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 문화 뉴스목록
-
<기획연재 : 이야기 문학> 수필(3)<기획연재 : 이야기 문학> 수필(3) 조수웅 문학박사 또 수필은 고전 수필과 현대 수필로 나누기도 한다. 고대 수필로는 그리스 시대 플라톤의 ‘대화’, 근대 이후 프랑스 몽테뉴의 ‘수상록’(1580 수필 문학의 독자적 영역 개척, 중국 洪邁1123-1203, 容齋隨筆), 영국의 베이컨, 찰스 램 등이 쓴 수필이 있고, 한국의 경우, 조선 후기 박지원의 ‘열하일기’ 속에 담겨 있는 ‘일신수필(馹迅隨筆)’에서 수필이라는 용어를 처음 썼다. 그러나 한문 수필집으로는 고려시대 이규보의 ‘백운소설(白雲小說)’, 이인로의 ‘파한집(破閑集)’, 조선시대 김만중의 ‘서포만필(西浦漫筆)’, 유형원의 ‘반계수록(磻溪隧錄)’ 등이 있고, 한글 수필집으로는 유몽인의 ‘어우야담(於于野談)’, 작가를 알 수 없는 ‘요로원야화기(要路院夜話記) 등이 있다. 근대 이후, 한국 현대 수필은 기행문, 감상문, 단상, 만필, 수상, 일기, 편지 등으로 널리 쓰이고 있다. 그밖에도 진술 방식에 따라 교훈적 수필, 희곡적 수필, 서정적 수필, 서사적 수필, 성격상 사색적 수필, 비평적 수필, 기술(記述)적 수필, 사실(寫實)적 수필, 연단적 수필로 나누기도 한다. 수필은, 아무리 무형식의 글이라고 해도, 제재의 선택, 내용의 구성, 표현의 문체 등의 구성 요소들이 모여 하나의 미적 구조를 형성할 때 비로소 성립되는 것이다. 그 많은 수필의 제재 중에서도 가장 보편적 의미를 지닐 수 있는 것, 독자들의 호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것, 주제의 구현에 이바지 할 수 있는 것을 취사선택해야 한다. 또 내용의 구성에도 일정한 원칙이 있다. 첫째, 글 전체가 통일성을 갖도록 하고, 둘째, 앞뒤가 논리적으로 일관성을 유지해야 하며, 셋째, 글의 중심 내용이 분명히 강조되도록 해야 한다. 개인적 수필은 대개 자연적 구성을 중시한다. 시간적 순서를 중시해서 과거→현재→미래에 따라 재료를 배열하거나 역순행적 방식을 쓴다. 하지만 일상생활의 일들을 기록한다든지 자연 풍경을 묘사할 경우에 시간적 질서만으로는 한계가 있어 상하, 좌우, 원근에 따라 공간적인 표현을 보테면 더 효과적이다. 이처럼 수필은 시간과 공간의 이동에 따라 직접적인 경험이나 느낌을 표현한다는 점에서 자연적 구성이 적합하다. 그러나 자연적 구성은 글의 인상이나 호소력이 약해지기 쉬움에 유의해야 한다. 사회적 수필은 글쓴이의 주체적 의지에 따라 논리적으로 서술하는 종합적 구성을 따른다. 주로 철학적인 사고나 과학적인 인식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글에서 많이 쓰인다. 이때 논리적인 일관성이나 명확한 표현 등에 유의해야 한다. 3) 수필 읽기 수필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를 권영민 교수가 말한 ‘수필의 문학성’을 중심으로 살펴본다. 수필은 시, 소설, 평론처럼 정확한 계획과 일정한 형식에 맞추어 쓰는 글이 아니기에, 문학적 상상력․허구적 성격보다 실제 생활 경험이나 느낌을 중시한다. 수필만큼 개인적인 정서가 풍부하게 담긴 글이 없으므로 그 속에 담긴 인간미가 생명이라고 할 수 있다. 또 수필은 단순한 생활의 기록이 아니라, 격조 높은 인생의 관조이며, 깊이 있는 사색의 표현이라고 볼 때, 다음 몇 가지 요소를 꼭 챙겨 감상해야 한다. 첫째, 수필은 글의 소재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평범한 일상의 세계를 남과 다르게 보고, 남보다 깊이 생각하고 있음을 보여줘야 가치가 있다.(肉眼보다 心眼, 심안보다 靈眼) 소재를 놓고 관찰, 관조(觀照), 사색, 명상을 거듭해서 일상생활 속에서 삶의 지혜를 터득하고 그 가치를 발견하는 태도야말로 수필의 바탕이 되는 것이다. 바로 여기서 수필의 개성적인 특성도 드러난다. 수필을 읽을 때는 이러한 개성적인 특성을 놓쳐서는 안 된다. 둘째, 수필은 정해진 형식이 없는 글이다. 그러나 어떤 생각을 머리에 떠오른 대로 마구 써도 된다는 것은 아니다. 글의 중심이 없으면, 잡다한 이야깃거리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된다. 수필을 읽을 때는 글의 중심이 되는 생각이 무엇이며, 그것이 어떤 소재를 통해 구체화되고, 육화(肉化)되어 있는지, 아니면 교훈적 내용으로 설교하고 있는지를 확인할 수 있어야 한다. 글의 주제와 제재의 관계가 자연스럽게 연결되어 있는지, 글의 소재가 주제를 잘 살려 주고 있는지도 생각해 보아야 한다. 셋째, 수필의 문장은 자연스러워야 한다. 억지로 아름다운 말을 고르거나, 쓸데없이 수식을 많이 한 수필은 글의 자연스러움을 잃게 된다. 쉽고 자연스런 문체만이 읽는 이에게 개성적이고 매력 있는 글의 품격을 전해 준다.
-
<기획 연재 : 이야기 문학> 수필(2)<기획 연재 : 이야기 문학> 수필(2) 조수웅 문학박사 <지난 20호에 이어> 수필과 잡문을 누드화에 빗대어 이야기해보자. 정년퇴임을 하자마자 누드크로키에 열을 올리고 있는 내 여자 동창이 하나 있다. 그 친구 말에 의하면, 남자 모델도 있다던데, 그렇지만 아무래도 누드하면 나부상이 아닐까한다. 어쨌든 문제는 똑 같은 벌거벗은 여인을 그렸는데, 어느 것은 명화이고 어느 것은 춘화냐는 거다. 똑 같은 나부상이라고 우기면 방법이 없다. 마찬가지로 일단 수필가가 쓴 수필인데, 어느 것은 수필이고 어느 것은 잡문이라는 말인가? 이렇듯, 수필과 잡문을 구분하지 않고 똑같은 수필로 쳐주려 하는 것에, 바로 수필의 문제점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왜 잡문이 되는가? 두 예화로 생각해보자. 어떤 아주머니가 채소 가게 앞에서 시금치 한 단을 가리키며 “이 거 얼마요?” 하면서 표가 나게 약지 손가락을 내밀며 물었다. 물론 딸이 사준 금반지를 자랑하고 싶어서였다. 그러자 이에 질세라 채소 가게 아줌마도 “니천 원이요. 니천 원” 하면서 쓸데없이 금니를 드러내보였다. 이 금반지와 금니 자랑이 수필을 잡문으로 만든 것이 아닐까. 짚신장사 아버지와 아들은 밤 세워가며 정성껏 짚신을 만들어 다음날 시장에 내놓았다. 그런데 웬걸 아버지 짚신은 불티나듯 팔려나가는데, 아들이 만든 짚신은 사람들이 거들떠도 보지 않는다. 아들은 아무리 생각해도 까닭을 알 수가 없다. 몇 년을 두고 아버지 곁에서 착실히 배운 솜씨에다 누가 봐도 아버지 것과 똑같이 만들어진 짚신인데, 왜 유독 자기가 만든 짚신만 안 팔리는 것인지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다. “아버지 왜 그런지 말씀 좀 해보셔요?” 졸라댔으나 장사는 부자간에도 경쟁자라는 금도가 있는 법이라 좀에 일러주지 않았다. 그러다 무상한 세월이 흘러 아버지가 노환으로 자리에 눕게 되고, 마침내 임종 시간이 다가왔다. 숨이 꼴딱 넘어 가려는 아버지를 붙잡고 아들이 애타게 물었다. “아버지! 짚신?”하자, 기력이 쇠잔해질 대로 쇠잔해진 아버지는 아무 말도 못하고 겨우 “털”이라는 유언 한 마디만 남기고 눈을 감았다. 바로 이 털이 수필을 잡문으로 만들었다는 뜻이다. 모든 솜씨가 다 똑같은 부자간의 짚신이었지만, 짚신을 만들고 나서 잔털을 뽑는 손질을 했느냐, 하지 않았냐가 바로 문제였던 것이다. 이는 뽑지 않은 잔털 때문에 잡문이 되었다는 말이다. 이 두 예화는 곧 ‘관객에게 배우로 들키지 않는 배우가 명배우’라는 격언을 떠올리게 한다. 1) 개성과 생활의 문학 소설은 허구(fiction)이고 시나 희곡, 우화, 동화 등은 허구적(fictional)이지만, 수필은 작가의 개성이나 성격을 직접적으로 표현해야 한다는 점에서 논픽션(nonfiction)에 가깝다. 그래서 다른 장르에 비해 가장 개성적인 문학이라고 할 수 있다. 또 형식이나 내용에 아무런 제약 없이 자기를 솔직히 내보인다는 점에서도 가장 개성적인 글이다. 수필은 일상생활 체험을 바탕으로 쓰기 때문에 그 영역이 참으로 다양하고 넓다. 일기 쓰듯, 편지 쓰듯 할 수가 있는가 하면 여행의 기쁨이나 계절의 변화에 따른 느낌도 얼마든지 수필의 재료가 된다. 친구나 부모님과 사이에 있던 일, 영화 감상, 독서 소감, 연극 관람, 등산의 매력, 명승지 답사, 취미 활동, 조사․관찰 등도 좋은 수필의 재료감이다. 심지어 자신의 명상이나 사색, 연애담까지 모든 생활의 각 영역을 다 들어낼 수 있기 때문에 생활의 문학이라고도 한다. 하지만 이런 생활 체험에는 반드시 남들이 공감하고 감동할 수 있는 독특한 의미가 함축되어야함을 잊어서는 안 된다. 2) 수필의 갈래와 구성 수필은 ‘무형식의 형식이다’라는 말이 있다. 시처럼 운율을, 소설처럼 인물유형과 갈등구조를 가질 필요가 없기 때문에 비전문가라할지라도 떠오르는 생각을 써 내려가면 된다. 그러나 ‘아름다운 구속’이라는 말이 있듯이 너무 막연하다는 어려움이 있다. 그래서 누구나 쉽게 쓸 수는 있을 것 같으면서도 정작 맘에 드는 수필을 쓰기는 어렵다. 수필은 형식과 내용에 제약이 없는 만큼 그 종류가 아주 많다 그러나 전통적으로 경수필(輕隨筆, miscellany, informal essay 작가 자신, 즉 ‘나’의 경험 세계를 솔직하게 서술함. 개인적, 주관적, 사색적인 문학)과 중수필(重隨筆, essay, formal essay 소논문, 비평문, 칼럼 등)로 나눈다. 생활 문학 성격을 지닌 것이 경수필이고 사색, 명상 쪽이 중수필이다. 일상 주변에서 일어난 체험을 가볍게 일기나 편지, 기행문, 감상문 등으로 쓰면 경수필이 되는 것이다. 가벼운 성격묘사나 자연 스케치도 여기에 속한다. 우리가 보통 말하는 감성적 분위기를 띤 수필이 바로 경수필이다. 반면에 어떤 문제를 분석하고 평가하는 비평적 수필, 실험이나 관찰의 결과를 쓴 과학적 수필, 어떤 사상가를 대상으로 쓴 전기적 수필 등이 중수필이다. 중수필은 개인적 정서의 자유로운 표현보다 사물에 대한 객관적인 인식과 논리적인 표현, 즉 지성적 분위기를 중시하기 때문에 논문과 수필의 중간적인 글이라는 사람도 있고 소논문으로 보는 사람도 있다.
