류 갯벌을 간척한 농경지에 농업용수로 사용되었던 저수지로 40년 전 영산호가 완공된 후 영산호 물을 농업용수로 대체하면서 저수지 기능은 없어지고 가장자리 자라던 백련은 33만제곱미터 저수지에 해마다 맑은 흰 연꽃을 토해내고 있다. 백련은 우후죽순 피워내는 홍련에 비해 개화하는 수가 월등히 적어 찾아오신 관광객의 마음을 실망시키기도 한다. 그래서 더 귀하고 귀한꽃이 아닐까? 싶다. 무소유를 주창하셨던 법정스님의 마음을 훔친 백련지. < 한여름 더위속에 왕복 2천여길을 다녀왔다. 아! 그만한 가치가 있고도 남았다. 어째서 세계 제일의 연지가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지지 않았는지 그 까닭을 알 수가 없다. 마치 정든 사람을 만나고 온 감동과 감회를 느꼈다> < 새들이 떠나간 숲은 적막하다> 라는 수필집을 통해 많은분들의 관심과 방문으로 이어지면서 1997년 축제를 시작하는 촉매제 역할을 하였다. 지난해 축제는 아쉽게 취소되었고 24회금년은 비대면 온라인 축제를 하였는데 축제 인기는 지금도 현재진행형이다. 백련지엔 25여년간 비워내고 채우며 찾아오시는 관광객분들께 최상의 볼거리와 즐길거리. 쉼을 얻을 수 있도록 노력하여 4계절 관광지로 부족함이 없도록 조성되고 있다. 지난 겨울엔 겨울철 진객인 고니 300여 수와 철새등이 백련지를 찾아와 한겨울 멋진 자태를 보여주고 갔는데 이번 겨울에도 또 찾아오길 고대하고 있다. 석가 탄생 때 마야부인 주위에 청,황,적,백,흑의 오색 연꽃이 피어 연꽃위에서 탄생했다는 인연이 시작되어 불교를 상징하는 꽃이 되었다고한다. 타지역보다 남쪽인데도 개회시기가 늦은 이유는 개화의 중요요소로서 풍부한 일조량과 수온이 중요한 역할을 차지하는데 면적이 광활하고 저수지 바닥층이 부드러운 갯벌흙으로 퇴적되어 뿌리가 깊이 번식하므로 일반적으로 논이나 낮은 저수지에서 자라는 연꽃보다 개화시기가 더 늦다. 연꽃은 스스로 열을 내어 꽃을 피운다. 연꽃속의 온도는 29,9도고 바깥쪽의 온도는 23,9도로 5~6도의 차이가 나며 연꽃이 열을 내는 이유는 열 날 때 발산되는 향기를 맡고 다른 곤충들이 꽃가루를 묻혀오기 때문이다. 열 에너지원으론 당분이 축적된 꽃받침의 당이 지원된다고 알려져 있고 이러한 연유로 연꽃은 해뜨기 전 개화를 할 수 있다고 한다. 더러운 연못 속에서도 수생태계를 정화시키며 연꽃이 깨끗한 이유 또한 과학적으로 증명되었다. < 꽃잎에는 미세솜털이 있으며 이 솜털은 물방울을 떨어뜨릴 때 빨아들이질 않고 주르르 흘러내리도록 하는데 솜털과 같은 외부 구조 때문에 오염물질이 물들질 않고 표면이 깨끗하게 유지되는 현상을 과학자들은 연꽃효과라 부른다> 주차장 맞은쪽 시원한 느티나무 터널길을 걷노라면 주무대에 도착한다. 연꽃과 볼맞춤이라도 하고프면 정자옆 산책로를 이용하면 된다. 수변공원엔 큰가시연꽃이자 별칭인 빅토리아연꽃이 대관식 치를 준비중이다. 오후엔 낮잠자는 수련등과 아쉬움을 나누고 백련지 108출렁데크길로 접어들어 전망대에 오르면 전체의 백련지를 품을 수 있다. 