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뉴스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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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 투고> 모두의 오월해마다 오월이 되면 국립5·18민주묘지로 향하는 길가엔 이팝나무 가지마다 하얀 꽃이 만발하여 흐드러지게 피어있다. 하얀 꽃이 무성하게 핀 모습은 마치 쌀밥처럼 보이기도 하며, 1980년 5월 대학생과 시민들, 이웃들이 서로 주먹밥을 나누어 먹으며 신군부에 맞서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으로 가득 찬 뜨거웠던 날들을 떠올리게 하기도 한다. 1972년 10월 유신 이후 이어진 유신독재가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 대통령 피살로 종말을 고한 뒤, 오랜 기간 독재와 억압 속에서 민주주의에 대한 강한 열망을 갖고 있던 많은 사람들은 민주주의가 실현되리라는 희망을 가졌고, 그 열망은 이른바 ‘민주화의 봄’으로 피어난다. 그러나 12.12. 군사반란으로 권력을 장악한 신군부는 민주화와 정치개혁을 갈망하던 국민들의 염원을 무시하고, 오히려 1980년 5월 17일 자정을 기해 비상계엄을 전국으로 확대하며 모든 정치활동의 중지, 집회와 시위 금지, 언론 출판 보도 및 방송의 사전 검열, 각 대학의 휴교령 등의 조치를 강행하였고, 계엄군을 동원해 국회를 무력으로 봉쇄하였다. 이에 맞서 광주의 학생들은 5월 18일 오전, 전남대 정문으로 집결해 ‘비상계엄 해제’등을 외치며 도심으로 진출했고, 공수부대의 무자비한 진압에 분노한 시민들은 자진하여 시민군에 주먹밥 등 음식, 생수, 생필품 등을 제공하며, 다함께 계엄군에 맞서 피 어린 애절한 호소와 저항을 이어갔다. 하지만, 5월 27일 새벽부터 계엄군은 광주시와 전남지역의 통신을 모두 차단하고 전남도청을 완전히 포위한 뒤 총탄을 퍼부어 점령함으로써 열흘간에 걸친 광주 민중의 투쟁은 막을 내렸다. 5·18민주화운동의 과정에서 수많은 희생이 있었으며 불의와 폭력에 맞서 싸운 그들의 숭고한 희생이 있었기에 현재 우리 국민 모두가 민주주의를 누리고 있다. 이처럼 5·18민주화운동은 우리나라 민주주의의 자랑스러운 역사이며 오월 정신은 국민 모두가 ‘당연히’ 계승해야 하는 정신이자, 우리 모두의 자산이다. 이러한 오월정신을 잊지 않고 계승하기 위해 매년 5월이 되면 5·18을 기억하기 위한 5·18민주화운동 중앙기념식을 비롯하여 다양한 행사가 열린다. 우리 지청에서도 5·18민주화운동의 의의와 가치를 국민과 함께 되새기고 오월 정신을 계승하기 위해 ‘모두의 오월, 민주를 그리다!’를 주제로 한 5·18민주문화제를 5월 한 달동안 개최한다. 지난 5월 7일, 목포정명여자중학교 학생 50여 명과 함께한 "목포 오월길 걷기”행사를 시작으로 총 3차례에 걸쳐 3개 중학교 417명의 학생과 함께하는 "민주역사 골든벨”, 5월 22일 14시 국립목포해양대학교에서 5·18연구소 전임교수인 김희송 교수(전남대학교5·18연구소)와 서부원 교사(살레시오 고등학교) 등이 패널로 참여하여 5·18민주화운동의 의의와 가치에 대해 함께 소통하는 "5·18토크 콘서트” 등 다양한 행사를 추진하고 있다. 5·18민주화운동 제44주년을 맞이하여, 과거에 우리 주변의 평범한 사람들이 목숨을 바치고 희생해 찾은 숭고한 민주주의를 오늘날 우리가 누리고 있음을 다시 한 번 상기하고, 5·18민주화운동의 가치를 왜 우리 ‘모두의 오월’로 기억해야 하는지 다시 한 번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전남서부보훈지청 김민식 주무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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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 이여기> 로봇 드림어제 저녁 KBS 9시 뉴스를 시청하는데, ‘미국에서 화염을 내뿜는 로봇 개가 일반인들에게 판매되기 시작했다.’라는 앵커의 멘트가 나왔다. 이어서 ‘업체 측은 잡초를 없애고 눈을 녹이는 데 유용하다고 설명하지만, 총기처럼 규제를 받는 것도 아니어서 무기화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라는 멘트가 이어졌다. 뉴스를 듣고 로봇의 순기능에 대한 기대와 반가움보다는 역기능에 대한 우려와 걱정의 마음이 더 크게 다가왔다. ‘인간을 닮은 금속인형이 움직인다는 것, 그리고 인간에 의해 만들어진 진흙인형이 그 명령에 따른다’ 라는 내용이 로봇이라는 발상을 하게 한 원형이라고 한다. 이러한 신화와 전설에서의 이야기가 SF영화에서 로봇이라는 존재로 등장해 점점 현실화 되고 있는 것이다. 로봇(robot)이란 용어는 체코슬로바키아의 소설가 차페크(Karel Capek)가 1921년 발간한 『R.U.R(Rossum's Universal Robots)』이라는 희곡에서 처음으로 사용되었단다. 로봇의 어원이 체코어의 노동을 의미하는 단어 ‘로보타(robota)’인 만큼, 로봇의 역할은 인간의 노동을 대신 수행하는 데서 찾을 수 있다. 1960년대에 들어서 로봇은 공상의 단계를 넘어 현실로 다가왔다. 최초의 산업용 로봇은 1961년 미국의 엥겔버거(Joseph Engelberger)가 개발한 ‘유니메이트(Unimate)’라는 로봇이다. 이 로봇은 포드자동차에서 금형주조 기계의 주물부품을 하역하는 데 처음으로 사용되었다. 일본의 가와사키중공업은 1968년에 미국의 로봇기술을 도입하여 산업용 로봇을 본격적으로 생산하기 시작했다. 이를 매개로 일본은 로봇을 활용한 공장자동화를 통해 제조업 강국으로 부상할 수 있었다. 로봇은 용도에 따라 산업 현장에서 인간을 대신하여 제품의 조립·검사 등을 담당하는 산업용 로봇, 청소·환자보조·장난감·교육실습 등과 같이 인간 생활에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서비스용 로봇, 우주·심해·원자로 등에서 극한 작업을 수행하거나 전투에 활용하는 특수목적용 로봇으로 구분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1980년대에 산업용 로봇이 개발되기 시작한 이래 1990년대에는 생산공정 자동화 및 부품소재 국산화를 매개로 자동차산업, 가전산업, 반도체산업, 조선산업 등에서 산업용 로봇이 널리 활용되었다. 