-
<기획연재 : 이야기문학> 희곡(3)<기획연재 : 이야기문학> 희곡(3) 조수웅 문학박사 (지난 18호에 이어) 3) 소설 읽기와 연극 관람 희곡은 ①서술과 행동 ②등장인물 수 ③시간과 공간 제한 여부 ④대화, 지문, 독백, 방백의 유무 ⑤서술자 개입 여부 ⑥인물 성격의 직접 제시 여부 등, 소설과 대조하며 읽으면 그 의미가 확연히 드러난다. 이를 위해 서울대 우한용 교수 등이 쓴 「소설 읽기와 연극 관람의 차이점」을 인용한다. 연극의 대본이 되는 희곡 중에는 읽기만을 목적으로 하는 레제 드라마도 있지만, 대부분의 것은 무대 공연을 전제로 한다. 따라서 같은 사건을 전달함에 있어서도 소설과 연극은 차이점을 지닌다. 연극과 소설 모두 ‘갈등’을 중심으로 사건이 전개된다. 그런데 연극은 서술자가 따로 설정되어 있지 않고 인물들의 대사와 행동으로 사건이 전달된다. 또한 연극은 무대에서 공연되기 때문에 시간이나 공간의 제약이 있으며, 대사와 행동 중심이기 때문에 인물 심리의 미묘한 변화는 전달하기 어렵다. 반면, 소설은 서술가의 개입이 이루어지며, 묘사와 서사를 중심으로 사건이 진술된다. 시간이나 공간적 배경의 제약이 없으며, 인물의 심리 묘사도 풍부하게 이루어질 수 있다. 소설의 감상이 주로 시각적인 감각을 이용하여 활자화된 작품을 읽는 것이라면, 연극에서는 시각, 청각 등 여러 감각을 동원하여 작품 감상이 이루어진다. 따라서 수용 방식에도 차이를 보인다. 다양한 감각이 동원되는 연극의 수용 과정은 감상의 폭을 넓혀주는 장점이 있으나 수용자의 상상력을 제한한다는 면에서 부정적인 평가도 있다. 연극을 관람하는 관객들, 혹은 연극의 대본이 되는 희곡을 읽는 독자들 사이에는 일정한 묵계가 이루어지고 이를 바탕으로 연극을 수용한다. 그것은 무대라는 제한된 공간에서의 대사와 행동이라는 제약을 극복하기 위한 것이다. 무대 장치나 소도구들을 진품으로, 배우들을 실제 인물로 생각하는 것이다. 사건도 현재적인 것이 되며, 독백이 들리며 방백은 발화자와 관중만 듣는 것으로 약속된다. 이러한 약속을 통해 관객들은 상상력을 동원하여 드라마의 환상을 즐길 수도 있지만, 수용자의 상상력이 미치는 범위는 소설에 비해 좁다. 인물과 배경, 사건의 구체적인 형상이 무대 위에서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무대라는 공간에서 배우들을 통해 재구성되는 생활의 모습을 통해 카타르시스를 느끼기도 한다. 또한 문자를 통해 감상하는 것보다 실제감을 느낄 수 있기 때문에 연극 공연 무대를 찾는다. 극장에 가서 연극을 본다는 것은 특별한 경우가 아니고서는 배움을 목적으로 하기보다는 여러 가지 감정을 그대로 체험하면서 현실의 와중에서 한 걸음 물러나 자신의 생활을 돌아볼 수 있기 때문이다.
-
[기획 연재 : 이야기문학] 희곡(2)[기획 연재 : 이야기문학] 희곡(2) 조수웅 문학박사 <지난 17호에 이어> 그러나 비극의 개념도 시대에 따라 변해왔다. 그리스 비극이 운명의 요건으로 인간 파멸의 모습을 그렸다면, 근대 비극은 성격이나 상황의 문제로 패배하는 인간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비극은 주동적 인물이 갈등과 투쟁을 거쳐 좌절에 이르는 과정을 그려낸다. 비극의 주인공은 대개 선(善)을 대표하고 자신이 운명적으로 감수해야 하는 비극적인 결함으로 인하여 파멸의 길로 들어서게 된다. 이러한 비극적 효과는 연민과 공포에 의한 감정 순화 즉 카타르시스(비극을 통한 값진 인생의 체험을 바탕으로 정신의 평정을 얻음,catharsis)이다. 희극은 인간의 성격이나 행동에 존재하는 모순이나 부조리 같은 약점을 묘사하여 골계미(滑稽美, 익살)를 드러낸다. 비극이 엄숙하고 진지하게 인생의 고뇌를 그리는 반면에, 희극은 명랑하고 경쾌한 기분 속에 인간의 결점이나 사회의 비리를 꼬집어 내어 웃음으로 분규를 해소한다. 그러므로 희극에는 기지(機智, 재치, wit), 풍자(諷刺, satire), 해학(諧謔, humor) 등의 요소가 작용하며, 비판정신이 강조된다. 또 희극은 주동 인물이 처음에는 패배하고 고전하지만, 결국은 모든 장애를 극복하고 행복에 이른다. 희극의 인물은 서민적, 사회적 성격이 강하고 비극의 인물은 고귀한 신분인 점이 반대다. 희곡은 대부분의 내용이 등장인물의 대사로 이루어지며, 지문, 해설, 무대 장치, 설정된 장면과 막 등이 함께 표시된다. ① 등장인물 : 이름, 나이, 직업, 주인공과의 관계, 때와 곳, 배우 연기의 바탕이 되는 무대 장치, 광경 등의 맨 앞에 있는 설명이다. ② 대사 : 등장인물들이 주고받는 대화, 반성적이고 설명적인 혼자 말로 된 독백, 관객에게 직접 말을 걸어 자기의 의도와 생각을 말하는 방백(무대 위의 다른 인물들은 못 들음) 등으로 구분된다. 등장인물의 성격을 암시하고, 어떤 사건을 직접적으로 보여 주면서 앞으로 일어날 사건을 예견할 수 있게 해 준다. ③ 지문 : 등장인물의 동작을 지시하며, 환경에서 생겨나는 변화와 상태를 나타낸다.(너무 세밀하게 지시하여 등장인물의 동작을 제한하거나, 연기자의 예술적 창조를 막아서는 안 됨.) ④ 막 : 한 작품의 배경은 하나의 장면으로 가능할 수 있으나, 길고 복잡한 내용일 때는 몇 개의 장면으로 구성된다. 다음으로 극적 구성 단계를 살펴보자. 희곡이 지니는 가장 중요한 극적 특질은 인물, 사건, 배경의 세 구성 요소를 통해 드러난다. 이들은 서로 어울려 논리적, 필연적으로 극적 행동이 이어지며, 전체 내용이 유기적 통일이 이루어져야 한다. 희곡에서 극적인 구성의 목표는 극적인 효과인데, 극적 상황이 대립과 갈등 속에서 지속될 수 있도록 구성해야 극적 효과를 얻을 수 있다. 희곡의 극적 구성은 극의 시작과 끝 사이에 5단계의 구분을 두는 것이 보통이다. ① 발단 : 사건이 벌어지는 장소와 때가 제시되고, 등장인물이 어떤 사람이냐 하는 것과 등장인물들의 관계가 드러나고 어떤 사건이 벌어질 것인지도 암시된다. 아울러 극의 진행 방향과 작품의 주제가 무엇인지도 은연중에 암시되는 것이 보통이다. 발단은 간단하고 알기 쉽고 자연스러운 소위기(小危機)가 설정되는 것이 마땅하다. ② 전개 : 여러 가지 사건이 일어나고 인물들이 서로 얽혀 긴장감이 점점 높아져 극의 중심부가 되는 단계이다. 극적 긴장감을 주기 위해 몇 개의 위기가 준비되어 절정을 향해 상승해 간다. 여기서 주의해야 할 것은 사건은 언제나 주제의 전개를 위해 필요한 것만 있어야 하기 때문에, 발단 부분과 관계가 없는 인물이나 사건을 함부로 만들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또 전개 부분은 극적인 긴장과 흥미를 더해 주며, 갈등과 분규가 심화되는 부분이기 때문에 갈등(葛藤) 단계라고도 한다. ③ 절정 : 발단에서 시작된 극적 행위는, 전개 단계에서 성숙하여 위기를 겪으며, 모호했던 사건들이 점점 명료하게 되고, 극 전체의 원인과 결과가 통일되어 그 범위가 한정되는 절정(最高調, climax)에 이른다. 이 절정은 발단부터 연쇄적으로 나타난 위기가 한 데 뭉쳐, 가장 격렬하고도 긴박하게 형성되어야 한다. 그리고 극의 전개 과정에서 심화되어 온 갈등의 해결을 위한 하나의 분기점이라야 한다. ④ 반전 : 절정 단계에서 하강하기 시작한 극적 행동은 대개 예상을 뒤집고 방향을 바꿔 반전한다. 극의 결말이 예상과 같으면 극적 흥미가 없어지므로 결말에 대한 예상을 뒤집어 놓고 사건을 극적으로 해결시키는 몇 가지 동기가 설정된다. 그래야 극적 긴장 상태를 해소하고 만족감이나 희열을 준다. 이때 주의할 것은 우발적이거나 조작적이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또 반전의 과정이 짧고 간결하면서도 기민(機敏)해야지 시간이 길면 극적 흥미도 없어지고 작품 전체에 대한 인상도 흐려진다. 파국(破局)이라고도 일컫는 반전의 단계는 극적 행위의 고조된 긴장 상태가 풀리고, 갈등이 해소되는 부분이기 때문에, 관객의 감정을 예술적인 정서로 변화시키려 하는 동시에, 작품이 노리는 주제의 예술적 전달을 꾀하게 된다. ⑤ 결말 : 모든 사건이 해결되는 단계이다. 극이 계속되는 동안 품었던 의문이나 불안이, 반전보다 더욱 간결하게 완전히 해결되어야 한다.
