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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인 칼럼> 성(誠)이 없는 정치는 헛되고 헛되다<발행인 칼럼> 성(誠)이 없는 정치는 헛되고 헛되다 박일훈 법학박사 어느덧 12월도 중순이다. 또 한 해의 끝자락에서 삶을 돌아보게 된다. 할 일들은 아직 많이 쌓여 있는데 속절없이 세월만 흘러가니, 마치 갈 길 먼 나그네가 저무는 석양을 난감하게 바라보는 형상이 아닐 수 없다. 장자(莊子)의 지북유(知北遊)를 보면 공자(孔子)가 노담(老聃, 노자)에게 지도(至道)가 무엇인지를 물었다. 그러자 노자가 이에 답하는 중에 "사람이 하늘과 땅 사이에 나서 산다는 것은 흰말이 문틈으로 지나가는 것처럼 순간일 뿐이다.”(人生天地間 若白駒之過隙)라는 말을 한다. 무릇 도(道)라고 하는 것은 깊고 멀어서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것이다. 박식이 반드시 참된 앎이 아니요, 능변이 반드시 지혜가 아니듯 말이다. 도가도비상도(道可道非常道)라 했으니, 도(道)라는 것은 애당초 말로써 한정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닌 데 비해 인생은 ‘흰말이 문틈으로 지나가는 것처럼’ 정녕 찰나의 순간에 지나지 않으니 실로 허망하지 않을 수 없다. 이달 초 카타르 월드컵 포르투갈전에서 한국이 16강 진출을 확정 짓는 모습을 보고 우리 국민은 대부분 감격스러워했을 일이다. 대한국민이 받는 연말 선물로써 이보다 좋은 것이 있으랴. 세계랭킹 1위의 브라질과의 경기에서 비록 1대 4로 패해 8강 진출은 무산되었지만,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투혼을 불사르는 선수들을 바라보면서 우리는 저마다 감동 어린 전율을 느꼈을 것이다. 중용(中庸)에 "성실함은 사물의 시작과 끝마침이니, 성실하지 않으면 사물이 없게 된다”(誠者物之終始, 不誠無物)는 말이 있다. 여기서 성(誠)은 ‘성실함’ ‘진실함’을 뜻한다. 어떤 일을 대하는데 성실하고 진실하게 접근하지 않는다면, 하고자 하는 일을 제대로 성취할 수 없다는 것은 당연한 이치이다. 진실하고 성실한 그 태도로 사람과 사물을 대할 때, 우리는 감동과 위안을 받게 된다. 따라서 성(誠)은 문제해결을 위한 기본적인 마음 자세이고 출발점인 것이다. 지난달에는 더불어민주당 대변인 김의겸 국회의원이 국정감사장에서 인터넷 매체를 통해 폭로된 제보를 바탕으로 ‘청담동 술자리’ 의혹을 제기해 파란을 일으켰다. 김 의원은 장관에게 대통령과 함께 어떤 술자리에 갔느냐며 추궁을 하였고 누가 참석했느니, 어떤 노래가 불렸느니, 끝도 없는 디테일들이 동시다발적으로 일파만파 무성했었다. 경찰 조사에서 제보자의 꾸며낸 이야기라는 것이 밝혀지면서 한바탕의 소란은 일단락되었지만 이미 여론은 나빠질 대로 나빠진 뒤였다. 결국은 김 의원이 유감을 표명했지만, 한겨레신문 기자 출신이라는 자가 진위도 불분명한 고작 녹음테이프 하나만 가지고서 일국의 대통령과 장관에게 똥물 세례를 퍼부을 수 있는 일이었던지 심히 의심스럽다. 어쨌거나 윤석열 정부의 이미지에 먹칠한 공로는 무시하기 어렵겠지만, 기본적으로 성(誠)이 전혀 없는 위인이 아닐 수 없다. 이상민 행안부 장관을 지키려고 이태원 참사 국정조사를 보이콧하겠다는 대통령실은 염치없고 성(誠)도 없지만, 더불어민주당이 탄핵소추를 추진하겠다는 것도 그리 쉽게 납득이 되지 않는다. 윤 대통령이 끝내 이상민 장관을 해임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윤 대통령이 짊어질 몫이다. 그런데 정작 민주당이 국정조사를 제대로 할 준비가 되어 있는지 의구심이 떨치기 어렵다. 야당 의원들은 공공연히 윽박지르기로 청문 시간을 날려 먹고, 사실 파악조차 안 된 추궁으로 오히려 무안을 당하기가 십상이다. 이모(李某) 교수를 이모(姨母)라고 주장하는가 하면, ‘영리법인 한(국3M)’을 한동훈 법무부 장관의 딸로 넘겨짚고, 미확인 청담동 룸살롱 의혹을 추궁하던 의원들은 오직 정부·여당을 공격할 생각에 사로잡혀 진짜 중요한 질문을 망각하고 만다. 국회의원 수 절반을 훨씬 넘는 의원 수를 가진 제1야당 민주당은 줄곧 본질을 잊어버린 채 부차적 논란과 지엽적 말단에 관한 일에만 집중하고 있다. 도대체 김건희 여사의 사진 연출이나 팔짱, 노 마스크가 제1야당이 그렇게 에너지를 쏟아야 하는 문제인가. 민주당이 그토록 열정적으로 업무개시명령을 비판한다면 화물차 기사의 임금·안전을 이슈화하고 법으로 보장하는 데에 그렇게 게을러서는 안 되었다. 윤석열 정부가 더 심하다는 지적은 굳이 불필요하다. 내부총질 문자부터 비속어 논란, MBC 기자 전용기 탑승 불허에 슬리퍼 공방까지 가십을 위기로 키운 일은 숱하게 많았다. 그러기에 윤 대통령과 국민의힘이 30% 지지율에 갇혀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민주당 지지율이 오르고 있는 것도 아니다. 정부와 여당의 지지율이 낮게 고착화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민주당이 신뢰를 얻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과연 이재명 대표의 사법리스크 때문일까. 정부와 여당에 상처를 내기만 하면 민주당의 지지율이 오를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와 관성에 매몰돼 마땅히 걸어가야 할 길을 쉽사리 잃어버리기 때문은 아닐까. 정권 비판에만 예민하게 반응하는 사이 핵심은 묻히고 가치는 실종되며 국민은 뒷전이 되고 만다. 지난 11월 말 갤럽 조사에 따르면 민주당 32%, 국민의힘 28%로 국민 3분의 1 이상의 호감을 얻는 정당은 아예 없다. 성(誠)이 하나도 없어서 성실하지도, 진실하지도 못한 정치집단을 외면할 수밖에 없는 국민 대다수의 심정은 연말을 맞아 더욱 공허하고 허망하다. 무릇 인생이란 게 흰말이 문틈으로 지나가는 것처럼 찰나의 순간일 뿐인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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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악 칼럼> 이태원 참사로 드러난 대한민국의 후진성<남악 칼럼> 이태원 참사로 드러난 대한민국의 후진성 金昌辰(전 초당대 교수. 문학박사) 10월 29일 밤, 서울 이태원에서 할로윈데이를 즐기던 사람들이 무려 156명이나 압사하는 참사가 벌어졌다. 이번 사고로 한국은 안전한 나라라는 환상이 깨져버렸다. 이태원 사건을 뼈저리게 반성하고, 안전한 나라를 만들기 위해 분발해야 한다. 세 가지를 고쳐야 한다. 첫째, 사고 예방 문제, 둘째, 사고가 난 뒤 보고와 수습 체계, 셋째, 사고를 대하는 국민의 자세이다. 