연꽃형상의 수상유리온실이 햋빛을 받아 눈부시다. 2006년 대한민국 건축부분 우수상을 받았으며 고갤 돌리면 멀리 영암 월출산의 거대한 바위산이 하늘 아래 모습을 드러낸다. 바로 앞 인의산과 월출산 사이엔 영산강이 흐르고 인의산과 복룡리를 연결했던 간척지 논농사에 목마름을 채워줬던 저수지는 지금은 많은분들께 건강한 삶을 제공하고 있다. 흔들흔들 출렁다리를 지나면서 짧지만 울림있는 법문등을 볼 수 있다. 큰나무 그늘아래서 숨고르기를 하고 오작교를 지나 유리온실앞 소공연장을 만난다. 관광객과 출연자가 서로 호흡을 맞춰 추임새를 넣거나 함께 노래하며 공연을 완성해가는 아름다운 공간인 이곳이 빨리 예전 모습으로 돌아오길 바래본다. 백련지 인기있는 장소가 된 유리온실의 멋진 공간들과 카페. 불어오는 바람은 모든 시름을 잠재우며 심신을 평안케 한다. 백련지에 비가 내리면 정말 멋진 광경이 펼쳐진다. 연잎에 후두둑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와 잎에 고인 빗물을 비워내는 연잎의 바쁜 움직임. 자신이 감당할 만한 무게만을 싣고 있다가 미련없이 버리는 연잎의 지혜(법정스님)에 큰 깨달음을 얻기도한다. 이제 다음을 기약하며 왼쪽 탐방길을 따라 주차장을 향한다. 미니동물농장의 귀엽고 재미난 동물들과 놀이터는 아이들의 발길을 붙들고 화려한 시계탑을 그냥 지나치긴 너무 아쉬워 연신 카메라에 담는다. 군민의 기증나무인 1뿌리 9가지 소나무인 다행송을 보고 한국전통정원 정문으로 들어가 후문으로 나오면 수변공원내 가시연꽃을 만난다. 지난가을 지친 심신에 위안을 주었던 국화꽃 동산에 수북수북 국화꽃색이 물들기 시작하고 오곡백과 풍성한 가을처럼 볼거리 즐길거리 많은 백련지는 자녀들이 마음껏 뛰놀 수 있고 연로하신 부모님께서도 불편함이 없는 안심 관광지다. 폭염대비 우산을 무료 대여하였고 수석전시관을 개관하고 백련카페를 오픈하여 관광객분들의 여행 품격을 높였다. 2. 무안전통생활문화테마파크 무안전통생활문화테마파크는 4월 1일 개관하였다. 몽탄 남초등학교는 1943년 5월15일 개교하여(입장권에 표기) 2009년 몽탄초등학교와 통합하였고 남초등학교는 폐교가 되었다. 2017년 무안군에서 매입하여 리모델링한 시설로 부지는 3만5천여제곱미터에 기증자인 윤근택선생님께서 수집한 자료를 전시하여 60-70년대생활 모습들을 볼 수 있는 곳으로 중장년층에겐 지난 추억을 젊은 세대에게는 친가나 외가의 향수. 자라나는 아이들에겐 선조들의 삶을 알아가는 귀중한 추억과 역사의 장소가 되고 있다. “우리들은 다 이러고 살았어~” “아따 우리것도 놔둘것인디 괜히 버려부렸네~” 공감하시며 젊은 시절 추억과 소회를 풀어내시며 마치 보고픈 사람을 만난 것처럼 반가워하시는 연로하신 부모님. 이곳에 오시면 선조들의 지혜를 엿 볼 수 있다. 근대기술이 발달 하기전 생활에 필요한 물건들은 직접 제작하여 개인이나 마을 단위로 공용하였고 그 기술이 축적되어 근대기술이 발달되었기 때문이다. 야외유물 전시. 기획전시실. 근현대생활문화 체험관. 수장고. 각 테마별로 나누어져있다. 운동장 체험거리인 추억의 목마. 대형 오목. 물지게 지기. 작두샘 펌프. 대박 터트리기. 고리 던지기등이 있어 근 한시간 정도 즐길수 있고 쟁기질. 