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특집 뉴스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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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황새광택이 나는 오묘한 깃 색의 마술사 먹황새 예전엔 텃새였으나 지금은 철새로 오학 혹은 오관으로 불리기도 분류 : 척추동물 > 조강 > 황새목 > 황새과 학명 : Ciconia nigra 천연기념물 : 제200호 멸종위기 야생생물Ⅱ급, 국가적색목록 위기(EN)등급 조강 황새목 황새과에 속하는 척추동물이다. 학명은 ‘Ciconia nigra’이다. 배와 옆구리, 아래꼬리 등을 제외한 몸이 온통 검은색을 띠는 황새이기 때문에 ‘먹황새’라 한다. 몸이 검어서 오학 또는 오관 등으로 불리기도 한다. 1968년 천연기념물 제200호로 지정되었다. 더불어 멸종위기 야생생물 2급이며 국가적색목록 위기(EN)등급 이다. 크기는 약 90cm~98cm이며 무게는 약 2.8~3kg로 황새보다는 약간 작은 황새과의 한 종(種)이다. 머리, 목, 등, 허리, 꼬리, 가슴날개까지는 초록색, 등의 광택이 나는 검은색이며 배, 옆구리,아래꼬리덮깃은 흰색이다. 날개의 아래쪽은 날개깃이 검은색, 아래날개덮깃은 흰색을 띤다. 어린 새는 부리, 발, 눈앞, 눈 주위는 붉은색이지만 전체적으로 흐린 갈색 빛이 돌며 광택이 없다. 원산지는 아프리카와 러시아, 중국이고, 주로 유라시아와 아프리카에 분포하며 습지나 논, 하천, 키가 큰 울창한 침엽수림, 혼효림, 침엽수림 내의 물이 고인 곳, 임야의 공지, 숲으로 덮인 산골짜기와 산림의 개천가, 한대, 온대 사바나 등에 서식한다. 생태활동을 살펴보면 먹이로는 작은 물고기나 개구리, 곤충류, 갑각류 등을 주로 잡아먹으며 하천 습지나 저수지, 댐 등에서 서식 관찰되고 있다. 때에는 단독 또는 1쌍씩 행동한다. 번식할 때에는 큰 나뭇가지나 바위절벽에서 하는데, 작은 나뭇가지로 둥지를 짓고 한배에 약 3~5개의 알을 낳는다. 산란할 때에는 이틀 간격으로 산란하고 알을 품는 일수는 약 35일, 육추(育雛) 기간은 약 60~70일이다. 멸종위기에 처해있는 희귀종으로 현재는 개체를 찾기가 매우 어렵다. 우리나라에서는 함평 대동댐과 제주도, 경상북도 등 국지적으로 볼 수 있다. 예전에는 텃새로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강송리에서 1960년대 후반까지 번식해왔으나 현재는 철새가 되었다. 1970년대 이 후에는 가끔 1-2차례 관찰되었지만 1998년 함평군 대동댐에서 13개체가 관찰되었다. 그 이후로 해마다 함평에 몇 개체씩 도래하여 관찰되고 화순군, 해남군, 낙동강 하류, DMZ등에서 소수 개체들의 관찰이 확인되고 있다. 함평의 군조이기도 한다. 환경 변화에 민감한 먹황새는 아직 우리나라에서 매우 드물게 관찰되고 있지만, 점점 습지와 하천이 개발되고 있어 적합한 서식지가 계속 줄어들어 이들의 서식환경은 매우 열악해져 가고 있다. 이런 저런 이유로 매년 관찰 되던 함평 대동댐에서의 먹황새 관찰을 2020년 겨울에는 보지를 못했다. 올해도 예전 같으면 돌아올 시기가 되었는데 아직은 소식이 없다 몹시 기다려진다. 먹황새의 관찰은 매우 어렵다. 철새라서 돌아오는 장소도 찾기가 힘들지만 설사 장소를 알았다 하더라도 경계가 심하여 가까이 근접하여 관찰 하기란 정말 어렵다 사람이나 기타 위험이 감지되면 일단 높이 날아오르고 선회한 후 산 너머 등으로 멀리 날아가 버리기 때문이다. 