첫째, 사고 예방을 못한 문제이다. 개인이 할로윈데이를 즐기는 건 자유다. 하지만 사고 안 나게 해야 한다. 자신의 생명은 자기 스스로 지켜야 한다. 참사에는 참여자들도 책임이 있다. 사고를 모두 정부 탓으로만 돌려선 안 된다. 또 이태원 업소들도 책임이 있다. 이태원파출소에서 업소에 질서 유지 협조 요청을 했다고 한다. 그러나 업소는 호응이 적었다고 한다. 돈에 정신 팔려 아까운 생명을 죽음에서 구하지 못한 이태원 장사꾼들도 책임을 느껴야 한다. 하지만 가장 큰 책임은 정부당국에 있다. ‘행정안전부’는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책임지라고 있는 부서다. 할로윈데이에 청년들이 이태원, 홍대 등지에 모여서 놀 것은 예측 가능하다. 따라서 서울경찰청, 용산경찰서, 서울시, 용산구 등이 합동으로 사전 통제 계획을 세워서 사고를 막았어야 한다. 정부가 현명하게 대비만 했다면 이태원 참사는 충분히 막을 수 있었다. 이번 사고를 "안전한 나라”를 만드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행정안전부는 주최자 관계없이 축제・행사 관리 매뉴얼을 만들어, 사고 예방에 힘써야 한다. 둘째, 사고가 난 뒤 보고와 수습 체계도 큰 허점을 드러냈다. 윤석열 대통령은 이태원 참사가 벌어진 지 46분 뒤에야, 이상민 행안부 장관은 1시간도 더 지난 뒤에야, 김광호 서울경찰청장은 1시간 20분 뒤에야, 윤희근 경찰청장은 2시간 뒤에야 보고받았다. 이래서야 사태를 신속히 수습할 수 있겠는가? 용산대, 경찰청, 서울경찰청 등의 상황실이 모두 무능했다. 국가 재난 통제 시스템이 무용지물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만약에 북한이 한국에 핵무기를 쏜다면 이 정부가 막아낼 수 있을까? 국민은 매우 불안하다. 윤석열 정부의 국가 안전 관리 능력이 형편없음이 드러났다. 그럼에도 국무총리, 장관 등은 책임 회피로 일관했다. 참사에 가장 책임이 큰 이상민 행안부 장관은 10월 30일 정부 브리핑에서, "경찰과 소방을 미리 배치함으로써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었다”고 아주 무책임한 발언을 했다. 그 자리에 함께 있던 한덕수 총리는 그 발언을 듣고도 가만히 있었다. 게다가 그는 11월 1일, 외신 기자간담회에서는 농담을 하며 웃기까지 했다. 또 박희영 용산구청장은 "구청에서 할 수 있는 역할은 다 했다”고 말했다. 아니 용산구청이 그렇게 대비를 잘 했으면 왜 참사가 벌어졌겠는가? 윤석열 정부의 고위 공직자들은 무능한데다 무책임하기까지 하다. 권력만 누리고 책임은 안 지려는 자들은 공직자가 되어선 안 된다. 대통령은 썩어빠진 공직자들을 모두 갈아치워야 한다. 경찰은 대대적 개혁을 해야 한다. 셋째, 참사를 대하는 국민의 자세이다. 이번에 용산 경찰서장은 이태원에 경찰력을 동원하지 못했다. 용산대 주변에서 벌어진 ‘윤석열 대통령 퇴진 촉구’ 시위대를 막는 데 경찰력을 모두 투입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윤 대통령 탄핵 시위대는 이번 참사에 간접적 책임이 있다. 경찰력을 쓸 데 없는 곳에 낭비하게 함으로써 정작 국민의 안전을 지키는 데 소홀하게 한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취임한 지 반 년 밖에 안됐다. 도대체 윤 대통령이 무슨 큰 잘못을 저질렀기에 탄핵을 주장하는가? 탄핵 시위를 하는 자들은 나라를 혼란케 하려는 자들이다. 나라 경제가 매우 어렵다. 정치가 안정돼야 경제도 좋아진다. 나라를 사랑하는 국민이라면 정부를 흔들지 말아야 한다. 이태원 참사를 대통령 탄핵에 악용하려는 자들이 있는데, 아주 사악한 자들이다. 민주당은 국정조사와 특검을 하자고 떠든다. 하지만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다. 일단은 경찰 조사를 지켜보아야 한다. 그 결과를 보고 미진하면 그때 가서 국정조사를 하든 특검을 하면 된다. 또 책임자들에 대한 처벌도 사건 수습을 마무리한 다음에 하면 된다. 지금 떠드는 건 수습을 방해할 뿐이다. 현재 경찰이 이태원 사고를 ‘셀프수사’하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민주당이 검찰이 이재명을 수사 못하게 하려고 만든 ‘검수완박법’이 검찰이 대형 참사를 수사하지 못하게 막기 때문이다. 무능한 경찰에 수사권을 몰아준 민주당이 이제 와선 국정조사와 특검을 떠드는 게 낯뜨겁지 않는가? 문재인 대통령과 민주당은 세월호 참사를 9번이나 계속해서 수사를 해왔다. 그러면서 다시는 세월호 같은 사고가 안 나는 "안전한 나라”를 만들겠다고 장담했다. 그런데 다시 이태원 참사가 났다. 문재인 말대로 과연 "안전한 나라”가 됐는가? 이태원 참사에 과연 민주당은 책임이 없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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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테나> 핼러윈 문화, 이태원 참사<아테나> 핼러윈 문화, 이태원 참사 노운서(논설위원, 교육학박사) 핼러윈데이, 서울 한복판 이태원 참사가 전 국민을 슬픔과 아픔에 빠트렸다. 주최자 없이 자발적으로 십만 명 이상의 사람들이 수용 불가의 좁은 길거리에 운집했음에도 국가의 입장 인원 통제계획이 사전에 없어 벌어진 참사다. 게다가 축제 참가자들이 본능적으로 ‘압사 사고가 날 것 같다’, ‘통제 좀 해달라’, ‘죽을 거 같다’ 등의 긴급 구조요청을 11차례나 했으나 어떻게 된 일인지 국가의 재난 안전 시스템은 작동되지 않았다. 이는 순전히 국가의 무방비가 빚어낸 대참사이다. 이 자릴 빌어 희생된 156명의 청춘남녀를 깊이 애도하며 명복을 빈다. 이번 참사의 희생자 중 가장 많은 연령대는 이십 대라고 한다. 삼 년 만의 코로나 마스크 규제에서 자유분방한 젊은이들. 외국인들이 많이 산다는 이태원에는 괴기한 복장을 한 젊은 연인들이 모여들어도 이상한 눈빛으로 보는 사람도 없고 이를 구경하는 사람들까지 이태원으로 모여든다고 한다. 이 젊은이들 심리에는 외국 문화에 대한 열린 마음과 ‘즐거운 인생’이 깔려 있거니와 SNS에 사진 찍어 올릴 생각을 하며 디지털적 존재로서의 실존을 느끼고 싶었을 것이다. 한 번쯤 일탈을 꿈꾸는 젊은이들은 괴기한 분장과 복장으로 거리를 활보하면서 청년문화의 주류로서 당당함도 느낄 것이다. 그러나 괴기한 복장과 분장으로 일탈의 저항과 자유의 두 날개를 단 젊은이들이 생명의 위협을 느꼈을 때는 이미 안전이라는 강을 건너버린 시점이 되고 말았다. 이번 참사를 통해 자유란 인권과 생명의 존엄이 지켜질 수 있는 통제 안에서의 자유가 참된 자유라는 가장 보편적 상식을 국민들은 새삼 느꼈을 것이다. 