떡메치는 모습. 대장간등이 있다. 널찍한 평상들이 곳곳에 있어 간단한 소풍 느낌을 낼 수 있고 건물 뒤쪽에 작은 산책로도 있다. 실내에서 만나는 추억401은 추억사이. 학교주소인 청용리 401번지. 4월1일 개관등의 의미를 담고 있다. 한편의 인생스토리인 영상물은 앨범을 넘기면서 추억을 회상하며 나들이 하는 노부부의 모습과 윤동주 시인의 < 아! 젊음은 오래 거기 남아 있거라>가 와 닿는다. 장날과 읍내 거리. 흑백TV 앞에 멈춘 발걸음. “와 우리집도 이런거였다~~”“우리때는 흑백티브이였어”라며 반긴다. 70년대 후반 시골마을엔 TV가 잘 사는집 한두대뿐이라서 저녁엔 마을 사람들이 함께 모여 텔레비전 시청을했었다 농경생활에 기반을 둔 우리네 전통사회에서 소를 생구(生口)라고 불러온 것은 한집안에 사는 식구처럼 여겼다는 의미다. 논밭 쟁기질하는 노동력이자 운송수단. 급한 목돈이 필요시 비상금을 마련할 재원이었다. 일로 우시장을 인근에선 가장 규모가 큰 우시장으로 신안 섬지역에서도 이곳으로 거래를 하러 왔던 곳이다. 교복세대는 추억을 담느라 바쁘고 여고시절 하얀 카라 교복과 사진속 현재모습에 안타까워하는 관광객의 눈물 훔치는 모습도 보였던 사진관은 실내전시관중 가장 인기있는 곳이라서 가끔은 줄을 서야 할 때도 있다. 왜 왕대포인가? 큰술잔으로 마시는 술이란 의미를 담고 있는 이 곳 또한 먹음직스런 파전과 막걸리를 앞에 두고 벗과 나누는 술 한잔은 모든 피로를 씻어주는 감로주가 아니었을까? 시골장은 직거래도 가능했고 다양한 생활정보와 문화를 접하고 장성한 아들딸의 혼사이야기와 친정소식등도 듣고 만날 수 있었던 만남의 장소였던 시장엔 뻥튀기와 품바 타령들이 한 몫을 하기도 했다. 쌍화차와 커피가 있는 다방은 문화계층의 사람들이 자주 이용했던 공간이기도 했지만 맞선이나 친구 또 연인들의 약속장소였다. 70년 전후반의 음악에 관광객은 환호한다. 만물상회와 과일/야채/생선장수의 외침에 가던 발걸음이 멈추고 “ 와 진짜같다! 싸다싸!” 책보(보자기)속에 도시락을 넣고 달리는 등굣길에도 눈요기했던 문방구 과자들이 때론 공부시간에도 어른거린다. 소풍이나 운동회때만 맛 볼수 있었던 달콤한 사탕들. 난로 위 켜켜이 쌓인 양은도시락에서 밥 타는 냄새가 솔솔 풍길 것 같은 교실. 그때는 토요일에도 학교갔구나!! 광장 담벼락에 낙서도 끄적여보고 돈 없어 못 보던 서커스단의 공연도 틈새로 구경한다. 소독차 연기에 아무것이 안 보여도 뒷꽁무니 따라 골목길 누비던 어린이들. 옛 물건으로 보는 무안의 이모저모 공간엔 무안의 지형 및 인구통계. 관광지와 축제 그리고 무안의 의식주가 소개된다. 목화재배 적합지였던 무안을 면성면이라 불렀던 적이 있다. 목화로 실을 만들어 옷감을 직조하기까지의 과정을 보면 농한기때 찰깍찰깍 베틀에 앉아 베짜신 친정엄마가 생각난다. 분청과 옹기로 그릇을 만들고 무안의 황토땅과 갯벌의 무한한 식재료는 남도음식을 풍성하고 맛깊게 채워줬다. 전원이 없는 냉장고와 가마. “우리집도 이런 것이 있었는디, 어따 버렸는디 모르겄어” 라며 2층농을 가르킨다. 자전거를 타고 옛추억의 골목길을 달려본다. 