2000년대에 들어서는 지능형 로봇을 중심으로 로봇산업 자체에 대한 정부의 지원이 본격화되었다. 특히 2004년에는 차세대 성장동력사업 10대 분야의 하나로 지능형 로봇이 선정되어 로봇산업은 우리나라를 대표할 새로운 산업으로 주목받기 시작하였다. 2008년에는 지능형 로봇산업의 지속적 발전을 도모할 목적으로 「지능형 로봇 개발 및 보급 촉진법」이 제정되었다. 우리나라에서 로봇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촉발시킨 것은 휴보(Hubo)라고 할 수 있다. 휴보는 일본의 아시모와 유사한 휴머노이드 로봇으로 2004년에 한국과학기술원 연구팀이 개발한 바 있다. 2008년에는 휴보의 성능을 향상시킨 휴보2의 몸체가 완성되었고, 2012년에는 두발 로봇으로서는 세계에서 세 번째로 달리는 데 성공했다. 휴보의 등장은 우리나라에서 장난감 로봇과 교육용 로봇이 본격적으로 개발되는 촉매제로 작용하기도 했다. 휴보와 함께 로봇에 대한 관심을 집중시킨 것은 로봇청소기였다. 우리나라에 처음 선보인 로봇청소기는 2003년에 스웨덴의 일렉트로룩스가 제작한 ‘트리로바이트’이다. 이후 삼성전자, LG전자, 유진로봇, 마미로봇 등이 로봇청소기 사업에 진출하였고, 2007년 이후에 로봇청소기 시장은 빠른 증가세를 보였다. 최근의 신제품은 외출시 버튼 하나만 누르면 구석구석 자동으로 청소해주며 물걸레질도 할 수 있는 기능까지 추가되어 주부들에게 인기 만점이다. 유명한 SF 작가 아시모프(Isaac Asimov)는 1950년에 발간한 『아이 로봇(I Robot)』에서 로봇의 행동을 규제하는 세 가지 원칙을 제시했다. 첫째, 로봇은 인간에게 해를 끼쳐서는 안 되며, 위험에 처해 있는 인간을 방관해서도 안된다. 둘째, 로봇은 인간의 명령에 반드시 복종해야 한다. 셋째, 첫째와 둘째 원칙을 위배하지 않는 한 로봇은 자기 자신을 보호해야만 한다. 일취월장하는 로봇기술의 발전을 지켜보면서 과연 70여년 전 아시모프가 제시한 로봇의 행동규제 원칙이 지켜질지 고개가 갸우뚱해지는 것은 필자만의 염려가 아닐 것이다. 지난 4월10일 제22대 국회의원 300명이 선출되었다. 진부한 당리당략의 정치를 벗어나 국회와 정부는 지능형 로봇을 비롯한 첨단 먹거리 산업에 대한 법적·제도적 장치를 마련하고 보완하는 데에도 속도감 있게 많은 노력을 기울여 주길 기대해 본다. 아울러 3월부터 반려 로봇과의 얘기를 다룬 《로봇 드림》이라는 영화가 상영되고 있는데 여야의원 오순도순 손잡고 한번 구경가보길 권해본다. 金在珥(동신대학교 명예교수, 공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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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악 칼럼> 4·10 총선의 의미와 대한민국의 미래4·10총선이 야당의 압승으로 끝났다. 야당이 192석, 여당이 108석을 얻었다. 왜 집권 여당이 이렇게 크게 참패했을까? 원인으로 다섯 가지를 들 수 있다. 첫째, 윤석열의 오만·불손한 국정 운영 태도가 국민의 반감을 샀다. 그는 정치 초보자로서 0.7% 차이로 운 좋게 대통령이 됐다. 겸손하고 신중하게 처신했어야 마땅하다. 좋은 대통령이 되기 위해 역대 대통령을 공부했어야 한다. 또 비서실장에 노련한 정치인을 두어, 그와 의논하여 정치를 했어야 한다. 그러나 윤 대통령은 겸손하지 못하고 독단, 불통, 오만에 빠졌다. 이것이 총선 참패의 가장 큰 원인이다. 윤석열은 야당 대표도 안 만났다. 기자회견도 안 했다. 비서실장엔 정치를 모르는 공무원 출신 김대기, 이관섭을 계속 앉혔다. 130명이 죽은 이태원 사고에 행안부 장관의 책임을 묻지 않아 민심을 무시했다. 나경원, 안철수, 한동훈을 계속해서 내쳤다. 간호법을 거부권 행사하여 간호사들과 척졌다. 홍범도 장군을 공격해서 광복회와 척졌다. 해병대 채 상병 사건에 개입해서 해병대와 척졌다. 수사 중인 이종섭을 호주대사로 내보냈다. 윤석열이 이렇게 오만방자하게 정치하니 국민은 윤석열을 혐오하게 되었다. 둘째, 의대 증원 2000명 발표가 결정적인 패착이다. 의대 정원을 늘리려면 의료계의 협조를 구했어야 한다. 토론회도, 공청회도 열었어야 한다. 증원 숫자도 타협했어야 한다. 그렇게 해서 의료개혁 반발을 최소화했어야 한다. 윤 대통령은 아무 절차 없이, 선거 두 달 전 뜬금없이 의대를 2000명 증원한다고 발표했다. "무식하면 용감하다.”를 보여준 것이다. 역대 대통령들은 국정혼란을 불러올 문제는 신중히 다뤘다. 특히 선거 전엔 더욱 조심했다. 그러나 윤석열은 선거를 앞두고 자폭테러를 감행했다. 너무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처음에는 국민 대다수가 의료개혁를 지지했다. 그러나 전공의(수련의)들은 환자를 버리고 병원을 떠나버렸다. 윤 대통령은 졸속으로 일만 저질러놓고 의사들이 단체로 불법 파업하자, 수습하지 못하고 절절맸다. 의료 공백과 혼란이 2개월 넘게 길어지면서, 국민은 무능한 정권에 등을 돌리게 됐다. 그 와중에 윤 대통령은 선거 9일 전 국민 앞에 나와 한 시간 설교하는 만용까지 부렸다. 의료대란은 이번 총선에서 의사와 그 가족은 물론, 전 유권자에게 엄청난 악영향을 끼쳤다. 덜컥 일을 저질러놓고 수습은 못하는 윤석열 대통령의 독단·불통·무능이 국민에게 크게 부각되었다. 윤 대통령의 독재를 심판하자는 ‘정권 심판론’이 다른 모든 이슈를 덮어버렸다. 이걸로 총선은 사실상 끝났다. 셋째, 대파 사건이다. 윤 대통령이 마트에 가서 대파의 가격을 잘못 말했다. 현재 국민은 경제와 민생을 가장 심각하게 느낀다. 그런데 윤 대통령이 대파 가격을 잘못 말하면서, 윤 대통령은 경제와 민생에 관심도 없고 현실 파악도 못하는 무능한 대통령이라는 인상을 국민에게 주었다. 야당들은 대파를 유세장과 선거장에까지 들고 가서, 윤 대통령을 경제에 무능한 대통령으로 선동했다. 넷째, 대통령이 부인 김건희 여사를 잘 관리하지 못했다. 김 여사가 디올 백을 받은 사건으로 윤 대통령은 비난받았다. 그래서 KBS 인터뷰 형식으로 윤 대통령은 간접 사과를 했다. 그러나 그때 말한 제2 부속실과 특별감찰관 설치 약속을 대통령은 선거 때까지 지키지 않았다. 약속위반에 국민은 분노했다. 다섯째, 한동훈도 잘못이 있다. 국힘은 처음엔 잘했다. 그러나 윤 대통령의 실책으로 분위기가 정권 심판으로 급변했다. 이때 한동훈은 그 원인인 의료대란 수습에 적극 나섰어야 한다. 