-
[기획연재 : 이야기문학] 희곡(1)[기획연재 : 이야기문학] 희곡(1) 조수웅 문학박사 <지난 16호에 이어> 군사정권 시절에는 대학이나 중․고등학교에서 연극반을 운영하는 것조차 감시하였다. 연극이 운동권의 의식화 교육 수단이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맞는 판단이었다. 서정 장르나 서사 장르로도 얼마든지 문학적 감동을 통해 의식화할 수 있겠지만, 극적 장르인 연극만큼이나 그 살벌한 시절과 행동으로 맞붙어 싸울 수는 없었다. 그 연극의 대본이 바로 희곡이다. 그래서 지금도 희곡 이야기를 할라치면 나도 모르게 두 손이 꼭 쥐어지는 것 같다. 그러면 희곡이 시나 소설과 어떻게 다르기에 주먹까지 불끈 쥐게 하는지 알아보자. 희곡은 시나 소설처럼 언어를 표현 수단으로 하고 있지만, 무대 상연을 전제로 한 연극 대본이라는 점에서 성격이 다르다. 즉, 일정한 배경 속에서 인물들의 행위와 사건을 통해 이야기를 보여주며, 그 속에서 주제를 드러내지만, 무대 위에서 배우들의 행동을 빌어 직접 관객에게 보여줘야 하기 때문에 문학성과 연극성을(로고스 言語+미모스 動作) 함께 갖는다. 그래서 작가는 직접적으로 대상을 묘사하거나 설명할 수가 없고, 배우의 행동과 대사를 통해 사건을 제시해야 한다. 또 소설과는 달리 한정된 시간과 공간 속에서 일정한 이야기를 행동화시켜야 하기 때문에 최대한 압축해서 극적으로 처리해야 한다. 더구나 그 배경은 무대에 상연 될 수 있는 내용이어야 하며, 전체적인 내용이 하나의 완결된 극적 구조를 갖춰야 한다. 희곡은 시나 소설에 비해 제약이 많다. 압축된 구조와 대화의 상징성을 중시한다는 점에서 시와, 인물의 성격을 창조하고 갈등 구조를 갖는다는 점에서 소설과 비슷하지만, 길이가 제한되고 묘사와 설명이 불가능하며 배경 이동이 부자유스런 점이 시나 소설과 다르다. 이런 제약성을 바탕으로 전체의 이야기를 하나의 극적 구조로 압축시켜 직접적인 효과를 거둘 수 있다는 점이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희곡은 다양하고 무질서한 우리들의 삶을, 몇몇 갈등이 중심축이 된, 질서 있는 행동으로 재창조해내는 것이다. 1) 행동과 대화의 문학 희곡은 무대 위에서 오직 배우의 행동으로 인생을 표현한다는 점에서 행동 문학이다. 그리스어 ‘움직이다(dran)'에서 ‘드라마’라는 말이 연유된 것만 보아도 희곡이 인간의 행동을 그리는 것임을 알 수 있다. 희곡은 소설처럼 이야기 속에 등장인물과 사건이 들어 있지만, 그 이야기가 반드시 무대 위에서 연출되는 행동을 중심으로 직접적, 현실적, 극적으로 전개해나가야 한다는 점에서 소설과 다른 행동문학인 것이다. 또 희곡은 동작과 대사가 중심이지만, 인물의 내면적인 움직임, 즉 심리 상태도 극적 행동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극적 행동은 긴장과 갈등을 지닌 채, 통일되고 집중된 극적인 효과로 진행 발전된다. 소설도 대화가 있지만, 희곡처럼 간단한 무대 지시를 빼고는 온통 등장인물의 대화로 이루어지지는 않는다. 그래서 희곡은 대화의 문학인 것이다. 다만 무언극의 경우 대화 없이 행동만 펼쳐지지만 이는 희곡의 예외 유형에 불과하다. 희곡의 대화는 인물의 성격을 드러내고 사건의 진행을 가능케 하며, 인물의 심리 상태까지 암시해준다. 또 희곡의 대화는 사건을 설명해주고 플롯의 진행에 따라 행동을 유발한다. 이때 희곡은 소설과 달라 모든 사건을 현재화하여 무대 위에서 보여주므로, 대화로 지난 사건을 설명해주고 앞으로 일어날 사건을 암시한다. 또 희곡의 대화는 행동을 통해 극의 주제를 부각시킬 수 있는 상징성을 지녀야 한다. 이처럼 희곡은 대화의 기능이 매우 중요하지만, 일상적인 언어에 치우치면 집중화의 효과를 잃게 되며 긴장을 살리기 어려워진다. 그렇다고 너무 극적인 것에만 매달리면, 과장되거나 사실성이 부족한 대화가 되기 쉽다. 2) 희곡의 갈래와 구성 희곡은 그 구성 방식과 길이에 따라 단막극과 장막극, 그 주제와 내용에 따라 비극과 희극으로 구분한다. 단막극은 단편 소설처럼 단일한 효과와 인상의 통일을 중시하지만, 극적인 효과를 위해 특히 압축된 구성이 요구된다. 하나의 장면 속에서 모든 극적인 행동이 진행되고 발전되며 완결을 보여야 하기 때문에, 극적 긴장이 더욱 필요하며 강렬한 인상을 줄 수 있는 구성이 이루어져야 한다. 따라서 단막극에서는 인생의 한 단면을 보여 줄 수밖에 없으며, 인생을 총체적으로 제시하기 어렵다. 장막극은 극적 행동의 배경이 바뀌는 두 개 이상의 무대 장면 속에서 전개되도록 구성된 희곡이다. 단막극에 비해 배경의 제약을 어느 정도 벗어날 수 있기 때문에, 인간의 총체적인 삶을 제시할 수 있다. 단막극이 극적 상황을 더욱 중시한다면, 장막극은 극적인 주제와 사상성을 더욱 중시하게 된다. 비극은 고양된 주제를 묘사하여, 불행한 결말을 맺게 해주는 전통극에 해당되며, 그리스 시대부터 발전해왔다. 다음호에 계속
-
[기획연재 : 이야기문학] 소설(5)[기획연재 : 이야기문학] 소설(5) 조수웅 문학박사 <지난 15호에 이어> 한편 전기에서부터 시작한 또 하나의 특질은 내면세계로의 여행이다. 19세기 문학은 자연과학적이요, 합리적이었다. 자연과학은 사물에서 출발하여 사물에서 끝나는 학문이다. 사물세계란 두말할 것도 없이 외부세계다. 다시 말하면, 19세기의 소설은 대체로 사실주의나 자연주의 문학들을 통해 이 외면세계를 자연과학적으로 묘사했다. 그러나 현대소설은 내면세계로 탐험 여행을 떠난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인간이나 사물의 본질은 외면보다 내면에 있음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이것은 마치 바다 위로 내민 빙산의 일각이 결코 빙산 전체일 수 없고 오히려 바다 속에 잠겨 있는 빙산덩이가 더 크다는 것과 같은 이유에서다. 19세기 소설이 바다 위로 내민 빙산의 일각처럼 진실이 못되는 인간의 외면을 그렸다면, 현대소설은 바다 속에 잠긴 빙산처럼 인간의 진실인 심층부를 분석하여 묘사하려는 운동을 제기했다고 볼 수 있다. (이는 손톱에 비접이 들어 곪은 것과 겉으로는 드러나지 않지만 심장병을 앓는 것 중 어느 것을 진정 인간의 아픔으로 묘사해야 하는가와 같다할 것이다. 또 “이성 친구 소개시켜줄까?”라는 말에 “싫어”라고 대답하는 현실자아보다 “그래”라고 대답하고 싶은 내면자아가 더 진실하다는 것이다.) 이 운동의 기조는 프로이드를 중심으로 한 ‘정신분석학’의 영향이다. 프로이드의 ‘정신분석입문’이 1917년에 나와 소설에 크게 영향을 끼쳤던 것이다. 말하자면 현대소설은 의식으로 떠오른 외부세계에의 여행이 아니라 무의식 세계로의 용감한 탐험이다. 원래 무의식이란 꿈속에서처럼 논리성이나 통일성이 없고 토막토막 잘리어져 있는 개개의 것이다. 그러나 이 개개의 무의식은 베르그송이 ‘순수지속’에서 말한 것처럼 비록 개개의 것이라 해도 항상 고정화되고 정지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다른 무의식에로 연결되어 하나의 유동을 이루는 것이다. 이것이 소위 ‘의식의 흐름’(stream of consciousness)이다. 인간 심리의 심층부에 흐르는 이 ‘의식의 흐름’을 좆아 기술해나가는 내적독백의 고백체 소설이 곧 현대소설이다. 현대소설은 이 의식의 흐름을 충실히 기술함으로써 인간적 진실에 접하려는 문학운동이다. 이 비논리적인 내적독백(image에서 image로 비약)의 충실한 표현기교는 과거의 전통적인 스타일과 폼을 파괴해 버렸다. 그것은 반문법적, 반구문적이 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런 기술법을 ‘자동기술법’이라한다. 앞서 말한 대로 후기에는 행동주의 소설과 실존주의 소설이 나타난다. 행동주의 소설은 시기적으로 1926~1939년에 이르는 동안 싹트기 시작하여, 2차 대전 후에 실존주의 문학에 의해 그 전성기를 이뤘다고 할 수 있다. 전기의 소설이 주로 개인의 심층부를 파고 들어가는 사변적(思辨的, 경험이나 실증에 의하지 않고 순수한 思惟에 의한)인데 비해 후기의 행동주의 소설은 소설을 현실의 광장으로 끌어낸 것이다. 이 행동주의 소설은 1차대전 후의 공황과 파시즘의 대두에서 오는 인간의 불안을 초월하고 극복하는 용기, 행동을 예찬하였다. 