아마 몸집이 큰 대형조이다보니 경계거리도 그만큼 더 멀기 때문이리라 생각은 들지만 야속한 생각이 들기가 한 두 번이 아니다. 함평 대동댐으로 먹황새를 보러 가면 다양한 다른 겨울철새들도 덤으로 볼 수 있다. 생태경관보존지역답게 다양한 생물들을 접할 수 있고 댐 주변의 산수역시 한 폭의 절경으로 감상하기에 좋은 곳이다. 코로나로 전국이 사람 많이 모이는 것을 피하고 있는데 한적한 이곳으로 조용한 여행을 선물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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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악 만평> 장백산 화백, 남악신문 21호<남악 만평> 장백산 화백, 남악신문 2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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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악 갤러리> 분청사기 김문호 도예가, 남악신문 21호<남악 갤러리> 분청사기 김문호 도예가, 남악신문 2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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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특집> 한말의병 전쟁과 전남의병(2)<역사 특집> 한말의병 전쟁과 전남의병(2) 박해현 교수(문학박사) <지난 18호에 이어서> 3. 의병 전쟁의 의의 우리 민족은 나라가 어려울 때, 강한 애국심을 표출했다. 임진왜란·병자호란 때, 그리고 국권 피탈 과정에서 전 민족이 목숨을 건 항쟁을 하였다. 이때 분연히 일어난 ‘의병’은 우리 민족을 존망 위기에서 구하였다. 한국 근대 민족운동의 커다란 줄기인 의병 전쟁은 일제의 국권 침략을 저지하기 위한 무력투쟁으로, 무려 20년 넘게 전개되었다. 한말 의병에 대한 최초의 저술인 ‘의병전’을 기술한 역사학자이자 독립운동가인 계봉우(桂奉瑀, 뒤바보)는 “의병이라 하면, 그 명사만으로도 큰 가치가 있다”라고 말했다. 나라와 민족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걸고 싸운 의병들에 대한 평가는 아무 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전남의 중남부 지방을 호령하며 빛나는 호남 의병의 전설이 된 심남일은 “의병은 아침에 적을 치고 저녁에 조국의 산에 묻히는 것”이라 하였다. 얼마나 가슴 뭉클한 이야기인가! 대한민국 임시정부 대통령을 역임한 박은식은 “‘의병’은 조정의 명령을 기다리지 않고 자발적으로 일어난 ‘민군’(民軍)”이라고 정의하였다. 대한제국 시기에 일어난 의병 은 임진왜란 때 나라를 구하기 위해 일어난 의병의 전통을 계승하여 오로지 애국심 하나로 일어선 사람들이다. 한말 의병은 박은식이 그의 ‘한국독립운동지혈사’에서 “무장한 의병 피살자가 10만 명이고, 무고한 촌민으로 학살당한 자는 독립 이후가 아니고서는 그 통계를 구할 수가 없다”라고 기술할 정도로 의병에 가담한 숫자는 그 수를 헤아릴 수 없다.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한 안중근은 그 죄목으로 “국권을 회복하려는 한국 의사(義士)들과 그의 가족 10여만 명을 죽인 일”을 들었다. 일제가 작성한 ‘조선폭도 토벌지’등을 분석한 연구에서도 가장 활발히 의병 활동이 이루어지던 1907년부터 1911년까지 불과 5년 동안 활동한 의병 숫자를 약 14만 정도로 추산하고 있다. 