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5.18 (토)
<발행인 칼럼> 과연 민주당에 출구는 있는가
박일훈 법학박사
지난 추석을 고향 인천에서 쇠고 무안에 내려오는 길에 차 안에서 스마트폰으로 이리저리 검색하다가 우연히 ‘정치가 법치보다 우선해야 한다’라는 논조의 칼럼을 읽게 됐다. 알만한 일간지의 칼럼치고는 글의 첫 문장부터가 천박했지만, 도대체 무슨 근거로 법치와 정치를 비교하며 법치를 정치 뒤로 밀어내려는지 의도가 궁금해졌다.
글을 다 읽고 나니 참 한심스럽다는 생각을 떨칠 길 없었다. 그러고 보니 글쓴이는 법학에는 문외한인 정치외교학과 출신의 기자 경력이 있는 자였다. 아마도 법치의 치(治)와 정치의 치(治)가 같으니 같은 반열에서 봐도 된다고 생각한 듯한데, 발상부터가 유치하기 짝이 없다.
한 나라의 중심 기둥은 헌법이다. 헌법이 있어야 나라가 있는 것이다. 한 나라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제반 분야를 관장하는 힘인 국가권력은 바로 헌법을 통해 실현된다. 국민의 자유와 권리도 헌법을 떠나서는 생각할 수 없다.
물론 헌법은 여러 정치 세력 간의 공존을 위하여 정치적 다툼이나 타협의 과정에서 생성된 것이기 때문에, 다른 법규범에 비해 정치성이 짙게 나타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렇다고 해서 정치가 헌법보다 우선적일 수는 없다. 헌법을 개정하려면 그 역시 헌법에 정한 절차에 따라 정치가 움직여야 하기 때문이다. 최근 일본 정부가 ‘전쟁을 위한 헌법’을 선호하면서도 끝내 현행의 평화헌법을 바꾸지 못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위 칼럼은 종국에는 "미국 정치에서는 전직 대통령이 기소된 적이 없는데 바로 그것이 미국의 정치 관행이다”라고 말하면서, 트럼프 전직 대통령을 옹호라도 하듯 "미국도 이제 정치보복과 야당 탄압의 악순환에 빠져드는 것” 같아 안타까운 일이라고 했다.
하지만 그 주장도 엉터리다.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대통령직에사 물러난 닉슨이 퇴임 후 기소되지 않은 이유는 포드 대통령이 사면을 해줬기 때문이다. 또 클린턴 대통령이 재직 중 섹스 스캔들로 탄핵 소추를 당했지만 미 의회 상원에서 기각되는 바람에 대통령직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뿐이다.
하기야 우리나라에선 지난 문재인 정부에서 이명박·박근혜 전직 대통령에 대해 적폐 청산을 빌미로 정치보복을 하지 않았던가. 그러고 보면 위 칼럼은 지금 민주당이 당면하고 있는 문제점들을 상당히 의식하고, 어떻게 해서라도 민주당에 유리한 여론을 형성하고픈 심정에서 나온 글이었으리라.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늪에 빠진 민주당은 미처 출구를 찾지 못하고 있다. 그 이유는 말할 것도 없이 ‘이재면 리스크’ 때문이다. 요컨대 이 대표와 민주당의 잘못된 선택이 근본 원인이다. 이런 까닭에 많은 사람들은 진심으로 민주당의 앞날을 걱정하면서 이 대표의 총선 출마와 당 대표 출마를 말렸다.
그러나 이 대표는 결코 이런 충고를 들으려 하지 않았다. 본인의 욕심에다 이미 구축된 친명체제 속에서 민주당 구성원들이 눈앞의 정치적 안위만을 좇은 결과다.
이 대표와 관련된 수사 혐의는 하도 많아서 일일이 나열하기조차 힘들다. 특히 이 대표 주변인들에 의해 제기된 고소·고발 사건들은 어떤 식으로든지 수사가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 민주당으로선 2024년 23대 총선까지 그 귀중한 시간을 오로지 ‘이재명 구하기’로 날려 보내야 할 것이다.
성남FC 후원금 의혹 재수사에서 보듯 칼자루는 온전히 검찰에 쥐어져 있다. 경찰이 지난 정권 3년을 뭉개다 정권이 바뀌자마자 무혐의 결론을 바꾼 것은 우리 정치사에서 흔히 봐온 풍경들이다. 국회 169개 의석수로는 국가운영과 정치 현안에서 막강한 위력을 발휘하겠지만, 수사와 일련의 사법처리 과정에서는 결코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벌써 이 대표는 "전쟁”을 운운하고 나섰다. 이 대표의 말마따나 겨우 말꼬리 잡기 수준인 공직선거법상 허위사실유포 혐의로 검찰이 이 대표에게 소환 통보를 했기 때문이다. 이 대표가 격한 수준의 반응을 보이기에는 시기상조이다. 아니, 어쩌면 이 대표는 앞으로 닥쳐올 절박함과 공포를 예견하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도 변호사 출신이므로.
앞으로 대장동 백현동 특혜의혹 같은 10건 이상의 본 게임과 맞닥트려야 하는 이 대표로서는 사즉생의 마지막 선택을 할 수도 있겠다. 다 같이 국회의원직을 버리고 옥쇄하자고 말이다.
그러기에 민주당은 김건희 특검을 발의하는 방법 이외엔 달리 묘수가 없다. 이 문제는 윤석열 대통령에게 가장 큰 취약점일 수 있다. ‘김건희 리스크’는 특단의 조치가 없는 한 현 정권 내내 윤 대통령의 국정 성과를 깎아내리고 심지어 조롱 대상으로 만들 공산이 크다. 여론의 60% 이상이 특검에 찬성하는 것만 봐도 그렇다.
그렇다고 해서 김건희 특검이 현실화할 가능성을 별로 없다. 설사 특검이 이뤄진다 해도 주가조작 연루 의혹처럼 검찰이 한 번 무혐의 판단한 사건이 뒤집히는 경우는 거의 없으며, 허위경력 등을 특검에서 다루기엔 일이 너무 우스꽝스럽게 되고 만다.
민주당의 가장 시급한 일은 정부와 여당의 독기를 빼는 작업일 것이다. 그리고 국가 현안이나 민생문제에 대한 대안 정당으로 전환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비록 이 대표는 상처받더라도 민주당은 후일을 도모해야 하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