한동훈이 그걸 방관해버린 게 치명적 실수였다. 아무리 열심히 해도 패배 분위기를 되돌릴 순 없었다. 또 민경욱, 도태우, 장예찬을 공천 안 하고 비례대표에서 공천 실패한 것도 그의 실책이다. 그렇지만, 이번 총선에서 ‘정권 심판론’은 잘못된 것이다. 왜냐하면 이번 선거는 국회의원 선거지 대통령선거가 아니기 때문이다. 즉 국회를 심판하는 선거다. 지난 21대 국회 때 제1당이었던 민주당이 잘했는지 못했는지를 심판해야 하는 선거인 것이다. 21대 국회에서 민주당이 국회를 엉망으로 만들었기에 민주당을 심판했어야 옳다. 대통령은 여당이 소수당이라 법이 뒷받침 안 돼, 제대로 일할 수조차 없었다. 그런 대통령을 심판하자는 건 잘못된 생각이다. 민주당은 21대 국회를 이재명을 구속시키지 않게 막는 ‘방탄 국회’로 만들었다. 그리고 검수완박법, 공수처법 등과 같은 악법들만 만들었다. 게다가 이번 선거 공천은 이재명 개인 맘대로 했다. 그래서 야당 후보 중에는 양문석, 김준혁과 같은 막말하는 저질 정치꾼, 조국, 황운하 같은 범법자들도 많았다. 따라서 판단력이 올바른 국민이라면 마땅히 민주당과 야당을 심판하고 응징했어야 옳았다, 그러나 이번 총선의 의미를 제대로 아는 수준 높은 유권자가 적었다. 게다가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국민의 반감이 워낙 커서 ‘정권 심판론’이 다른 모든 이슈를 덮어버리고 말았다. 국힘 후보들은 대통령 때문에 졌다. 집권 여당이 져서, 윤석열은 식물대통령이 되었다. 국힘이 지탱해온 자유 민주주의가 위협을 받게 되었다. 또 국힘이 추진해온 3대 개혁은 불가능해졌다. 정부가 안정돼야 힘 있게 경제를 살릴 수 있는데 불가능하게 됐다. 정부가 제대로 일할 수 없어, 앞으로 경제가 훨씬 어려워질 것을 국민은 각오해야 한다. 한편 민주당은 이제 모든 법을 다 결정할 수 있는 국회의 절대 권력자가 되었다. 앞으로 3년간 대한민국을 살리고 죽이는 것은 민주당 책임이다. 실질적인 집권 여당으로서 민주당이 윤석열 정부 공격에만 힘쓰지 말기 바란다. 경제 발전과 민생을 위해 필요한 법을 제정하는 건전한 노력을 해주기 바란다. 金昌辰(전 초당대 교수, 문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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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악 칼럼> 4·10 총선의 의미와 대한민국의 미래4·10총선이 야당의 압승으로 끝났다. 야당이 192석, 여당이 108석을 얻었다. 왜 집권 여당이 이렇게 크게 참패했을까? 원인으로 다섯 가지를 들 수 있다. 첫째, 윤석열의 오만·불손한 국정 운영 태도가 국민의 반감을 샀다. 그는 정치 초보자로서 0.7% 차이로 운 좋게 대통령이 됐다. 겸손하고 신중하게 처신했어야 마땅하다. 좋은 대통령이 되기 위해 역대 대통령을 공부했어야 한다. 또 비서실장에 노련한 정치인을 두어, 그와 의논하여 정치를 했어야 한다. 그러나 윤 대통령은 겸손하지 못하고 독단, 불통, 오만에 빠졌다. 이것이 총선 참패의 가장 큰 원인이다. 윤석열은 야당 대표도 안 만났다. 기자회견도 안 했다. 비서실장엔 정치를 모르는 공무원 출신 김대기, 이관섭을 계속 앉혔다. 130명이 죽은 이태원 사고에 행안부 장관의 책임을 묻지 않아 민심을 무시했다. 나경원, 안철수, 한동훈을 계속해서 내쳤다. 간호법을 거부권 행사하여 간호사들과 척졌다. 홍범도 장군을 공격해서 광복회와 척졌다. 해병대 채 상병 사건에 개입해서 해병대와 척졌다. 수사 중인 이종섭을 호주대사로 내보냈다. 윤석열이 이렇게 오만방자하게 정치하니 국민은 윤석열을 혐오하게 되었다. 둘째, 의대 증원 2000명 발표가 결정적인 패착이다. 의대 정원을 늘리려면 의료계의 협조를 구했어야 한다. 토론회도, 공청회도 열었어야 한다. 증원 숫자도 타협했어야 한다. 그렇게 해서 의료개혁 반발을 최소화했어야 한다. 윤 대통령은 아무 절차 없이, 선거 두 달 전 뜬금없이 의대를 2000명 증원한다고 발표했다. "무식하면 용감하다.”를 보여준 것이다. 역대 대통령들은 국정혼란을 불러올 문제는 신중히 다뤘다. 특히 선거 전엔 더욱 조심했다. 그러나 윤석열은 선거를 앞두고 자폭테러를 감행했다. 너무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처음에는 국민 대다수가 의료개혁를 지지했다. 그러나 전공의(수련의)들은 환자를 버리고 병원을 떠나버렸다. 윤 대통령은 졸속으로 일만 저질러놓고 의사들이 단체로 불법 파업하자, 수습하지 못하고 절절맸다. 의료 공백과 혼란이 2개월 넘게 길어지면서, 국민은 무능한 정권에 등을 돌리게 됐다. 그 와중에 윤 대통령은 선거 9일 전 국민 앞에 나와 한 시간 설교하는 만용까지 부렸다. 의료대란은 이번 총선에서 의사와 그 가족은 물론, 전 유권자에게 엄청난 악영향을 끼쳤다. 덜컥 일을 저질러놓고 수습은 못하는 윤석열 대통령의 독단·불통·무능이 국민에게 크게 부각되었다. 윤 대통령의 독재를 심판하자는 ‘정권 심판론’이 다른 모든 이슈를 덮어버렸다. 이걸로 총선은 사실상 끝났다. 셋째, 대파 사건이다. 윤 대통령이 마트에 가서 대파의 가격을 잘못 말했다. 현재 국민은 경제와 민생을 가장 심각하게 느낀다. 그런데 윤 대통령이 대파 가격을 잘못 말하면서, 윤 대통령은 경제와 민생에 관심도 없고 현실 파악도 못하는 무능한 대통령이라는 인상을 국민에게 주었다. 야당들은 대파를 유세장과 선거장에까지 들고 가서, 윤 대통령을 경제에 무능한 대통령으로 선동했다. 넷째, 대통령이 부인 김건희 여사를 잘 관리하지 못했다. 김 여사가 디올 백을 받은 사건으로 윤 대통령은 비난받았다. 그래서 KBS 인터뷰 형식으로 윤 대통령은 간접 사과를 했다. 그러나 그때 말한 제2 부속실과 특별감찰관 설치 약속을 대통령은 선거 때까지 지키지 않았다. 약속위반에 국민은 분노했다. 다섯째, 한동훈도 잘못이 있다. 국힘은 처음엔 잘했다. 그러나 윤 대통령의 실책으로 분위기가 정권 심판으로 급변했다. 이때 한동훈은 그 원인인 의료대란 수습에 적극 나섰어야 한다. 한동훈이 그걸 방관해버린 게 치명적 실수였다. 아무리 열심히 해도 패배 분위기를 되돌릴 순 없었다. 또 민경욱, 도태우, 장예찬을 공천 안 하고 비례대표에서 공천 실패한 것도 그의 실책이다. 그렇지만, 이번 총선에서 ‘정권 심판론’은 잘못된 것이다. 왜냐하면 이번 선거는 국회의원 선거지 대통령선거가 아니기 때문이다. 즉 국회를 심판하는 선거다. 