개방형 수장고엔 기증자에 대한 소개와 전시된 물품들을 검색해 볼 수 있는 시스템이 갖추어져있다. 실내전시관을 관람한 후 야외전시실에서 아이들과 다양한 놀이등을 체험해보고 전시관뒤 낮은 산책로도 걷고 태조 왕건과 관련된 몽탄과 파군교 이야기. 지난해 개통한 영산강 일주도로. 유채꽃 만발했던 식영정옆 영산강 둔치엔 가을꽃 코스모스가 만발하다. 분청자기 전시관. 밀리터리 테마파크. 가까운 승달산아래 법천사와 목우암을 계획해보시며 내고장 관광지에 관심도는 쑥쑥 올라갈 것 같다. 3. 초의선사 탄생지 때이른 봄기운이 봉수산자락을 온기로 채울 땐 초의선사 탄생지 곳곳이 매화꽃으로 물들기 시작하고 한여름 폭염이 지나고 서늘한 기운이 산자락을 감쌀 땐 하얀 차꽃망울이 황금꽃술을 내보이기 시작하고 지난해 꽃이 진 후 맺은 열매는 도글도글하며 촉감 부드러운 씨앗을 떨구고 있다. 스님께선 1786년 정조 10년 음력 4월5일. 이곳에서 출생하시고 해남 대흥사의 일지암에서 1866년 고종3년 음력 8월2일 81세로 열반하시기까지 조선후기 호남의 명사찰 대흥사의 13대 대종사로 또 명맥만 유지하던 차 문화를 중흥시킨 차의 중흥조로 시/서/화로 조선후기 당대의 문사 다산/추사/소치등과 교류하신 스님의 탄생지는 무안군 삼향읍 왕산리이다. 서해안 고속도로를 경계로 무안/목포이고 오른쪽 시계방향으로 유달산. 목포대교. 신안군 압해대교가 있고 왼쪽 11시 방향엔 전남도청이 있다. 206m 봉수산은 유달산 봉수와 청계면 도대봉수의 중간 봉수대이며 산자락 15,000여평에 탄생지가 조성되어있고 이곳은 물 위에 떠 있는 한 송이 연꽃모양을 한 ‘연화부수형’의 길지이다. 스님께선 15세에 나주 운흥사로 출가하셨고 해남 대흥사에서 구족계를 받으셨으며 평생을 대흥사에서 주석하셨다. 강진에 유배와 계신 다산 정약용에게서 유학과 시문. 그리고 차에 관한 부분을 배웠다. 다산의 제자인 이시헌의 부친이자 백운동의 4대 동주인 이덕휘의 별서인 월출산 백운동에 다녀온 후 다산은 초의에게 백운동도와 다산초당도를 그리게하고 12승경마다 함께 시를 짓고 발문을 써서 이덕휘에게 보낸 것이 유명한 백운첩이다. 담양 소쇄원. 완도 보길도 세연정과 더불어 백운동은 호남의 3대 정원이다. 다산 아들과의 교류는 추사 김정희와의 만남등으로 이어지고 추사와는 평생 지란지교의 우정을 이어간다. 일지암을 중건하여 이후 일생을 이곳에서 차를 연구하고 시를 쓰고 불사에도 정진하며 대흥사의 큰스님으로 많은 분들께 큰 깨달음을 얻도록 하였다. 중국의 만보전서에서 채록한 다신전을 펴내 차를 알고자 하는 사람들의 지침서가 되게 하였고 진도의 소치 허련이 그림 공부를 하러 찾아오기도 하였다. 차를 예찬하는 동다송을 지었고 큰 깨달음이 높은 곳에 이르러 많은 사람을 옳은길로 계도하여 헌종임금으로부터 <대각등계보제존자>라는 사호를 받았다. 대각문은 큰 깨달음을 얻는 뜻으로 왕릉. 사당. 서원등을 들어갈 땐 오른쪽(동문)으로 들어가고 나올 때는 왼쪽(서문)으로 나오며 중앙의 문은 왕이나 신만이 다니는 문이다. 대각문을 지나면 항상 푸르름을 지닌 차나무가 있다. 