앙드레 말로는 그의 ‘정복자’에서 “내게로부터 내 행동이 사라져 갈 때, 다시 말해 행동에서 나를 분리시킬 때, 그것은 내 피가 최후의 한 방울마저 없어지는 때이다.”라고 행동을 예찬했다. 사변을 지양하고 행동의 묘사 속에서 인간성을 포함하려고 시도한 이 운동은 2차대전 중에는 앙가주망의 문학으로 나찌 독일에 대항하는 레지스탕스로 발전되어갔다. 이 행동주의 소설의 대표작가로는 ‘왕도’ ‘인간의 조건’ ‘정복자’의 작자 앙드레 말로와 ‘야간비행’을 쓴 생텍쥐폐리 등이 있고, 2차대전 후로는 사르트르를 중심으로 한 일파와 그레엄 그리인 등을 들 수 있다. 그리고 그 양상이 꼭 동일하다고는 볼 수 없으나 영국의 전후문학 소위 ‘성난 젊은 세대(angry young man)'라는 일파의 문학도 따지고 보면 이 행동주의 문학의 한 유파라 할 수 있다. 다음으로 1933년에서 전후 1946년경까지 일어났던 실존주의 소설을 빠뜨릴 수 없다. 이 실존주의 소설은 인간의 존재에 따르는 불안을 표현하는 한 유파임과 동시에, 그 불안(혼란과 황폐)을 초월하고 극복하여 자유의 실현을 목표로 하는 휴머니즘 문학의 일종이라고 볼 수 있다. “자유는 상황 속에서만이 존재한다.”는 소위 상황론(현상에 대한 분석을 통한 주체의 능동성을 강조)을 문학방법의 주조로 하고 있는 이 실존주의 소설도, 전쟁 후에는 사르트르를 중심으로 현실참여, 사회참여의 기치를 들고 나와 본격적인 행동문학으로써 세계 각국에 큰 영향을 끼쳤다. 실존주의 작가로는 사르트르, 카뮈, 보브와르 등을 들 수 있다.(이러한 실존주의-프랑스 대표-는 구조주의의 거대한 흐름에 흡수된다.) 이상과 같이 현대소설은 이 시대의 불안을 초월하고 극복하여 자유롭게 살 수 있는 인간 조건을 모색하는 소설이라 할 수 있다.
-
[제2탄] C대학의 부조리 심화..... 부실대학의 전형 보여줘<C대학의 부조리 심화… 부실대학의 전형 보여줘> [제2탄] ○재학생 충원율 제고 방법 : 도중에 안 다니게 된 학생들에게 “전액 장학금 줄 테니 나와서 시험만 봐라”, 아르바이트하며 다니는 고학생들은 분노로 치를 떨어 ○신입생 충원율 확충 방법 : 신입생 모집 실적을 점수화해 교수업적평가에 활용, “여자 교수는 치마 입고 탁자에서 물구나무서기 하라” 망언도 ○적립금 500억 원의 출처 : 교수에게 박봉 월급으로 주간 분반 수업에 야간 수업까지, 인건비 줄여… 관리 학생·보훈 장학생 등 불법적인 방법으로 학생 유치도 서슴지 않아 <남악신문 6월 8일자 6면, 7면 특집기사에 이어서> ◆C대학은 그동안 어떻게 교육부의 대학평가에 대비했나? ※편집 주 : 교육부는 주기적으로 전국 대학을 대상으로 대학기본역량진단평가(이하, 대학평가)를 실시하고 있다. 2021년도 대학평가의 최저기준은 ▲교육비 환원율 127% ▲전임교원 확보율 68% ▲신입생 충원율 97% ▲재학생 충원율 86% ▲졸업생 취업률 56% 등이다. 이번 평가에는 최근 4년간 각 대학의 운영실적이 지표로 활용된다. 위 다섯 가지 항목 중 3개 지표에서 최저기준을 충족하지 못하면 ‘재정지원제한Ⅰ’유형으로 분류된다. 그리고 4개 이상을 충족하지 못하면 ‘재정지원제한Ⅱ’유형에 속하게 된다. 대학이 ‘재정지원제한Ⅰ’유형으로 분류되면, 향후 3년간(2022년~2024년) 신규 국책연구나 재정지원사업에 참여할 수 없다. 또한 재학생 및 신입생들이 받는 국가장학금이나 학자금 대출도 일부 제한된다. 그리고 ‘재정지원제한Ⅱ’유형에 속하게 되면 사정이 더 심각하다. 대학의 신규 사업 참여 제한은 물론 해당 대학이 기존에 진행하던 재정지원사업마저도 중단된다. 재학생 및 신입생들이 받는 국가장학금이나 학자금 대출은 끊기고 만다. 말 그대로 대학에 대한 정부 지원이 원천적으로 없어진다는 것이다. 지방사립대학으로서는 신입생·재학생 충원율 확보가 가장 시급히 해결해야 할 당면 과제이다. 이번 호에서는 우선 C대학의 재학생 충원율과 신입생 충원율과 관련된 문제를 살펴보았다. 1. C대학의 재학생 충원율 제고를 위한 위법행위 신입생·재학생 충원율 중에서도 특히 재학생 충원율을 신입생 충원율로 유지하는 것이 급선무가 된다. 지방사립대학의 경우 수도권 지역에서 온 신입생들의 대부분은 2년 과정을 마치고 다시 수도권 지역의 대학으로 편입을 하려 하기 때문이다. 이에 C대학은 재학생 충원율 제고를 위해 다음 사례와 같은 불법을 자행해온 것으로 나타났다. -편집실 : 제보하실 내용은 무엇인가. -A교수 : C대학이 재학생 충원율 제고를 위해 저지른 비정상적인 학사운영을 고발하고 싶었다. -편집실 : 구체적으로 말씀 해달라. -A교수 : 그러니까 3, 4년 전의 일이다. 학생 평가를 위해 기말시험을 보고 있는데 학교를 그만둔 학생이 출석해서 시험을 보고 있지 않은가. 그래서 어떻게 된 일이냐고 그 학생에게 물었더니, 학교에서 연락이 와서 등록금을 장학금 처리해줄 테니 평가 때 나와서 시험만 보면 된다고 했다더라. 나는 사전에 몰랐던 이야기라서 학과장에게 확인했더니 총장의 지시에 따라 학생처가 교육부의 대학평가에서 자율대학선정을 받을 수 있도록 재학생 충원율을 높이기 위해 한 일이라는 것이다. 즉, 학교를 도중에 그만둔 학생들에게 개별적으로 연락해서 등록금은 장학 처리하고 시험응시만으로 출석을 대체 인정해주고 성적평가도 부여해주도록 지시했다는 것이었다. -편집실 : 그런 사실을 뒤늦게 알고 어떤 기분이었나. -A교수 : 한 마디로 어이가 없었다. 당시 우리 학과 학생들 대다수가 늦은 밤이 되도록 아르바이트를 해서 등록금을 마련하고 있었다. 주경야독이 아니라, 주독야경인 셈이다. 그런데 뜬금없이 나타난 학생이 자기는 등록금을 학교에서 장학금 처리해줘서 등록금 걱정도 없으며, 출석도 시험으로 대체가 되니 편하게 졸업할 수 있게 됐다고 다른 학생들 앞에서 자랑하는 게 아닌가. -편집실 : 학생들은 학교에 반발하지 않았는가. -A교수 : 물론 난리가 났다. 분노한 학생들은 국민신문고에 민원신청을 했다. 그리고 이 일로 학생대표가 총장을 면담했다. -편집실 : 그래서 일이 바르게 처리됐는가. -A교수 : 아니다. 당시 국민신문고에서 학교에 해명하라는 연락이 온 것으로 안다. 주무부서가 교육부니까, 교육부에서 연락이 왔을 것이다. 그런데 어떻게 된 일인지 일이 유야무야로 끝나고 말았다. 우리 대학 총장이 교육부 차관 출신이다. 그 인맥이 정말 막강하다는 걸 새삼 알았다. 총장은 학생대표와의 면담에서도 이른바 ‘관리 학생’(출석 수업을 하지 않아도 등록금만 잘 내면 대학을 졸업하는 학생)은 전혀 없다고 잘라 말했다고 한다. 어쨌든 그때 우리 대학은 조선대나 순천대와는 달리 부실대학 명단에 이름을 올리지 않았다. -편집실 : 그때의 일을 지금 새삼스럽게 밝히는 이유는 무엇인가. -A교수 : 당시 나는 학생들에게 이 일을 끝까지 밝혀 너희들에게 억울한 일이 없도록 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래서 학생들을 진정시킬 수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러지 못했다. 이뿐만 아니라, 당시 시험을 보러 오지 않은 장학 처리된 학생들에게까지 성적평가를 주어서 졸업시켜야만 했다. 사실대로 밝히지 못한 나는 학생들에게 죄인이다. 어떻게 이런 일들이 대학에서 벌어질 수 있는가. 모두 다 재학생 충원율을 높이기 위해 학교가 조직적으로 벌인 사건이었다. -편집실 : 그 외 다른 방법으로 재학생충원율을 높인 사례는 없는가. -A교수 : 학생들이 2학년을 마치면 수도권 등 다른 대학으로 편입을 한다. 그럼 당연히 빈 자리가 생기고 학과 교수들은 이걸 어떻게든 채워야 하는데, 그게 실상은 쉽지가 않다. 이 때문에 교수들은 심지어 자기 배우자를 편입시켜서 공석을 메우기도 한다. 학교 규정상 교수 배우자는 등록금이 장학 처리되어서 금전적인 부담이 없다는 게 그나마 다행이다. 2. C대학의 신입생 유치를 위한 불법적인 전략들 C대학의 지리적 여건이 좋은 편은 아니다. 특정 학과를 제외하고는 수도권의 대입 지망생들에게 C대학은 관심 밖일 수 있다. 하지만 매년 C대학의 입시결과는 좋은 편에 속한다. 그 비결이 무엇인지 알아보았다. -편집실 : 교수들이 입학 홍보를 위해 매년 고교를 방문한다는 말을 들었다. -B교수 : 그렇다. 신입생 유치는 교수들의 막중한 의무 중 하나이다. 신입생 유치 실적이 저조하면 학교에서 버텨낼 수 없는 구조이다. 교수업적평가가 매년 실시되고 있다. 평가 영역은 크게 교육, 연구, 사회봉사의 셋으로 나뉘지만, 입시실적은 사회봉사 중에서 무한대의 점수를 받을 수 있는 구조이다. 입시만 잘하면 교수 승진도 자유롭고 보직도 얼마든지 맡을 수 있다. 