그리고 그 많은 젊은이들을 몰려들게 한 핼러윈데이에 대해 다시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핼러윈의 유래는 죽은 사람의 영혼이 돌아온다고 믿는 유럽의 켈트 문화에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그 정신 중 하나에 인간을 괴롭히는 귀신을 물리치기 위해 귀신보다 더 무서운 분장과 의상을 차려입었다. 마을 아이들이 유령이나 마녀로 분장하고 '잭오랜턴'이라는 이름의 호박 등을 켜놓은 집에 찾아가 사탕이나 초콜릿 간식 등을 얻어내는 핼러윈은 유럽 이민자들이 미국으로 이주하며 원주민 문화와 융합, 변동된 형태다. 현재 미국의 핼러윈이 전 세계로 퍼지면서 그 의미나 순기능은 약화된 채, 코스튬(무대에서 시대나 인물의 역할을 나타내는 의상)을 입고 노는 놀이형태로 변질, 정착된 듯하다. 올해도 미국의 핼러윈은 총기 난사 사고로 3세, 11세 등의 어린아이를 포함해 46명이 부상당했고 10명이 숨지는 사고가 발생하는 등 매년 사건 사고가 끊이지 않아 미국도 핼러윈에 대한 시선이 곱지는 않다고 한다. 이 핼러윈에 대한 회의적 생각은 몇 년 전 필자에게도 있었다. 2천 년 들어 영어유치원 확산을 계기로 미국문화 습득과 영어교육의 일환으로 핼러윈이 유아교육에 활용됐다, 사립 유아교육계의 심한 경쟁풍토와 상술이 맞물리며 핼러윈 프로그램 도입이 유아교육계에 유행처럼 번졌다. 핼러윈을 아이들에게 경험시켜야 하는가 말아야 하는가의 선택은 운영자인 원장이 결정을 해야 했다. 필자는 원장으로서 젊은 교사들과 대화를 나눈 결과, 핼러윈 프로그램 도입은 하지 않기로 결정 내렸다. 그 이유는 유아들의 언어, 인지, 사회 발달상 죽은 자의 영혼에 대한 이야기는 무리가 따른다는 것이었다. 외국 문화의 배척이라기보다는 우리 문화도 충분히 다 알 수 없는 아이들 정신구조에 귀신 복장과 분장 그리고 ‘잭 오랜턴 호박‘을 들고 의미도 모를 외국 문화를 경험하게 하는 것은 시기상조일뿐더러 문화의 왜곡현상이 각인될 수 있기 때문이었다. 또한 마음 한구석에는 의상과 모자는 한 번 쓰고 버릴 소재인지라 지구촌 쓰레기 걱정도 있고 해서 교육적으로 온당치 못하다는 생각이 몽글거렸다. 글로벌 시대이니 상대의 문화를 알고 그들을 이해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무분별한 도입과 그 의도와 목적이 아이들 삶에 도움이 되지 않는 문화도입은 불필요하다고 판단하였다. 무엇보다 원장의 선택적 사고는 후일 사회 구성원이 될 유아들의 사회적 행동에 일파만파 영향을 미칠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필자는 그때의 선택을 지금도 후회하지 않는다. 하물며 국가의 수장인 대통령이 국민안전을 최우선으로 고려치 않는다면 이런 대참사가 날 수 있는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다. 국가는 젊은이들을 위한 건전한 문화생활에 대해 단 한 번이라도 생각한 적이 있었는가? 그날 하루의 청년문화를 지켜주지 못한 결과가 이렇다. 더욱 실망스러운 것은 참사 후 진정성 있는 반성은 커녕 책임 떠넘기기식 조사와 검증으로 여야 공방이 이뤄지고 있어 선진한국의 위상이 부끄러울 뿐이다. 국가는 국민 앞에 참회하고 이태원 참사에 대한 다각적 측면에서 조사, 책임규명 후 대책을 세워야 한다. 아무리 경제적·정치적으로 혼란하더라도 국가안전 재난 시스템만은 최우선으로 가동시켜야 함을 확실하게 천명해야 한다. 특별히 디지털 아이들, 십 대 이십 대들의 유희 욕구와 그들의 자연적 실존의 가치를 실현할 건전한 자연환경과 교육, 문화컨텐츠 개발 및 시설의 혁신 등도 시급하다는 것은 말할 나위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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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 이야기> 키오스크가 뭐야?<IT 이야기> 키오스크가 뭐야? 金在珥(동신대 교수, 공학박사) 필자가 사는 동네에 국수 맛집이 있어 종종 들른다. 몇 번 이용한 뒤론 다소 익숙해졌지만 처음 갔을 땐 주문하는데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우선 입장할 때도 가게 앞에 세워진 모니터에 폰 번호를 입력하고 밖에서 대기하고 있어야 한다. 맛집이라 손님이 많아 30분 이상 기다리기 일쑤이다. 순서에 따라 입장하라는 메시지가 오면 지정해 주는 좌석에 앉아 태블릿 PC를 조작해서 주문을 하게 된다. 이름하여 요즘 유행하는 ‘키오스크’(kiosk)라는 ‘무인정보단말기’ 시스템이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비대면 결제 방식이 확산되면서 공공기관, 은행, 음식점, 카페 등 우리 생활 곳곳에 키오스크가 보급되고 있다. 종업원과 대면해서 음식을 주문할 때는 "맵지 않게 해 달라”던가 "양을 적게 해 달라”던가 취향대로 부탁할 수 있는데, 이 시스템에서는 규격화된 메뉴만 가능해서 대면 주문에 익숙한 이들은 그닥 달갑지 않은 시스템이다. 그렇지만 인건비 절감 및 업무 효율성을 내세워 무인 키오스크를 사용하는 매장과 시설이 급증하고 있다. 농림축산식품부의 자료에 의하면, 2021년 전국 외식업체 중 4.5%가 키오스크를 쓰는데 서울에서는 전국평균의 2배 가까운 8.8%가 사용 중이다. 피자·햄버거·샌드위치 업종만 보면 16.7%나 된다. 필자는 40년 이상 컴퓨터를 다뤘는데도 이 시스템이 생경한데, 평소 컴퓨터나 스마트폰을 자주 활용하지 않는 디지털 소외계층인 장·노년 세대는 어떻겠는가. 그들은 고속버스·영화·기차 등의 예매, 식당이나 카페에서의 식·음료 주문 등 일상생활 중 여러 장소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을 것이다. 70대 이상의 정보화 수준은 한국인 평균의 46.6%에 그친다. 서울의 경우 그와 같은 80대 이상 인구는 3.7%, 약 35만명이다. 이와같이 키오스크 이용방법을 몰라 어려움을 겪고 있는 디지털 소외 계층을 대상으로 복지관, 노인대학, 동주민센터 등에서 보통 5~6주, 길게는 12주 과정의 키오스크 강좌가 개설되어 있다. 또한 11월4일자 시선뉴스(http://www.sisunnews.co.kr)의 기사에 의하면, 한국공학기술연구원(KETRI)은 키오스크와 친숙해 질 수 있는 기회 및 경험을 제공하는 학습용 키오스크를 자체 개발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전국의 여러 노인복지관 및 평생학습관을 찾아가 비대면 시대 적응과 키오스크를 체험을 할 수 있는 ‘디지털 에이징’ 교육을 실시하고 있단다. ‘디지털 에이징’이란 Digital(정보통신)과 Ageing(노화)을 합친 용어로 ‘정보통신 기기를 잘 사용하며 건강하게 나이가 드는 것’을 의미한다. 