지난 21대 국회 때 제1당이었던 민주당이 잘했는지 못했는지를 심판해야 하는 선거인 것이다. 21대 국회에서 민주당이 국회를 엉망으로 만들었기에 민주당을 심판했어야 옳다. 대통령은 여당이 소수당이라 법이 뒷받침 안 돼, 제대로 일할 수조차 없었다. 그런 대통령을 심판하자는 건 잘못된 생각이다. 민주당은 21대 국회를 이재명을 구속시키지 않게 막는 ‘방탄 국회’로 만들었다. 그리고 검수완박법, 공수처법 등과 같은 악법들만 만들었다. 게다가 이번 선거 공천은 이재명 개인 맘대로 했다. 그래서 야당 후보 중에는 양문석, 김준혁과 같은 막말하는 저질 정치꾼, 조국, 황운하 같은 범법자들도 많았다. 따라서 판단력이 올바른 국민이라면 마땅히 민주당과 야당을 심판하고 응징했어야 옳았다, 그러나 이번 총선의 의미를 제대로 아는 수준 높은 유권자가 적었다. 게다가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국민의 반감이 워낙 커서 ‘정권 심판론’이 다른 모든 이슈를 덮어버리고 말았다. 국힘 후보들은 대통령 때문에 졌다. 집권 여당이 져서, 윤석열은 식물대통령이 되었다. 국힘이 지탱해온 자유 민주주의가 위협을 받게 되었다. 또 국힘이 추진해온 3대 개혁은 불가능해졌다. 정부가 안정돼야 힘 있게 경제를 살릴 수 있는데 불가능하게 됐다. 정부가 제대로 일할 수 없어, 앞으로 경제가 훨씬 어려워질 것을 국민은 각오해야 한다. 한편 민주당은 이제 모든 법을 다 결정할 수 있는 국회의 절대 권력자가 되었다. 앞으로 3년간 대한민국을 살리고 죽이는 것은 민주당 책임이다. 실질적인 집권 여당으로서 민주당이 윤석열 정부 공격에만 힘쓰지 말기 바란다. 경제 발전과 민생을 위해 필요한 법을 제정하는 건전한 노력을 해주기 바란다. 金昌辰. 전 초당대 교수. 문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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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 투고> 4.19 혁명을 기억하며지난 4월 10일 제22대 국회의원 총 선거가 있었다. 선거 관련해서 여러 가지 이슈가 있었는데 후보의 당선만큼 중요하게 다뤄진 부분이 공정한 선거와 관련한 내용이었다. 뉴스에서는 사전투표함 봉인지 훼손, 투표소를 감시하는 불법 카메라가 발견되었다는 내용 등이 보도되었고 국민들은 그러한 보도에 반응하며 공정한 선거에 대해 우려를 나타냈다. 선거가 공정하게 진행되는 지를 바라보는 의심이 너무 지나쳐서는 안 되겠지만, 한편으로는 공정한 선거에 대한 열망과 부정선거에 대한 거부감, 그리고 그것들이 바깥으로 표현될 수 있다는 건 우리 사회가 그만큼 건강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방증이 아닐까 싶다. 마침 총선 이후 9일 뒤에 이러한 사회가 존재할 수 있게 만들었던 최초의 사건이 64주년을 맞는다. 바로 4‧19혁명이다. 대한민국 민주주의 역사의 첫 승리로 기록되어 국가의 주권이 국민에게 있다는 것을 알려준 역사적 사건의 시작은 부정선거에 대한 항거에서부터였다. 1960년 3월 15일 제 4대 정·부통령을 선출하기 위해 실시된 선거에서 지금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선거라고 부르기도 민망한 부정선거가 이뤄졌다. 반공개투표, 야당참관인 축출, 투표함 바꿔치기, 득표수 조작 발표 등, 당시의 여당이었던 자유당은 이승만의 사후에도 권력을 이어나가기 위해 이러한 부정선거를 자행하였다. 얼마나 열심히 조작했는지 일부 지역에서는 자유당의 부통령 후보인 이기붕의 득표율이 전체 유권자의 수를 넘긴 115%를 달성하는 웃지 못할 일도 벌어졌다. 대한민국 국민들은 바보가 아니었다. 선거 전부터 정치깡패 동원, 민주당 후보 유세 방해 등으로 자유당이 계획한 부정선거의 진상이 드러나고 있었고 2월 28일 고등학생들이 ‘독재정치, 부정부패를 물리치자’는 구호를 앞세우며 들고 일어난 대구 학생의거를 비롯하여 3월 15일 선거 당일 광주와 마산에서 부정선거를 규탄하는 시위가 일어났다. 1차 마산의거에서 사망한 김주열 열사의 시신이 처참한 몰골로 발견된 것이 도화선이 되어 시위가 전국으로 확산되었고 4월 18일 고려대학교 학생들의 시위 도중 습격을 받은 사실이 알려지며 항거의 불길은 중고등학생들에서 대학생으로 옮겨갔다. 4월 19일 서울의 대학생을 비롯한 전국의 시민과 학생들이 총궐기하여 ‘이승만 하야와 독재정권 타도’를 외쳤다. 이승만 정권은 총칼을 앞세운 무력으로 시민들을 탄압하고 비상계엄령까지 선포했으나, 전국적으로 번진 시위의 불길은 막을 수 없었고, 4월 25일 대학교수 300여명이 이승만의 사임을 요구하는 시국선언을 발표하며 거리 행진을 하기에 이르러, 결국 이승만은 사임 후 하와이로 망명을 떠나게 되고 장면내각이 들어서면서 4.19 혁명은 막을 내린다. ‘민주주의는 피를 먹고 자란다’는 말이 있다. 잔인한 말이지만 실제로 역사가 걸어온 길이 그 사실을 증명하고 있다. 우리나라 헌법 전문은 "…불의에 항거한 4.19민주이념을 계승하고…”로 시작한다. 3.15 부정선거에 항거한 4.19는 우리나라 민주화의 기본원리를 상징하는 역사적 사건으로 남아 이후 많은 민주주의 운동의 근간이 되었으며, 오늘날 공정한 선거가 의심되는 보도 하나하나에 분노하고 그에 반응하는 사회가 될 수 있도록 만들었다. 우리가 지금은 당연하게 생각하는 것들은 독재정권의 탄압에 맞선 영령들의 피와 희생 위에 세워진 것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다가오는 4월 19일 이 땅의 민주주의를 바로 세우기 위해 불의에 항거한 영령들의 희생을 기억하고 감사하는 하루가 되기를 바란다. 전남서부보훈지청 보훈과 김규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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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달산 산책로> 봄날, 목포대 정류장에서화려한 4월 무안의 봄날… 요즘 계절은 애당초에도 추운 겨울은 없었다는 듯이 벚꽃 나무의 가지 사이로 따뜻한 미풍이 감돌며 완연한 봄날이다. 머리 위로 휘날리는 벚꽃들은 화창한 봄날의 선물인 양 한사코 이마의 애교머리를 흘러내리며 간지럼을 메긴다. 누가 말했던가, 봄은 젊은 사람들의 것이라고. 그런데 말이다. 