또 다른 일제가 작성한 통계에도 1907년 7월부터 11월까지 불과 5개월 동안 피살된 의병 숫자만 1만5천 명으로 나와 있다. 한말 의병으로 이름을 남긴 의병들은 10만 명이 아니라 적어도 수십만 명은 거뜬히 넘으리라는 추정의 근거들이다. 4. 호남의병과 호남의소 1) 호남의병을 이끈 함평출신 심남일 의병 전쟁의 중심에 ‘호남 의병’이 있다. 임진왜란 때 충무공 이순신 장군은 “만약 호남이 없다면, 이 나라는 존재하지 않았다”(若無湖南 是無國家)라 하여 ‘호남 의병’의 역할을 강조하였다. 한말 의병 때도 마찬가지다. 박은식이 “대체로 각 도의 의병을 말한다면 전라도가 가장 많았다”라고 언급하였다. 호남 의병과 일본 군경의 교전 횟수·교전 의병 수는 1908년 전국 대비 25%와 24.7%를, 1909년 46.6%와 59.9%를 차지하였다. 전국적으로 의병 전쟁의 기세가 주춤하던 1908년 무렵부터 오히려 격렬하게 전개된 호남 의병의 혈전(血戰)은 눈물 없이는 설명되지 않는다. 박평남 등 영암 의병장들이 주도하여 ‘호남창의소’를 조직하였다. 함평 출신 심남일 의병장은 ‘영암 의병’을 비롯한 전남 중남부 지역 의병과 손잡고 ‘호남창의소’를 토대로 ‘호남의소’를 영암 국사봉에서 결성하였다. 스스로 ‘전남 제일 의병장’이라는 평가를 할 정도로 심남일은 빛나는 의병 전쟁을 이어갔다. 국사봉 의병본부는 ‘호남의소’ 사령부였다. 이곳을 거점으로 남평·능주·보성·강진·장흥·해남·나주·무안 등 전남 중·남부지역을 호남 의병들이 장악하였다. 조선을 식민 지배하려는 일본의 계획이 차질을 빚음은 물론이다. 오로지 ‘호남의소’의 뛰어난 활약 때문이다. 2) 호남의소 의병사령부 국사봉과 심남일 고종의 강제 퇴위와 대한제국 군대해산으로 의병들의 항쟁은 독립전쟁으로 발전하였다. 의병들은 산악지대를 배경으로 진지를 구축하며 일본군과 수많은 전투를 전개하였다. 이른바 장기전으로 돌입한 것이다. 전남지역에서는 고광순·김동신(지리산), 김준(어등산), 전해산(석문산), 기삼연(수록산), 양진여(양진여), 안규홍(동소산), 박평남·심남일(영암 국사봉) 등이 험준한 산악을 배경으로 일제와 처절한 독립전쟁을 치렀다. 영암 금정면 소재 국사봉은 험준한 지세와 사방으로 이어지는 요충지여서 일찍부터 의병들의 근거지가 되었다. 한국전쟁 때도 인민군 유격대 전남 제3지구 유치지구사령부가 주둔하여 수많은 인명 피해가 발생한 아픈 역사를 갖고 있다. 국사봉이 한말 의병 전쟁의 ‘성지’(聖地)라 해도 전혀 부끄럽지 않을 정도로 항쟁의 역사를 지녔다. 함평 월야 출신 전남 제일 의병장 심남일이 이곳에 사령부를 두고 청사(靑史)에 아로새긴 수많은 전공을 세웠기에 ‘국사봉’이 한말 호남 의병의 전설로 남아 있다. 하지만 국사봉이 지니는 역사적 위치는 거의 조명되지 않고 있다. 영암군 금정면 청룡리(내산)와 장흥군 유치면을 끼고 있는 국사봉(해발 614m)은 영암에서는 월출산 다음으로 높은 산이다. 원래는 덕룡산(德龍山)이라 불렀으나 산기슭에 있는 쌍계사에서 2명의 국사가 배출되었다 하여 ‘국사봉’이라 불렀다 한다. 이 지역은 백두대간을 따라 남쪽으로 내려온 소백산맥의 하단지역으로써 심산유곡이 중첩된 ‘겹산’으로 국사봉을 중심으로 서쪽으로는 영암 금정면, 북쪽으로는 나주 세지면·다도면·봉황면과 연결되며, 동쪽으로는 화순 도암면·청풍면, 남쪽으로는 장흥 유치면, 강진 옴천면과 연결되는 전략적으로 매우 중요한 곳이었다. 이러한 전략적 이점 때문에 한말 의병전쟁 때 의병들이 이곳을 주요 전략지역으로 삼았다. 국사봉은 이웃하는 산들 가운데 가장 높아 조망이 유리했기 때문에 그곳에 진지를 구축하였다는 당시 의병들의 증언도 있다. 