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5.18 (토)
<남악 서평> 검사가 가정 주부?
김현철(초당대 교수, 철학박사)
『헌법의 풍경: 잃어버린 헌법을 위한 변론』 개정증보판
김두식 저 | 교양인 | 2011년 12월 26일
초판이 출간되던 해인 2004년에 한국백상출판문화상 교양 부분 저술상을 받았고, 고 노무현 대통령께서 임기 중에 직접 구입해서 읽고 ‘민주주의의 정수를 이야기한 책’으로 추천했을 정도의 책, 그리고 ‘지난 10년 최고의 책’으로 <오마이뉴스>에 의해서 선정될 정도의 책! 바로 『헌법의 풍경: 잃어버린 헌법을 위한 변론』이다.
이 책의 개정증보판은 2011년 출간되었다. 이 책의 훌륭함에 대해서는 위에서 언급된 내용으로 충분히 예상할 수 있을 것이기에 이 지면에서 따로 언급할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 이 코너가 주로 책을 소개하는 형식을 띠고 있기는 하지만, 이번에는 보다 더 큰 의도가 있다. 그 의도란 저자 김두식씨를 소개하는 것과 더불어, 이 책을 통하여 검사라는 직업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해 볼 기회를 갖자는 의미도 있다. 책의 내용이야 인터넷에 떠돌아다니는 이런저런 글들을 읽으면 될 일이기 때문이다.
저자인 김두식은 현재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이며, 한동대학교에서도 교직생활을 하였다. 고려대 법대에서 공부하고, 코넬 법과대학원을 졸업했다. 이 사이의 기간에 검사 생활을 2년 하였지만, 곧 그만둔다. 그가 검사 생활을 그만둔 이유는, 요즘의 뉴스들을 통해서 충분히 예상할 수 있지만, 한국 검사사회의 그 특별하고 유별난 문화에 적응하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수사관으로서 검사는 한 인간에 대한 정보를 얻어내기 위해서 도·감청을 해야 할 상황이 있다. 하지만 24시간 특정인을 감시하고, 피의자의 모든 대화를 도청하는 임무를 맡고 있는 당사자는, 보아야 할 것과 보지 말아야 할 것, 들어야 할 것과 듣지 말아야 할 것을 보고 들음으로 인해서 스스로 망가지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고 한다. 한 인간에 대한 모든 정보를 얻었다고 생각했을 때 느끼게 되는, 예를 들면 ‘환멸’과 같은 감정은 도·감청을 하는 주체의 인간성을 파괴 시키는 결과를 낳는다는 것이다. 도·감청 주체는 모든 곳을 들여다볼 수 있게 됨으로써 스스로 망가지게 되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것은 몰래카메라가 항상 결정적인 순간에 그 게임을 멈추는 이유와도 비슷하다. 더 이상 그 모습을 지켜봄으로써 망가지게 되는 우리 모두에 대한 우려 때문이다. 고문으로 인해서 망가지는 사람은 고문당하는 사람뿐만이 아니라 고문하는 주체 역시 포함되며, 폭력으로 인해서 망가지는 사람은 폭력의 피해자뿐만이 아니라 폭력의 가해자 역시 해당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권력 역시 마찬가지이다. 마치 세상의 모든 것을 지닌 것처럼 ‘횡포’를 부릴 수는 있지만, 그런 권력을 다룰 수 있는 다른 능력들이 향상되지 못한다면, 오히려 그것으로 인하여 자신이 파괴될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다른 이야기가 길어졌다. 저자 이야기를 계속하자. 그의 삶의 또 다른 2년이라는 공백 기간이 존재한다. 그 공백 기간에 필자는 그를 만났다. 그 기간은, 소위 ‘전업주부’의 삶이었다. 공부를 위해서 미국 유학을 떠나는 부인, 그리고 하나밖에 없는 그의 딸을 돌보았던 2년의 삶이었다. 밥하고 빨래하는 일, 그리고 아직 초등학교에 입학도 하지 않은 딸을 유치원이며 이곳저곳에 바래다주는 일에 그의 삶의 대부분의 시간을 쏟았다. 밥하고 빨래하고 주부로서의 자신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그의 모습은 필자에게는 부러움 그 이상의 경이로움으로 다가왔다. 이런 그의 삶의 모습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요즘 젊은 사람에게는 이것이 뭐가 그리 특별한 것이냐고 반문할 수 있겠지만, 어찌 되었던 그 당시에는 이런 모습을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이러한 그의 삶의 태도는 법이라는 어려운 주제를 쉽게 풀어쓴 이 책에서도 그대로 묻어난다. 가정생활과 신앙생활에서와 마찬가지로 그의 글쓰기는 진솔하며 가식이 없다. 이 책의 부제가 말해주고 있듯이, 잃어버린 헌법, 잃어버린 가치를 회복시키고자 하는 그의 노력, 예를 들면 그가 체험한 법조계의 가려진 부분으로서, 이쪽 세계에서 만연된 태도를 지적하는 그의 글쓰기에, 삶에서 그의 태도를 반영하는 솔직하고 겸손함이 그대로 드러난다. 여기에 학생들의 논술교재에 쓰일 정도로 논리적인 글쓰기 방식이 첨가된다.
법학이라는 분야에 문외한인 필자로서는 알 수 없으나, 법조계에 만연해있던 전문가주의를 내던지고,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법 이야기를 모범적으로 담아낸, 법학이라는 전문 분야의 글쓰기 방식을 바꾼 최초의 책으로 평가 받고 있는 책, 인간의 기본적인 가치의 중요함을 쉽고도 진솔한 언어로 표현해 낸 이 책, 읽은 후 절대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