나이가 들면 들수록 봄날이 절실하게 그리워지는 것이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이 화려한 봄맞이가 과연 몇 번이나 내게 허락되어 있는지 결코 장담할 수 없는 애달픔이 마음 저변에 깔려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매주 금요일이 되면 목포 문학관에 시 창작 강의를 들으러 가기 위해 목포대 앞 플랫폼에서 목포로 가는 200번 버스를 기다린다. 오늘은 한발 늦어 전광판에는 앞으로 20분 후에 200번 버스가 도착할 예정이란다. 나는 아직 시간의 여유가 있고 포근한 봄날이라 아무 걱정도 없이 차분하게 다음 차를 기다리다 보니 옛날 생각이 아련하게 떠오른다. 옛날에는 목포대 앞 버스 정류장이 목포 방면 이정표와 바람막이도 없는 지붕에 긴 의자만 달랑 놓여 있었다. 그 시절 무안 사람들은 이른 아침 첫차를 타야 목포 도깨비시장에 내다 팔 농산물과 유명한 복길리 낙지를 팔기 위해서 바리바리 짐을 싸 들고 덜커덩거리는 만원 버스를 비집고 타야 했다. 월간 잡지나 수험서 등을 목포 시내 도매 책방에서 사다가 목포대 구내서점에 갖다 놓고 팔기도 했던 나는 가끔은 그 만원 버스를 이용하곤 했다. 지금은 버스 정류장이 이정표 대신에 버스 도착 시간을 수시로 알려주는 전광판이 근사하게 달려 있다. 앉는 자리에는 난방 시설도 갖추어져 있고 자동문 장치까지 설치되어 있으니 이쯤이면 아주 멋들어진 현대식 쉼터가 아닐 수 없다. 전광판은 내가 타야 할 버스가 2분 후면 도착한다고 알려주고 있으니 격세지감에 감동스럽기까지 하다. 건너편 정류장은 삼학도에서 무안 종점으로 가는 200번 버스와 남악에서 무안 종점으로 가는 100번 버스, 그리고 무안 공항으로 가는 버스들이 정차한다. 맞은편 정류장으로 가벼운 옷차림의 멋진 대학생들이 줄줄이 내리면서 저마다 청운의 꿈을 그리며 대학 교문을 들어가는 뒷모습들이 가로등처럼 즐비하게 서 있는 벚꽃 가로수 터널의 봄날 맑은 햇빛에 반사되어 한 폭의 그림 같다. 예나 지금이나 발품으로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데 익숙해진 나는 자가용 이용자들이 그다지 부럽지 않다. 예전 만원 버스와 달리 한산한 좌석버스에 앉아 넓게 보이는 창밖을 보면 아지랑이가 봄날 햇살에 부서지고, 산자락에는 진달래, 들 매화, 노란 개나리들이 한창 자태를 뽐내고 있다. 올라탄 버스는 외곽 노선을 미끄러지듯이 달려 나가고 머릿속에 시상은 저절로 떠오르고 그렇게 다듬어지는 시는 다시 그림으로 이어져 나도 모르게 콧노래로 응얼거리게 된다. 나는 정말이지 날로 발전해가는 이 지역에서 아름다운 문학을 배우고 그림을 배우고 때로는 농사일도 배우며 소소한 일상생활이 즐거워 무안에서 사는 것이 정녕 자랑스럽기만 하다. 다른 지역에 비하면 무안은 인구가 별로 줄지 않는다고 한다. 오히려 인구 10만 명의 도시가 되기 위해 무안군은 인구증대에 팔을 걷어 올리고 있고 전라남도에서도 많은 지원이 있다고 한다. 무안군이 앞으로 시로 승격하기까지는 얼마나 많은 에너지와 노력이 들어가야 하는지 잘 모르겠다. 하지만 무안의 교육, 전라남도의 교육, 나아가서는 대한민국 교육의 일부를 담당하는 이곳 무안에 바로 목포대학교가 당당히 존재한다는 사실에 정녕 나는 자긍심을 가진다. 어디 그뿐이랴. 무안읍내에 초당대가 있고 청계 상마리에 폴리텍대학도 있다. 그래서 내가 사는 이 지역은 교육의 도시라 해도 과언은 아니다. 참으로 복 받은 지역이다. 그리고 양파의 고장 무안에는 산이 수려하고 바다에는 갯벌 낙지로 유명하다. 토지가 기름지고 다양한 농산물이 풍부해 사람들의 인심 또한 풍요로워 마치 따스한 봄날같이 훈훈하지 않은가. 김봉임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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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 이야기> 모바일 신분증이 지갑을 몰아내?모바일 신분증 시대가 열렸다. 운전면허증을 스마트폰에 저장해뒀다가 필요할 때마다 신분증으로 사용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바야흐로 「지갑 없는 사회」가 실현되고 있는 것이다. 그간 모바일 결제서비스가 자리를 잡으면서 현금과 실물카드의 활용도는 줄었지만 신분증만큼은 계속 지갑 속에 가지고 다녀야 했다. 하지만 모바일 신분증 시대로 진입한 이후로는 귀찮은 지갑을 가지고 다니지 않는 일상이 가능해졌다. 현대 사회에서 일상생활을 하다 보면 신분증이 필요한 경우가 종종 발생하게 된다. 공공기관에서의 민원처리나 은행에서의 금융업무는 물론이고 편의점이나 무인 자판기에서의 성인확인, 온라인에서의 신원확인, 앱을 통한 킥보드나 렌터카 대여 등 다양한 상황에서 신분증이 필요하다. 뿐만아니라 지하철을 이용할 때나 입장료를 받는 관광지나 목욕탕 등에서 경로할인을 받을 때에도 신분증을 제시하게 된다. 그런데 이제 이러한 모든 곳에서 모바일 신분증이 편리하게 사용될 수 있게 되었다. 운전면허증이 스마트폰 속으로 들어 온 것이다. 이른바 『모바일 신분증』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모바일 신분증은 스마트폰에 발급되는 디지털 신분증으로 현행 신분증과 동일한 법적 효력을 가지고 있으며 편의성과 보안성을 갖춘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모바일 운전면허증은 국가 모바일 신분증 시대를 처음 열었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크다고 할 것이다. 현대인은 신분증이나 지갑은 잊고 나와도 스마트폰은 좀처럼 몸에서 떨어지지 않는다. 시쳇말로 껌딱지인 셈이다. 행정안전부는 지난해 봄부터 모바일운전면허증과 모바일 국가보훈등록증을 발급하고 있다. 또한 내년 하반기부터는 모바일 주민등록증을 발급할 계획이며 국가유공자증, 장애인등록증, 청소년증, 외국인등록증 등으로 모바일 신분증을 점차 확대해 나갈 계획이란다. 모바일 주민등록증은 모바일 공무원증, 모바일 운전면허증, 모바일 국가보훈등록증에 이은 4번째 모바일 신분증인 것이다. 이처럼 모바일 신분증은 신분증이 필요한 모든 곳에서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는 디지털 시대에 맞춰진 새로운 신원확인 방식이다. 앞으로 오프라인과 온라인에서의 통합된 모바일 신분증의 사용으로 예전처럼 신분증을 소지하고 다니는 번거로움을 줄일 수 있게 된 것이다. 