신입생 유치의 경우 2명 미만은 0점, 3명까지는 1명당 15점, 4명 이상은 1명당 20점을 부여한다. 예컨대 100명의 신입생을 유치하면 그 교수는 2,000점이다. 연구논문이 없어도 교육 점수가 낮아도 이 교수는 최고 등급의 평가를 받는다. 게다가 성과급으로 1년에 한 번 최고 500만 원의 상여금을 받는다. 우리끼리 하는 말이 있다. 초당대에서 10년 이상을 버티면 사회 나가서 무슨 영업을 하든 잘살 수 있다고 말이다. -편집실 : 한 교수가 신입생을 100명까지 유치할 수 있는가. -B교수 : 지금은 구조상 어렵다. 하지만 과거에는 실제 100명이 넘는 신입생을 유치한 교수들이 있었다. 그때는 관리 학생이라든지, 보훈 장학생 등이 있어서 가능했다. -편집실 : 관리 학생이나 보훈 장학생에 대해 자세히 말해 달라. -B교수 : 관리 학생이란 등록금만 내면 수업을 듣지 않아도 적당히 성적을 줘서 졸업을 시키는 걸 말한다. 지금은 이런 전형적인 관리 학생은 없지만, 재학생 충원율을 높이기 위해 입학했다가 안 다니게 된 학생들에게 등록금을 면제시켜줘서 학교에 오도록 하는 경우가 있다. 사실 이것은 완전 불법이다. 그리고 보훈 장학생이란 보훈 가족들은 등록금 50%를 국가에서 지원해 주고 있는데, 이 국가 지원금만 받고 나머지 등록금은 장학 처리를 해서 보훈 가족 학생을 졸업시켜주는 것이다. 물론 보훈 장학생도 수업을 안 받고 졸업할 수 있었다. 과거에 이미 우리 대학은 이런 것들이 크게 문제가 된 바 있었지만, 불쌍한 교수들만 처벌을 받았어야 했다. 그리고 교육부의 감시가 커지면서 관리 학생은 현저히 줄어들었다. 그러나 통학권의 근거리에 주소를 두고 있는 사람들은 지금도 얼마든지 관리 학생이 되어 학교 한 번 안 오고 졸업할 수 있다. 몇 해 전엔 모 여자 교수가 머리를 삭발하고 총장실에 쳐들어가 소속학과의 관리 학생 명단을 내보였고, 상당한 명예퇴직금을 받아 퇴직한 사례도 있다. -편집실 : 지금은 어느 대학이나 신입생 유치에 혈안이 돼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유독 C대학 교수들의 홍보실적이 좋은 비결은 무엇인가. -B교수 : 우리 대학에는 어느 교수의 전설적인 명언 한 마디가 있다. “마른 수건을 비틀어 짜는 심정으로 홍보합니다.” 위에서 까면 하게 되는 것이다. 총장이 늘 하는 말이 있다. “입학 홍보가 하기 싫거나 자신 없는 사람은 서울이나 수도권 지역의 대학으로 가라”라고! 그리고 가끔은 총장 스스로 홍보 비법을 알려주기도 한다. “여자 교수들은 고교 진학 부장이랑 노래방 같은 데 가서 치마 입은 채로 탁자 위에 올라가 물구나무서기를 해봐요. 그러면 학생을 많이 보내줄 거야.” 만약 교수가 학생수업을 핑계 삼아 고교 입시홍보를 게을리하다간 언제 목이 달아날지 알 수 없는 게 현실이다. -편집실 : 그런 말을 듣고도 교수들은 참는가. 특히 여성 교수분들이… -B교수 : 하는 수 없는 일이지 않은가. 갈 데가 있는 사람이라면 그 즉시 사표를 내고 나간다. 그래서 일부 인기 학과, 예컨대 간호학과 교수들 중에는 여러 명이 나갔다. 하지만 일반 교수들은 지금 대학이 줄어들고 있어서 전직하기가 아주 힘들고 어렵다. 참고 쥐죽은 듯 견뎌야 하는 상황이다. 목구멍이 포도청이 아니겠는가. -편집실 : 신입생 유치 활동비는 제대로 주는가. -B교수 : 출장비 명목으로 준다. 교통, 숙박 등 영수증을 첨부하고 홍보대상 고교의 교무실 사진도 첨부해야 한다. 물론 술값이나 노래방비는 주지 않는다. 영수증이나 사진이 제대로 첨부되지 않으면 입학처 직원에게 혼날 뿐만 아니라, 출장비를 한 푼도 받지 못한다. 우리 대학의 보직 수당을 보면 대학본부 처장들이 월 60만 원을 받는 데 비해 입학처장은 260만 원을 받는다. 입학처장이 아닌 일반 교수들은 자기 돈을 써가며 고교 진학 부장을 접대해야 한다. 게다가 문제는 소위 입학원서 전형료이다. 우리 대학의 경우 사실 입학원서 전형료를 수험생에게 요구하기 어려운 측면이 없지 않다. 솔직히 말해 원서 한 장 써주는 것도 감지덕지한 데 어떻게 전형료를 달라고 하겠는가. 결국은 입학원서를 받아온 해당 교수가 자기 주머니에서 전형료를 대납하지 않으면 안 된다. ◆C대학은 2000대 중반까지 어떻게 적립금 500억 원을 마련했나? C대학이 500억 원에 달하는 적립금을 마련하게 된 것은 2007년을 전후한 시점이라고 한다. 당시 C총장이 주도적으로 적립금을 마련한 것으로 알려졌다. 들리는 말에 의하면 C총장은 애초 약 1,000억 원대의 적립금을 조성하려고 했다고 한다. C대학이 1994년 개교했으므로 10년 남짓 만에 마련한 적립금 규모이다. C총장은 개교 당시 기획실장부터 해서 부총장, 총장까지 한 분으로, 학교 발전을 위해서라면 그야말로 물불을 가리지 않았다고 한다. C총장은 재단 사람이면서도 종국에는 설립자와의 마찰로 물러났는데, 적립금만은 고스란히 학교에 다 넘기고 나왔다는 게 정설이다. -편집실 : C대학이 막대한 돈을 적립금으로 교비로 편입한 때는 언제이며, 적립금 규모는 500억 원이 맞는가. -D교수 : 나도 정확한 시점은 잘 모른다. 다만 ‘전국사립대학 누적적립금 순위(2012년 2월 현재)’를 보면 적립금 480억 원으로 전체순위 49위였고 당시 산업대학 중에서는 청운대학에 이어 2위였다. 일부에서는 500억 원 이상이라는 말도 있으나 정확히 알 수는 없다. -편집실 : 당시 C총장이 오랜 시간을 통해 적립금 500억 원을 마련한 의도는 무엇인가. -D교수 : 내가 알기로는 C총장은 정말 우리 대학의 앞날을 걱정한 분이었다. 앞으로 벌어질 일들을 대비해서 저수지를 만들어 놓자는 생각이었다고 본다. 다시 말하면, 앞으로 지방대학이 어려워질 것이라는 걸 잘 알고 있었던 것 같다. 특히 우리 대학은 사립대학이 아닌가. 인근 국립대의 등록금에 비해 우리가 절반 가까이 비싸다. 경쟁력도 우리가 강하지 못하다. 학령인구는 계속 줄어들고 있어서 언젠가는 우리 대학도 등록금을 반값으로 내리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때 쓸 돈으로 적립금을 모은 것으로 알고 있다. -편집부 : 대학 적립금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 일일 것이다. 그렇다고 그게 쉽게 적립될 수 있는 일은 아니지 않겠는가. -D교수 : 물론 그렇다. 개교 초기에는 우리 대학이 산업대학으로 지역주민들에게서 큰 호응을 받고 신입생들도 많아 대학 수업이 주·야간으로 운영되었다. 주간 교수가 야간 수업도 담당했다. 교수들은 밤 10시가 넘어서야 퇴근할 수 있었다. 야간 수업료는 통째로 적립금으로 쌓아둘 수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신설학과 중에는 잘나가는 학과들도 많았다. 예컨대 1999년에 개설된 경찰행정학과는 애초 100명이던 입학정원을 다음 해 150명으로 늘리고 야간 학생까지 받았다. 교수 4명이 주간 A·B반 분반 수업을 하고 야간 수업까지 했다. 교수 1인이 학과 수업을 30시간 이상 맡아서 해야 했다. 교수 1인당 의무수업시수도 수도권보다는 두 배 이상 많았지만, 초과수당은 1시간에 고작 9천 원 남짓했다. 그리고 또 하나는 이른바 ‘관리 학생’들이 있었다. 그들은 등록금을 착실히 잘 냈으며, 학교는 그들을 위해 아무런 비용을 들이지 않아도 됐다. -편집실 : 그렇다면 결국 C대학은 교수들의 희생을 통해서 적립금을 모았단 말이 된다. 그리고 관리 학생을 통해서 적립금을 모았다는 것은 문제가 많지 않은가. -D교수 : 엄격히 말하면 그렇다고 볼 수 있다. 주간 교수 월급으로 분반 수업에 야간 수업까지 담당했으니 말이다. 특정 학과나 교양학부의 수업은 한 교실에 학생들이 80명이 넘는 경우가 허다했다. 그런데 잘나가는 신설학과가 계속 잘 되는 것만은 아니었다. 인근 지역, 특히 광주권이나 나주지역에 같은 인기 학과가 설치되면서 학생들은 광주로, 나주로 빠져나갔다. 입학정원은 불가피하게 축소할 수밖에 없었으며, 이런 현상은 2000년대 중반 보건계열 학과를 제외하고는 거의 모든 학과에서 발생했다. 