국사봉을 중심으로 화순 춘양에 있는 천태산, 이양의 마두치산, 화순 백아산, 승주 시리봉, 광양 사리봉, 영암 월출산을 거쳐 해남 두륜산, 달마산까지 전남의 주요 지역과 불빛 등 수신호를 통해 연락이 어렵지 않았던 것도 의병들이 이곳을 거점으로 삼았던 또 다른 이유였다. 이 때문에 1907년, 영암 의병이 처음 결성되었을 때 영암 의병들은 이곳 국사봉 자락을 일찍 주목하였다. 곧 박평남 의병장은 국사봉에 거점을 마련하였다. 심남일이 영암으로 이동하였을 때 금정에 있는 유생 양덕관 집에 유숙하였다. 양덕관은 아들 양성일이 이미 의병으로 활동하고 있어서 의병들에게 호의적이었다. 심남일 의병 결성 이전에 국사봉이 영암 의병의 거점임을 살피게 한다. 기록으로 확인되지 않지만, ‘호남창의소’를 처음 결성하였던 양회일·이백래가 이곳 국사봉에서 회합하였다는 얘기도 전혀 사실이 아니라 할 수 없다. 이때 박평남도 이 회의에 참여하였다 한다. 충분히 가능한 일이라 믿는다. 실제로 박평남 의병부대의 ‘좌익대장 겸 결사대장’으로 군사훈련 책임을 맡는 등 실질적으로 부대를 이끌었던 신예교는 매일 이곳 국사봉이 있는 내산과 덕룡산을 오르내리며 의병들을 훈련시키고, 지형을 숙지하였다 한다. 이곳이 영암 의병이 처음 결성되었을 때 주둔지였음을 말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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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안군, 외래어 외국어 남용세종대왕께서 백성들을 위해 1446년 10월 9일 한글을 창제 반포 한지 575 주년이다. 국어기본법 제20조(한글날) ① 정부는 한글의 독창성과 과학성을 국내외에 널리 알리고 범국민적 한글 사랑 의식을 높이기 위하여 매년 10월 9일을 한글날로 정하고, 기념행사를 한다. 아래 내용은 금년 10월 9일 이후 10월 11일부터 10월 28일까지 무안군의 보도자료에 사용한 외래(국)어 단어 및 문장의 일부를 발췌한 내용이다. “캠핑 온라인 예약 등 통합예약시스템, 모바일 결제 모듈 업그레이드, 팝업존, 온택트 스튜디오를 통해 군민의 미디어에 대한 인식개선, 크리에이터 양성 등 라이브 커머스 활성화를 도모, 오프라인 시장, 메이커스페이스 구축∙운영 사업, 스마트팜산업, 업사이클링 화분 만들기, 냅킨공예와 라탄공예, 도시재생 뉴딜 추진, 인프라를 확충, 바리스타&홈카페, 로고젝터는 바닥이나 벽면에 LED를 활용, 농업 트렌드, 리플릿, 무안 캐릭터 조형물, 호박 벌룬과 트릭아트 작품, 게릴라 게임, 할로윈, 강사 POOL, SOC서비스, 퍼포먼스, 메이커스페이스, 문화컨텐츠, 행복충전 플랫폼, 역량강화 컨퍼런스, 액션 블록버스터 영화, MRO사업, 클러스터 조성 , 로드맵, 에너지바우처, 카페테리아 오픈, 아트상품,할로윈 포토존 설치, 오프닝 행사, 이벤트, 플랫폼 무안의 민관협력 복지허브화 역할, 원두 로스팅, 청년 크리에이터와 청년 기업가의 성공스토리, 메뉴 신설, 남악 메이커 스페이스 전문랩, 온택트 박람회, 귀농TIME, 관광지를 테마, 밀리터리 테마파크” 독자 여러분은 이 뜻을 제대로 이해가 되십니까? 고등교육을 받은 사람도 완전히 이해가 쉽지 않은 단어와 내용들이 많다. 더군다나 무안군은 농촌 지역이 대부분으로 고령화 사회로 영어를 배우지 못한 사람들도 많다. 보도자료의 목적이 군민에게 널리 알려 군민의 이해와 군정에 도움이 되게 위함일 것인데 외래(국)어를 널리 알리고 있다. 지방 정부에서 사용하는 행정 용어와 보도자료 등이 군민의 눈높이가 아닌 행정가의 눈높이의 외래(국)어 남용은 목적에도 부합되고 시대에 역행 한다는 지적이다. 부득이 외래(국)어를 사용한다면 한글과 뜻을 같이 표기하여 이해를 도와야 할 것이다. 