모바일 신분증은 우리의 일상생활을 편리하게 만들어주는 동시에 개인의 자기 정보 결정권을 강화하고 신원 정보의 보안과 신뢰성을 높여준다. 개인이 직접 정보를 관리하고 필요한 정보만 골라서 제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암호화된 데이터로 구성되어 있어 무단 접근을 방지하고 신원 정보의 위조나 조작의 예방이 가능하며, 오프라인과 온라인에서 모두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다. 한편 모바일 신분증은 분산 컴퓨팅 기술을 적용한 데이터 위변조 방지 기술인 블록체인(Blockchain) 기반의 DID(분산신원확인,Decentralized Identity)를 적용한다. 즉 개인 정보가 한 곳에 집중되지 않고 여러 노드에 분산되어 저장되기때문에 신원정보 확인 시 여러 노드의 동의를 거쳐 검증되므로 신원 정보의 보안은 물론 신뢰성이 높아지게 된다. 결제나 송금 또한 훨씬 간편해진다. 예를 들어 해외송금 등 신분증 확인이 필요한 경우 지금까지는 실물카드를 꺼내 스마트폰으로 촬영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었지만, 모바일 신분증 시대에는 이 같은 절차를 거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이처럼 모바일신분증은 우리 생활의 다양한 영역에서 활용될 수 있으며, 더욱 발전하여 향후 보다 많은 혜택을 제공할 것으로 기대되는 만큼 주의를 기울여야 할 부분도 있다. 그동안 발생한 전산 장애로 인한 공무원증, 운전면허증, 국가보훈등록증 발급 중단과 행안부 주민등록발급시스템의 오류, 조달청 '나라장터' 접속 중단 사고 등과 같은 접속 장애가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관계부처는 노력하여 이용자들의 불안이 없도록 해야 한다. 또한 정보시스템의 「해킹과 보안」은 「방패와 창」이라고 불리운다. 이 논쟁은 결론이나 해결없이 우리가 컴퓨터나 스마트폰 등의 정보기기를 이용하는 한 영원히 공존할 것이다. 최근 정부에서는 의대 정원을 갑자기 2천명이나 늘리겠다고 한다. 공학도들이 이때다 싶어 의대 가려고 줄줄이 휴학을 하고 있다. 질병치료는 개인이 전쟁을 하고 있다면 정보시스템의 보안문제는 나라의 안위가 걸린 국가가 전쟁을 하게 되는 격이다. 우수한 인재들이 몽땅 의대로 진학하면 장차 우리나라의 미래를 걸머질 유능한 과학도는 어떻게 양성할 것인가? 실제로 수능 3등급도 의대 갈 수 있다고 홍보하면서 학원에서 의대 특별반을 모집하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공대 가려던 고3 재학생들도 의대 가려고 들썩이고 있다. 행정가들의 단세포적인 정책 결정보다 의학 전문가들이 제안하는 점진적인 의대정원 조정으로 작금의 이 혼란과 분열을 속히 수습해야 할 것이다. 스마트폰 하나만 있으면 모든 것을 해낼 수 있는 세상이 되었다. 가장 간편하게 신분을 증명할 수 있게 해주는 모바일 신분증은 언제 어디서나 우리 일상생활을 더욱 쾌적하고 편리하게 만들어줄 것이다. 지갑이여 안녕! 金在珥(동신대학교 명예교수, 공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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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악 칼럼> 민주당을 견제할 정당이 있어야 전남이 발전한다우리는 4월 국회의원 총선거에서 좋은 정당과 후보자를 선택해야 한다. 국가 발전을 가로막는 정당을 심판해야 한다. 종북 좌파, 80년대 운동권 출신, 해산당한 통진당 출신, 국가보안법 위반자, 반미·반일 선동자, 범죄자, 거짓 선동자, 국가와 지역 발전을 가로막는 후보자는 찍지 말아야 한다. 우선 종북 좌파 80년대 운동권을 퇴출해야 한다. 80년대 운동권은 김일성을 맹종하던 ‘주사파’였다. 그들은 "양키 고 홈”을 외치면서 미국을 적대시하고 주한미군 철수를 외쳤다. 그들 말대로 했다면 한국은 적화통일됐을 것이다. 80년대 운동권은 자신들이 전두환 군부 독재를 비판했다고 민주화운동을 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 목표를 ‘자유 민주주의’ 실현에 두지 않고 ‘북한 체제의 추종(주사파)’에 둔 건 군부 독재보다 더 나쁘다. 군부 독재는 그나마 대한민국 정부지만 운동권은 북한 김일성 체제를 추종했기 때문이다. 1982년 3월, 부산 고신대 학생 문부식 등 11명은 부산 미문화원에 방화했다. 그들은 "미국과 일본은 더 이상 한국을 속국으로 만들지 말고 이 땅에서 물러나라!”는 유인물을 뿌렸다. 그 화재로 동아대 학생 1명이 숨졌다. 1989년 5월, 부산 동의대에서도 학생 시위로 경찰관이 무려 7명이나 숨졌다. 운동권은 북한을 추종한 이런 반국가 운동을 하고는 나중에는 그걸 애국 운동으로 둔갑시켰다. 그리고 그걸 빌미로 온갖 특혜를 누렸다. 2023년 12월에는 자손 대대로 특혜를 누릴 ‘민주 유공자 예우에 관한 법’을 통과시켰다. 민주당은 국회 제1당으로 대한민국에 해로운 악법들만 만들어댔다. 그래서 4월 10일 선거에서는 민주당을 심판해야 한다. 민주당이 그동안 한 일을 보자. 민주당은 국정원의 간첩 잡는 ‘대공수사권’을 경찰에 넘겨버렸다. 전 세계에서 정보기관이 간첩 잡는 일을 못하게 하는 나라는 대한민국밖에 없다. 북한을 이롭게 하려고, 간첩을 도와주려고 민주당은 이런 이적행위를 했다. 민주당은 2021년에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으로 국가 수사력을 약화시켰다. 대전고법 모성준 판사는 최근 펴낸 책에서 검수완박으로 "사기 범죄 천국”이 됐다고 했다. 2018년 27만 건이던 사기 범죄가 2022년엔 32만 건으로 늘었다. 경찰의 사건당 평균 처리 기간도 2018년 48일에서 2022년 67일로 늘었다. 민주당이 만든 악법으로 국민만 피해를 보고 있다. 민주당은 ‘고위공직자수사처’를 만들었다. 그런데 공수처는 3년이 되었지만 한 일이 없다. 공수처는 이종섭 전 국방장관을 6개월간 수사 안 하다가, 이종섭이 호주대사로 나가자 수사 안 받고 출국했다고 발표했다. 그래서 이 대사가 급히 귀국하자, 공수처는 말을 뒤집어 아직 준비가 안 됐다면서 조사를 안 하겠다고 한다. 공수처는 이종섭을 농락하며, 총선에 정치적으로 개입하고 있다. 민주당은 총선 비례 위성정당으로 ‘민주개혁진보 선거연합’을 만들었다. 