교육 내용은 실생활 콘텐츠를 중심으로 무인정보단말기를 이용하여 스스로 접수하고 예매 할 수 있도록 이론과 현장 실행을 곁들이는 방식으로 진행한단다. 최근에는 은행 ATM 거래와 동사무소 증명서 발급의 무인 업무 콘텐츠까지 추가하여 보다 폭넓은 체험이 가능해졌다고 한다. 키오스크 시스템은 그 자체로 빅데이터를 축적할 수 있다. 가장 많이 팔린 메뉴가 무엇인지, 시간별·요일별·계절별로 잘 나가는 메뉴가 어떤 것인지 바로 알 수가 있다. 빅데이터 분석을 통해서 더 많은 성과를 올릴 정보를 얻을 수 있으므로 업주 입장에선 인건비 절약과 함께 구미가 당기는 시스템임에 틀림없다. 이와 같이 키오스크는 유익한 도구이지만 남녀노소 그리고 장애인 모두가 손쉽게 이용하기 위해서는 지자체와 제작사 그리고 사용자 모두 협업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 광주디자인진흥원이 2022년도에 광주 유스퀘어(U-square) 버스터미널의 티켓 구매 키오스크에 대한 현장 리서치 결론을 첨언한다. 첫 번째, 디지털 리터러시 향상을 위한 노년층 대상 교육의 확산이다. 디지털 리터러시(Digital Literacy)는 디지털 문해력이라고도 하는데, 디지털 플랫폼의 다양한 미디어를 접하면서 명확한 정보를 찾고 평가하고 조합하는 개인의 능력을 말한다. 두 번째로는 공공 키오스크에 대한 강력한 표준화 가이드라인이다. 모든 공공 키오스크가 동일한 구매 버튼의 위치·크기·색상을 가지고 있고, 다음 단계로 진행하는 버튼은 모두 같은 자리에 있으며, 구매를 원하는 상품을 탐색하는 과정이 거의 동일하게 배치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배려를 통해 노년층도 키오스크에 좀 더 쉽게 적응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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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인 칼럼> 공의를 마르지 않는 강 같이 흐르게 하라<발행인 칼럼> 공의를 마르지 않는 강 같이 흐르게 하라 박일훈 법학박사 굳이 기독교인이 아니더라도 한 번쯤은 들어봄 직한 성경 구절 중에 예언자 아모스의 말씀이 있다. "오직 정의를 물 같이, 공의를 마르지 않는 강 같이 흐르게 하라.”(아모스 5장 24절) 우리는 8년 전 304명의 안타까운 목숨을 잃고 한동안 통탄의 시간을 보냈다. 우리 국민 5천만 대다수가 극심한 트라우마를 호소했고 그 파장은 결국 대통령 탄핵이라는 초유의 사태로 이어졌다. 그리고 또다시 이번 이태원 참사로 156명의 귀중한 생명을 잃어야 했다. 우리 사회엔 언제부턴가 ‘진보는 깨끗하지만 무능하고 보수는 부패했지만 유능하다’라는 식의 관념이 일반 대중의 마음에 자리 잡고 있다. 그래서인지 지난 문재인 정부는 ‘깨끗하고 유능한 정부’를 표방하고 나섰다. 그러나 조국 사태를 통해 도덕적 위선이 드러나고 부동산 사태를 겪으면서 무능의 덫에 갇히고 말았다. 결국 촛불혁명을 등에 업고 탄생한 문 정권은 어이없게도 스스로 무너져 내렸다. 다만 문 정부 측 인사인 윤석열 검찰총장을 대선 후보로 잘 키워서 그를 야당으로 보내 대통령이 되도록 공신 노릇을 다했을 뿐이다. ‘진보는 무능할 뿐만 아니라 깨끗하지도 않다’라며 국민은 다시 분열했고, 대장동 게이트의 핵심 인물로 알려진 거대 여당 민주당의 이재명 대선 후보를 국민은 마침내 간발의 차로 무릎 꿇게 했다. 국민의 기대가 늘 급변하고 돌변하며 다변하다는 것을 모를 리 없는 윤석열 정부다. 그러기에 대통령의 인사 스타일이 ‘서오남’(서울대, 50대, 남자)이나 ‘경육남’(경상도, 60대, 남성)과 같다는 여론의 비난을 감수하면서도 이른바 ‘전문가 정부’를 주창하고 나섰다. 야당들도 일제히 ‘아재 내각·꼰대 내각’이라며 강력히 비판하고 있지만 말이다. 사실 대선 때부터 틈만 나면 "대한민국 최고의 전문가를 모시겠다”라고 강조하던 윤석열 대통령 후보가 아니었던가. 검찰과 관료 출신들로 대통령실과 내각을 꾸린 것도 따지고 보면 다 그들이 전문가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리라. 그런데 지난 이태원 참사를 돌이켜 보면 윤석열 정부가 과연 전문가 정부인지 의심스럽다. 진정 윤석열 정부의 내각이 전문가 집단이었다면 그들은 이태원 참사와 관련한 사전 위기 징후들을 절대 무시하지 않았을 것이며, 병력 지원 요청도 묵살하지 않았을 것이다. 게다가 참사 이후 줄곧 무책임한 태도로 일관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관료들은 정해진 법규와 원리에 충실한 집단이다. 주어진 업무에 일정한 성과를 내는 데는 뛰어나지만 경직성과 폐쇄성 때문에 유연하고 창의적인 사고를 기대하기란 어렵다. 정부가 참사 첫날부터 "주최자가 없어 대비하지 못했다”라는 주장을 반복하는 것을 보더라도 이를 금방 알 수 있다. 대통령 주변의 검사들과 특권층 엘리트들은 당연히 권력지향적이다. 국민과 눈을 맞추기보다는 최고 권력의 의중을 살피는 게 그들의 생존방식이다. 대통령실부터 총리, 행안부 장관, 경찰청장, 용산구청장 등 책임자들이 하나같이 현실과 동떨어진 언사로 국민의 염장을 지르고 있는 데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다. 희생자를 사고자로, 참사를 사고로 끝까지 고집하는 것도 자기들의 안위만을 생각하는 데서 비롯된 행위이다. 우리나라 헌법 제7조 제1항은 "공무원은 국민 전체에 대한 봉사자이며, 국민에 대하여 책임을 진다.”라고 규정한다. 하지만 국민의 생명과 안전의 최일선에 선 경찰 지휘부는 결코 봉사자의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오히려 무능하고 나태했다. 어떻게 위험이 도사린 현장을 놔둔 채 잠을 잘 수가 있으며 근무지를 이탈하고 늑장을 부릴 수가 있는가. 저런 위인들에게 과연 이 나라의 수사권을 통째로 쥐여 줘도 되는 일인가. 지난 10일로 취임 6개월을 맞은 윤 대통령에게 지금은 위기의 순간일 수밖에 없다. 지난 4일 이태원 참사와 관련해 윤 대통령이 뒤늦게라도 사과한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동시에 국정 운영 기조를 전면적으로 쇄신해야 할 것이다. 그 선행조건으로 대통령실 참모들과 내각에 대한 개편 작업이 있어야 한다. 한편 우리 사회는 상시적인 재난 사회라고도 한다. 하루가 멀다고 매일같이 노동자 한두 명씩은 불의의 사고에 노출돼 목숨을 잃고 있다. 이렇게 방치된 죽음이 매년 2, 3백 명이나 된다고 한다. 재난이 늘 반복되고 심지어 대형 참사도 이어진다. 재난이 발생할 때마다 우리가 애써 외면한 사회 구조적 문제에 그 원인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고 뒤늦게나마 가슴을 친다. 하지만 값비싼 대가를 치러가며 얻은 깨달음은 우리에게 그리 오래가지 않는다. 