무안군청 K모 홍보 담당 팀장은 11월 2일부터 시작되는 전 직원대상으로 홍보 교육을 시행하여 개선 할 것이라고 하였다. 10월 14일자 매일일보에 보도된 한류연구소장 한승범…오징어 게임과 한글의 제목으로 게재된 일부 발췌 내용을 보면 “‘오징어 게임’이 전 세계를 홀렸다. 단숨에 지구촌 남녀노소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지난 9월 17일 넷플릭스에서 첫선을 보인 이후 단 17일 만에 전 세계 1억 1100만 가구가 시청했다. 이 말은 역사상 가장 많이 시청한 위대한 드라마라는 뜻이다” “한글은 세상에서 가장 과학적인 문자이다. 한글이 한국인과 대한민국은 매력적으로 만드는 것이다. 한글이 우리의 창의성, 예술성, 근면성, 포용력 등을 만드는 원동력이다. 위대한 학자이자 독서광인 세종대왕의 애민사상이 없었다면 조선은 이미 오래 전에 중국이나 일본에 편입되어 신기루처럼 사라졌을 것이다. 세종대왕이 오늘의 한류를 만든 것이다”라고 하였으며 또한, 다가오는 2030년에는 세게는 위대한 한글 시대를 맞을 것이라고 하였다. (출처 : 매일일보(http://www.m-i.kr) 전 초당대 국문학 교수이자 현재 사단법인 전통문화연구회 이사인 김창진 교수(문학박사)는 오늘날 한국어의 문제는 외국어와 외래어 남용에 있다고 하였다. 정부와 지자체가 한국어를 버리고 외국어와 외래어를 쓰는데 앞장서고 있다. 그래서 탈북민이 한국에 정착하는데 가장 힘든 게 바로 외국어와 외래어라고 한다. 또한 한국 국민도 그걸 이해하지 못하여 국민 소통에 장애가 되고 있다. 외국어와 외래어는 되도록 쉬운 한국어로 번역하여 써야 한다. 그래야 국민 소통이 막힘이 없게 된다. 정부와 지자체는 쉬운 한국어를 쓰는 데 앞장서서 국민 소통에 이바지하여야 한다. 이것이 진정한 한글날의 의의를 살리는 길이라고 하였다. 세계가 요동치고 있는 현재 한류의 세계화는 우수한 한글에서 부터이고 앞으로 세계는 한글이 중심이 되고 한국어가 세계어가 될 날이 머지않은 것이 기정사실화 되고 있다. 따라서, 중앙정부 및 지자체의 행정기관뿐만 아니라 모든 관공서, 공공 기관, 언론 등이 한글과 우리말을 존중하고 한국어를 쓰는 데 앞장서고 세계화에도 노력 해야 할 것이다. 취재:서찬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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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악 갤러리> 분청사기전, 김문호 도예가<남악 갤러리> 분청사기전, 김문호 도예가, 남악신문 2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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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악 만평> 장백산 화백<남악 만평> 남악신문 2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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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악갤러리 19호, 김문호 도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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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악만평 