이것은 국보법 위반자, 주한 미군 철수 주장자, 사드 반대 운동자, 광우병 집회자, 천안함 괴담 살포자, 세월호 괴담 살포자 등 반미·친북을 추구하는 반국가 세력들의 집합체다. 민주당은 진보당·새진보연합·연합정치시민회의 후보 10명을 당선 안정권에 배치했다. 또 울산에는 통진당 출신을 후보로 공천했다. 헌재에 의해 해산된 통진당 출신 등 온갖 반국가 세력들이 민주당을 숙주로 삼아 국회에 진출하려 하고 있다. 그 민주당을 호남인이 몰표로 지지해주고 있다. 호남인은 반국가 세력을 국회의원으로 만들어 주는 숙주가 되고 있다. 조국은 서울법대 교수 시절 온갖 좋은 말을 늘어놓았다. 그러나 법무장관 검증 과정에서 그가 자녀들을 좋은 대학에 부정으로 입학시키려 온갖 불법·탈법을 저질렀음이 드러났다. 그 결과, 조국은 2심까지 유죄 판결을 받았다. 이런 조국이 ‘조국개혁당’이라는 비례대표 위성정당을 만들고 대표가 되었다. 유죄 판결 받은 범죄자가 정당 대표 자격이 있는가? 황운하 등 비례대표 후보들도 범죄자들이 대부분이다. 이런 범죄자 정당을 호남인이 지지해도 되는가? 지금 경제가 어렵다. 문재인이 최저임금을 급격히 올려서 자영업자들을 망하게 만들었다. 집값을 두 배로 올려서 국민에게 엄청난 고통을 주었다. 국가부채를 400조 원 이상 늘렸다. 민주당 때문에 지금 한국 경제가 어려운 것이다. 국회 제1당인 민주당은 경제를 살릴 아무 노력도 안 했다. 민주당은 귀족노조를 위한 법, 기업을 규제하기 위한 법만 만들었다. 예를 들어, ‘중대재해처벌법’을 5인 이상 사업장으로 확대 시행하는 법을 국민의힘은 3년 유예하자는 걸 민주당이 반대해 1월부터 시행됐다. 그래서 중소기업이 지금 힘들어한다. 호남은 민주당 1당밖에 없다. 호남은 공산주의 국가나 다름없다. 북한도, 중국도, 호남도 정당이 하나밖에 없으니 부패하고 발전이 없다. 호남이 발전하려면 민주당을 견제할 당이 있어야 한다. 다른 지역은 국힘의힘과 민주당이 공존하므로 서로 경쟁하며 지역을 발전시킨다. 경상도도 그래서 발전한다. 전남은 전국에서 유일하게 의대가 없다. 민주당은 의대에 관심 없다. 경쟁 정당이 없으므로 열심히 일할 필요가 없다. 전남인은 더 이상 민주당에 이용만 당하는 바보가 되지 말아야 한다. 전남을 발전시키려면 경쟁 정당이 있어야 한다. 경제를 살리고 전남에 의대를 설립하려면 정부에 힘을 실어줘야 한다. 이재명은 "국민의힘과 윤석열 정부가 나라 살림 잘했다, 살 만하다, 견딜 만하다 싶으면 가서 열심히 2번을 찍든지, 아니면 집에서 쉬시라.”고 ‘기권’을 선동했다. 그래서 나도 이재명 식으로 말하련다. "민주당을 찍으려면 차라리 ‘기권’하시라. 그게 호남인이 더 이상 바보가 되지 않는 길이다.” 金昌辰(전 초당대 교수. 문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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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중근 의사 순국 114주년을 맞이하며봄바람이 불어오는 3월이면 생각나는 독립운동가가 있다. 바로 우리 민족의 영웅인 안중근 의사이다. 많은 사람들이 안중근 의사에 대해 알고 있지만 3월 26일이 그의 순국일이라는 점은 아직은 생소하게 느끼는 듯하다. 3월 26일은 민족의 영웅 안중근 의사가 우리민족의 역적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하고 중국 뤼순형무소에서 순국한 지 114년이 되는 뜻깊고도 가슴이 시린 날이다. 안중근 의사는 1879년 9월 2일 황해도 해주의 순흥안씨 가문에서 맏아들로 태어났으며 할아버지가 대지주에 미곡상으로 부유한 유년기를 보냈다. 1895년 아버지를 따라 천주교학교에 입학하여 신학을 배웠고 도마라는 세례명을 얻었다. 1905년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국권회복운동을 하기 위해 상하이로 갔으나, 상하이의 유력자들과 천주교 신부들로부터 협조를 거절당하여 실망하고 되돌아와야 했다. 이후 생계를 위해 한때 석탄상회를 경영하였으나, 교육을 통한 깨달음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여 전 재산을 바쳐 삼흥학교를 설립하여 교육운동을 시작하였다. 1907년에는 국채보상운동에 적극 참여하였으나, 일본의 방해로 실패로 돌아갔고, 이후 연해주로 건너가 의병활동을 하다 일본군의 기습공격을 받아 처참한 패배를 맛보기도 했다. 1909년 동지 11명과 죽음으로써 구국투쟁을 벌일 것을 손가락을 끊어 맹세하고 동의단지회를 결성하였고, 그해 10월 침략의 원흉 이토 히로부미가 만주 하얼빈에 온다는 소식을 듣고 그를 처단하기로 결심하였다. 10월 26일 하얼빈역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향해 6발의 총을 발사하여 그의 가슴과 옆구리와 복부에 명중시키고, 모든 사람이 다 알아들을 만큼 큰 소리로 "코레아 우라(대한민국 만세)를 세 번 외치고 그 후 당당히 체포에 응하였다. 이러한 안중근 의사의 하얼빈 의거는 일제의 한국 침략을 전 세계에 알리고, 침체되어 있던 항일 운동에 큰 울림을 주는 계기가 되었다. 이로 인해, 중국 뤼순형무소에 수감되어 6차례 재판 끝에 1910년 2월 14일 사형선고를 받고 그 해 3월 26일 수감된 지 114일 만에 31세라는 너무나도 젊은 나이에 아직 채 꽃 피워보지도 못한 영웅을 우리는 떠나보내야 했다. 안중근 의사가 동포들에게 남긴 "내가 죽은 뒤에 나의 뼈를 하얼빈 공원 곁에 묻어 두었다가 우리 국권이 회복되거든 고국으로 반장해다오. 나는 천국에 가서도 또한 마땅히 우리나라의 회복을 위해 힘쓸 것이다. 너희들은 돌아가서 동포들에게 각각 모두 나라의 책임을 지고 국민된 의무를 다하여 마음을 같이하고 힘을 합하여 공로를 세우고 업을 이루도록 일러다오. 대한독립의 소리가 천국에 들려오면 나는 마땅히 춤추며 만세를 부를 것이다.” 이 말에는 독립을 향한 그의 열망, 조국을 향한 그의 애국심이 담겨있다. 하지만 그의 유언은 114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 우리민족의 영웅인 그가 가진 유일한 바람, 조국으로 돌아오고픈 소망이 유해가 묻힌 곳을 찾을 수 없어 아직도 이루어지지 못하는 현실이 너무나도 안타깝다. 오늘 부는 따스한 봄바람을 타고 그의 유해가 조국에 돌아오기를 간절히 바라본다. 