우리는 재난 상황에 그저 잠시 잠깐 놀라서 충격을 받을 뿐, 재난 당사자들의 슬픔에 공감하지 못한다. 결국 우리는 진정 아무것도 깨닫지 못하고 무심코 다시 일상으로 돌아오는 것이나 다름없다. 각종 재난과 대형 참사가 되풀이되는 까닭이다. ‘공의’란 히브리어로 ‘째다카’라고 한다. 그것은 하느님과 사람 사이 또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올바른 관계’를 말한다. 애통하는 사람한테는 같이 울어주고 기쁜 사람과는 함께 웃어주는 일, 즉 이웃의 즐거움이나 슬픔에 공감해주는 마음이 공의로운 것이다. 부디 우리 사회에 공의가 마르지 않는 강같이 흘러서 이 땅에 다시는 대형 참사가 일어나지 않도록 해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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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인 칼럼> 이준석, ‘싸가지 없이’ 살 길은 없다<발행인 칼럼> 이준석, ‘싸가지 없이’ 살 길은 없다 박일훈 법학박사 ‘싸가지’란 말이 있다. 어감이 별로여서 입에 올리는 것이 그리 좋아 보이지 않는다. 대부분 ‘싸가지 없다’로 표현한다. 반대로 ‘싸가지 있다’라는 표현이 우스갯소리로 가끔 들리기도 하는데, 그 역시 별로 장려할 것이 되질 않는다. 싸가지는 ‘싹’과 ‘아지’가 합쳐서 이루어진 말이다. 동물의 새끼나 작은 것을 가리키는 접미사 ‘아지’가 ‘싹’과 결합하여, 싹이 막 나오기 시작하는 상태인 ‘싹수’를 일컫는 말이 되었다. 그러니까 싹수는 싸가지의 좀 순화된 표현이다. 그래도 여전히 어감은 안 좋다. 싹수는 식물의 씨앗에서 제일 먼저 트이는 잎을 말하기도 하지만, 앞으로 성공하거나 잘될 것 같은 낌새나 징조를 뜻하는 말로 자주 사용된다. ‘싹수가 노랗다’(가능성이나 희망이 애초부터 보이지 않아 개선의 여지가 없다)라는 관용구에서 알 수 있듯이 싹수 역시 부정적인 내용으로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다. 하여튼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에게 따라붙는 수식어 중 하나는 ‘싸가지 없다’는 말일 것이다. 싸가지가 없다는 평을 듣는 이 전 대표에게 지난 6일은 정치적으로 실종선고의 날이었다. 실종선고가 실체적 사망을 뜻하지는 않지만 결국 법적으로는 사망 선고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서울남부지법 민사 51부(황정수 수석부장판사)가 이 전 대표가 ‘정진석 비상대책위원회’에 제기한 가처분 신청을 받이들이지 않으면서다. 국민의힘은 이 전 대표가 잇따라 제기한 ‘가처분 리스크’를 해소하면서 정진석 비대위를 중심으로 당 정상화에 속도를 내겠다는 방침이다. 법원이 정 비대위원장을 임명한 전국위원회 의결에 실체적·절차적 하자가 없다고 판단한 만큼 정진석 비대위의 정상적 운영이 가능해졌다. 이로써 지난 7월 당 중앙윤리위원회가 이 전 대표에게 ‘당원권 정지 6개월’ 징계를 내린 지 3개월 만에 분란의 일단이 수습되었다. 법원의 가처분 기각과 당 윤리위의 추가 징계는 이 전 대표에게 처참한 패배를 안겨주었다. 1차전에서 이 전 대표에게 승리를 안겨줬던 법원은 2차전에서 살아있는 권력의 손을 들어줬다. 법원의 결정에 힘을 얻은 윤리위의 행보는 홀가분했으며, 오도 가도 못 하게 만드는 교묘한 덫에 이 전 대표를 가두고 말았다. 생각해보면 아마도 이준석은 무척 억울해할 것 같다. 지난 대선과 지방선거를 연속해서 이기게 한 일등공신이라고 스스로 자부심도 컸을 것이다. 언제는 당원들이 "100년 만에 나올 만한 당 대표”라고 추켜세워주기도 했었다. 그러더니 ‘체리 따봉’ 문자 파동 책임을 거꾸로 자신에게 돌리는 데 대한 억하심정이 없을 수 없다. 당의 기강을 흔들고 권력투쟁에만 관심 있는 ‘윤핵관’들을 비판한 결과가 당원 투표로 선출된 자신의 축출이라니! 도저히 납득하기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정녕 냉정히 생각해보면 오늘의 이러한 사태를 이준석 스스로가 자초한 측면이 없지 않다. 지난해 윤석열 대통령 입당 때부터 사사건건 부딪친 원죄보다도 그의 성 상납 의혹이 빌미를 준 것은 사실이기 때문이다. 비록 경찰 수사에서 불송치 결정은 났지만, 이준석은 한 번도 성 상납 의혹에 대해 제대로 설명한 적이 없다. 솔직하지 못한 태도는 ‘이준석의 쓴소리’가 내는 효과를 반감시켰다. 한국 헌정사 최초 30대 보수당 대표라는 국민적 여망이 완전한 실망으로 추락하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도량이 좁아 다수를 포용하기보다는 배척하기 일쑤였고, 남에게 지고는 못 사는 비뚤어진 승부욕 근성에, 젠더와 세대 등 퇴행적인 갈라치기는 정통보수 당 대표로서의 권위를 손상시키기에 충분했다. 원내 경험이 없는 0선의 이준석을 당 대표로 뽑아준 보수 지지층 상당수도 그의 막가파식 ‘자해정치’에 어느새 등을 돌렸다. 당내 기반도 단단하지 않은 데다 주홍글씨가 새겨진 이준석에게 손을 내밀 원내 인사는 없을 것이다. 추가 징계가 내후년 총선 직전에 풀리겠지만 현재로서는 공천권은 언감생심이다. 그렇다고 밖으로 뛰쳐나가기엔 명분도, 세력도, 자금도 여의치 않을 것이다. 그의 말대로 "더 외롭고 고독한 길”을 갈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해서 이준석이 얻은 게 하나도 없는 것은 아니다. 이준석은 지난 ‘4개월간의 반란’을 통해 그의 강인한 패기만큼은 잘 보여줬다. 대통령 권력이 가장 강한 때가 취임 직후다. 나는 새도 떨어뜨릴 정도의 막강한 권력에 저항하는 것은 여의도 정치판에서 상상조차 못 할 일이다. 승패가 뻔한 싸움에서 굴복하지 않고 제 목소리를 냈다는 인상을 대중들에게 강하게 심어줬다. 전투에서는 졌지만, 전쟁에서 결코 진 것은 아니라는 말이 나오는 까닭이다. 이제 이준석은 무엇보다도 먼저 자신이 지향하는 젊은 보수로서의 가치와 비전을 제대로 세워야 할 때다. 유감스럽게도 그가 당 대표가 되어서 보여준 정치는 국민이 기대하는 참신하고 개혁적인 보수가 아니라, 퇴행적이고 편협한 정치공학, 선거공학뿐이었다. 그리고 한 가지를 더 주문한다면, ‘싸가지 있는’ 이준석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을 비판하기 전에 이준석은 자신의 언행부터 바로잡아야 한다. 이준석에게 늘 "싸가지가 없다”는 평이 뒤따른다. 보수 원로 이재오 고문이 그를 향해 "정치를 제대로 못 배웠다”고 말한 이유가 무엇인지 이제라도 곰곰이 따져 볼 일이다. ‘싸가지 없이’ 살 길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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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테나> 마음 사용설명서<아테나> 마음 사용설명서 노운서(논설위원, 교육학 박사) 문명의 역사는 기나긴 인간 삶의 사용설명서들로 가득하다. KBS에서 방영되고 있는 ‘생로병사의 비밀’도 ‘내 몸 사용설명서’로써 음식과 운동과 건강의 상관성을 밝힌 것이다. 