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6.02 (일)

  • 구름조금속초17.6℃
  • 맑음18.7℃
  • 맑음철원18.6℃
  • 맑음동두천19.7℃
  • 맑음파주19.3℃
  • 구름많음대관령13.0℃
  • 맑음춘천20.0℃
  • 맑음백령도20.4℃
  • 구름많음북강릉16.7℃
  • 구름많음강릉17.8℃
  • 맑음동해19.0℃
  • 맑음서울20.3℃
  • 맑음인천19.5℃
  • 맑음원주19.2℃
  • 맑음울릉도17.5℃
  • 맑음수원20.0℃
  • 구름조금영월17.7℃
  • 맑음충주18.8℃
  • 맑음서산21.0℃
  • 구름조금울진19.3℃
  • 맑음청주19.7℃
  • 맑음대전19.8℃
  • 구름조금추풍령19.0℃
  • 맑음안동17.9℃
  • 맑음상주20.8℃
  • 구름조금포항20.0℃
  • 구름조금군산19.3℃
  • 구름많음대구21.1℃
  • 구름조금전주19.6℃
  • 구름조금울산20.0℃
  • 구름많음창원22.2℃
  • 구름많음광주19.7℃
  • 구름조금부산22.2℃
  • 구름많음통영22.0℃
  • 구름많음목포18.9℃
  • 구름많음여수20.2℃
  • 구름많음흑산도20.7℃
  • 구름많음완도20.8℃
  • 구름많음고창20.6℃
  • 구름많음순천18.5℃
  • 맑음홍성(예)20.2℃
  • 맑음18.8℃
  • 흐림제주20.2℃
  • 흐림고산18.0℃
  • 흐림성산20.4℃
  • 흐림서귀포22.1℃
  • 구름많음진주21.3℃
  • 맑음강화20.1℃
  • 맑음양평18.2℃
  • 맑음이천19.8℃
  • 구름조금인제16.3℃
  • 맑음홍천18.0℃
  • 구름조금태백18.0℃
  • 구름조금정선군19.4℃
  • 구름조금제천17.9℃
  • 맑음보은18.0℃
  • 맑음천안19.9℃
  • 구름조금보령20.0℃
  • 구름조금부여19.0℃
  • 구름조금금산19.1℃
  • 맑음19.9℃
  • 구름많음부안20.7℃
  • 구름많음임실18.1℃
  • 구름많음정읍20.3℃
  • 구름많음남원17.3℃
  • 구름많음장수17.7℃
  • 구름많음고창군19.8℃
  • 구름많음영광군20.3℃
  • 구름조금김해시21.2℃
  • 구름많음순창군18.6℃
  • 구름많음북창원22.0℃
  • 구름조금양산시22.4℃
  • 구름많음보성군20.1℃
  • 구름많음강진군20.4℃
  • 구름많음장흥19.3℃
  • 구름많음해남18.8℃
  • 구름많음고흥21.4℃
  • 구름많음의령군22.3℃
  • 구름많음함양군
  • 구름많음광양시20.7℃
  • 구름많음진도군19.7℃
  • 구름조금봉화16.9℃
  • 구름조금영주18.2℃
  • 맑음문경19.4℃
  • 맑음청송군19.0℃
  • 구름많음영덕19.3℃
  • 맑음의성19.6℃
  • 구름조금구미22.0℃
  • 구름많음영천20.3℃
  • 구름많음경주시21.5℃
  • 구름많음거창19.7℃
  • 구름많음합천21.1℃
  • 구름많음밀양20.9℃
  • 구름많음산청21.2℃
  • 구름많음거제21.1℃
  • 구름많음남해20.9℃
  • 구름조금22.0℃
문의 궁극적 역할과 의미
  • 해당된 기사를 공유합니다

문의 궁극적 역할과 의미

윤창식(논설위원, 독문학박사)

문의 궁극적 역할과 의미

                               윤창식(논설위원, 독문학박사)

 

 

유년시절 시골의 오일장터에는 서커스판이 곧잘 펼쳐지곤 했다. 서커스 장막은 겉으로 보기에는 언뜻 허름해보였으나 첫 출입구를 지나서 무대 앞으로 들어가는 구불구불한 구간마다 여러 개의 문이 가로막고 있다는 사실은 어린 마음에 꽤 충격을 주었다. 물론 커다란 통나무 기둥에 두꺼운 새끼줄로 단단히 묶여진 대여섯 군데의 문들은 불법 입장객을 막을 요량이었을 터이다.

독일의 소설가 프란츠 카프카는 <법 앞에서>라는 단편에서 문의 상징성과 본질에 대한 강렬한 암시를 하고 있다. 주인공인 시골남자는 법문(法門) 앞을 지키고 있는 문지기에게 문 안으로 들어가게 해달라고 간청을 한다. 하지만 시골남자는 끝내 그 문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결국 죽음에 임박해서야 문지기는 그에게 이렇게 말한다.

“이 문은 당신만을 위한 것이었소. 이제 문을 닫아야 겠소.”