관리 학생들에 대해서도 이즈음 교육부의 매서운 감시를 받게 되었고 결국 교수들이 처벌을 받게 되면서 등·하교 거리에 있지 않은 사람들, 예컨대 서울이나 부산 등의 원거리 지역의 사람들은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관리 학생이 불가능하다. -편집실 : 그렇다면 2000년대 중반부터는 적립금 비축이 어렵게 됐다는 말인가. -D교수 : 그렇다. C총장 다음으로 부임한 K총장 때부터는 1,300명대의 신입생 모집정원을 1,000명 미만으로 줄여야 했고 적립금을 모으기는커녕 변화하는 신입생들의 취향에 맞춰 낡은 교사동을 리모델링 하기 위해 오히려 적립금을 사용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편집실 : 현재 남은 적립금은 어느 정도이며, 신입생 모집 정원은 몇 명인가. 또 앞으로 대학의 정상적인 운영은 기대 가능한가. -D교수 : 약 320억 원 정도의 적립금이 남아있는 것으로 안다. 현 총장이 부임하고 신입생 정원은 다시 줄이면서 790여 명 정도가 됐다. 이 정도 학생 규모로는 정상적인 대학 운영이 어려울 수 있다. 특히 신설한 항공계열 학과를 위해서라도 적립금을 계속 받아서 써야 하는 상황이다. 그런데 최근 경비행기 구매와 관련해 해킹을 당해 12억 원을 잃어버렸다는데 어느 누구 책임을 지지 않고 있다. 만약 교수가 이런 일에 개입됐다면 즉시 파면 당했을 것이다. 고통은 구성원 모두가 고루 분담할 때 효과가 극대화된다. 교수 임금은 거의 동결 수준인데, 총장이나 사무처장은 전혀 그렇지 않다. -편집실 : 적립금과 관련해 덧붙이고 싶은 말이 있다면. -D교수 : 대학 적립금은 어디까지나 교수들의 희생으로 비축된 것이라고 보아도 과언은 아니다. 2000년대 중반 이후에 들어오신 교수들도 오늘날 우리 대학이 있기까지 음으로 양으로 고생을 많이 하신 분들이다. 현 총장은 스스로 입학정원을 200명 가까이 줄였다. 교육부의 대학평가에서 어떻게든 좀 더 나은 점수를 받으려고 한 일일 것이다. 그러나 그 여파는 실로 크다. 등록금 수입을 학생 1인당 연 500만 원만 잡아도 1년이면 10억 원이고 4년 뒤부터는 40억 원이다. 까다로워진 교육부의 대학평가에 대비하기 위해서라도 교수 충원율 확보는 시급한 문제이다. 그러니 교수 임금은 아예 동결해버리고 연봉이 많은 교수에게는 명예퇴직을 강요해온 것이다. 온갖 모욕과 겁박을 통해서 말이다. 그들은 우리 대학에 적립금이란 저수지를 파놓으려고 있는 고생, 없는 고생을 마다하지 않았던 교수들이다. 지금 총장과 사무처장은 아무 기여도 하지 않은 사람들이다. 아무리 대학의 자문 변호사가 10명이 넘고 총장이 교수를 내쫓는 방법을 100가지나 알고 있다고 하더라도 정말 이래서는 안 된다. 교수들을 이렇게 고양이 쥐 잡듯 하면 언젠가는 반드시 천벌을 받게 될 것이다.
-
[기획연재 : 이야기문학] 소설(5)[기획연재 : 이야기문학] 소설(5) 조수웅 문학박사 <지난 14호에 이어> 한편 현실 세계에서 소설의 의미부여 기능은 ‘끝 부분’이 담당한다. 허구 세계가 현실 세계에서 갖는 가치에 대해서 어떤 시사를 주는 것이다. 그런데 바로 이런 기능들 때문에 ‘프레임’은 독서 행위가 종료될 때 의식의 주변으로 쫓겨나 버린다. 그러므로 ‘프레임’을 의식의 주변으로 불러들여 대상화함으로써 텍스트의 첫머리에서 집중적으로 제시되는 읽기 구조의 ‘그림’과 ‘바탕’의 관계를 통합하고 있는 원근법을 반전시켜(굳이 거꾸로 읽어 본다). 즉 텍스트를 구조적으로 뒤집어 새로운 읽기 방법(텍스트의 가능성)을 한꺼번에 떠올릴 수가 있는 것이다. 물론 이것이 자기를 편성하고 있는 디스쿠르를 대상화하는 과정이 될 수 있다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한 번 구축된 텍스트와의 관계를 스스로 반전(탈구조)시키는 과정에는 독자가 자기의 내부인 타자와 만나는 계기가 내포되어 있다.<매혹의 인문학 사전> 이제 소설 읽기에 도움을 주기 위해 90년대 이후 소설들의 새로운 징후를 몇 가지로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거대 서사가 사라지고 그 자리에 사소한 일상을 가볍고 감각적인 문체로 그려내는 사소설적 경향이 자리 잡게 되었다. 둘째, 영화나 음악 등을 통해 체험된 이미지가 현실에 수시로 침투하거나 가상적 현실이 현실을 대체하는 등 전통적인 서사구조가 해체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셋째, 소설의 상품화 현상이 두드러지면서 장편이 양산되고 베스트셀러들을 생산해내는 몇몇 작가들 중심의 스타 시스템이 나타나게 되었다. 소설의 이런 변화는 소비사회의 현실을 그대로 반영하는 것이라고 볼 수도 있고, 소설이 영화나 만화, 게임 등의 대중적 서사 장르와 경쟁해 나가기 위해 선택한 일종의 전략일 수도 있다. 이러한 경향에 대해 우려하는 목소리도 만만치 않지만, 소설이 다양한 요소를 받아들여 혼성 장르(통섭)가 되어가는 추세는 앞으로도 더 강화될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소설에 동원되고 있는 문화적 기호들이 단순한 장식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는 것도 알아둘 필요가 있다. 그것은 등장인물들의 디테일한 묘사를 위해 동원되기도 하고, 중요한 기억의 장소나 사건의 단서가 되는 물건으로 등장하기도 한다. 또 집중적으로 언급되는 음악의 선율이나 그림의 이미지가 소설의 주조를 형성할 때도 있음을 인식해야 한다. 5) 현대소설의 새 경향 게오르기 ‘25시’ 마지막 장면에서 원인 모를 미소를 짓고 있는 주인공의 모습이 현대 위기를 상징하는 인간상이라고 한다. 이러한 현대 소설의 새 경향은 뭘까? 시․공간 속이나 내면세계로의 탐험인 전기(前期)와 행동주의와 실존주의 경향을 띠는 후기(後期)로 나누어 생각할 수 있다. 이 시대의 인간은, 현실적인 한계에서만 살던 19세기의 인간처럼 단식 인간상(單式人間像)이나 거시적 인간상(巨視的人間像)이 아니라, 몽롱하고 신비스러운 분위기에 빠져 있는 복식(複式)인간상이거나 미시적(微視的)인간상이다. 예컨대 ‘공상가’가 직업이라고 태연하게 말하는가하면, 혼전 성관계는 절대 안 된다는 과거와는 달리, 시장에서 꼼꼼히 물건 고르듯, 한 일년쯤 동거해보고 나서 혼인 여부를 결정하겠다는 식의 인간상이다. 그러니까 가통(家統)이나 아버지 한 분의 절대적 영향 아래 살던 시대에서 TV나 신문, 친구 등에게서 다양한 영향을 받는 시대로 바뀌었다는 말이다.(하지만 여기서 알퐁스 도데의 ‘별’을 잠시 음미해볼 필요가 있다.) 이러기에 이시대의 인간들은 전 시대의 좁은 공간에서만 살 수 없게 되었다. 그래서 공간의 확대를 꾀했다. 토마스 만(Thomas man)의 ‘마의 산’이 지니는 공간이 바로 그것이다. 그것은 지상(地上)의 시민사회에서의 공간이 아니라, 지상 5000피트의 지점에 있는 공간이었다. 이 공간에선 이미 지상의 룰은 통용되지 않는다. 이 사회는 현실사회의 허상(虛像)이지만, 현실 이상으로 현실적이다. 여기에 필연적으로 따라오는 것이 시간성이다. 이 시대 인간들은 공간의 결핍과 동시에 시간의 결핍을 직감하게 되었다. 이 ‘마의 산’은 그것을 구원하기 위한 시간 설정을 하였다. 그 시간은 이미 늙어버린 현실사회의 시간을 젊게 되돌려 놓으려는 시도다. 이 “젊은 시간"의 개입으로 좁은 3차원의 세계는 4차원의 세계에까지 확대되고 진전되었다. 그리고 이 시간의 개입으로 공간은 현실적인 데만 머무르지 않고 무한대로 확대되어 갔다. 과거와 미래 사이를 내왕하는 시간의 안내자로, 공간은 종횡무진(縱橫無盡)으로 확대되어 갔다. 이리하여 몇 개의 시간이 서로 섞여 과거는 현재 속으로 기어들어왔고 미래는 또 지나간 순간의 배후에 파고들었다. 여기에 시간의 도착(倒錯)이 자연적으로 일어났다. 말하자면, 지난 시대의 합리주의적인 시계는 이미 고장 난 시계가 되어버렸다. 따라서 현대 소설은 이런 시간성 때문에 상념과 인상의 연대기적(年代記的)인 과거의 질서를 파괴해 버렸다. 사건에다 중점을 두지 않고 그것은 오히려 자극과 기분이나 감정과 관념연합(觀念聯合) 등이 하나의 장면을 형성하기에, 과거처럼 소설의 맥락이 정연하지 못해 이해하기 어렵게 되었다.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나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즈’ 리차드슨의 ‘솟은 지붕들’ 그리고 포크너의 ‘에밀리를 위한 장미’ 등이 이 시간의 안내를 받은 좋은 예라 할 수 있다. 프루스트는 회상을 현실적 인상에 두어 시간과 공간의 확대를 꾀했고, 조이스는 특정한 하루(1904년 6월 16일)나 사회 상황에서부터 1000년 전이나 심지어 신화와 역사에까지 왔다 갔다 하는 시간의 확대를 제시했다.