더불어 올해 순국 114주년을 맞아 대한독립의 의지를 불태운 그의 고귀한 위국헌신의 정신을 우리 모두 본받아 개인의 안위를 넘어 나라와 민족, 더 나아가 세계평화에 기여할 수 있도록 한 번 더 생각해 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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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악 칼럼> 지금 민주당은 김대중의 민주당과 전혀 다르다金昌辰(전 초당대 교수. 문학박사) 2024년 1월에 『매일경제』가 정치학자들에게 "민주화 이후 가장 성공한 정부”를 물은 여론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결과는 김대중 정부(42.5%)가 압도적인 1위고, 노무현 정부(23.9%), 김영삼 정부(14.2%), 이명박 정부(8%), 윤석열 정부(5.3%), 문재인 정부(4.4%), 박근혜 정부(1.8%) 순으로 나타났다. 김대중 정부는 민주화 이후 가장 성공한 정부로 평가받았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는 같은 민주당이지만 탄핵당한 박근혜 빼면 꼴찌다. 이처럼 정치학자들은 김대중 정부와 문재인 정부를 천당과 지옥처럼 완전히 다르게 평가한다. 일반 국민의 평가도 정치학자들과 같다. 2023년 12월에 한국갤럽이 국민에게 역대 대통령 점수를 묻는 여론조사를 했다. 그 결과, 노무현 대통령이 70점으로 1위, 김대중 대통령이 68점으로 2위였다. 그 차이는 불과 2%로서 거의 같다. 박정희 대통령이 그 뒤를 이었다. 문재인 대통령은 겨우 38점을 받았다. 요컨대, 김대중 대통령은 정치학자, 국민 모두에게서 민주화 이후 가장 성공한 대통령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그 이유는 김대중은 ‘명분 있는 정치’를 했기 때문이다. 그는 "정치는 명분이다. 명분을 쥐면 잠시 죽은 듯해도 다시 살아난다. 그러나 명분을 잃으면 다 잃는다.”고 했다. 그리고 김대중은 ‘자유민주주의 실현’이라는 명분을 내걸고 목숨까지 걸었다. ‘행동하는 양심’ 김대중은 박정희 대통령의 유신 독재를 비판하면서 ‘자유민주주의 실현’을 끊임없이 요구했다. 그러면서 목숨을 잃을 뻔한 위기도 여러 번 겪었다. 그러나 그는 대통령이 된 이후에는 모두 용서하고 화합했다. 그것이 그를 최고의 대통령으로 평가받게 하였다. 지난 1월 개봉한 영화 『길 위에 김대중』은 관객들에게 깊은 감동을 주고 있다. 김대중 대통령은 요즘 정치인에게서는 찾아볼 수 없는, 진정성 있는 참다운 정치인이기 때문이다. 한편 노무현 대통령이 높은 평가를 받은 것 또한 ‘지역 갈등 타파’라는 명분을 내걸고 정치를 했기 때문이다. 그는 "명분 없는 승리보다 명분 있는 패배가 낫다.”고 했다. 자신을 발탁한 김영삼이 3당 합당할 때도 혼자 반대하며 남았다. 또 계속 떨어지면서도 부산 출마를 고집한 것도 지역갈등을 정면 돌파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거기에서 ‘바보 노무현 신화’가 만들어졌다. 반면에 문재인 대통령은 아무 ‘명분 없는 정치’를 했다. 그는 북한과 중국을 추종하였는데, 이는 대한민국의 이념인 ‘자유민주주의’를 부정했다는 데서 문제가 크다. 문재인은 북한에 비굴할 정도로 온갖 아부를 다했다. 중공에 가서는 "중국은 대국, 한국은 소국”이라고 사대했다. 그러면서 반미, 반일했다. 또 문재인은 경제를 말아먹었다. 원전을 폐쇄해서 한국의 원자력산업을 망하게 했다. 또 최저임금을 급격히 올려서 자영업자를 망하게 했다. 또 집값을 두 배로 올려서 국민에게 고통을 줬다. 또 국가 부채를 400조 원 이상 늘렸다. 문재인이 전문가와 국민에게 ‘최악의 대통령’으로 평가를 받는 이유다. 문재인 대통령 때부터 민주당은 운동권이 중심이 된 종북 좌파 정당으로 변질해 갔다. 그러면서 경제를 말아먹었다. 그런데도 모든 잘못을 상대 정당 탓으로 돌렸다. 조국 사건은 그런 좌파의 ‘내로남불’을 잘 보여줬다. 전과 4범 이재명이 민주당을 장악하면서 민주당의 ‘부도덕성’은 더욱 심해졌다. 이재명은 현재 대장동·백현동 비리, 쌍방울 불법 대북 송금, 허위 사실 공표 등 총 7가지 사건의 10가지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다. 그와 관련하여 이재명의 측근인 김만배, 김용 등이 유죄 판결을 받고, 20명 넘게 구속됐다. 그런데 이재명은 구속을 피하려고 국회의원이 되었고, 또 당 대표가 되었다. 그리고 당대표가 된 이후 1년 넘게 방탄 국회를 열었다. 또 불체포특권 포기 약속을 두 번이나 어겼다. 또 자신을 수사한 검사를 탄핵했다. 민주당 의원들을 동원해서 민주당을 개인을 위한 ‘방탄정당’으로 타락시켰다. 이재명은 경기도 법인카드로 집에서 초밥을 시켜먹고, 경기도 공무원을 집에서 종처럼 부려먹었다. 또 부산대병원이 전국 최고 응급의료센터인데도 버리고 헬기 타고 서울대병원으로 날아갔다. 이재명은 이렇게 왕처럼 군림한다. 4월 총선의 선거제도는 여야가 민주적으로 합의해 결정해야 한다. 그러나 민주당은 국회 제1당이라고 단독 처리하며, 그 결정을 이재명에게 일임했다. 이재명은 ‘위성정당’을 안 만든다고 공약했던 걸 깨고 다시 위성정당 만드는 선거법을 결정했다. 이재명은 ‘명분 없는 정치’로 선거를 엉망으로 만들고 있다. 현재 이재명은 독재자로서 민주당을 ‘이재명 개인 정당’처럼 운영한다. 공천도 친명만 주었다. 그래서 ‘친명횡재’,‘비명횡사’ 라는 말이 나왔다. 호남에서도 납득할 수 없는 공천이 벌어졌다. 이낙연, 조국, 송영길이 왜 탈당했겠는가. 그런데 왜 민주당은 총선에서 힘없는 현 정부를 견제해야 한다고 우기는가? 국회 다수당으로 온갖 횡포를 부리는 이재명의 민주당을 견제해야 옳지 않는가? 그동안 호남은 줄곧 맹목적으로 민주당만 지지해 왔다. 그런데 민주당은 호남에 무엇을 해주었는가? 전국에서 ‘가장 낙후된 호남’이라는 오명밖에 더 주었는가? 그런데도 왜 호남인은 무조건 계속해서 민주당만 지지하는가? 정부에 무엇을 해달라고 요구하려면 집권 여당을 지지해주고 요구해야 하지 않는가? 김대중 대통령과 노무현 대통령은 명분을 중시했다. 그러나 문재인과 이재명은 명분 따윈 버리고 ‘막가파 정치’를 한다. "민주당엔 민주가 없다.”는 비판이 나오는 까닭이다. 지금 민주당은 김대중 때의 민주당과는 전혀 다른 정당이 되어버렸다. 그러나 호남인은 똥과 된장을 구별할 줄 모르니 안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