이 같이 인류가 밝혀낸 지식들을 알고 삶에 적용하면 건강, 편리함, 즐거움 등을 선물로 받는다. 2000년대에 들어서 ‘남편 사용설명서’에 이어 ‘직장 상사 사용설명서’ 등의 책이 출간되었다. 제품에나 쓰는 사용이라는 용어를 사람에 차용해 화제였지만, 이혼과 이직률은 높은 디지털 사회에서 마음과 마음의 상관성을 밝혀 사람들의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이 급변하는 사회에서 사람들의 마음은 어떻게 변해 어디로 흘러가는 것일까? 20세기 들어 심리학 철학 등의 발달로 사람들은 개성 강하고 독립적이며 보다 자유로운 사고방식을 지닌다. 반면에 이해와 배려 양보 헌신 봉사 정신 같은 공동체 정신은 희박해져 사회는 삭막하고 인간관계는 어려워졌다. 그런가 하면 개개인의 마음 형태는 다양하고 편차가 커서 인간관계가 어려운 것은 물론 그 마음을 얻는 것도 어렵다. 그도 그럴 것이 마음은 자로 잴 수 없고 그림으로 그릴 수 없으며 그 많은 법의 원리로도 어찌해볼 수 없는 심연이기 때문이리라. 하지만 상담가나 정신의학자들이 말하는 보편적 인간의 마음이란 아무리 시대가 변해도 상대에게 인정받고 싶고 사랑받고 싶음으로 귀결된다. 그러므로 상대의 마음을 알고 얻고자 하는 일은 오히려 아주 단순한 데에서 근사한 답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체리(Cherry)라는 심리학자는 스트레스 상황에 대처하는 인간을 두 부류로 나누었다. 그것은 ‘경주마형’과 ‘거북이형’이다. 경주마형은 스트레스가 있을 때 생기가 돌고 행복해지는 스타일이고 거북이형은 스트레스 없는 평온한 상태에서 행복을 느낀다고 한다. 필자는 이 이론을 접하는 순간 ‘딱 우리 부부다’를 외치며 쾌재를 불렀다. 몇 년 전 필자는 여름휴가를 떠났다. 경주마형인 남편은 처음 차박을 실현하는 꿈에 부풀어 있었는데 거북이형인 나는 심란하기만 했다. 남편은 강변의 뜨거운 태양과 불볕에 달궈진 자갈밭에서 텐트와 그늘막을 치는 등 차박 준비로 무려 세 시간가량이나 구슬땀을 흘렸다. 그 모습을 지켜보며 보조 노릇을 하는 것만으로도 내겐 스트레스 상황이었지만 체리 학자의 주장에 동의하는 바 남편의 행복한 시간을 응원해주며 스트레스를 차단하고 있었다. 좀 더 젊은 날에 이걸 알았더라면 내 삶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후회와 깨달음이 겹쳤다. 체리의 ‘마음 사용설명서’일 수 있는 심리학에 박수를 보냈다. 그 후로는 남편을 응원하고 마음 편히 팔도를 구경하며 산다. 이처럼 나를 알고 너를 알면 그 차이를 용인(容認)하고 상대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게 되니 관계가 좀 평안해진다. 인간관계의 어려움은 내 방식만 상대에게 들이미는 데서 시작된다. 예를 들어 자식 세대들은 똑똑해졌는데 부모의 양육방법이 부재하거나 부진하다면 건강한 부모와 자식 관계가 이루어지기 어렵다. 또 맞벌이로 아내들은 힘들어지는데 남편이 가부장적인 것을 고집한다면 부부갈등은 깊어진다. MZ세대들의 개성과 자유를 무시한 직장 상사가 권위의식만 내세워 직원을 압박한다면 아까운 인재가 들락거려 회사가 불안정할 수 있다는 말이다. 한편 디지털 사회의 인간관계는 비대면화되어 카톡이나 하며 사는 요즘 사람들 마음이 사막화되는 것 같다. 일본의 한 직장인은 동료 여성들로부터 인정받지 못하고 왕따를 당한 후 AI여자와 결혼했다. 마음의 이치를 헤아리지 못해 벌어진 시대의 아픔이지 싶다. 결국 모든 인간관계에서 빚어지는 갈등의 골은 나 자신은 물론 상대의 마음 이치를 헤아리지 못한 무지와 오해가 빚어낸 것들이다. 디지털 시대의 마음 변화, 그 이치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공부한다면 모든 인간관계에 유용 할 것이다. 하지만 사람들의 깨달음의 깊이는 저마다 다를뿐더러 인간은 이기적인 데다가 알면서도 실생활에 적용하지 않는 자기 기망(欺罔)을 저지르기도 한다. 그래서 인간관계에서 마음 이해에 관한 불공정은 늘 존재한다. 또 세상을 향한 열린 마음은 그 정도와 수준에 차이가 있으므로 타인과 나의 마음 사이에서 눈높이의 완급조절이 필요한 것이고 그러기 위해 마음 이치에 관한 책을 읽고 공부하는 것이 그나마 최선책인 것이다. 상담전문가들이 말하는 ‘마음 사용설명서’의 핵심은 타인의 인정과 사랑에 관한한 언제나 그리고 누구나 열망한다는 보편적 원리다. 그러므로 나의 생각과 욕구가 다른 상대를 있는 그대로 인정해주고 공감해 주어야 한다. 한 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사랑해 주고 내가 대접받고자 하는 대로 상대를, 네 이웃을 대접하라는 황금률을 실행한다면 부드럽고 평온해진 상대의 마음이 당신에게 날아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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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악 칼럼> ‘외교 참사’는 윤석열이 아니라 문재인이 저질렀다<남악 칼럼> ‘외교 참사’는 윤석열이 아니라 문재인이 저질렀다 金昌辰(전 초당대 교수. 문학박사) 9월 29일, 민주당은 ‘박진 외무부장관 해임 건의안’을 국회에서 단독으로 통과시켰다. 윤석열 대통령 해외 순방 외교 실패의 책임을 물었다는데, 전혀 타당성이 없다. 민주당은 이제 厚顔無恥후안무치한 막장 정당이 되고 말았다. 윤석열 대통령은 9월 18부터 24일까지 5박 7일간 영국과 미국을 순방하는 외교 활동을 펼쳤다. 이에 대해 민주당과 MBC 등 일부 언론은 윤 대통령의 순방 기간 내내 악의적으로 사사건건 왜곡된 정보로 비난을 퍼부었다. 윤 대통령이 영국에 도착한 날, 교통이 혼잡해 영국 정부의 안내에 따라 조문을 다음날로 미뤘다. 이를 탁현민 전 청와대 의전비서관은 "윤 대통령은 육개장 먹고 발인 보고 왔다는 것”이라고 비난했다. 또 최재성 전 청와대 정무수석은 윤 대통령의 조문 외교는 부끄럽고 민망한 외교 참사라고 비난했다. 그러나 윤 대통령과 비슷한 시간대에 도착한 모나코 국왕. 그리스 대통령, 오스트리아 대통령, 리투아니아 대통령, EU 집행위원장, 이집트 총리, 파키스탄 총리 등 국가 정상급 인사 다수도 장례식이 끝난 후 조문록에 서명했다. 그러나 그런 나라들에선 아무 말이 없었다. 오로지 민주당만 그걸 비난해댔다. 또 윤 대통령이 조문록의 왼쪽에 글을 썼다고 탁현민은 "정말 얼굴이 뜨거운 일”이라고 비난했다. 