-
<기획연재/이야기문학>소설(2)<기획연재/이야기문학>소설(2) 조수웅 문학박사 <지난 12호에 이어> 그러니까 소설은, 여름내 잡초가 무성한 마당에 그 잡초를 뽑고 길을 내며 화단을 만들어 아름답게 꾸미는 것처럼, 잡다하고 무질서한 그리고 우연한 현실세계에 어떤 통일과 질서와 필연을 부여하는 것이란다. 그러므로 소설은 어떤 특정한 실제인물의 이야기인 척하면서, 보편적인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처럼 보이도록 꾸민 이야기라고 할 수 있지. 그러니까 우리가 학년 초에 교실 환경정리 하는 것처럼 말이야.” (여자들이 화장하는 것을 떠올려보자.) “선생님, 그렇게 어렵게, 길게 설명하시면 어떡해요? 제 질문의 요지는요, 왜 그럴싸하게 꾸며 대는데, 거짓뿌렁을 하는데, 꾸중은 못할망정 잘했다고 칭찬하느냔 말입니다.” “자, 그러면 우리가 잘 아는 ‘춘향전’ 이야기를 해보자. 너희들 중, 춘향전이 우리 고전소설 중에서도 고전인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겠지?” “예, 저희도 그 정도는 다 알아요.” “그래 그럼 춘향전의 시대적 배경이 언제지?” “......” “이놈들아, 그것도 몰라 다 안다면서, 조선 숙종조 시대야. 그땐 한 고을의 원님이란 삼권(입법, 사법, 행정)을 한 손에 거머쥔 절대자나 진배없었지. 그래서 탐관오리라도 만나노면, 인권을 유린하며 재산을 빼앗고 반반한 젊은 여자들을 모두 불러들여 수청 들라며 수도 없이 괴롭혔지. 요즈음으로 말하면 성희롱을 한 셈이지. 그렇지만 그땐 저항은커녕 한 마디 대꾸도 못하고 고스란히 당하기만 한거야. 얼마나 억울하냔 말이다. 얼마나 분통이 터졌겠냔 말이다. 어쨌거나 그렇게 가엾은 많은 사건들은 실제로 벌어진 ‘사실’임에도 오늘날 하나도 전해지지 않을 만큼 사람들의 관심 밖이고, 설령 전해졌다한들 아무도 그 이야기에 감동하지 않을 거야. 그런데 순전히 꾸며진 그와 비슷한 이야기인 ‘춘향전’은 지금껏 소중히 전해 내려와 우리의 고전이 되고, 하도 많이 읽어 그 줄거리를 훤히 알 정도지만, 매번 우리에게 감동을 주는 이유가 뭐겠니? 그건 말이야, 허구가, 거짓뿌렁이 그 시대의 어떤 실화보다 그 시대를 더 진실하게 말해줬기 때문이다. 그럼 어떻게 그 시대의 진실을 말해줬는지 궁금하지? 춘향전에는 같은 시대에 벌어졌던 실화에는 없는 동시대인들의 이상적인 꿈이 담겨져 있고, 그 꿈이 오늘날 거의 현실적으로 성취되어 가고 있기 때문이지. 생각해봐. 그 시대 미녀들은 원님께 일방적으로 당하고만 있었는데, 춘향전에서는 ‘암행어사 출도요!’를 통해 가스명수 먹은 가슴처럼 시원하게 해주고, 또 그 시대에는 엄두도 못 냈던, 양반집 자제와 퇴기의 딸 간의 계급을 초월한 사랑을 이뤘잖아. 이 대목에서 우리는 진실한 사랑은 그 어떤 장벽도 넘을 수 있었음에 아낌없는 박수를 보낸 것 아냐. 이제 알겠어?” “그러니까, 이치에 맞지 않거나 실제 존재하지 않는 것에 대해서는 믿지 않는, 소위 합리적인 생활을 하는 이 시대 사람들이 전적으로 꾸며낸 이야기인 소설을 읽고 감동하는 까닭이, 바로 이 소설적 진실에 있다 그 말씀이군요.” “그래, 이제야 말뜻을 제대로 알아듣는 구나.” 3) 소설의 제 역할 밖엔 함박눈이 소복소복 내리고 따스한 아랫목에 앉아 화로에서 흘러나오는 구수한 군밤 냄새를 맡으며, 할머니가 들려주시던 옛날이야기는, 손자에게는 침이 꼴딱꼴딱 넘어갈 만큼 재미있었다. 그때 할머니의 이야기에는 으레껏 열두 대문이 등장했는데, 용맹스럽고 잘 생긴 대장이 험악하고 무자비한 두목을 이기려면 열두 대문을 거쳐야 했기 때문이었다. 하도 손자가 좋아하는 바람에 할머니는 밖에서 일을 하고 있는 며늘아기에게 호의를 베풀 양으로 불러 앉히고 머리 좀 식히라면서 열두 대문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런데 며늘아기는 그렇게 재미있어 하는 손자와는 달리 통 재미없어 한다. 맥이 풀린 할머니는 하는 수 없이 이야기를 다 끝내지 못하고 며늘아기를 밖으로 내보낼 수밖에 없었다. 다음 날, 손자가 다시 이야기해주라고 조르자 아따 이제는 되었구나 싶어서 할머니는 자신만만하게 어제의 그 열두 대문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손자놈은 그만 고개를 가로지르며 그 얘기 말고 다른 얘기를 해 달라고 졸라댔다. 이처럼 소설은 독자의 수준에 맞아야할 뿐만 아니라 언제나 새롭고 기발해야 제 역할을 할 수 있는 것이다. 4) 소설 읽기 소설을 읽거나 영화를 볼 때, 우리를 지배하고 있는 것은 시간의 선상(線上)에서 계속 일어나는 사건의 연속감(連續感)일 것이다. 이것은 우리로 하여금 장편소설의 페이지를 넘기게 하고 극장 자리를 끝까지 지키게 하는 힘으로써, 소위 플롯이 지닌 연속적 설득력에 연유한 힘이다. 그러나 다 읽거나 관람한 연후에 그 작품에 대하여 이야기하려 하면 어느새 이러한 연속감은 사라지고 우리는 그 작품을 불연속선상에 놓여져 있는 일련의 삽화군(揷畵群)으로 보게 된다. 즉 읽고 난 다음에는 아무리 우리가 기억 속에서 직접 읽던 때의 연속감을 재생시키려고 해도 그것은 불가능하다. 예컨대 형제간에 같이 보기로 한 영화를 동생이 무슨 사정으로 못 보았을 때, 영화를 보고 온 형에게 동생이 그 영화에 대해 이야기해주라고 조르면, 형은 두 시간 본 그 내용을 그대로 말할 수는 없다. 그래서 대강의 줄거리만 이야기할 수밖에 없는 경우와 같다. 이때 줄거리는 작품 각 부분이 시간의 선(線) 위에서 진행하는 연속물이 아니라, 각각 그 자리에 동결되고 고정된 독자적인 의미군이 된다. 우리가 소설을 감상한다는 것은 이러한 의미군을 이야기 자체의 시간 선상(線上)에서 유리시키어 각각 독립된 것으로 다루는 작업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
C대학의 부조리 심화… 부실대학의 전형 보여줘◆교수들에게 모욕 일삼는 총장C대학 총장 부속실에 들어가면 조그만 바구니가 눈에 들어온다. 총장면담을 하기 위해 총장실로 들어가는 교수 중 일부 교수들은 반드시 여기에 자신의 핸드폰을 꺼내 두어야 한다. 그렇게 해서 총장실에 들어간 교수들은 총장에게서 온갖 모욕을 당한다. 전년도 신입생 유치 실적이 저조한 교수, 매 학기 실시하는 학생 강의 평가에서 하위 10% 내에 있는 교수, 학교 당국에 대한 소송 등 분쟁상태에 있는 교수 등이 그 대상이다. 신입생 유치실적은 교수들의 임금 지급에도 영향을 미친다. 교수들은 학생 강의에 충실하기보다는 일 년 내내 신입생 유치에 전념해야 한다. 교수들은 신입생 유치를 위해 서울로, 부산으로, 대구로, 강릉으로 안 다니는 곳이 없다. 수시모집 마감이 임박해지면 수업도 제쳐둬야 한다. 실적이 저조한 교수 중 호봉이 높은 교수에게는 학과의 폐과 문제를 들먹이거나 명예퇴직을 종용한다. 강의평가는 무조건 하위 10% 안에 들면 불려간다. 이 때문에 교수들은 목숨 걸고 좋은 평가를 받으려고 학생들을 상전으로 모신다. 강의평가 점수가 평균 90점 이상이 되지 못하면 안심할 수 없다. 이때 불려간 교수들에게도 역시 총장은 학과의 폐과 문제를 들먹이거나 명예퇴직을 강요한다. 학교 당국과 다툼이 있는 교수는 그야말로 생지옥을 살아가야 한다. 총장은 교수를 퇴출하는 방법을 100가지 이상 알고 있다고 호언장담한다. 그중에 가장 대표적인 방법이 인간적인 모욕을 주는 일이다. 