삼국유사에 따르면 가락국 김수로 왕의 왕비가 된 아유타국의 허황옥 공주가 종자를 가져와서 김해의 백월산에 있는 죽림내에 심었다고 하고, 삼국사기에는 828년(흥덕왕 3)에 대렴(大廉)이 당나라에서 종자를 들여와 지리산에 심었다고 한다. 이 두 기록을 근거로 하동군 화개면 일대를 ‘우리나라 차 시배지’로 공인하였다. 차는 난석이고 골짜기에서 자라는 것을 으뜸으로 여겼고 차나무의 특성이 직근이라 결혼하는 딸에게 그 가문에서 잘 살라는 뜻으로 함 속에 차 씨를 넣어 보냈던 풍습도 있었고 늦가을에 꽃을 피우며 1년 전 열매와 만나는 ‘실화상봉수’다. 차는 고려시대때는 음다풍속이 활발하였지만 조선시대때는 승유억불정책도 차문화가 쇠퇴하게 된 원인이 되었다. 차는 감기나 몸살. 배앓이등에는 약처럼 쓰였고 먼길을 떠날때는 꼭 소지하는 비상약품이라 할 수 있었다. 약간 가파른 길을 오르면 스님의 동상이 있고 스님께 차를 받고 감사의 뜻으로 써주신 차를 마시며 선의 경지에 든다 라는 추사의<茗禪명선>은 스님의 차와선은 똑같다는 다선일여(茶禪一如)의 의미를 담고 있다. 추사의 현존하는 글씨 중 가장 큰 작품이며 진본은 간송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57,8/115,2) 추사체를 완성하신 추사의 글씨는 안타깝게 국보는 없지만 추사께서 그린 ‘세한도’는 국보 180호다. 세한도는 제자인 역관 이상적에게 1844년 제주유배시 그려준 그림으로 그의 성품을 소나무와 잣나무의 지조에 비유하여 ‘세한연후 지송백지후조야 歲寒然後 知松栢之後凋也’ ‘공자’의 ‘날씨가 추워진 뒤에야 소나무와 잣나무가 늦게 시듦을 알 수 있는 것이다’라는 세한도를 답례로 그려줬다. 일지암초당은 39세에 지어 40여년간 독처지관(獨處止觀)하면서 저술을 하고 차를 연구했던 곳으로 초의선사 탄생지에 있는 일지암은 해남 대흥사, 서울 태평양박물관, 부산여대 박물관에 이어 국내에서 4번째로 전국 茶人들에 의하여 복원된 것으로 초가형 정면 1칸이며 주련엔 동다송이 새겨있다. 일지란 당나라의 시승 한산의 시에 “뱁새란 언제나 한마음이기 때문에 나무 끝 한 가지에 살아도 편안하다”라는 구절과 ‘뱁새는 일생동안 한 곳에 작을 깃을 틀고 잔다’라는 의미가 있다. 5,5평 초가 한 칸을 지어 독처지관하며 선과 차. 학문과 시를 집대성 한 곳으로 조선후기 차 문화의 중흥조가 되셨고 추사 김정희. 소치 허련등을 통한 호남문화의 산실이 되기도 했던 곳이다. 일지암의 복원은 한국현대 차 문화의 제 2의 중흥으로 연결되었다고 볼 수 있다. 차 관련 사업이 기지개를 켰을 뿐만 아니라 초의문화제를 개최하면서 한국의 다인들을 한 곳에 결집시켜 스님을 현대인들의 품속으로 되돌려놓은 기폭제가 되었고 차 문화의 보급이 급속하게 이루어졌다. 그런 점에서 볼 때 일지암은 스님이 생존해 계셨던 조선후기 뿐만 아니라 한국 현대 차문화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이다. 스님의 호인 초의는 고려말 야운선사의 자경문 가운데 ‘풀뿌리와 나무열매로 주린 창자를 달래고 송라와 풀 옷으로 몸뚱이를 가린다’라는 설과 ‘굴을 파서 즐겨 살며 나무를 얽어매어 집을 삼고 나무 열매를 먹으며 풀 옷을 입는다’ 라는 두 가지 설이 있다. 