하지만 일왕, 인도 대통령, 스위스 대통령, 브라질 대통령, 싱가포르 대통령, 콩고 대통령, 탄자니아 대통령, 코소보 대통령 등도 조문록의 왼쪽에 글을 썼다. 민주당은 왜곡된 정보로 윤 대통령을 비난한 것이다. 또 김건희 여사가 착용한 검은 베일을 두고, 좌파 방송인 김어준은 "로열패밀리의 여성들만 망사를 쓰는 겁니다”라며 비난했다. 또 황희두 노무현 재단 이사도 "재클린 따라 하려고 무리수를 참 많이 두는 거 같네요”라고 비아냥거렸다. 하지만 영국의 요청에 따라 프랑스 대통령의 부인, 브라질 대통령의 부인, 캐나다 총리의 부인 등도 베일이 달린 모자를 쓴 것으로 드러났다. 이렇게 민주당은 아무 근거도 없는 왜곡된 말로 계속해서 윤 대통령을 비난해댔다. 윤석열 대통령은 영국 국왕 찰스 3세 주최의 환영 행사에서 국왕과 만났다. 찰스 3세는 윤 대통령에게 감사의 인사를 한 뒤 가족을 소개했다. 그런데 민주당과 일부 언론은 "윤석열 대통령이 홀대를 당했다”고 비난해댔다. 이에 콜린 크룩스 주한 영국 대사가 나서서, "장례식이 핵심 행사”이며 시신 참배보다 장례식 참석이 더 중요하다면서 민주당의 조문 홀대론을 일축했다. 그리고 또 최근 클레버리 영국 외교장관은 직접 방한해서 "영국 정부를 대표해 다시 한 번 각별한 사의를 표한다”고 말했다. 아니 한국 대통령의 조문이 잘못됐으면 영국 외교장관이 한국까지 찾아와서 감사 인사를 하겠는가? 또 민주당은 윤 대통령이 일본 총리를 찾아가 30분 약식 회담을 한 것도 비난해댔다. 하지만 지금 한일 관계가 좋지 않은 것은 문재인 정부가 한일 간 합의를 파기하고 죽창가를 불러댔기 때문이다. 그래서 문재인 정부의 마지막 주일 대사는 1년이 넘도록 일본 외교장관도 만나지 못했다. 그런 악화된 한일관계를 어떻게든 풀어보려고 윤 대통령이 일본 총리를 찾아가면서까지 노력했는데, 미안해하고 감사해하기는커녕 비난해서야 쓰겠는가? 또 민주당은 윤 대통령이 미국에 가서 발언을 잘못해서 외교 참사를 일으켰다고 비난했다. 하지만 최근 미국 해리스 부통령이 방한하여, "바이든 대통령은 윤 대통령에 대해 깊은 신뢰를 가지고 있으며 지난주 런던과 뉴욕에서 이뤄진 윤 대통령과의 만남에 대해 만족스럽게 생각한다”고 했다. 미국 부통령이 한국을 찾아와 감사했는데, 이것이 무엇이 외교 실패이며 외교 참사인가?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민주당은 계속해서 거짓말로 윤 대통령을 ‘외교 참사’라고 비난해댔다. 하지만 진짜 ‘외교 참사’는 문재인 대통령이 저질렀다. 문재인 대통령은 2017년 3박 4일 일정으로 중국을 국빈 방문했다. 그러나 중국은 10끼 중 2끼만 대접해서, 문 대통령은 8끼를 혼자 먹었다. 또 중국 공안이 한국 기자들을 개 패듯 두들겨 패고 구둣발로 짓밟았지만 한국 정부는 사과도 받지 못했다. 게다가 문재인은 "중국은 커다란 봉우리고 한국은 작은 나라”라고 스스로 중국에 사대했다. 바로 이런 것이야말로 진짜 ‘외교 참사’다. 문재인은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위가 제재 위반 사례를 소개한 연례 보고서에 제재 위반 현행범으로 올라갔다. 또 문재인은 2019년 일본과 맺은 정보 교환 협정(지소미아)을 일방 파기한 후 "미국도 이해했다”고 했다. 하지만 미국 정부는 "거짓말”이라고 반박했다. 이렇게 문재인 정부가 반미했기에, 주한 미대사는 1년 넘게 부임하지 않았다. 바로 이런 것이 진짜 ‘외교 참사’인 것이다. ‘외교 참사’는 문재인 대통령이 저질렀는데, 왜 거꾸로 윤석열 대통령에게 뒤집어씌우는가? 이런 걸 賊反荷杖적반하장이라고 한다. 지금의 민주당이 김대중 대통령 때의 민주당과는 전혀 다른 저질 정당으로 타락해버린 게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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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 이야기> 1인 방송 전성시대<IT 이야기> 1인 방송 전성시대 金在珥(동신대 교수, 공학박사) 요즘 길거리를 지나다 보면 스마트폰 거치대를 높이 쳐들고 다니면서 라이브(Live) 개인방송을 진행하는 1인 방송 진행자들을 종종 목격하게 된다. 또 본인이 관심 있거나 자신 있는 분야의 콘텐츠를 제작해서 유튜브(YouTube), 페이스북 라이브, 아프리카 TV, 판도라 TV 등 1인 미디어 중계 플랫폼의 크리에이터(Creator)로 활동하는 사람은 셀 수 없을 정도로 많다. 이 중에서도 가장 선호하는 플랫폼은 유튜브라고 할 수 있다. 이는 오늘날 젊은 세대들이 TV보다도 유튜브를 더 즐겨보는 추세와 무관하지 않을 터이다. 따라서 이들은 유튜브를 통해 새로운 문화를 만들고 경제적 이윤을 창출하고 있는데 한국에서도 오로지 유튜브 활동만으로 억대 반열에 오르는 유튜버(YouTuber)들이 생겨나고 있다. 1인 미디어의 등장은 곧 커뮤니케이션의 네트워크 구조의 변화를 이끌어 온 혁명의 시대를 맞이하는 계기가 되었으며, 이는 복합적인 인터넷 환경과 더불어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의 총체적인 집합이 만들어 놓은 하나의 사회적 문화로 정착하게 된 것이다. 유튜버는 유튜브에서 직접 방송을 하거나 콘텐츠를 제작·편집해 올리는 방송인을 말하며, 동영상 플랫폼 유튜브에 직접 제작한 다양한 장르의 영상을 게시·공유하는 사람을 지칭하는 말이다. 넓게는 유튜브 방송을 통해 새로운 문화와 경제를 만들어내는 사람들이라는 의미로도 쓰인다. 흔히 유튜버와 유튜브 크리에이터를 동일하게 생각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 둘은 약간의 차이가 있다. 크리에이터는 유튜버의 일종이라고 볼 수 있는데, 유튜브에 영상을 업로드하는 사람들을 유튜버라고 하고 본인이 만든 콘텐츠를 업로드하는 사람을 유튜브 크리에이터라고 한다. 유튜버 크리에이터는 여행, 유머, 음악, 게임, 스포츠, 요리, 뷰티, 먹방 그리고 일상 등 다양한 테마로 지구촌의 많은 사람들을 자신이 업로드한 작품의 시청자로 삼을 수 있다. 또한 취미 생활은 물론이고 고소득까지 챙길 수 있는 매력 적인 직업이며, 구글(Google) 계정만 있으면 누구나 손쉽게 고가의 장비없이 자신의 스마트폰만을 사용하여 유튜버가 될 수 있다. 더군다나 조회 수가 일정 수준에 도달하면 광고나 자신의 콘텐츠에 자연스럽게 상품을 배치하여 광고 효과를 노리는 PPL(Product PLacement)을 통해 수익을 얻을 수도 있다. 이를 위해서는 SEO(Search Engine Optimization 검색 엔진 최적화)를 높이는, 즉 검색 결과 페이지의 상위에 노출되도록 하는 요령을 터득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 한 가지 방법은 메시지의 핵심을 영상 첫머리에서 곧바로 보여주는 것이다. 