이런 대접을 받으려고 박사학위를 받고 교수가 되려고 고생했었는지, 교수들 대부분은 자괴감에 빠진다. (1994년 개교 직전 지은 건물로 교실 등에 빗물이 새고 장애인을 위한 엘리베이터가 설치되지 않았다.) ◆연봉 많은 교수에게 갖은 겁박으로 명예퇴직을 종용대학에서 명예퇴직은 기본적으로 20년 이상 재직한 교수에게 주어지는 하나의 혜택이다. 말 그대로 명예롭게 조기 퇴직하는 제도인 것이다. 하지만 C대학은 교수임금 절약의 한 방편으로 임금이 많은 교수를 대상으로 그동안 무수히 명퇴를 강요해오고 있다. 심지어 근무연한이 20년이 안 되는 교수도 명퇴를 시킨다. 명퇴금으로 많게는 2억 원 정도를 지급한다. 20년도 근무하지 않은 교원에게 명퇴금을 주는 것은 분명히 배임행위이다. 명퇴금은 학생등록금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성추행 의혹이나 논문 등 표절 시비로 징계위원회 심의 대상인 교수도 명퇴를 신청하면 수리된다. 이러한 경우는 대학은 교수를 명퇴를 시켜서는 안 된다. 명예로운 퇴직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근무연한 등 명퇴 요건을 충족하지 못한 교수가 명퇴금을 받고 나가서 곧바로 다른 대학에 재취직된 사례들도 있다. 이른바 ‘짬짜미’ 의혹이다. 이것 역시 배임행위로 책임을 물어야 마땅하다. C대학은 현 총장 직전에도 학과 폐과를 이유로 교수들을 해임한 적이 있다. 그들은 오랜 소송 끝에 복귀했지만 결국 명퇴를 해야 했다. 그 와중에 한 교수는 건강을 잃고 사망했다. C대학에서 교수들은 “명퇴를 하는 것이 아니라 명퇴를 당한다”는 말이 나돌 정도다. 명퇴한 교수 중 몇몇은 절차 등의 하자를 물어 취소의 소송을 제기한 상태에 있다. 일부는 하급심에서 학교가 패소를 당하거나 조정신청을 낸 상태에 있다. ◆부실 경영 속에서도 총장 등 일부 인사에 거액 연봉 지급현 총장이 C대학에 부임한 것은 2015년 3월이다. 당시 연봉은 2억 원으로 역대 최고였다. 현재는 3억에 달한다. 그동안 교수들 임금은 거의 인상되지 않았다. 이 지역 국공립대학에서도 총장의 이 정도 연봉은 그 예를 찾아보기가 힘들다. 오늘날까지 총장이 재임하는 동안 호봉제로 임용된 교수들은 거의 정리가 되었다. 그 공로를 인정받아 총장은 이사회에서 박수갈채를 받기도 했다. 총장의 임기는 고무줄처럼 늘어나고 신분보장이 제대로 안 되는 비정년트랙 교수들이 대거 임용됐다. 기존 교수들도 이런저런 이유로 비정년트랙으로 바꿔야 했다. 교수들 임금은 직원들 임금 평균에 훨씬 미치지 못한다. 같은 해 임용된 모 교수와 모 직원의 임금이 10년이 지나고 나서 우연히 확인해 본 결과 직원의 임금이 훨씬 더 많은 것을 알게 돼 사표를 낸 교수가 있을 정도다. 교원과 직원 간의 임금체계가 다르고 직원의 임금이 교원보다 많은 것은 다른 대학에서는 그 사례를 찾아볼 수 없는 C대학만의 괄목할만한 점이다. 그래서인지 C대학에서는 예전부터 ‘교수놈, 직원님’이란 말이 있었다. 제대로 된 연봉협상을 기대조차 하기 어려운 교수들은 신입생 유치실적, 논문업적실적 등으로 재임용이나 재계약에 목을 매야 하기 때문이다. 연봉 4,000만 원에도 못 미치는 임금을 받으며 신임교수들은 계속 영입되고 있는 가운데, C대학 사무처장은 ‘셀프 승진’으로 일 년마다 4급에서 3급으로, 3급에서 2급으로 승진했다고 한다. 그의 연봉은 억대가 훨씬 넘으며 좋은 외제 승용차를 타고 다닌다. 최근 그는 모 대학에서 박사학위까지 받았다고 하는데, 막중한 사무처 일은 어찌하고 어떻게 그 어려운 학위를 취득할 수 있었는지 실로 감탄스러울 뿐이라고 일부 교수들은 혀를 내두른다. 게다가 사무처장은 자기 외제 승용차의 휘발유까지도 부하 직원을 시켜 학교지정 주유소에서 받아오게 한다니 정말 신출귀몰하다. 총장과 사무처장이 이렇게 학교를 떡 주무르듯 하는 이유에는 재단의 신뢰가 크기 때문이리라. 그들은 2000년대 중반까지 수단·방법을 불문하고 적립한 교비 500억 원을 최대한 학교 발전을 위해 지금 열심히 사용하고 있다. 다만 교수들은 박봉과 교권 탄압에 시달려 신음하고 있을 뿐이다. (1979년 개교한 ○○여상을 위해 지어진 건물로 엘리베이터 시설이 없으며, 현재 C대학 교사동으로 사용 중이다.) ◆부실 교사동과 부실 체육관, 주민들도 학교시설 이용하기 어려워 C대학은 1994년 개교했다. 개교 당시 유일했던 4층짜리 건물에는 엘리베이터 시설이 없다. 게다가 며칠간 비가 계속 내리면 시멘트로 물이 스며들어 계단은 물론 교실 천장에서 빗물이 뚝뚝 떨어진다. 엘리베이터는 지체장애인들을 위해 필수적이지만 전기 승압 공사 등에 비용이 많이 들어간다며 아직도 엘리베이터 설치를 안 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최근 항공학과 실습용 경비행기 구매와 관련해 12억 원을 사기당했다고 하는데, 누구도 책임을 지는 사람은 없었다고 한다. 그뿐만이 아니다. 비교적 최근에 개축한 체육관마저도 비가 새고 겨울에는 습기가 올라와 이용하기가 불편하다고 한다. 더욱 이상한 일은 이 체육관 개축 당시 공사 소장을 했던 사람이 어느 날부터 이 대학 직원으로 채용됐다고 한다. C대학에는 한 개의 운동장이 있다. 제대로 된 규격은 아니지만 지역 주민들에게는 거리상 이용하기 편리하다. 하지만 운동장 입구에는 경고문이 붙어 있다. “본 시설은 초경량비행장치 실기교육시설로서 출입허가자 이외에는 접근을 금지함”. 지역 주민 A씨는 “읍내에 대학이 들어와서 주민들이 다들 좋아라 했고 가끔 조석으로 이용도 해왔는데, 최근 들어 저런 경고문이 떡하니 붙어 있으니 정말 위화감이 드네요”라며, “누가 이런 대학을 좋은 대학이라고 애들한테 추천하겠느냐?”며 씁쓸해했다. (C대학이 최근 개축한 체육관인데도 비가 새고 겨울철에 바닥에 습기가 올라와 수업에 지장을 준다고 한다.) ◆학과 폐과 규정 남용… 해당 교수들 급여는 반토막으로 줄어오늘날 대학의 학과 통폐합 문제는 학령인구가 급감하는 환경 속에서 불가피한 것이다. 그런데 C대학은 그 최종 의사결정을 총장의 뜻으로 할 수 있도록 했다. 정량평가지표는 논외로 하더라도 정성평가지표는 총장의 뜻에 따라 엉망으로 매겨진다. 2019년 구조조정 결과를 보면 폐과 대상 5개 학과 중에서 A학과는 다른 학과들에 비해 정량평가가 앞섰다. 하지만 교수 간 단합이 잘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이유로 B학과와 더불어 최종 폐과 대상이 되었다. B학과도 별다른 문제가 없었다. 다만 학과 교수들이 다른 학과에 비해 다소 많았을 뿐이다. 그런데도 A·B학과는 학과 교수 단합을 문제 삼아 폐과시켰다. 정작 학과 교수 사이에 성추행의 다툼이 있던 C학과는 지금도 멀쩡하다. C학과는 주말 수업 운영으로 ‘돈벌이’가 된다는 후문이다. 폐과 대상 학과로 결정되면 당해 학과 교수들의 급여는 당해연도 9월부터 월 급여가 20%씩 삭감된다. 그리고 다음 해 9월이면 또다시 추가로 20%가 더 삭감된다. 이 엉터리 보수지급규정은 지방사립대에서는 대단한 위력을 발휘한다. 끝까지 명퇴를 거부하고 어떻게든 학교에 남아보려는 교수들의 애환이 극에 달하고 있다. 지난 번 광주·전남권 대학의 교육부 역량 평가에서 호남 최대 사학인 조선대와 국립 순천대가 ‘자율개선’대학 탈락이라는 성적표를 받아 충격을 안겨준 바 있다. C대학이 언제까지 교수들의 희생을 담보로 교육부의 엄정한 평가를 비켜갈 수 있을지 궁금하다. ( C대학의 유일한 운동장, 그동안 지역주민들이 조석으로 이용해왔으나 이제는 운동장 출입 자체가 원천봉쇄되었다.) ※본 특집은 7월 6일자 남악신문에 아래 주제로 연재될 예정입니다. -C대학, 교비 500억 조성 경위와 용처 -C대학을 상대로 한 소송들 -C대학 노조 결성과 과제