기념관 입구에는 스님의 제자 소치가 그리신 스님의 영정이 중앙에 있고 선사의 생애와 사상, 업적과 활동상황을 살펴 볼 수 있는 곳으로 저서 동다송. 다신전. 일지암 문집과 일지암시고. 초의집 상하권. 추사의 완당전집과 탁본집. 영정과 그림. 작품(다산초당도. 백운동도. 제16라한도등), 사상(詩, 茶, 禪) 등 눈에 볼 수 있도록 전시되었고 초의선사 일대기를 VTR을 통해 볼 수 있다. 1999년 건립된 다성사는 성상은 선사의 영정을 보고 그대로 재현하였고 탄생일인 음력 4월 5일과 열반하신 음력 8월2일 차를 봉헌하며 차를 하시는 분들께선 손수 빗은 좋은 차를 스님께 헌다 의식을 하는 공간이며 탄생지의 첫 번째 건물이다 조선차역사 박물관은 조선시대 사람들이 사용하던 차 도구및 도서를 전시한 곳으로 조선시대의 차 문화를 알 수 있도록 연대표로 소개하고 스님의 행다법을 동영상으로 볼 수 있도록 하였는데 특히 문헌에 나타나는 차의 종류와 명칭. 초의선사와 추사와의 차 문화 교류를 상세히 확인 할 수 있도록 했으며 동다송을 저술한 52세때를 기념하여 52평이다. 초의의 차 철학은 명선으로 다도와 참선을 수행한다는 뜻으로 차로서는 몸가짐을 다스리고 선으로는 깨달음을 얻는다는 뜻이다. 초의선사 세수 81세에 맞춰 81평으로 지은 목조건물로 지은 초의선원은 숫자와 수리를 맞춰서 건물을 설계하였다.. 바깥의 기둥은 15세 출가 때 나이 15자이고 안 기둥은 득도 때 19자. 도리까지는 다산선생을 만나 유학을 공부한 24자이고 출입문은 승려나이인 65짝이며 2층 창호는 헌종으로부터{ 대각등계보제존자 초의 대선사}라는 사호를 하사받은 55짝이며 전통한옥 건축물로는 최초로 특허청에 특허(제 10-0954856호)등록되어 있다. 탄생 222주년을 기념한 보제루의 웅장함과 용마루끝 장식기와는 망새라고도 하며 화재예방하는 벽사의 기능과 건물을 장엄하고 웅장하게 보이는 장식물로 사용되었는데 삼국시대 조성된 경주 황룡사지에서 출토된 치미를 축소한 것으로 의미가 크다. 추사와 초의가 문사들과 어울려 시문을 나눴던 용호백로정 대청마루에서 지저귀는 새소리에 귀를 열고 시심에 젖어보는건 어떨까? 봉수산은 1월1일 해맞이 행사를 했던 곳이며 등산로를 따라 30여분 올라가면 무안, 목포, 신안의 멋진 풍광을 감상할 수 있다. 생가. 금오초당. 시다원. 세심원등의 크고 작은 건물등에 대한 설명은 지면상 제외되었다 초의탄생지 돌아본 후 개관 10년을 맞은 오승우군립미술관에 들려 노화백의 수준 높은 작품과 국제수묵비엔날레 기념전시인 상상적기표 – 선(線)으로 부터를 감상하고 가을철 특별행사등도 열릴 예정이니 관심 가져 참여해 보는 일도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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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악갤러리> 17호, 18호, 김문호 도예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