유튜브는 영상 콘텐츠를 프레임 단위로 자동으로 분석하기 때문에 검색이 용이한 제목보다 흥미를 유발하는 제목을 설정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하겠다. 도입부에서 시청자로 하여금 호기심을 유발케 하여 끝까지 자신의 콘텐츠에 흥미를 갖고 시청하게 유도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즉, 콘텐츠의 시작과 마무리에 신경을 쓰고, 궁금증을 유발하는 제목을 넣는 것이 포인트. 또한 새로운 콘텐츠를 업로드하는 요일이나 시간을 고정함으로써 고객을 기대하게 유도하는 것도 전략적인 관점에서 중요하다고 하겠다. 이처럼 IT기술의 발달은 1인 미디어의 전성시대를 열었으며, 많은 ‘스타 유튜버’를 배출하고 있으며, 앞으로 더욱 다양한 산업과 융합·성장하여 시장가치는 큰 폭으로 상승할 것으로 예견된다. 월간조선(2017.07.28.) 기사에 의하면 유튜브에 업로드되는 동영상 분량이 하루에 66년치라고 하는데, 5년이 지난 지금은 더욱더 많은 분량의 각종 콘텐츠가 업로드되고 있을 것이다. 이렇듯 소비자의 방송 참여 욕구와 콘텐츠 창작자와의 소통 욕구를 방송에 녹여냄으로써 크리에이터와 시청자 사이에 형성되는 정서적 유대감이 1인 방송의 최대 강점으로서 그 영향력은 확대되고 있지만, 아직 유튜버도 직업인이라는 사회적 공감대가 옅은 것도 사실이다. ‘유튜브 크리에이터’는 수익이 있더라도 공식적으로는 무직으로 여겨지기 때문에 대출이나 투자 유치가 필요할 때 불이익이 수반될 수 있다. 때문에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고 있는 창작자들도 정식 직업인으로 인정받아야 마땅하다. 1인 방송 플랫폼은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을 만나고 좋아하는 취미를 더 깊이 파고들 수 있는 멋진 공간이다. 크리에이터 자신이 스스로 즐기면서, 시청자들에게 자신만의 차별화된 아이디어로 명품 콘텐츠를 제공하면 보람과 수익을 창출해 줄 것이라고 확신한다. 독자 여러분! 서툴더라도 열정이 가득한 1인 방송 전성시대에 동참해 보시지 않으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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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 이야기> 컴퓨터 음악의 미래<IT 이야기> 컴퓨터 음악의 미래 金在珥(논설위원, 공학박사) 우리 인간이 가장 좋아하는 것은 무엇일까? 여행, 음악, 스포츠, 독서 등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필자는 단연코 음악이다. 좋아하는 정도가 아니고 잠자는 시간 이외에는 거의 음악에 빠져있는 편이다. 초등학교 때 선생님의 풍금치시는 모습을 흉내 내기 시작한 이후 일생을 음악과 함께 지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해서 음악의 고장 동유럽 그 중에서도 오스트리아 빈을 꼭 답사하고 싶었는데, 10년 전 동유럽 6개국(오스트리아,헝가리,폴란드,체코,슬로바키아,독일)을 둘러볼 기회를 얻게 되었다. 답사 일정에 따라 독일을 거쳐 오스트리아로 향하면서 나는 요한스트라우스 2세의 ‘아름답고 푸른 다뉴브강’의 왈츠 선율을 마음속으로 되뇌었다. 특히 아름답고 신비스런 음색의 프렌치 호른으로 시작하는 인트로 부분의 선율을 "다다다단~”하면서 몇 번이고 반복했다. 이 호른이란 악기는 가늘고 긴 관이 둥글게 말려 있고 관 끝이 나팔꽃 모양으로 벌어져 있는 모양새가 다소 특이한 흔치 않은 악기이지만 관현악단에서는 아름다운 음을 내는 중요한 악기로 쓰인다. ‘왈츠’하면 차이코프스키나 쇼팽 같은 음악가들도 있지만 <왈츠의 왕>으로 불리 우는 요한 슈트라우스(1825~1899)를 첫 손가락에 꼽지 않을 수 없다. <왈츠의 아버지>라고 불리우는 J.B 슈트라우스의 장남으로서 아버지의 성과를 이어받긴 했지만, 500여 곡의 왈츠를 작곡해 왈츠 하나만을 위해 평생을 바쳤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 특히 ‘아름답고 푸른 다뉴브강’은 그가 만든 왈츠 곡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걸작이다. 낙천적인 삶으로 생을 즐기려는 빈 시민들의 기질을 다뉴브 강의 아름다운 풍경으로 잘 묘사한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 곡은 1867년 그가 궁정 무도회의 지휘자로 일하고 있을 때 작곡된 곡인데, 150여년이 지난 오늘날까지도 오스트리아 국민은 물론 전 세계인의 애호를 받고 있다. 1866년 옛 프로이센과의 전쟁에서 참패한 오스트리아 국민들에게 새로운 용기와 희망을 북돋아 주면서 오스트리아 국가 다음으로 사랑받는 곡이 되었다. 필자는 음악 애호가로서 뿐 만 아니라 실제로 전문 연주단체를 이끌고 있다. 때문에 ‘아름답고 푸른 다뉴브강’과 같은 명곡의 연주는 물론 작·편곡 및 편집 작업을 하고 있는데 이러한 작업 시 주로 컴퓨터를 이용하고 있다. 컴퓨터의 음악작업에의 활용은 DAW(Digital Audio Workstation)를 사용한 디지털 녹음과 편집, 가공 그리고 MIDI(Musical Instrument Digital Interface)를 사용한 녹음과 편집을 하고 있음을 뜻한다. 과거에는 작곡가, 작사가 그리고 엔지니어 등 여러 분야의 전문가들이 분업하는 시스템이었으나 오늘날은 컴퓨터의 성능이 향상되어 음악에 관한 전반적인 작업을 혼자서 해내는 추세이다. 작사·작곡 및 편곡을 마친 곡은 믹싱 마스터링 작업을 하게 된다. 믹싱은 각 트랙들에 다양한 이펙트를 사용하여 현장감 있는 사운드를 연출하기 위한 작업이며, 마스터링은 저장할 곡의 다이내믹 범위를 조정하고, 각 곡들 간의 색채를 일치시키는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즉, 믹싱은 음식을 요리할 때 갖은 양념을 맛깔스럽게 가미하는 것과 같고, 마스터링은 상품을 품위 있게 포장하는 것으로 비유할 수 있다. 이러한 일련의 작업을 할 수 있는 간단한 시스템을 ‘홈 스튜디오’라고 부른다. 이렇게 음악 작업 관련 IT기술은 장족의 발전을 거듭해왔다. 하지만 오케스트라의 연주실황을 직접 관람하고자 하는 클래식음악 마니아들은 현재의 컴퓨터에 의해 생산된 음악콘텐츠에 대한 거부감을 갖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앞으로 컴퓨터음악이 자연의 소리에 더욱 가까운 음향을 얻기 위해서는 시각(이미지)과 청각(오디오) 기술 외에 인간의 오감 중 아직 구현이 미흡한 촉각, 후각 및 미각 등의 재현기술의 개발에 보다 더 집중적인 연구개발이 필요하다고 하겠으며 음악 애호가로서 그런 날이 빨리 왔으면 하는 바람 간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