19호, 장백산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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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과 포식자, 삵□ 삵, △ 살쾡이라 부르기도 △ 외래종인 고양이와 달리 한반도 고유종 △ 다른 포유류처럼 자기 영역을 가지고 생활 △ 젖꼭지는 4개로 한 번에 4마리까지 번식 조기석 한국멸종위기야생동물보호협회 무안지회장 분류 : 척색동물문 > 포유강 > 식육목 > 고양이과 > 고양이속 학명 Felis bengalensiseuptilura 멸종위기 야생생물Ⅱ급, 국가적색목록 취약(VU) 식육목 고양이과에 속하는 포유류이다. 털색은 회갈색이며, 회백색 뺨에는 세 줄의 갈색 줄무늬가 있다. 몸 길이는 45~55cm 정도이며, 꼬리는 25~32cm이다. 황갈색의 뚜렷하지 않은 반점이 세로로 배열되어 있다. 고양이처럼 생겼으나 훨씬 크며, 모피의 부정확한 반점이 많은 것이 특징이다. 설치류, 조류 등을 사냥하는 포식자이다. 산림이나 들판, 민가 주변 등에 산다. 제주도와 일부 도서 지역을 제외한 전국에 서식하며, 세계적으로는 러시아, 중국, 시베리아, 일본에 분포한다. . 고양이처럼 생겼으나 모피에 부정확한 반점이 많은 것이 특징이다. 특히 양미간의 흰줄 무늬와 귀 뒤의 반달 모양의 흰 반점으로 고양이와 구분한다. 몸은 비교적 길고 다리는 짧으며 꼬리는 굵고 가로줄이 있다. 꼬리는 머리와 몸통 길이의 절반 정도이며 발톱은 매우 날카로우나 작고 황백색이다. 털의 색깔은 황색 혹은 황갈색이며, 몸에 반점이 배열되어 있다. 흑갈색 무늬 두 줄과 흰색 무늬가 이마에서부터 코 양옆까지 이어져 있다. 사는 곳은 주로 하천 서식지를 선호한다. 먹이는 설치류, 조류, 곤충 등 다양하게 사냥하지만 그중 설치류가 가장 빈번한 먹잇감으로 나타난다. 야행성 동물이며 은신처는 산림, 쓰러진 큰 나무나 바위 틈새, 각종 땅의 구멍 등을 이용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단독 또는 1쌍씩 짝지어 살며 야생동물을 주 먹이로 하나, 마을 주변의 양계장의 닭을 습격하여 막대한 피해를 주기도 한다. ‘살쾡이’라는 이름으로도 불린다. 코에서 이마까지 양측에 백색 띠가 있고, 앞이마에서 목 뒤까지 세로 방향으로 4개의 검은 띠가 있다. 우리나라는 북쪽 지역보다 남쪽 지역으로 갈수록 개체 수가 많다. 이동 거리는 하루에 약 0.5~1㎞이며, 평균 행동권은 1.5~7.5㎢이다. 사는 곳은 구멍이 뚫린 나무나 작은 동굴 또는 나무의 큰 뿌리 아래에 있는 굴을 활용하며, 주로 밤에 활동하는 야행성이지만 낮에도 상당한 활동을 한다. 고양이와 달리 삵은 수영을 잘하고, 배변을 땅에 묻지 않으며, 땅에서뿐만 아니라 나무위에서도 사냥을 한다. 짝짓기는 3월경에 이루어지며, 임신 기간은 65~67일이고 5월경에 2~4마리를 낳는다. 새끼는 암컷과 수컷이 함께 기르며, 새끼를 잃게 되면 암컷은 4~5개월 안에 다시 새끼를 낳는다. 태어난 지 16~20일이 지나면 걸을 수 있으며, 4~5주가 지나면 굴 밖으로 나오고 10~12주가 지나면 사냥을 할 수 있다. 8개월 정도 지나면 성적으로 성숙하며 수명은 15년 정도이다. 삵은 생존력이 강한 동물이지만 남획, 서식지 파괴, 쥐약이나 농약에 의한 먹이 오염 등으로 개체군의 밀도가 급격히 감소하였다. 국내 및 국제적으로 보호 동물로 지정되어 보호받고 있으며, 우리나라는 환경부에서 멸종위기야생생물 Ⅱ급으로 지정하여 보호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