매우 난해해 보이는 이 작품이 말하려는 것은 각종 이념이나 규율 혹은 허위의 문 안에 스스로 유폐되어 자신을 옥죄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말라는 고언으로 들린다. 작품세계가 아니더라도 인간 세상에는 문하나 때문에 목적하는 곳으로 들어갈 수도 있고 그렇지 못할 수도 있다. 영어로 ‘입장료’를 뜻하는 ‘admission fee’와 ‘입장무료’에 해당되는 ‘admission free’ 사이에는 자음(r) 하나 때문에 정반대가 되는 미묘함이 있다. 이는 언어미학적으로 무엇을 함의하는가? 입장시키는 문과 차단하는 기능을 하는 문이 본래 하나라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나아가서 “목표는 있으나 길은 없다.”라는 대사로 유명한 카프카의 <성>(城)이라는 작품을 통해서도 알 수 있듯이 현대인은 인간적 실존을 상실한 채 저마다 자본과 탐욕이라는 거대한 성문에 갇혀 허둥대고 있는지도 모른다.

영국 작가 존 파울즈의 <콜렉터>는 나비 수집을 하는 남자주인공이 대낮에 여대생을 납치하여 자기만의 골방에 가두어 놓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하지만 남자는 결코 그녀에게 해코지를 하지 않고 그녀의 모든 모습을 기록하는 형식의 소설이다. 여기서 유명한 ‘스톡홀름 신드롬’이라는 특이한 심리적 메커니즘의 단초가 형성된다. 갇힌 여성이 나중에는 남자에게 애정을 느끼게 된다는 것이다. 여기서도 문의 궁극적 의미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문은 닫혀 있는 듯 보이지만 결국은 열려 있다는 혹은 열려 있어야 한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

당연히 문은 열리고 닫히는 두 가지 기능을 한다. 하지만 문의 궁극적인 역할은 열리는 데 있는 게 아닐까. 만약 문의 최종적 기능이 닫히는 것이라면 애초부터 문을 만들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독일어 ‘Tor’는 ‘대문’과 ‘바보’라는 의미를 동시에 지니고 있다. 이는 입을 항상 벌리고 다닌다는 바보를 큰 대문에 비유하여 언어적으로 비하하고 있는 듯하지만, 오히려 그 반대가 아닌가? 역설적이긴 하지만, 흔히 바보로 칭해지는 이들의 얼굴 표정에 그다지 큰 고통은 서려있지 않기 때문이다. 어쩌면 그들은 자기도 모르게 이른바 열림과 수용의 미학을 구현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세상에는 수많은 문들이 있다. 감옥의 문, 군대 위병소의 문, 업무가 끝나고 잠긴 사무실 문, 공동경비구역의 남북을 가로 막는 판문점의 문 등등, 어찌되었건 닫혀있는 문은 일시적일 뿐 정상적인 모습은 아니다. 영원히 닫힌 문이 세상에 있을까? 혹 연옥문이나 지옥문 정도면 모를까, 닫혀 있어도 언젠가 열려야 할 문들은 많다. 자본주의의 문과 사회주의의 문은 어떻게 다를까? 사람 사이에 가로막힌 수많은 장벽과 문들, 이념과 이권으로 단단히 뭉쳐진 굳건한 문들, 사실 한 끗 차이로 열리기도 하고 닫히기도 하는 장난 같은 세상의 문들을 어찌해야 할까?

사실 사회의 규범이나 국가 및 공공기관이 제정한 각종 규칙과 명령 혹은 법령 등은 단순히 규제를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궁극적으로는 사회구성원들을 선도하기 위한 도구나 목적으로 기능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서 사회구성원들에 대한 규제나 차단만을 위해 법의 문턱을 만든다면 진정한 법의 취지를 몰각하는 행위가 될 것이다.

이제는 세상이 너무 좋아져서 손으로 숫자를 누르고 카드키를 갖다 대는 것도 귀찮아서 지문 인식으로 들어가고 싶은 문을 따고 유유히 통과하기도 한다. 손가락 지문이 문고리 권력을 행사하는 꼴이다. 지문은 원천적으로 위조가 불가능하므로 몽둥이를 들고 서서 문을 지킬 필요가 없기에 디지털 방식은 간단히 불법 입장객을 막을 수 있는 세상을 만든 것이다. 하지만 현대적인 효율과 편리성만을 추구한 나머지 사람사람 사이의 인간적인 정(情)의 문까지 닫혀버릴까 적잖이 우려되기도 한다.

 

 

 

60여 년 전 유년시절에 보았던 서커스 곡마단패들은 모두 어디로 갔을까? 그들은 여전히 잘 열리지 않는 인생의 숱한 문들을 곡예처럼 넘나들고 있을까? 아니면 그들도 열려라 참깨(!) 식으로 편리한 숫자판을 손가락으로 두드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아무튼 세상이 참되게 깨어나서 좀 더 평화스러워 지려면 모두들 문을 너무 굳게 닫지는 말 일이다.

모바일 버전으로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